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49)
149. 정태의 열연
덜덜덜덜덜-
‘……다리에 지진이 났네.’
시우는 떨고 있는 정태의 다리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려 주었다.
“아야! 왜 그래?”
“진정 좀 해.”
“너, 너라면 진정이 되겠어? 아니…… 너는 처음부터…… 떨지도 않겠지만…….”
“감독님 앞에서 하던 것처럼만 하면 돼.”
부서진 건물 잔해가 가득한 세트장이었다.
재난 영화는 대부분 CG로 이뤄지기 때문에 특성상 실내 촬영이 많았다.
할리와트 촬영으로 완전히 익숙해진 초록색 크로마키 월드가 오늘도 시우를 반기고 있었다.
정태는 시우가 건네주는 작은 요구르트 하나를 꿀꺽 마시고 입을 열었다.
“난 어릴 때도 오디션만 잘했는걸…….”
구경하러 올 때는 설레고 좋았는데, 막상 자신이 출연한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만 정태였다.
아주 짧은, 영화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죽는 장면 하나일 뿐인데도 이렇게 부담스러운 걸 보면 역시 자신은 배우 체질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못하겠다고 하지 그랬어.”
“……그러게.”
“으휴. 형은 참 착한 아들이야.”
“뭐, 뭐가. 그냥 재미로…… 하겠다고 한 거지.”
“아줌마한테 말도 안 했지?”
“편집될 가능성이 더 많은데 뭐 하러.”
입을 비죽 내밀고 말하는 정태의 얼굴이 시우는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어릴 때랑 아주 똑같다니까. 여전히 애야.’
몇 살 때였지?
자신이 핑크포로로 장난감을 들고 놀리자 입을 쭉 내밀고 발을 동동거리던 정태가 떠올랐다.
시우는 옆에 앉아 있는 정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응원을 해 줬다.
“같이 잘해 보자. 우린 어릴 때부터 호흡이 꽤 괜찮았어.”
“응? 우리가? 언제?”
정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을 때, 최민철 감독이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촬영 준비하자-!”
시우의 마법에 의해 건강을 되찾은 최민철 감독의 목소리가 제법 카랑카랑했다.
“가자. 형.”
“그, 그래.”
시우가 믿음직하게 앞장을 섰다.
정태는 어쩐지 시우의 목소리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쫄래쫄래 시우의 뒤를 쫓아갔다.
* * *
“…….”
먼지를 뒤집어쓰고 얼굴에 피칠을 한 정태는 건물 잔해에 깔려 쓰러져 있었다.
멀리서 촬영 준비를 하는 시우를 멍하니 쳐다보던 정태는 잠시 후 몸을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쓰러져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엎드려 있을까.
뭐가 낫지?
자세를 바꿔 가며 어떤 자세로 죽어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조감독이 정태를 발견하고 외쳤다.
“거기, 움직이지 마세요!”
멈칫.
정태는 얼음이 되었다.
‘……아, 안 되는데. 좀 편한 자세로 누울걸. 다리에 갑자기 쥐가…….’
정태는 다리를 빼서 주무를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레디-!”
‘헉!’
정태는 쥐가 난 다리를 건물 잔해에 깊이 파묻은 채, 긴장된 눈으로 사인을 기다렸다.
“액션-!”
주먹을 꽉 쥔 정태는 얼굴을 땅에 대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어! 옛날에 시윤이랑 놀아 줄 때처럼…… 그렇게 하면 돼……!’
집에서 엄마 몰래 연습도 많이 했다.
시우한테 연기 영상을 찍어 보내 체크도 받았다.
정태는 겁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촬영에 집중했다.
시우가 수진을 부축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방금 전만 해도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완전히 돌변해 있었다.
‘……연기자란 진짜 대단하구나. 역시 연기는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거야.’
두 사람의 표정과 눈빛을 본 정태는 두 배우로부터 풍기는 아우라에 압도를 당했다.
아직 대사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표정과 눈빛만으로 이곳 실내 세트장을 한순간에 재난 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우의 연기를 바라보던 정태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크으……!”
‘앗! 이런…… 하필 이럴 때…….’
쥐가 난 다리가 너무 아팠다.
시우는 느닷없이 들려온 신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건물 잔해에 깔린 정태가 보였다.
‘……뭐지? 정태가 애드립을 한 건가?’
주어진 역할도 부담스러워하는 정태가 애드립을?
원래는 정태를 스쳐 지나가다 정태의 손이 꿈틀 움직이는 것을 자신이 발견하는 씬이었다.
그런데…….
‘……뭐야, 싫다더니. 사실은 의욕이 넘치고 있었군?’
그동안 연기가 고팠던 걸까.
시우는 기특해하며, 기쁜 마음으로 애드립에 응했다.
“엄마…… 방금 그 소리…….”
시우가 수진에게 말했다.
수진은 탁한 눈을 들어 올렸다.
“무슨 소리……?”
시우에게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수진의 입에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태는 기겁했다.
‘내,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대사가 바뀌고 있어! 어, 어떻게 해야 되지?’
지금 손을 꿈틀 움직일까?’
하지만 시우가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타이밍이 어긋날 수 있었다.
다행히 시우가 상황을 알기 쉽게 리드해 갔다.
“저쪽에서 들렸는데…… 저, 저 사람 살아 있는 거 아닐까?”
앗, 지금이다.
정태는 손을 꿈틀 움직였다.
카메라에 제대로 찍혔을지 조마조마해 하고 있는 정태의 귀에 시우의 외침이 들려왔다.
“살아 있어!”
수진을 바닥에 앉힌 시우는 정태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촬영 감독은 정태의 얼굴을 크게 잡았다.
“으으…….”
정태는 폭주하는 심장을 느끼며, 얼굴을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조그맣게 신음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사…… 살려…….”
출혈로 인해 파랗게 변한 입술 사이로 간절하게 구조 요청을 하는 정태.
진짜로 하반신이 건물에 깔린 것처럼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촬영 감독은 깜짝 놀랐다.
‘와, 잘하는데? 표정이 아주 리얼해.’
이럴 때는 찍는 보람이 있다.
시우는 정태의 몸을 덮고 있는 건물 잔해들을 살펴보다, 잔해를 치우기 위해 달려들었다.
“제가…… 제가 도와 드릴게요!”
“으으으으…….”
콘크리트를 들어내려고 애를 쓰는 시우를 올려다보며 정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한 인간의 절망에 찬 신음을 계속해서 토해 내고 있었다.
제발 어떻게든 해 달라는 듯-
‘진짜 이를 갈고 왔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하네?’
시우는 갑자기 폭발한 정태의 연기 열정에 적잖이 놀라면서 맨손으로 정신없이 돌들을 치워 댔다.
하지만 자잘한 것들은 몰라도 무거운 콘크리트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치우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수진도 어느샌가 다가와 시우를 도왔다.
그때-
쿠우웅!
통로의 멀쩡하던 벽들마저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우와 수진은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우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수진이 외쳤다.
“진, 진영아!”
나가야 된다.
아니면 겨우 찾아낸 출구를 다시 잃게 된다.
지상으로 나가는 길과,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태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진의 얼굴을 본 시우는…….
쿠웅! 쿠르르!
벽이 2차 붕괴를 일으키는 순간, 결단을 내렸다.
“아…….”
그래.
내가 언제부터 정의로웠다고.
내가 무슨 구조대원도 아니잖아.
왜 내가 엄마 목숨까지 걸고 이 사람을 구해야 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우는 넋이 나간 아이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태가 있는 쪽으로는 차마 얼굴을 돌릴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많은 고생을 했는지,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시우의 손을 본 정태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시우의 목소리에 점점 다리에 쥐가 난 것도 잊고, 분위기에 몰입해 갔다.
죽는다.
여기서 이렇게, 버려져서…….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정태의 머릿속에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늘 혼내고, 자신에게 소리도 많이 지르지만-
그래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날 낳아 준 엄마…….
자신이 슬픈 이유는 엄마가 화를 내서가 아니었다.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이 슬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죽어 버리면-
살아서 옆에 있어 주는 것조차 못하면…….
엄마가…… 많이 울겠지……?
“살려…… 줘…… 안 돼…….”
정태를 포기하고 돌아서던 시우의 걸음이 멎었다.
돌아봐선 안 된다.
어차피 구할 수 없다.
빨리 나가야 한다.
그러나, 너무 간절한 정태의 목소리에 엄마를 부축하다 말고 시우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정태와 시우의 눈이 마주쳤다.
정태의 얼굴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가 또렷하게 남아 카메라에 비쳤다.
정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서러움에 목이 메는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지 마…… 제발…….
시우는 울면서 부탁하는 정태의 얼굴을 괴롭게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가…… 가야 돼! 엄…… 마…….”
수진을 부축하고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정태가 깔려 있는 자리로 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돌아선 시우는 엄마를 끌다시피 하며 달렸다.
시우의 입에서는 죄송하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내 수진도 아들의 자책에 같이 눈물을 쏟았다.
이 모든 상황들이 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처럼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왔을 뿐인데…… 일상이 사라지고 지옥이 찾아왔다.
“진영아…….”
수진은 자신보다 큰 시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시우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오열하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빛을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컷! 오케이!”
배우들의 마음을 아수라장에서 건져 내는 최민철 감독의 목소리가 세트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 * *
시우는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시아가 쫓아오겠다고 조르는 것을 먹을 걸 사오겠다는 말로 가까스로 달래 떼어 놓고, 밖으로 나온 시우는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경호에게 줄 생일 선물이 든 백팩을 등에 메고 시청역에 도착한 시우는 마스크를 쓴 채 역에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아니, 뭐야. 내가 제일 일찍 온 거야?”
얼마 전, 경호의 생일 파티에 시우가 촬영 때문에 참석을 못한 터라 친구들은 시우의 휴식일을 맞아 다시 모이기로 했다.
10분 정도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보니 휴대폰이 울렸다.
[형 도착했어. 어디야?]영준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자, 계단에서 내려오는 한 남학생이 보였다.
170이 될까 말까 한 키에 여드름이 난 두 볼 위로 동그란 안경을 걸친 홀쭉한 체형의 남학생이었다.
평범한 인상이었으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에서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시우가 반갑게 손을 들었다.
“왔어?”
영준도 손을 들었다.
“그래. 형 왔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제일 바쁜 네가 제일 먼저 와 있냐.”
“난 부지런하니까. 그리고 바쁘기로 따지면 고3인 형이 제일 바쁘겠지. 오늘 놀아도 괜찮아?”
영준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없는 기계들도 쿨러를 필요로 하잖아. 기계보다 복잡한 인간에게도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겠지.”
쉬운 말을 무척 복잡하게 말하는 영준을 보며 시우는 미소를 지었다.
‘미끄럼틀 무섭다고 엉엉 울던 영준이가 많이 컸네.’
영준과 경호, 진아는 자신이 일정 부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호에게 엄마 소리를 가르쳐 준 것도 자신이었고.
잠시 후, 경호와 진아가 함께 도착을 했다.
“시우~ 앗…….”
진아는 반가운 얼굴로 시우의 이름을 외치려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슈슈~ 오랜만이야. 넌 진짜 갈수록 되게 멋있어진다!”
진아는 살짝 발그레해진 얼굴로 시우에게 인사를 했다.
툭-
경호가 그런 진아의 어깨를 팔로 툭 건드렸다.
“뭐야, 왜?”
진아가 의아한 얼굴로 경호를 봤다.
시우와 영준의 눈도 경호에게 향했다.
‘얘는 어디까지 크려는 거지…….’
시우도 키가 꽤 큰 편이었지만, 경호는 그냥 압도적이었다.
190에 육박하는 키와 산만 한 덩치를 가진 경호는 이제 아기 곰이 아닌, 그냥 곰이었다.
사람들이 덩치만 보고도 길을 비켜 주기 일쑤였다.
‘속은 여전히 아기 곰인데.’
시우는 피식 웃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말했다.
“자, 오늘 어디 가는지 알지?”
영준이 대답했다.
“가평 놀러 가는 거 아냐?”
시우와 경호, 진아는 서로 눈을 맞추고 웃었다.
시우가 말했다.
“응. 맞아. 가평 놀러 가는 거야. 오늘을 형을 위한 날로 만들어 줄게.”
“뭐? 나를 위한 날?”
영준은 어리둥절하게 동생들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