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34)
134. 복실이의 위엄
[누군가 내게 1점을 줬다>.학생들이 만든 단편 영화였지만, 발랄하고 유쾌한 분위기에 시우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태우는 분량을 정리해 웹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시우가 나오니 화제성이야 당연한 것이고, 연출 데뷔작이라는 홍보까지 할 경우 웹 드라마 업계에 지각 변동을 불러올 만큼 높은 성적을 거둘 게 분명해 보였다.
태우의 진지한 제안에 시우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같이 만든 친구들이랑 상의해 볼게요.”
대본 작업을 함께 한 재희나 여주로 출연한 은주 등은 시우의 연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모든 친구들의 동의를 얻은 시우는 태우에게 결과를 전달했다.
태우는 웃으며 말했다.
“슈 엔터 첫 작업이 익스트림 컴백시키는 일일 줄 알았더니, 웹 드라마를 먼저 하게 생겼네.”
“아, 이모부.”
“응? 왜.”
“혹시 웹 드라마 잘 돼서 같이 출연한 은주가 주목받게 되면, 다른 회사가 데려가기 전에 우리 회사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요?”
태우는 작품 속에서 시우와 티격태격하던 은주의 연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잘하더라. 아역 출신도 아닌데 웬만한 아역보다 나아 보이던데? 뭐 하던 친구야?”
“몰라요. 아직 그렇게 친한 건 아니라서. 근데 연기가 타고났어요. 서포트해 주면 잘될 거 같아요.”
시우는 확신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한번 보자. 몹시 까다로운 우리 윤 배우님 눈에 들었다면 연기로 충분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친구란 뜻이겠지. 근데 시우야.”
“네?”
“우리 원래 1인 기획사 아니었어?”
“……그랬죠.”
“어째, 식구가 자꾸 는다?”
시우와 태우는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시우는 자신도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는 듯이 뒷머리를 만지다 입을 열었다.
“이러다 나중에 갓 엔터나 MGS 같은 대형 되는 거 아닌가 몰라요.”
“하하하. 꿈이 너무 크다. 그러려면 익스트림이 대박 나고, 그 뒤에 만드는 후속 그룹도 연달아 대박 나고 그래야 가능성이 있지.”
“뭐,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일단 트림이 형들 대박 났으면 좋겠네요.”
* * *
웹 드라마는 제대로 된 준비를 갖추고, 몇몇 부분을 재촬영해서 분량 재정비를 한 뒤 7월에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시우는 평이 좋지 못하면 혹시 친구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태우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소재 자체도 대중적이고 분위기도 발랄하니까. 반응 좋을 거야. 내가 봤을 땐 괜찮았어.”
“이번 작품은 연기는 둘째 치고, 연출 엉망이라는 소리만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시우가 한숨을 쉬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태우가 말했다.
이제는 대표 신분이라 운전은 다른 직원에게 맡겨도 될 텐데, 가끔 시간이 나면 여전히 시우를 태우고 운전을 해 주는 태우였다.
“연출 쪽이 더 걱정이구나? 이번에 우리 최민철 감독님 뵙기로 했잖아. 이모부가 감독님께 혹시 괜찮으시면 네 작품 한번 보고 평가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볼까?”
시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만들기만 하면 1,000만 관객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연출의 신, [신의 이름으로>의 최민철 감독에게 조언을 구하면 웹 드라마로 재편집하기 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탁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시우가 탄 차는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세운 태우가 뒤를 돌아봤다.
“집에 들어가서 곧장 씻고, 푹 쉬어.”
“이모부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시우는 익스트림 형들을 위한 컨셉 구상과 작곡, 그리고 ‘누군가 내게 1점을 줬다’ 재촬영과 추가분 촬영으로 바쁜 5월을 보냈다.
늘 광고나 화보만 찍다가 색다른 일을 하다 보니 꽤 신선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레디, 액션!”
이 말을 직접 외치는 게 꽤 짜릿했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든 어느 금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온 시우는 가방을 내려놓고, 깨끗이 씻은 다음 거실로 나갔다.
거실 놀이 매트 위에서 시아가 네로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시우는 그 앞을 스쳐 지나가며 물었다.
“네로야, 형이 도와줄까?”
– 냐앙~
됐단다.
시크냥이었다.
거의 올라타다시피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시아 때문에 무척 불편해 보였지만, 네로는 계속 놀아 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괜찮냐. 힘들면 말해.”
– 냐냥! 냐아앙~ 하아악…….
네로는 하악질인지 한숨인지 모를 묘한 소리를 내뱉고는 시아와 같이 매트 위에서 뒹굴었다.
시우는 소파 위에서 시윤이 무릎에 앉아 같이 태블릿을 시청하고 있는 복실이를 불렀다.
“복실이. 이리 와 봐.”
시우가 복실이를 불렀다.
복실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동상으로 변한 듯, 미동도 없이 태블릿만 보고 있었다.
“복실아~”
– …….
“간식 줄게.”
– 왈!
타악!
복실이는 단숨에 시윤이의 무릎을 박차고 뛰어올라, 태블릿을 밟아 소파 밑으로 떨어뜨린 후 시우에게 달려왔다.
“악! 내 태블리잇~!”
십여 년간에 걸친 시우의 매직 케어로 몸 안에 약간의 마나가 쌓였는지, 방금 움직임은 거의 고양이였다.
타타타!
발소리를 내며 뛰어온 복실이를 데리고 시우는 주방으로 갔다.
약속대로 간식 하나를 꺼내 복실이 입에 물려 준 시우는 다른 가족들이 근처에 없는지 확인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복실아.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 ……끄웅?
혜성예고 근처의 작은 공원.
시우와 친구들이 촬영 준비를 마쳤다.
복실이는 위풍당당하게 어깨에 힘을 주고 카메라 앞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헥헥헥~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학교에 입학 작품으로 제출한 버전과 다른, 수정된 부분을 재촬영하는 날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복실이의 등장이었다.
“레디, 액션!”
흰 공책을 손에 말아 쥔 시우가 공책을 휘두르며 힘차게 외쳤다.
‘공책은 그냥 의미 없는 소품일 뿐이었지만, 이것을 휘둘러야 왠지 느낌이 산다니까.’
시우는 빙그레 웃고는 손에 들고 있는 촬영용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복실이에게 연기를 지시했다.
출연료로 간식 선물 세트와 바닷가 산책 이용권을 받기로 한 복실이는 시우와 의사소통을 한 뒤, 눈앞에 서있는 이 여학생에게 연기 베테랑의 위엄을 보여 주겠다는 듯이 앞발을 들고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대사도 쳤다.
– 왈왈~!
책가방을 멘 채 공원을 가로질러 귀가하던 은주는 우연히 마주친 갈색 푸들의 애교에 복실이 앞으로 달려갔다.
“귀여워!”
– 머어엉~!
복실이는 은주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 애교를 부렸다.
시우는 복실이의 뒤를 쫓으며 복실이의 애교를 계속 휴대폰에 담았다.
‘왠지 어릴 때처럼 인싸에 올릴 영상 찍는 기분이네.’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 온, 윤 감독의 양대 페르소나 중 한 마리인 복실이였다.
복실이가 은주에게 애교 부리는 장면을 만족스럽게 촬영한 시우는, 다른 친구에게 촬영용 휴대폰을 넘기고 연기를 준비했다.
이제 감독 시우가 아닌 배우 시우가 투입될 차례였다.
“레디~ 액션~!”
시우가 연기를 할 때는 재희가 사인을 보냈다.
재희의 목소리를 들은 시우는 단숨에 표정과 눈빛을 극중 캐릭터인 건방진 어린 톱스타 시우로 바꾸고, 천천히 카메라 앵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순식간에 변하는 시우의 분위기를 보며, 자신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시우가 사실은 얼마나 굉장한 배우인지를 새삼 다시 깨닫고 있었다.
시우는 은주와 복실이 쪽으로 약간 건들대는 걸음으로 다가가면서 입을 뗐다.
“아~ 뭐야…… 너 혹시 스토커냐? 자꾸 보여. 자꾸.”
시우를 발견한 은주가 표정을 싹 굳혔다.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온 거거든?”
“집 가는 길을 바꿔야겠네. 진짜 일부러 따라다니는 거 아니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시우의 표정을 본 은주는 불끈 쥔 주먹을 시우 앞에 내보이며 말했다.
“그 잘난 얼굴에 죽빵 맞기 싫으면 그냥 가던 길 가지?”
“하, 무식해 가지고. 안 그래도 갈…….”
대사를 치는 와중에 시우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자, 복실이가 치고 들어왔다.
– 크르르르~ 왈왈왈!!!
스태프 역할을 수행하던 학생들은 놀라 뒤집어졌다.
시우가 이 개는 그냥 푸들이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훈련소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아 온, 수많은 광고를 찍은 천재 푸들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대본에 적힌 바로 그 타이밍에 정확하게 짖는 연기를 시작하다니!
‘천재 푸들 인정!’
연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 크왈왈왈!! 멍멍멍!!
열연을 펼치는 복실이를 본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역으로 작품에 한 번씩 출연하고 있는 연기과 남학생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개가 나보다 연기 잘하네…….”
시우는 폴짝폴짝 뛰면서 복실이를 피해 몸개그를 펼치는 중이었다.
“뭐, 뭐야! 왜 짖고 난리야! 저리 가~ 훠이~ 훠이~ 가라고!”
은주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런 시우를 노려보다 자기도 모르게 푸하핫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길을 잃고 공원을 헤매고 있는 강아지의 주인을 함께 찾아 주면서,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시우와 은주가 처음으로 조금 가까워지는 씬이었다.
* * *
시우와 태우는 최민철 감독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최민철 감독이 웃는 얼굴로 시우를 맞이했다.
“시우야, 잘 지냈어?”
시우는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최민철 감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이 늙으셨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아파 왔다.
신의 이름으로 촬영 때는 40대의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이었는데, 지금은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감독님이 연세가 몇이었지? 50대 후반일 텐데, 더 많이 들어 보이시네.’
시우와 태우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곧 따뜻한 차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신의 이름으로 할 때 우리 권태우 대표가…… 없었지, 아마?”
태우는 공손히 대답했다.
“네. 저는 시우가 호텔 레드문 찍기 전에 임시 매니저로 들어갔으니까요.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최민철 감독이 시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 염라 옷 입고 뛰어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하하.”
보자마자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 더욱 최민철 감독을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시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독님, 건강은 괜찮으세요?”
최민철 감독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낯빛으로 걱정 말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나이 들면 다 여기저기 아프고 그런 거지. 무슨 죽을병 걸린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너무 걱정하니까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
시우는 이따 타이밍 봐서 감독님의 몸 상태를 한번 살펴 드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웃는 얼굴로 시우, 태우와 담화를 나눈 최민철 감독은 시우의 웹 드라마 얘기를 꺼내며 잘될 거 같다고 칭찬도 몇 마디 던져 준 후, 작은 기침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할리와트도 이제 끝나잖아. 내년부터는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커리어 쌓아야지.”
시우가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해야죠.”
“어디,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생각이냐?”
시우는 찻잔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약간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으음~ 잘 모르겠어요. 일단 돈이랑 인기보다는 역할 따라 출연하려고요.”
100번째 생, 마지막 생을 살아가는 마당에 돈에 절대적인 가치를 둘 이유는 없었다.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돈이 가장 중요하진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사실 할리우드 쪽에서 들어오는 역할이 마음에 드는 게 아직 없어서…….”
시우가 할리와트로 대박이 나긴 했지만, 할리와트처럼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가 아닌 이상 동양인 배우들의 설자리는 아직 좁디좁았다.
게다가 아역으로서는 월드 스타였지만, 성인 배우로서는 또 달랐다.
시우는 조용히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마음이 조금 답답했다.
최민철 감독이 말했다.
“시우야. 만약 할리우드 쪽에 구미 당기는 작품이 없다면, 내년에…… 내가 은퇴 작품으로 재난 영화 들어가는데 같이 해 보지 않을래?”
“재난 영화요?”
시우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런 시우를 바라보는 최민철 감독의 눈도 순간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