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25)
125. 완생(完生)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윤시우의 연승이 이어졌다.
한 판이라도 이기면 다행이라던 출전 전의 평가는 완전히 뒤집혔고, 아시아의 팬들은 바둑을 두는 천재 미소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0월 말.
도쿄에 이어 상하이에서 벌어진 대회 2라운드.
시우는 상하이에서도 제5국부터 제9국까지의 승부를 쓸어 담으며 6연승을 달렸다.
이곳에서 일본 대표팀 5명의 선수들이 전원 탈락했고, 남은 상대는 이제 난공불락이라는 중국 선수 2명이었다.
HS배 국가대항전 최종 3라운드 장소는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HS 센터였다.
15세 천재 기사의 등장에 이창호 9단을 떠올린 오래된 바둑 팬들부터, 할리와트 마법학교의 에반에게 열광하는 젊은 팬들까지.
마치 인공지능과 싸우던 이한돌 9단을 응원하던 때처럼 전 국민이 윤시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비친 소년 시우가 생각에 잠겨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 응원하던 국민들도 함께 수심에 빠졌고-
시우가 고민 끝에 자신 있게 손을 뻗어 돌을 놓을 때면 국민들도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에 가슴이 설렜다.
다시 또, 다시.
윤시우 신드롬이었다.
“허허허! 우리 윤 사범! 내가 일 낼 줄 알았어!”
3라운드가 열리기 전날, 시우는 심태윤 회장의 초대로 HS 센터 회장실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심태윤 회장은 자랑스러워하며 시우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결과론이지만,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와일드카드로 선발한 시우가 HS배에서 대활약을 하니 본인의 인기와 평판도 덩달아 수직 상승을 하고 있었다.
심태윤 회장 눈에는 그저 시우가 너무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윤 사범은 연기도 잘해~ 머리도 좋아~ 재주가 참 많아! 이번에 무슨…… 노래도 나온다던데?”
심태윤 회장이 물었다.
태우와 함께 앉아 있던 시우는 테이블 양옆에 각 잡힌 자세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HS그룹 임원들을 슥 보고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전생에도 큰일 좀 해내면 왕이 초대해서 귀족들이랑 밥 먹고 그럴 때가 있었지. 이거 딱 그 분위기네.’
심태윤 회장은 한국 문화 예술계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 어떤 대가수나 대배우도 별로 눈에 두지 않는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젊은 시절 군대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에 빠져 [바둑으로 경영을 배우다>라는 자서전까지 낸 바가 있었다.
사실 기업 회장들의 바둑 사랑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단증을 가진 회장들도 무척 많았고, 심태윤 회장 또한 아마 7단의 고수였다.
심태윤 회장의 이뻐 죽겠다는 눈빛을 정면에서 받아 내며 시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노래. 나오죠. 유지연 누나랑 듀엣 한 곡 발표하게 되었죠. 하하.”
불편하다.
심태윤 회장과의 만남이 불편하다기보다, 옆에서 회장님 눈치를 보며 기계처럼 식사를 하고 있는 임원들을 보기가 불편하다.
시우가 ‘이따 태우 삼촌이랑 나가서 설렁탕이나 먹어야지.’ 생각할 때, 심태윤 회장이 말했다.
“그래. 그래. 요즘은 가수들도 다 배우 하는데, 배우가 가수하면 안 된다는 법 없지.”
심태윤 회장이 손짓하자 임원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네. 회장님.”
“우리 윤 사범이 가수하신다니까 팍팍 밀어 주라고. 무대도 제일 화려하게. 내가 봤어. 윤 사범 노래하는 영상. 아~ 주~ 잘해. 하하하!”
“하하하!”
백발이 성성한 심태윤 회장이 웃자 임원들은 다 같이 따라 웃었다.
‘이 생이나 저 생이나 권력이란 비슷비슷하네.’
시우는 속으로 웃고는 두툼한 연어 스테이크를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이후에도 심태윤 회장은 시우와 태우에게 차기작 일정, 갓 엔터와의 계약이 끝나고 HS 엔터로 옮길 의향은 없는지, 등등을 물으며 시우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끝에는 곧 시판될 예정인 시우의 친필 휘호가 들어간 부채를 선물받고, 껄껄껄 환하게 웃는 심태윤 회장이었다.
“내년에 기획사 만들면 연락 주시게. 윤 사범. 나도 답례로 선물 크게 보낼 테니까 말이야.”
이튿날.
지상파, 종편, 케이블, 포털 등에서 동시 생중계가 진행되는 가운데 HS배 제10국이 펼쳐졌다.
시우의 7연승 도전 상대는 중국의 2인자 리징 9단이었다.
세계 최강 왕레이를 위협하는 22세의 젊은 강자였는데, 승부처에서 가끔 실수를 범하는 탓에 뛰어난 실력에 비해 아직 세계 타이틀 경험이 없는 무관의 호랑이었다.
시우는 침착하게 바둑을 두어 갔다.
그리고 중후반에 접어들어 치열한 패 싸움이 전개되는 와중에, 상대가 약간 안이한 팻감을 걸어오자 가차 없이 패를 해소하면서 단숨에 승기를 붙잡았다.
한중일 각 방송사의 해설자들은 15세 소년의 치밀한 계산과 단호한 결단에 일제히 감탄을 터트렸다.
시우는 한 번 낚아챈 승기를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판을 마무리했다.
제11국 윤시우 2단 VS 왕레이 9단.
왕레이는 시우보다 12살이 많았다.
중국 젊은 신예들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었지만, 흔들림 없이 5년 연속 세계 랭킹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바둑계의 끝판왕이었다.
세계 랭킹 3위인 한국 에이스 이진환 9단의 천적이기도 했다.
시우는 HS그룹에서 준비한 호화로운 특별 대국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왕레이도 시우의 뒤를 이어 입장을 마쳤다.
만약 오늘 시우가 승리하면, 한국은 십여 년 만에 단체전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긴장한 채 화면에 비치는 윤시우와 왕레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돌 가리기를 했다.
시우가 흑돌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인간 최고수와 상대한다는 생각에 시우도 이번만큼은 은근히 마음이 떨려 왔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즐거움이었다.
검은 돌을 쥔 시우의 손이 움직였다.
타악-
지금은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도, 다음 달에 가수 데뷔를 한다는 사실도, 슈 엔터테인먼트도, 다 잊어야 했다.
주장인 진환의 말처럼 이번 판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닌데,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전부 자신을 응원해 주고 있었다.
타악- 타악-
해설자들도 시청자들도 고요한 가운데, 시우와 왕레이의 손이 몇 차례의 수를 주고받았다.
흑을 쥔 시우는 안정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양소목을 택했고, 왕레이는 양화점으로 맞섰다.
‘윤시우의 양소목은 이번 대회 들어 처음이로군. 그래. 어떻게 전개할 생각이냐.’
시우의 의중을 간파하기 위해 왕레이는 날카롭게 바둑판과 시우의 표정을 훑었다.
시우는 못지않게 매서운 눈빛으로 왕레이와 시선을 맞춘 다음, 손을 내밀었다.
타악-
시우의 돌이 왕레이의 화점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십여 수가 진행되자 어느 정도 초반 윤곽이 드러났다.
시우가 들고 나온 전략은 철저한 선실리(先實利) 후타개(後打開).
먼저 실리를 얻고, 대신 상대에게 큰 세력을 허용한 후-
훗날 그 세력 안으로 뛰어들어 공격받는 미생(未生)의 돌들을 완생(完生)으로 살려 냄으로써 상대 세력을 부수는 작전.
시우의 눈동자가 수많은 변화들을 머릿속에 그려 내며 바둑판 위에서 자신을 대신해 싸우고 있는 돌들을 바라봤다.
한 수- 한 수-
시우의 길고 가는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필사적인 계산과 심리적 고통이 담긴 인간의 한 수가 바둑판 위에 쌓여 갔다.
어느덧 왕레이의 이마에도, 시우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두 사람의 차갑게 빛나는 눈 안에서 흑백의 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타악!
왕레이의 돌이 거칠게 떨어져 내렸다.
‘여기까지 가져가마. 꼬마야.’
시우가 실리를 차지하는 동안 왕레이는 중앙 세력 형성에 공을 들였는데, 시우가 허용하려는 그 경계선을 계속 한 발 두 발 넘어와 시우의 계산보다 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시우는 애가 탔다.
역시 끝판왕다운 실력이었다.
얼핏 상대가 무리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막상 왕레이가 두고 나니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상대 세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다. 싸워야 해. 하지만…….’
지금 어설프게 싸움을 벌이면 기껏 쌓아 놓은 실리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참고 한 걸음 물러나야 할까-
전부 걸고 지금 싸워야 할까-
시우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이를 악물었다.
뇌와 심장이 불타 버리는 기분이었다.
시청자들도 시우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같이 마음을 졸였다.
시우의 얼굴이 너무 괴로워 보여 댓글 창도 잠시 조용해졌다.
10분- 20분-
시우가 미동도 않고 바둑판을 노려보는 동안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초읽기가 시작되려는 그 순간, 시우가 조금 떨리는 손끝으로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타악.
중계를 하던 한국 해설자들이 외쳤다.
“아…… 윤시우 2단, 장고를 거듭하다 뒤로 물러났어요. 참았습니다. 괴로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러면 왕레이 9단의 세력이 너무 커지지 않나요. 수세에 몰리는 것을 각오하더라도, 현상 유지를 택한 윤시우 2단…… 어엇!? 방금 윤시우 2단이 뒤로 물러나는 수를 두고 나서 인공지능이…….”
“어…… 좀 전까지 53 대 47로 왕레이가 앞서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 50 대 50으로 균형이 맞춰졌네요? 인공지능 얘기로는…… 윤시우 2단의 지금 수가 옳았다는 애긴데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인공지능은 시우의 판단이 옳음을 수치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 해설자들도 뒤늦게 엘프 제로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듣고 15세 소년의 냉정한 판단에 전율이 인다는 말을 연신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참고 참으며 침투의 때를 기다리던 시우가 180수 부근에서 드디어 왕레이의 세력 안으로 침투를 했다.
일반적인 침투가 아닌 오묘한 한 수였다.
‘뭐 이런…… 이게 15세라고?’
왕레이는 놀람을 애써 감추며 시우의 아직 앳된 얼굴을 한차례 노려봤다.
침투와 삭감, 그 중간에 놓인 어중간한 한 수-
그 어중간해 보이는 한 수가, 아까 왕레이의 수가 그러했듯이 막상 그 자리에 놓이니 절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내가 저 수를 인정해 주면, 결과는?’
왕레이는 향후 일어날 변화를 포함한 수십 개의 수들을 미리 내다본 뒤, 그 변화가 일어났을 때 자신의 집과 시우의 집이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날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해 냈다.
‘……내가 진다!’
그렇다면 저 돌을 잡아야 했다.
타악!
왕레이의 각오가 어린 백돌이 시우의 흑돌을 포위했다.
타악!
시우는 예상했다는 것처럼 곧바로 왕레이의 세력 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방금 전, 왕레이의 수로 탈출구는 막혔다.
이제 미생의 돌은 왕레이의 세력 안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깨지고 부딪치고, 때로는 팔다리와 같은 일부를 희생시켜서라도, 어떻게든…… 단 하나의 생로(生路)를 찾아내야 했다.
시우는 자신의 생사가 달려 있는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 위로 시리게 눈을 빛내면서 머릿속에 두 글자를 되뇌었다.
‘완생(完生)!’
247수.
왕레이가 돌을 거두는 순간, 누군가의 말처럼 시우는 한국의 스타에서 한국의 영웅이 되었다.
제3회 HS배 국가대항전.
대한민국 첫 우승의 현장에는, 시우가 있었다.
* * *
[대한민국 남자 바둑 단체전 농신배 이후 13년 만에 우승!> [윤시우 기적의 8연승!>우승 축하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우는 오랜만에 인싸를 열고 사진 몇 장을 업로드했다.
대국이 끝나고 호텔 해설장까지 응원을 와 준 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심태윤 회장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우승 트로피를 들고 다른 동료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었다.
잠시 시윤이, 시아와 놀아 주다 다시 인싸에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 우승 축하해! 시우야!
– 너무 멋있었어 ㅠㅠ 우리 시우 바둑돌 잡은 손 파르르 떨 때 누나 맘 찢어지는 줄 알았어 ㅠㅠㅠㅠ
– 왠지는 몰라도 그냥 눈물 났다 ㅜㅜ 잘했어!
– 믿을 수가 없는 승부였다. 그 돌이 살아나다니. 분명히 죽을 돌이었는데.
– 죽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구나 진짜…… 와……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ㅠㅠㅠ
– 시우야 열심히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부담 많았을 텐데 오늘 푹 쉬어!
시우는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칭찬 받으니까 좋네.”
그때, 시윤이가 외쳤다.
“엄마~ 형이 뉴스에 나와~”
만화 틀어달라고 조르는 시아에게 시달리다, TV를 켠 시윤이는 9시 뉴스에 시우의 이름이 나오고 있자 엄마를 불렀다.
시우의 눈이 TV로 향했다.
[천재 소년 윤시우는 누구일까요, 윤시우 군의 성장 과정을 알아보는…….]소파에 기댄 시우는 자신의 이마를 살짝 긁적였다.
“이건 좀 부담스럽네.”
TV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CF에서 빠뿌야라는 유행어와 귀여운 외모로 국민들의 마음을…….]시우는 다급히 시윤이를 불렀다.
“시윤아~ 빨리 채널 돌려.”
“알았어!”
채널을 돌리려던 시윤이는 볼륨을 키우고 말았다.
[아부부부~! 빠뿌야아~!] [보이십니까! 꼭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이 어린 아기가 바로! 훗날 월드 스타이자! 천재 소년…….]온 집안에 쩌렁쩌렁 빠뿌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채널 돌리라고. 제발.”
* * *
열여섯 살의 마지막 달.
12월-
특별한 날인 걸 아는지 오늘따라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시우는 창가에 서서 눈 구경을 하며 지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시우의 손에는 마시멜로가 동동 떠 있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시우가 입을 열었다.
“캬아~ 맛있다. 그런데 첫 라이브를 눈 보면서 하겠네요.”
관계자가 말했다.
“그러게. 분위기 있겠다.”
시우는 싱긋 웃고는 또 코코아의 맛과 향에 빠져들었다.
끼익-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기실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마친 지연이 걸어 나왔다.
“시우야. 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