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2)
12. 돌잔치
자정이 넘은 늦은 밤.
시우는 슬그머니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이 내 첫 생일인가. 벌써 일 년을 살았어. 하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환생 때마다 가장 답답하고 때론 끔찍하기까지 했던 0~11개월 구간이었으나, 마지막 생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조차도 지나가는 게 아쉬웠다.
아기 침대에서 빠져나온 시우는 부모님에게 보다 강력해진 꿀잠 마법을 걸어 드리고 터벅터벅 거실로 나갔다.
‘아, 오랜만에 휴대폰이나 할까.’
방을 나서려던 시우가 몸을 돌려 안으로 되돌아갔다.
엄마의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두 손으로 집어 든 시우는 엄마의 손가락 지문을 이용해 잠금을 해제하고, 화면 자동 꺼짐 시간을 최대로 늘린 뒤 거실로 들고 나왔다.
“네로. 불 켜.”
– 냥~
거실에서 혼자 우다다를 하며 놀고 있던 고양이 네로는 시우의 등장에 귀를 쫑긋 세우고 반색했다.
네로는 거실등 스위치 밑에서 엉덩이를 꾸물꾸물 움직이다 힘껏 뛰어올랐다.
탁!
성공.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잘했어. 연습시킨 보람이 있구나.”
– 냐앙?
“알았다. 한 입만 먹어. 참 이상한 데 집착을 하네. 내가 창밖으로 던져 줬던 첫 맛을 못 잊나?”
네로는 복실이 사료 그릇으로 가서 입안 가득 사료를 물고 씹었다.
복실이가 저녁 늦게 산책을 하고 피곤에 절어 쿨쿨 자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시우는 소파에 기대 앉은 다음 리모컨을 이용해 TV를 켰다.
“놀다가 수련 좀 하고 자야겠다. 영화나 한 편 볼까.”
결제를 하면 흔적이 남으니 무료 영화 중에 골라야 했다.
잠시 영화 목록을 훑어보던 시우가 리모컨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직 손이 작아 리모컨을 들고 누르기보다는 말로 하는 쪽이 편했다.
“고양이나 강아지 나오는 무료 영화 찾아줘~”
생일이니까 평화롭고 힐링 되는 걸로 택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독스 앤 캣츠> 3편을 영어판으로 틀어 놓은 시우는 손가락으로 엄마 휴대폰을 톡톡 눌러 스페셜 프라이빗 모드로 전환한 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내겐 너무 무서운 아내]검색.
여러 관련 기사 제목들이 좌르륵 펼쳐졌다.
시우는 몇 개의 기사와 달린 댓글들을 읽었다.
– 오~ 이한수 감독! 개봉 언제 하나? 뭔가 진짜 웃길 거 같다
– 이것은 호러인가 로맨스인가 코미디인가ㅋㅋㅋㅋㅋ
– 10년 팬이다!!! 수진아 태수야 천만 가즈아!!!
“기대감이 엄청나네.”
영화는 한창 촬영 중이었다.
매일 촬영하는 어른들과 다르게 아이들은 주 1회 정도 촬영에 참가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7월까지 찍고 12월에 개봉한댔으니까 그때면…… 내가 19개월…… 완전 늙었어. 내 아기 시절 다 끝나 갈 때 개봉하네.”
대천문이 열려 있는 24개월까지를 아기 시절이라 여기는 시우였다.
“젠장. 왜 1년 산 느낌이 아니고, 죽음에 1년 다가간 느낌이지. 나의 101번째 생은 진짜 없단 말인가. 아니야. 생일날 이런 생각 하지 말자.”
마음을 비운 시우는 영화에 눈길을 던졌다.
영화에서는 사료 공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시우는 휴대폰 검색창을 다시 열었다.
[고양이한테 개 사료]검색.
정보를 찾아본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영양소가 달라 장기간 먹으면 문제가 되지만 가끔 한두 번 먹는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쳐 봤다.
[윤시우]검색.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이름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 나왔다.
“아기 배우로 검색을 해 볼까? 새삼스럽지만 TV와 인터넷이 있는 세상, 최고다. 왜 이 좋은 곳에 이제야 태어났나 몰라.”
시우는 아기 배우로 검색을 해 보려다 불현듯 엄마의 인싸가 떠올랐다.
휴대폰의 인싸 앱이 기분 탓인지 유난히 반짝거렸다.
앱을 터치했다.
“음…….”
시우의 사진과 영상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복실이와 네로였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치고는 꽤 높은 숫자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었다.
영화 촬영과 더불어 최근 엄마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팔로워 숫자는…….
약 1,700명.
“많은 건가 적은 건가. 감이 안 잡히네. 정태 엄마가 몇이랬지?”
시우는 기억을 되짚어봤다.
4만이었다.
영화 개봉 이후에는 10만까지도 바라본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욕심꾸러기 향수 아줌마의 헛된 희망일 공산이 컸다.
“엄마는 계정 만든 지 두 달밖에 안 됐으니까. 차차 늘겠지 뭐.”
엄마 인싸도 영화든 뭐든 홍보만 이뤄지면 팔로워는 분명히 늘 것이다.
시우는 숫자로부터 관심을 끄고 엄마가 찍은 사진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정말 많이도 찍으셨네. 늦게 배운 SNS가 무섭다더니.”
자신의 사진으로 들어가 댓글 보기를 눌렀다.
– 아기가 진짜 귀염귀염하네요!!
– 이름이 시우인가요? 제가 본 애기들 중에 최고 예쁜 듯 ㅠㅠ
– 너무 예뻐요~! 사진 많이 올려 주세요! 복실이랑 네로도요~!
댓글들을 본 시우는 넘쳐 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알고 그러려니 했다.
외모가 만렙인데 안 귀여우면 그게 이상한 거다.
만렙을 찍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은 역시 헛되지 않았다.
스크롤을 밑으로 내리던 시우의 눈에 영상 하나가 포착됐다.
엄마가 인싸 개설 초기에 올린 영상이었는데, 네로가 복실이와 추격전을 벌이며 메소드 코미디 연기를 펼친 그 영상이었다.
“좋아요랑 댓글 엄청 많네.”
시우는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 속에서 네로는 온갖 몸부림을 치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금 봐도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앜ㅋㅋㅋ 넘나 웃겨요 대체 왜 저러는 거냐고ㅋㅋㅋㅋ
– 몇 번을 봐도 계속 빵빵 터지네여 ㅎㅎ
– 얘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 고양이가 비제이면 후원 쏘고 싶다ㅠㅠㅠㅜ
엄마 인싸에서 단연 가장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얻은 게시물이었다.
“반응 좋네. 다음에는 고양이가 점프해서 불 켜는 거 올려 드립니다. 물론 엄마가 올릴 거고, 저는 유도만 할 거지만요.”
영상과 댓글들을 보며 혼자 꺄르륵 웃던 시우는 인싸에서 나와 마이튜브로 들어갔다.
“영상은 역시 마이튜브지.”
100명과 눈싸움을 해 봤습니다…… 결과는???
재생.
내 맘대로 서울 맛집 탐방 베스트 5.
재생.
나는 24시간 굶는데 옆에서 친구들은 계속 먹음.
재생.
99번의 생을 보내며 수많은 경험들을 했다고 자부하는 시우였으나, 이곳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마법보다 신기한 기술과 몬스터보다 신기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굉장한 세상이었다.
시우는 마이튜브를 종료하고 기지개를 켰다.
“슬슬 수련해야겠다. 이러다 밤새 놀겠어.”
마침 영화도 막바지였다.
거의 못 봤지만.
TV와 휴대폰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운 시우는 네로를 불렀다.
“네로. 불 꺼.”
방금 전까지 시우에게 등을 붙이고 누워 있던 네로는 깜빡 잠이 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됐다. 자라. 너도 묘권이란 게 있는데.”
진짜 잠든 것을 확인한 시우는 직접 끄기로 했다.
시우가 검지를 위로 치켜세웠다.
“윈드 애로우.”
아주 옛날에 배운 고전 마법이었다.
시우의 손가락 위로 작은 바람 줄기 하나가 완성되었다.
바람의 화살이라기보다는 바람의 바늘이라 불러야 어울릴 정도였다.
파앗!
앞으로 빠르게 날아간 바람의 바늘은 거실등 스위치를 정확히 때렸다.
탁!
거실의 불이 꺼졌다.
시우는 안방으로 돌아가 엄마 휴대폰을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아기 침대로 올라갔다.
수련 시간이었다.
사실 이곳은 꽤 평화로운 세상이라 굳이 강해질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사고나 이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수련은 열심히 해야 했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목숨을 교통사고나 추락사로 잃고 싶진 않았으니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시우는 긴 숨을 한차례 내쉬고 운기에 들어갔다.
시우의 밤이 끝났다.
* * *
오전 11시쯤 잠에서 깼다.
수면 시간은 짧았지만 새벽녘의 천기를 받아들인 덕에 몸이 가벼웠다.
시우는 3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 뒤 침대 난간을 잡고 서서 울음기 실린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엄마아~!”
훌륭한 발성이었다.
100번의 아기 생활이 한 땀 한 땀 빚어낸 흠잡을 데 없는 아기 연기.
엄마가 아기 침대로 뛰어왔다.
“우리 아들 일어났어? 엄마 안 보여서 놀랐어요? 엄마 복실이 사진 찍어 주고 있었어.”
현주는 시우를 안아 들고 말했다.
“오늘 돌잔치니까 시우도 이따 저녁때 사진 많이 찍자.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고, 이모도 오고, 엄마랑 아빠 친구들도 오고, 사람 되게 많겠다. 시우는 사람 많은 거 좋아하지?”
“우웅~ 맘마!”
“알았어. 맘마 먹자.”
그날 저녁.
집 근처의 한산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우의 돌잔치가 열렸다.
“시우야~! 시우야~! 여기 볼까? 이쪽 봐봐!”
“시우는 클수록 더 예뻐지네! 생일 축하해! 선물 사 왔어~!”
“도진이도 한 인물 하는 편인데, 어떡하냐? 아들이 벌써 아빠 넘어선 거 같다? 하하하!”
시끌벅적했다.
사회자는 손님들의 분위기를 컨트롤하면서 능숙하게 돌잔치를 진행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예능 프로에 종종 얼굴을 비추는 개그맨이었는데, 아이 아빠가 직접 사회를 본다는 말을 듣고 한태수가 신경 써서 보내 준 사람이었다.
“바쁘신 중에도 우리 사랑스러운 시우의 첫돌을! 축하해 주러 와 주신 많은 분들께! 시우 아버님께서 감사의 인사를…….”
아빠의 감사 인사 차례였다.
도진은 돌잔치 초반에, 현주는 말미에 인사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다.
도진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준비해 온 말들을 연극 배우 출신답게 멋지게 읊기 시작했다.
도진의 입에서 첫마디가 막 흘러나올 때였다.
시우를 안고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누비던 현주를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현주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헉!”
소스라치게 놀라는 현주.
영화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톱스타 수진이 앞에서 싱긋 웃고 있었다.
“지, 진짜 오셨어요?”
참석하고 싶다고 말은 했었다.
그렇지만 촬영 스케줄이 원체 바빠 불가능하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왔다.
“감독님이 다녀오래요. 대신 시우랑 다정하게 사진 많이 찍어 오라고. 영화 안에 소품으로 쓸 건가 봐요.”
“아~ 어, 어쨌든 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현주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수진과 수진의 매니저를 빈자리로 안내했다.
“저기 이수진 아냐? 맞지?”
“와, 실물 장난 아니다. 도진이 애랑 영화 한다더니…… 그래서 온 건가?”
“대박. 이수진이 왔어. 갑자기 현주가 엄청 대단해 보여. 인맥 봐.”
현주의 귀에 수진을 알아본 몇몇 손님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앉으세요.”
현주가 가리킨 의자에 앉으면서 수진이 말했다.
“괜히 제가 시우한테 갈 시선 뺏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맞다. 오늘 사진 찍은 거 나중에 제 인싸에 올려도 돼요?”
“네. 저희는 괜찮아요. 영광이죠.”
“뭐, 영광까지야. 우리 시우. 생일 많이 많이 축하해. 엄마가, 여긴 촬영장이 아니니까 엄마라고 하면 안 되나?”
“아니에요. 편하게 하세요. 드라마랑 영화에서 두 번이나 엄마가 되셨으니까, 그것도 인연이잖아요.”
수진은 현주의 대답이 마음이 들었는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되는 걸로. 우리 시우, 엄마가 생일 선물 나중에 집으로 보내 줄게. 우선 장난감 몇 개 가져왔으니까 일단 그거 갖고 놀아. 알았지?”
현주 품에 안겨 있던 시우가 수진을 향해 안아 달라고 손을 쭉 뻗었다.
수진은 녹아내렸다.
“왜? 수진 엄마한테 오고 싶어? 아~ 귀여워!”
현주가 수진의 무릎에 시우를 잠깐 앉혀 주려는 순간, 안타깝게도 사회자가 그녀를 불렀다.
“시우 어머님~! 케이크 점화하겠습니다~! 시우랑 이쪽으로 와 주세요~!”
수진이 현주에게 말했다.
“얼른 가세요.”
현주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케이크 점화에 이어 모두가 함께 시우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축하해! 시우야!”
“건강하게 커라~!”
“생일 축하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시우는 답례의 뜻으로 환하게 웃어 주었다.
“아부부부! 우아웅! 뿌뿌뿌! 아푸푸!”
‘제가 아직 12개월이라 노래를 한 곡 뽑을 수도 없고, 드릴 수 있는 게 웃음밖에 없네요. 여하튼 일 년 살았다고 이렇게 축하해 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짝짝짝-!
시우는 신나게 손뼉을 맞부딪쳤다.
“우리 시우가 기분이 정말 좋은가 봐요~! 너무 예쁘네요~! 자, 여러분! 이제 드디어! 다음 순서는 돌잔치의 꽃! 하이라이트! 이거 하려고 돌잔치 하는 거 아닙니까!”
사회자의 텐션이 올라갔다.
평생 한 번뿐인 빅 이벤트, 대망의 돌잡이 타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