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40)
140. 마녀의 아이
‘……뭐야?’
시우가 고개를 돌렸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로 메이크업을 한 헨리도 시우를 따라 루시 쪽을 바라봤다.
니콜라스가 촬영장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루시는 그런 니콜라스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시우도 헨리와 같이 카메라 앵글에서 빠져나온 뒤, 한 스태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니콜라스가 머리를 다쳤어.”
머리를?
아니, 어쩌다?
시우는 얼른 뛰어가 니콜라스의 상태를 살폈다.
니콜라스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촬영장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루시로부터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자꾸 까불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지미집에 뒤통수 박고 넘어졌는데 못 일어나겠대.”
“……아, 그래?”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을 봤나…… 거길 왜 얼쩡거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니 시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시우는 누워 있는 니콜라스의 상체를 안아 들고, 뒤통수에 손을 갖다 댔다.
니콜라스가 희미한 눈동자로 시우를 쳐다봤다.
“시우…….”
“왜.”
“너 오늘따라…….”
“응.”
“더…… 잘생겨 보인다…….”
“…….”
니콜라스는 정신이 없는지 헛소리를 뱉고 있었다.
시우는 세상 한심한 눈으로 니콜라스를 내려다보다 물었다.
“아프냐?”
“……응.”
“잠깐만 기다려. 더 아프게 해 줄게.”
“응…… 으응? 끄아악!!”
시우의 손이 니콜라스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정신이 번쩍 든 니콜라스는 벌떡 일어나더니, 허벅지를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너무 아프잖아!!”
시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프긴 뭐가 아파. 엄살 부리지 마라.”
“아니, 진짜 아팠거든?! 할리와트 이블하운드한테 물린 것처럼…… 어라? 안 아프네?”
방금 전 지옥의 고통을 느낀 허벅지도 멀쩡했고, 머리의 어지럼증도 싹 가셨다.
니콜라스는 희대의 엄살쟁이를 보듯, 갑자기 팔팔해진 자신을 보고 있는 루시와 스태프들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
시우가 말했다.
“철 좀 들어라. 너 몇 살이냐? 어린애도 아니고 촬영장에서 왜 까불고 다녀?”
니콜라스는 자신의 금발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샤방샤방 꽃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남자가 철이 들려면 100번 정도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된대.”
“아버지께 꼭 그렇지도 않다고 말씀드려라.”
“……뭐?”
“아냐. 됐어.”
시우는 촬영장 구석에 있는 의자로 니콜라스를 끌고 간 다음, 촬영 안 할 때는 여기서 꼼짝도 말고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지시를 내린 뒤 한숨을 쉬었다.
어릴 때나 커서나 애들이 왜 이렇게 몸만 크고, 속은 안 크는 거 같지?
초등학생 때 친구랑 만나면 초등학생 때처럼 행동하게 되는 그런 효과인가?
몸을 돌린 시우의 앞에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루시가 보였다.
“왜?”
시우가 묻자 루시는 옅은 홍조가 도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루시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시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근두근-
시우가 잠시 헤어를 정리하러 간 사이, 루시의 뒤로 다가온 헨리가 불쑥 말을 꺼냈다.
“니콜라스가 부러워서 그래?”
화들짝.
속마음을 들킨 루시는 휙 뒤를 돌아봤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니콜라스를 왜 부러워해?”
“음~ 시우가 챙겨 주니까?”
바닥에 드러누운 니콜라스를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처럼 살짝 안고 뒤통수를……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시우의 모습이 무척 따뜻하고 다정해 보였다.
루시는 그 자리에 니콜라스 대신 자신이 있었다면 정말 좋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을 해 봤을 뿐이었다.
“시우는 나도 많이 챙겨 주거든?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 챙겨 주지만…….”
헨리는 쓸쓸하게 말하는 루시의 표정에 마음이 조금 아팠으나, 내색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힘내~ 혹시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니콜라스는 몰라도 나는 눈치가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야.”
“으응.”
루시는 시우를 보고 있었고, 헨리는 루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나 지미집에 머리 박고 뇌진탕 왔었다고 자랑 문자를 돌리느라, 니콜라스의 손가락은 무척 바빴다.
한편 시우는 헤어를 재정비하며 버블티의 커다란 빨대를 입으로 꼭꼭 씹고 있었다.
‘저녁 뭐 먹지?’
* * *
할리와트 마법학교 세트장.
여덟 살에 처음 이곳에 와서 친구들과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잡은 채, 세트장 투어를 하고, 학교 교직원 역의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딩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촬영 끝나면 여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열일곱 살이 된 시우가 물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변한 마이크 그레이 감독이 학교의 복도 벽을 손으로 만지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사라지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오픈할 거야. LA의 관광 명소로 오래오래 사랑받겠지. 우리 대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소중히 대해 줄 거다.”
“잘됐네요.”
“LA시에서 이곳 입구에 너희 동상을 세우는 걸 고려하고 있다던데…… 어떤 포즈가 좋을지 잘 생각해 둬.”
마이크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시우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짓고는 몸서리를 쳤다.
“거절하면 안 되는 거예요?”
“물론 거절할 권리가 있지. 다만 한 명이 거절하면 나머지 세 명의 동상도 전부 취소해야 되니까. 그 부분은 알아 둬라. 한 명 빼고 셋만 세울 수는 없잖아.”
“아…….”
동상이라니.
전생에 자신의 동상이 세워지는 광경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였다.
의상을 갖춰 입고, 리딩과 리허설을 한 뒤 시우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교실로 들어갔다.
책상이고 뭐고 다 엉망진창이었다.
창가 쪽의 벽도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시우는 자신의 흐트러진 교복을 좀 더 거칠게 흐트러트린 다음, 친구들과 함께 감독의 사인을 기다렸다.
교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우, 루시, 니콜라스, 그리고 사막여우 바하리야 교장 역의 배우가 복도 쪽 벽에 섰고.
헨리는 혼자 떨어져 무너진 창가 쪽 벽에 섰다.
“헨리! 밑에 안전장치 있으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알겠지?”
“네. 감독님.”
헨리가 무너진 벽 밑을 흘끗 보고는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감독은 시우에게 준비됐냐고 손짓으로 물은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레디, 액션!”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교실에 가득한 부서진 벽의 잔해에서는 답답한 돌먼지 냄새가 났다.
시우는 잠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연기를 시작했다.
니콜라스와 붙어 서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던 시우의 얼굴 위로 다급한 감정들이 덧씌워졌다.
시우가 입을 열었다.
초조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멈춰! 그런다고 해결될 거 같아!”
할리와트 세 번째 이야기인 할리와트와 깊은 상처에서 조엘, 에반, 앨리스, 빌은 봉인되어 있던 조엘의 엄마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마법사들이 살아가는 중간 세계에서 일찍이 마녀라고 불리던 여성이었다.
그리고 봉인이 풀린 조엘의 엄마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스스로 소멸을 택하는 것을 목격한 아이들은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렸고-
그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찰나.
조엘의 엄마에게 깃들어 있던 무언가가, 조엘에게로 옮겨갔다는 암시를 보여주며 영화가 끝났다.
이야기의 마지막인 4편 할리와트와 마녀의 아이는, 조엘이 악마들이 사는 어둠의 세계와 인간들이 사는 빛의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로 각성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각성이 완료되면 인간들이 사는 세계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처럼…… 내, 내가 죽어야…… 끝날 거야…….”
헨리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
시우는 이를 악물고 괴로워하다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헛소리 그만해!! 봉인하면 되잖아!!”
바하리야 교장 역의 배우가 헨리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조엘. 지금 당장 너를 봉인할 수는 없지만,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이런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그저 연구할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니에요. 교수님. 시간이 없어요. 저는 점점 더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어요. 이대로는…… 친구들을 다치게 할지도 몰라요.”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자신을 구하지 못하도록, 일시적 마법 방해 주문을 외운 헨리는 뒤로 돌아섰다.
시우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시우를 클로즈업하고 있던 촬영 감독은 슬픔이 가득한 시우의 눈을 보고 가슴이 저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할리와트 4인방의 리더는 확실히 극중에서도 그렇고, 배우로서도 그렇고 윤시우라는 이 한국인 소년이었다.
시우와 루시, 바하리야 교장이 마법 무효 주문을 부수기 위해 다 같이 ‘무효화의 무효화’ 주문을 외우고 있을 때, 누군가 헨리가 있는 창가로 냅다 뛰쳐나갔다.
니콜라스였다.
“젠장! 그냥 가서 몸으로 구하는 게 빠르겠다!”
바하리야 교장 역의 배우가 황급히 소리쳤다.
“빌! 위험해!”
그 순간, 헨리가 니콜라스 쪽을 돌아보며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스태프들이 와이어를 조작했다.
니콜라스의 몸에 달린 와이어들이 니콜라스의 몸을 잡아당겼다.
헨리에게 달려가던 니콜라스가 뒤로 쭉 미끄러지며 다시 원래 위치인 시우의 옆으로 돌아왔다.
“으윽!”
니콜라스는 주저앉아 신음을 흘렸다.
좀 전과 다르게 얼굴 표정이 차갑게 돌변한 헨리가 손으로 니콜라스를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다.
리딩 때도 그렇고, 리허설 때도 그렇고 마녀가 빙의되었을 때의 감정 표현을 무척 힘겨워하던 헨리였는데, 이번에는 컨디션이 좋은지 훌륭하게 표정 연기를 해내고 있었다.
“죽어.”
헨리의 냉랭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방금 전, 와이어 조작 때 뭔가 이상이 생겼는지 니콜라스의 몸이 날아가지 않았다.
방금 미끄러져온 것은 예고일 뿐이고, 이번에 거칠게 날아가서 벽을 부수고 떨어지는 게 하이라이트인데…….
아주 짧은 딜레이였으나, 감독과 모든 스태프들은 망했다는 걸 직감하며 재촬영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때-
헨리가 겨우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해낸 이 장면을 살리기 위해, 시우가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날아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니콜라스는, 찰나지간 와이어가 잠잠하자 당황을 했다.
‘뭐지? 왜 안 날아가? 와이어가 왜 반응…….’
파악!!!
‘으아아아아악!!!’
와이어 대신 시우의 마법이 니콜라스의 몸을 날려 보냈다.
벌칙 의자에 앉아있다 날아가는 것처럼, 느닷없이 뒤로 로켓처럼 쏘아져 올라간 니콜라스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안 돼!
놀란 표정을 지어선 안 돼!
니콜라스는 장렬하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니콜라스의 몸은 순식간에 벽돌 소품에 깔려 사라졌다.
‘우와, 끝내준다! 리허설 때보다 속도도 훨씬 빨라!’
나중에 또 태워 달라고 스태프분들께 말씀드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니콜라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연기를 했다.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
본인이 날려 놓고, 너무나도 절박하게 니콜라스를 걱정하는 연기를 시전하는 시우였다.
고통스러워하던 니콜라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루시와 바하리야 교수 역의 배우가 달려가 니콜라스에게 치유의 주문을 거는 동안, 시우는 살기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헨리를 노려보며 외쳤다.
“당장 내 친구 몸에서 사라져!!”
실제로 강력한 살기가 시우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헨리가 연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살기는 헨리만 교묘하게 비껴갔다.
마이크 감독과 스태프들은 시우의 연기에 오싹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던 마이크 감독은 시우의 눈동자 색이 순간 휘릭 변하는 착각까지 느꼈다.
‘……이럴 수가.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까지 대단해지려는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