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17)
117.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다영은 심장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정말 인간 같지도 않게 멋진 두 배우님들께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 주고 계셨다.
어떻게 될까.
지안의 미래는? 승호는? 정우는?
승호의 대사가 상영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다영은 시우의 멋진 목소리에 감탄하면서 다시 영화에 몰입했다.
“다 끝났어. 이제 감옥이나 가라.”
승호의 말에 정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 가지만 묻자. 내 계획들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지?”
“일종의 초능력이랄까. 네가 좋아하는 운명이랄까. 그런 거지.”
승호는 태연히 말을 뱉고 있었으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은 정우가 ‘작업실’이라 부르는 대림동의 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지안은?
승호가 지안을 찾듯 눈동자를 움직이자 정우가 화장실 문을 주먹으로 쳤다.
콰앙-!
“꺅!”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지안이는 여기 있어.”
“승호야! 가! 난 여기서 문 잠그고…… 있을 거니까! 못, 못 들어오니까! 가서 경찰이랑 같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은 지안이 바깥에 있는 승호에게 외칠 때, 딸칵 소리가 들리더니 화장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정우의 웃는 얼굴이 문틈 사이로 쑥 들어왔다.
영화관의 관객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안녕?”
해맑게 인사를 건넨 정우는 덜덜 떨고 있는 지안에게 말했다.
“다들 꼭 화장실로 도망을 가더라. 그래서…… 문이 안 잠기게 해 놨어.”
자신이 밖에서 문을 쾅쾅 차면 사냥감들은 겁을 먹는 동시에, 자신이 못 들어간다는 생각에 잠시 안도한다.
그때 이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 주면, 그 순간 보이는 사냥감들의 표정은 정말…….
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정우는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는 지안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지안의 목을 팔로 감싼 채 정우는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지안아……!”
“승, 승호야…… 흑…….”
지안은 승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승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지안을 구하고 싶었지만, 정우의 눈이 자신의 발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험을 하기엔 대가가 너무 컸다.
‘침착하자. 우선 놈을 진정시키고 경찰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승호는 괴로운 눈빛으로 고뇌하다 무언가 떠올린 듯 정우를 향해 눈을 치떴다.
진정시킨다고?
아니다.
‘나는 김정우를 알아.’
쏴아아-
물소리가 났다.
정우는 욕조에 지안을 눕히고, 물을 틀어 놓은 뒤 지안의 몸을 밑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얼음물이 아니라 아쉽네. 그래야 그때랑 똑같아질…….”
거실에서 날아온 승호의 목소리가 정우의 말을 끊었다.
“네 엄마가 너한테 왜 그랬을까? 궁금하지 않아?”
“…….”
“네가 정말 싫었던 거지. 끔찍하게 싫었던 거야. 왜냐하면…… 그 여자도 너랑 비슷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만해.”
정우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튀어나왔다.
승호는 미래에서 정우의 입을 통해 들은 정우의 트라우마들을 계속 건드렸다.
“불쑥불쑥 살인 충동이 일 때마다, 사이코들은 보통 그렇잖아. 곁에 있는 약한 존재들에게 그것을 풀지. 예를 들면 동물이라거나…… 옆에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아이…….”
“그만해! 우리 엄마는……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정우의 숨이 가빠졌다.
어떻게?
저 녀석이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지?
“여섯 살 때, 너는 봤어. 네 엄마가…….”
“아아악! 한마디만 더 하면, 지금 바로…… 이 여자를 죽여…… 죽여 버릴…….”
일그러진 얼굴로 화장실 바닥에 놓아둔 흉기를 찾아드는 순간, 승호의 얼굴이 보였다.
정우를 동요시킨 승호는 정우의 눈을 피해 어느샌가 화장실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파앗!
승호가 달려들었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관객들은 현실에서 둘도 없이 친한 시우와 승현의 처절한 액션씬에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스크린을 바라봤다.
두 배우는 서로의 몸을 잡고 엎치락뒤치락 혈투를 벌였다.
집안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거실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정우는 승호의 몸을 잡고 베란다 쪽으로 밀어붙였다.
터엉!
승호의 몸이 열려 있는 베란다 난간에 거칠게 부딪혔다.
터엉!
정우는 승호를 14층 아파트 바깥으로 밀었다.
탁!
승호는 베란다 난간을 잡고 버텼다.
정우와 승호의 필사적인 눈빛이 스크린 속에서 교차되었다.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까마득한 높이에서 승호는 힘겹게 버텼다.
승호가 버티자 정우는 한차례 더 강하게 승호를 밀어붙였다.
터엉!
순간-
오래된 난간 한쪽이 부서져 나갔다.
승호가 난간을 잡고 있던 한 손을 놓치고 말았다.
휘청!
승호의 한쪽 발이 허공으로 밀려났고, 승호를 있는 힘껏 밀던 정우의 몸도 균형을 잃고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관객들은 마치 자신들이 14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관객들의 낮은 비명이 들려오는 그때, 베란다 바깥으로 떨어지던 승호의 몸이 덜컥 멈췄다.
나머지 한 손으로 부서지지 않은 다른 쪽 난간을 잡고 있었기에 다행히 추락하지 않은 것이다.
관객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정우는?
카메라가 베란다 밑을 비췄다.
정우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베란다 바닥에 엎드린 승호는 정우의 한쪽 팔을 잡고 버텼다.
놓치는 순간 정우는 떨어진다.
이렇게 편하게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정우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승호를 올려다봤다.
좀 전의 흥분이 거짓말처럼 가셨다.
정우의 입에서 허무한 탄식이 새 나왔다.
“아…… 이거 엉망진창이네…… 지안이부터 죽였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자신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후회가 밀려들었다.
밑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대의 경찰차가 이미 아파트 단지로 들어와 있었다.
곧 올라오겠군.
정우는 절망했다.
감옥에 가면, 평생을 그곳에서 썩을 테고 이제 더는…….
정우가 승호를 불렀다.
“승호야.”
승호는 정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정우는 그런 승호에게 물었다.
“너 나에 대해…… 어떻게 다 아는 거야? 뭘 더 알고 있지?”
“전부…… 다 알아. 증거를 완벽히 모으기 전까지…… 숨기고 있었을 뿐이야.”
“신기하네…… 신기해…….”
“닥치고 올라와서 죗값이나 받아.”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현실적이지가 않잖아.”
“간절히…… 너무 간절히 원하면…… 현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기도 하더라고…….”
멀리서 현관 도어 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간절히라…… 그래…… 간절히…… 좋네.”
승호는 경찰들을 불렀다.
“지안이는 욕조에 있어요! 그리고 이쪽으로…….”
승호는 정우가 팔을 빼는 것을 느끼고, 말을 멈췄다.
뭐 하는 거지? 죽으려고?
그렇게는 안 된다.
정우가 말했다.
“승호야. 지안이랑 꼭 오래오래 살아. 형이 언젠가 다시 태어나면…… 또 죽이러 올게. 그때는…… 실수 없이.”
승호는 한이 맺힌 얼굴로 정우의 팔을 붙들었다.
“……닥쳐! 절대 안 놓쳐! 이렇게 죽게 둘 거 같아!”
“지안이가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면서 달려올 때…… 귀여웠지…….”
옅은 미소를 마지막으로, 정우의 팔이 승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정우의 몸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
죽이고 싶은 상대였지만, 죽어선 안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놈이 감옥에서 여유롭게 여생을 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는 게 지안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승호는 천천히 다가가 지안의 몸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물에 흠뻑 젖은 지안은 승호를 마주 안고, 승호의 품에 얼굴을 기댔다.
지안이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지켜 주겠다고 했잖아. 앞으로도 평생…… 네 옆에서 지켜 줄 거야. 다시는…… 잃지 않을 거야.”
승호의 말에 지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경찰들이 정우의 작업실을 수색했다.
구급대원들이 승호와 지안을 구급차로 이끌었다.
승호는 지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지안과 함께 놈의 기분 나쁜 작업실에서 걸어 나왔다.
겨울의 시린 햇빛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정태와 다영은 상황이 종료되자 겨우 긴장을 풀었다.
“휴우…….”
정태는 잊고 있던 숨을 크게 내뿜었다.
정말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유인석 감독, 대단하다.
윤시우, 류승현, 그리고…… 여배우는 이름이 뭐였더라. 아, 최유나.
어쨌든 전부 다 굉장하구나 감탄하며 정태는 팝콘과 음료를 챙겼다.
이제 영화는 에필로그였다.
미리 알고 있던 대로, 시우를 위한 노 개런티 특별 출연을 결정한 송준영과 이수진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지안아! 오늘 저녁에 나 일찍 올 거 같거든? 다 같이 외식하러 갈까?”
어른이 된 승호 역을 맡은 배우 송준영이 말했다.
“오~ 웬일? 좋아! 어디 갈 건데?”
어른 지안 역의 이수진이 말했다.
아담하고 아늑한 아파트였다.
“아무데나. 너 가고 싶은 데로 가자.”
“알았어! 와, 오늘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신대~ 좋아?”
지안에게 안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승호는 아내와 아들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다.
지안도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화창한 아침이었다.
지안은 아들과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으로 갔다.
마중 나온 선생님께 아들을 인계한 지안은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과 아이도 손을 흔들었다.
행복한 광경이었다.
손을 다 흔들고 뒤로 돌아선 지안은 겉옷을 살짝 여미면서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미스터리한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나갈 준비를 하던 정태와 다영은 입을 쩍 벌리고 스크린을 멍하니-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 * *
정태와 다영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던 중, 다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윤시우 연기 진짜 잘한다. 막 감정이 폭발해.”
정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류승현도. 갑자기 화장실 문 열고 ‘안녕?’할 때 심장 멎는 줄 알았어. 그 지안이도 처음 보는데 연기 꽤 잘하던데?”
“맞아. 얼굴도 예쁘더라. 물론 우리 시우가 더 예쁘지만. 훗.”
“에이, 시우는 남자니까 멋있는 거지. 실물이 더 장난 아냐.”
“응. 정말 시우 한 번만 눈앞에서 보고 싶다. 혹시 오빠랑 친하게 지내면 시우 실제로 볼 수 있어?”
“그…… 글쎄. 많이 친해지면 그럴 수도 있지만 나도 몇 달에 한 번 보기 때문에.”
“헐, 만난다는 게 어디야! 와…….”
둘은 영화관 지하로 내려갔다.
대형마트 앞에 여러 종류의 뷰티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다.
나온 김에 틴트를 하나 사기로 한 다영은 정태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다영아, 그거 오빠가 사 줄까?”
매장 앞에서 틴트를 고르고 있는 다영에게 정태가 물었다.
“응? 아니야. 내가 살게. 미안하잖아. 다시 만날…….”
“응?”
“아, 아니야. 얼른 고를게!”
“천천히 골라~”
사탕 컨셉의 예쁜 롤리젤리 틴트를 고른 다영은 계산을 하고 나왔다.
“이 색깔 진짜 괜찮아?”
“응, 잘 어울려.”
“우리 이제 뭐 해? 오빠, 공부해야 되니까 오늘은…….”
“어? 아냐. 나는…… 어?
정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엄마 향수 냄새랑 똑같은데? 어디서 나는 거지?”
정태는 뷰티 매장을 둘러보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와, 진짜 나 이 냄새 제일 싫어하거든. 엄마가 하도 독하게 뿌려 가지고 엄마 외출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에서 이 향수 냄새 난다? 근데 흔한 향수가 아닌…….”
웃으면서 몸을 돌리던 정태의 눈에 카트를 끌고 마트에서 나온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정태 엄마였다.
정태 엄마의 표정을 본 다영은, 저 아줌마가 오빠를 카트로 밀쳐 죽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살기가 느껴졌다.
정태 엄마는 조용히 물었다.
“……너 여기가 도서관이니?”
“아, 아니. 나는 얘랑 카, 카페에서…… 공부…… 엄마, 내가 다 설명할게!”
“그래. 염라대왕 앞에 가서 설명해라.”
* * *
늦은 밤-
시우는 자신의 방 침대에서 세 번째 환골탈태를 이뤄 내고 있었다.
시우에게서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방 안을 환하게 비췄다.
허공에서 찬란한 빛을 방안 구석구석으로 내뿜던 시우의 몸이 어느 순간,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섯 살 때 처음 경험한 이후, 초등학생 때 한 번, 그리고 열여섯인 지금-
노력 여하에 따라 스무 살 때쯤 한 차례 더 겪을 수도 있지만, 시우의 몸은 이것으로 거의 완전한 신체에 다다르고 있었다.
잠시 후.
시우는 눈을 떴다.
시우의 한층 깊어진 눈이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몸속의 마나들을 운기한 뒤, 시우는 입을 열었다.
“이젠 대마법사 레벨이네.”
꾸물꾸물-
걱정이 됐는지 복실이와 네로가 시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좀 오래 걸렸지?”
– 왈~
– 냐앙~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오랜 친구들의 모습에 시우는 어릴 때처럼 귀엽게 웃고는 말했다.
“같이 놀러 갈까?”
복실이와 네로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 안광은 환골탈태를 이루던 시우의 눈빛에 뒤지지 않았다.
– 멍멍~
– 냐앙!
“이리 와.”
복실이와 네로를 품에 안은 시우가, 주문을 외우자-
작은 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우와 복실이와 네로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