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23)
123. 국가대표
의자에 앉아 있던 시우가 앞으로 몸을 살짝 굽혔다.
“누나 신곡?”
“응. 12월쯤 싱글 하나 내려고.”
“알았어. 웬일이야? 이렇게 들어 보라는 거 처음인데?”
가족들에게나 자신에게나 일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지연이었다.
무대와 연습실 외의 공간에서는 노래도 전혀 부르지 않았다.
시우와 지호가 가끔 쪼르르 달려가 노래 불러 달라고 부탁하면,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도망을 치곤 했다.
‘그런 누나가 나한테 미리 신곡을 들려주다니…… 혹시 듀엣곡인가?’
루카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른 이후, 시우는 이곳저곳에서 콜라보 제의를 받고 있었다.
월드스타인 루카스도 내년에 발매할 자신의 앨범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시우에게 정식으로 제안을 넣은 상태였다.
“흐으음~”
“왜?”
“아니야~ 아무것도.”
시우는 웃는 얼굴로 잠시 지연을 보다 지연이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누나네 회사에서 먼저 말 꺼냈을 테고, 누나 성격상 처음엔 피해 주기 싫다고 거절하다가…… 누나도 나랑 불러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
그만큼 내가 잘 불렀으니까!
시우는 속으로 의기양양하게 ‘하하하!’ 웃고는 지연에게 말했다.
“들려줘. 내가 듣고 솔직하게…… 아, 혹시 누나가 만든 곡이야?”
“응? 으, 으응. 근데 신경 쓰지 말고 감상 말해 줘. 그래야 나한테도 도움이 돼.”
“정말?”
“응.”
“알았어. 그럼 듣고 진짜 솔직하게 말해 줄게. 각오해.”
지연은 시우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허세의 기운에 역시 귀여운 중학생이구나 생각을 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지연이 휴대폰에 담긴 음악을 재생시켰다.
시우는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잔잔한 발라드 곡이었다.
[액티브 스킬 – ‘초월자의 음감’] [시전자의 귀에 들리는 음악을 기록해 분석합니다. 시전자의 귀에 기록되어 있는 곡이 많을수록 분석 효과가 상승합니다.]‘음, 일단 전생에 들은 음악들은 분위기가 다르니 제외하고. 최근 5년 사이에 들은 곡들과 비교해 보자.’
노래가 끝났다.
약간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지연이 물었다.
“어때?”
노래를 마지막까지 유심히 들은 시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말했다.
“나쁘진 않은데…….”
시우가 말끝을 흐렸다.
“응. 괜찮아 말해.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아?”
“무난해. 그리고 조금 오래된 느낌.”
“어?”
“곡 진행이 뭐랄까. 내 귀에는 3, 4년 전 겨울에…….”
“…….”
“아니. 쬐~끔 유행에 뒤처진 거 같다고.”
너무 자세히 말하진 않기로 했다.
지연은 시우의 평가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 그래? 누나는…… 좋은 거 같았는데, 그렇구나.”
연령대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다.
2년 뒤면 서른인 자신과 중학생인 시우의 취향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이때, 지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시우가 입을 열었다.
아기 때부터 봐 온 지연 누나의 생각 정도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표정에 전부 드러나는 타입이기도 했고.
“취향에는 쉽게 말해 두 종류가 있지. 자신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 나는 그냥 음원 차트 순위에 있는 곡들 기준으로 말한 거야. 누나 취향이 틀렸다는 얘긴 아냐.”
“아, 응.”
갑자기 지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왜 웃어?”
“아니, 많이 컸다 싶어서. 이런 얘기도 할 줄 아는구나 신기해서.”
시우는 티 없이 맑은 소년의 눈빛으로 지연과 마주 웃었다.
“누나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아부부 소리 내며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도 이런 얘기 할 수 있었거든?”
지연이 빵 터졌다.
“그런데 왜 안 했어?”
“우리 엄마 놀라서 심장에 무리 올까 봐, 나는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했어.”
“하하하!”
“누나. 내가 생후 9개월이었나? 그때부터 부모님 몰래 혼자 분유 타 먹고 그랬던 아이야. 아~ 새벽에 몰래 먹는 분유가 진짜 꿀맛이었는데.”
침대 끝에 앉아 있던 지연은 그대로 드러누워 배를 잡고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어휴, 그래. 알았어. 어쨌거나…… 이 노래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지?”
“아니. 단지 조금 손을 보면 더 잘 될 노래라는 뜻이지.”
“손을?”
* * *
“……뭐지? 평소 지연이 작곡 스타일이 아닌데?”
“와, 리드미컬하고 곡이 잘 빠졌다. 그치. 요즘은 겨울 노래라고 무조건 발라드 부르는 시대가 아냐. 지연이가 감이 갑자기 확 올라왔네?”
“지연아, 곡 너무 좋다! 드디어 우리 지연이 작곡 포텐도 터지는구나! 와~”
리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지연의 앞에서 감탄을 연발했다.
기타를 치며 가사까지 완성된 자작곡을 들려준 지연은 관계자들의 반응을 듣고 뿌듯해하다,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제가 만든 거 아니에요. 가사만 제가 썼어요.”
회사 대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그럼 누가 만든 거야? 네가 개인적으로 어디다 곡 의뢰를 했을 리는 없고.”
그때였다.
500원짜리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지연의 녹음실을 구경하던 시우가 말했다.
“웅얼웅얼-.”
입에서 막대 사탕을 뺀 시우는 다시 말했다.
“지연 누나가 만든 거 맞아요.”
지연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사실은 시우가 만들었어요.”
“누나, 왜 그래. 난 그냥 옆에서 조금 도운 거잖아.”
“그래도……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평이 좋았을 거 같지 않아. 다 네가 한 거야.”
친남매나 다름없는 지연과 시우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회사 대표가 상황을 정리했다.
“자자, 그러니까 지연이는 평소 하던 대로 겨울 발라드 곡을 만들었는데…… 시우가 그걸 젊은 층 트렌드에 맞게 바꿔 줬다는 얘기지?”
“네.”
“네.”
“그래. 누나한테 너 피아노 잘 친다는 얘긴 들었는데 곡 만지는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바둑도 잘하고 진짜 재능이 많은 친구야. 일단…… 곡이 정말 좋거든? 12월에 이거 디지털 싱글 내면 반응 장난 아니겠어.”
시우가 대답했다.
“누나 곡이 워낙 좋아서…….”
“아니야, 네가 진짜 다 했어.”
대표가 외쳤다.
“아, 그만! 알았어. 너희 사이 좋은 거 알았으니까 그만! 작사는 유지연, 작곡은 공동으로 유지연, 윤시우 이렇게 들어가면 되는 거 아냐. 됐어. 끝.”
* * *
10월-
시우는 머리가 복잡했다.
얼떨결에 데뷔하게 된 자신의 작곡가 예명도 지어야 했고, 내년에 설립할 기획사 이름도 지어야 했고…….
타악!
바둑돌이 놓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찾은 최민아 바둑도장에서 시우는 어린 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시우의 표정이 어쩐지 좋지 못했다.
최민아 9단이 다가왔다.
“시우야, 왜. 인터넷 반응 때문에 그래?”
“네? 아, 전혀 아니에요.”
‘이름. 이름. 이름 짓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시우의 입에서 조그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정말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최민아 9단에게 대답한 시우는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윤슈슈 사범니임~! 얘가 졌는데 안 졌다고~ 자꾸 우겨요!”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시우는 그제야 진심으로 미소를 띠고 걸음을 옮겼다.
“얘들아, 윤시우 사범님이라니까.”
“하지만 윤슈슈 사범님이 더 귀엽자나요~”
“형, 중학생이거든? 귀여울 나이 지났어.”
“사범님은 얼굴이 귀여워요~!”
“이런 외모지상주의 초딩들 같으니라고.”
시우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본격적인 지도를 시작했다.
지도를 마친 시우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휴대폰을 켰다.
– 윤시우 낙하산
– 진짜 흥행만을 위한 와일드카드
– 프로 되고 딱히 보여 준 것도 없는데?
– 난 윤시우가 바둑 계속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어이가 없네~?”
– 이번 대회는 선발전에서 아깝게 떨어진 고수들이 많아서…… 난 그거 때문에 HS가 와일드카드 발표 미루는 줄 알았거든…… 근데 뜬금없이 프로 자격증만 따고 활동은 안 하는 윤시우를 와일드카드로 뽑아?
– 중국 대표 5명. 일본 대표 5명. 한국 대표는 시작부터 한 명 빼고 4명으로 붙는구나. 실력 없이 인기로만 뽑힌 역대급 케이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자존심을 건 전통의 바둑 단체전, 농신배가 중국의 7회 연속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남기고 허망히 폐지된 이후.
그 뒤를 이어받아 한국 문화 예술계의 공룡 기업, HS그룹이 만든 HS배 단체전이 새롭게 창설되었다.
케이블 방송과 영화 산업, 아이돌 제작 등 온갖 분야에 손을 뻗고 있는 HS그룹의 심태윤 회장은 바둑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재계의 대표적인 바둑 애호가였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개봉 당시, 배우 겸 프로 기사인 시우에게도 사인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7월 대표 선발전에 참가도 하지 않은 시우를 HS배 단체전 한국 대표로 뽑아 버린 것이다.원래 와일드카드 한 자리를 누구에게 주느냐는 주최사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경우가 없는 선발은 처음이라, 많은 팬들의 반발이 일고 있었다.
한편-
– 시우가 나가게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HS 회장이 시우 팬이라서 뽑은 거잖아요. 왜 시우한테 욕해요? 시우 팬으로서 저희도 되게 어이가 없거든요?
– 솔직히 바둑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이번에 시우 나간다고 해서 본방 사수할 거예요~ 믿고 응원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ㅠㅠ
– 얼굴로 바둑 두면 시우가 다 쓸어버릴 텐데…….
– 어쨌든 열여섯 살 아이한테 너무 심한 비난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바둑 팬이지만 현실 대국이 부족할 뿐이지 인터넷에서 윤슈슈는 여전히 강력하잖아요. 한때는 한국 바둑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불리던 앤데…….
– 시우가 중국 대표든 일본 대표든 단 한 번이라도 이기면 다 해결되는 일임. 근데 허무하게 첫 판에 깨지면 좀 타격 있을 듯.
윤시우 선발에 대해 일부 바둑 팬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시우를 옹호하는 팬들도 많이 있었다.
여기에 배우 윤시우의 팬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하며, 다툼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바둑 국가대표 선발과 관련된 기사가 연예란과 스포츠란을 뒤덮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MBS 9시 뉴스 김석환입니다. 먼저 첫 번째 소식으로 배우 윤시우 씨의 바둑 국가대표 선발 관련…….]9시 뉴스에도 나왔다.
시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기면 되는 거잖아. 간단하네 뭐.’
며칠 뒤-
시우는 태우와 김포 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다른 바둑 대표들도 함께였다.
매니저인 태우 삼촌과 앉고 싶었지만, 지정석이라 이십대 중반의 프로 기사인 이정석 7단의 옆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창가석이라고 좋아하던 시우는 어차피 금방 내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얌전히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이정석 7단이 시우의 행동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공부 좀 했어?”
“아, 네. 누구랑 둘지 모르니까 그냥 인공지능이랑 30판 정도 두고 왔어요.”
“30판? 그거 다 연구하려면 시간 꽤 걸렸겠네.”
물론 시우는 연산 처리 속도가 탈인간 급이라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정석 7단은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시우의 어깨에 격려하듯 손을 올렸다.
“사람들 말하는 거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집중해서 인터넷에서 보여 준 실력대로만 해. 솔직히 아는 사람만 아는 거지만 전투력은 네가 세계 최강인 거 같거든.”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
‘바둑 볼 줄 아시네요. 하하.’
시우는 방긋 웃어 보였다.
이정석 7단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도 지면 중국이 단체전 10연속 우승이네.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우승해야 팬분들께도 낯이 설 텐데…….”
비행기는 도쿄에 도착했다.
한국 대표단이 게이트를 통과해 나온 순간, 하네다 공항 전체에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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