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5)
15. 엔딩 베이비
“안녕하세요.”
현주는 정태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응~ 오랜만이야~ 시우 엄마.”
현주의 인사를 받은 정태 엄마는 태수를 향해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한태수 배우님, 너무 시우만 챙기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 정태가 한태수 배우님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시우만 챙기기로는 이수진이 최고였지만, 거기는 어려워서 감히 말을 못 붙이겠고 서글서글한 한태수가 그나마 만만했다.
이한수 감독과 이수진은 포기하더라도 한태수와는 인맥을 만들어 놓고 싶은 정태 엄마였다.
엄마 옆에 딱 붙어 있는 정태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태수가 말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정태 선물도 다 준비했죠. 이따 촬영 끝나고 드릴게요.”
‘시우 선물이 훨씬 비싼 거긴 하지만 시우는 돌 선물도 겸해서 주는 거니까…… 그 정도는 정태 어머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태수는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태수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본 정태 엄마는 사정도 모른 채 같이 마주 웃고 있었다.
그런 다음 유모차에 누워 있는 시우에게 인사를 했다.
“시우야, 안녕~! 아줌마가 우리 시우 많이 보고 싶었어. 오늘이 마지막이라 너무 아쉽다. 정태 형아랑 촬영 재밌게 잘하자!”
‘초면에 다리 꼬집고 머리 쥐어뜯은 사이에 오싹하게 친한 척은.’
쪽쪽쪽-
시우는 멀뚱멀뚱 정태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쪽쪽이를 빠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태수 오빠~!”
멀리서 스타일리스트가 태수를 불렀다.
“갈게~! 어머님들, 저는 의상 때문에…… 대화 나누세요. 시우야, 정태야. 이따 보자!”
태수는 자신을 찾는 스타일리스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태수가 사라지자 현주와 정태 엄마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오갔다.
“……잘 지내셨어요?”
상대가 시우의 다리를 꼬집은 사실을 모르는 현주는, 정태 엄마와 불편하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먼저 안부를 물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영화 촬영 내내 시우가 정태의 분량을 많이 가져간 것도 사실이었고, 스태프들과 출연자들에게 더 예쁨을 받은 것도 부정하기 힘들었다.
정태 엄마의 욕심을 알기 때문에 현주는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정태 엄마는 애써 웃으려 입술 끝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잘 지냈지 그럼~ 자기는 요즘 인싸 한다면서?”
……자기?
엄마들끼리 많이 쓰는 말이긴 했지만, 정태 엄마가 현주를 자기라고 부른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현주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네. 최근에 취미 삼아…….”
“이수진 배우님 인싸에서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 그…… 하, 하면 한다고 미리 말을 해 주지 그랬어. 애들끼리 영화도 같이 찍는데 맞팔하고 그럼 좋잖아. 시너지 효과도 나고.”
……시너지 효과?
으응?
현주는 정태 엄마의 말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네에…… 그냥 소소하게 하던 거라…….”
“에이, 소소하긴. 좀 있으면 팔로워 10만 되겠더라. 앞으로 더 오를 수도 있고.”
“아니에요. 이수진 배우님 덕분에 잠깐 주목받는 거죠.”
현주는 겸손하게 말했다.
자기 자랑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다.
정태 엄마는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밥은 먹고 왔어?”
“……네.”
“그래. 잘 먹고 다녀. 애들 스타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냐. 엄마의 체력이…… 체력이 참…… 중요하거든? 호, 호호호.”
어른들에게 팝콘각이 있다면, 아기들에게는 쪽쪽이각이 있다.
쪽쪽쪽-
시우는 유모차에 누워 쪽쪽이를 빨며 느긋하게 정태 엄마의 태세 전환을 감상했다.
한태수가 연기를 통해 분명 울고 있는데 이상하게 웃긴 명장면을 만들었다면.
정태 엄마는 현실에서 분명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불쌍한 명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아줌마, 다리 그만 떨어. 선수끼리 안쓰럽게 왜 이래.’
부웁- 쪽!
시우는 쪽쪽이를 내밀었다가 입안으로 다시 쏙 집어넣었다.
누군가는 인기로, 누군가는 연봉으로, 누군가는 성적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처럼 정태 엄마는 인싸 팔로워 숫자로 사람의 급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자기야, 이따…… 촬영 끝나고 정태랑 시우랑 사진 같이 찍으면 어떨까?”
“네. 좋아요.”
현주는 알겠다고 답했다.
아이들끼리 사진 찍는 정도야 허락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보니까 자기 연락처가 없더라고. 알고 지낸지도 몇 달 됐는데 말이야. 애들 촬영은 오늘로 끝이지만, 나중에 따로 만나서 밥이라도 한번 먹자. 영화 상영하면 우리 애들 다 스타 될 텐데, 정보 공유도 하고 도움 될 거야~”
“……그, 그런가요?”
성공하면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한 현주였다.
그것도 설마 정태 엄마가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
10만 팔로워를 앞세워 무시의 대상에서 인맥의 대상으로 카테고리 변경을 이뤄 낸 현주였다.
‘……아니, 엄마. 잠깐만요. 연락처 주지 마요. 저 아줌마 또 봐야 되잖아.’
유모차 안에서 시우가 발버둥을 쳤다.
시우의 격렬한 거부 의사와 별개로 현주는 이미 정태 엄마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있었다.
현주의 번호를 얻은 정태 엄마가 시우를 보며 말했다.
“아, 내가 돌 선물을 못 줬네. 우리 시우~ 아줌마도 나중에 좋은 걸로 선물 챙겨 줄게~ 선물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커라~”
푸웁!
차라리 전투적일 때가 좋았다.
쪽쪽이를 뱉어 낸 시우는 정태 엄마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잠시 후.
영화 내겐 너무 무서운 아내의 엔딩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이한수 감독이 외쳤다.
촬영을 구경하러 온 수많은 공항 여행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진과 태수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들어섰다.
얼굴에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몸에는 아기 띠를 맨 수진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모델처럼 걸어왔다.
태수는 정태의 손을 잡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여, 여보~! 같이 가~!”
“빨리빨리 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니? 놔두고 간다?”
“아니. 저기. 하하. 여권 나한테 있어서 두고 가긴 힘들 건데.”
“…….”
“미안. 얼른 갈게.”
태수가 정태를 안아들고 서둘러 앞으로 뛰었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태수를 본 수진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응? 왜?”
멈춰서 있는 수진에게 태수가 물었다.
수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냥~ 너는 대학 때나 지금이나…… 꽤 귀엽네.”
태수의 표정이 활짝 폈다.
“그, 그래? 그치? 내가 한 귀여움 하지? 우리 애들이 다 나를 닮아서 이렇게 귀여운 거야. 아빠의 귀여움 유전자를 물려받은 거라고. 한때는 또 내가 혜화동 귀요미…….”
“1절만.”
“응.”
수진과 태수는 애드립도 섞어 가면서 끊임없이 옥신각신하는 대사를 주고받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서로 손을 잡고 사이좋게 가족 여행을 떠났다.
“컷! 오케이!”
이한수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니터링까지 마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촬영이 끝난 줄 알고 인사를 나눌 때, 이한수 감독이 메가폰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 잠깐만. 진짜 미안해.”
다들 무슨 일인가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형, 왜? 문제 있어?”
혹시 재촬영?
불안한 눈으로 묻는 태수에게 이한수 감독이 답했다.
“문제는 없는데, 막상 장면 보니까 엔딩에 약간의 포인트가 더 있었으면 좋겠어.”
“……역시 한수 형. 포인트 집착남. 다시 준비해?”
“아냐. 너는 할 거 없고. 으음.”
이한수 감독은 여전히 시우를 안고 있는 수진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거 어때? 시우 얼굴을 딱 클로즈업하면서 화면이…….”
“좋아요. 해요.”
수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는 다 듣지도 않고…….”
“들을 게 뭐 있어요. 감독님. 시우가 나오는 모든 씬은~ 언제나~ 옳다. 그냥 시우 영상집을 하나 만들어서 팔자. 나 살 거 같아.”
“그래. 그건 네가 나중에 자비로 만들어서 팔든지 하고. 일단 시우 근접 영상 하나 따 놓자.”
수진은 아기 띠를 매고 시우와 함께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곧 이한수 감독의 지시에 따라 추가 촬영이 시작되었다.
“옳지! 우리 시우! 잘한다!”
방긋.
“계속 웃어 봐, 시우야. 계속 웃어.”
배시시.
“아주 좋아. 완전 모델이네, 모델! 시우가 더 크게 웃는 것도 찍고 싶은데, 태수야 와서 애 좀 웃겨 봐.”
이한수 감독은 찍을수록 시우의 미모와 카메라 친화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잘 웃어 주는 아기라니.
외모, 표정, 성격.
최고의 아기 배우, 최고의 아기 모델이 되기 위한 모든 재능을 타고났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한수 감독의 호출을 받은 태수가 시우와 수진 앞에 섰다.
“내가 웃겨야 되는 거야? 어떻게 웃기지? 음…… 크롸롸뢀!! 꾸에에엑!! 뿌슝빠슝!!”
괴랄한 표정으로 혼을 불태우는 태수였다.
이한수 감독과 수진은 부끄러움에 그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깜짝 놀란 시우도 얼굴 치우라고 순간 육성으로 내뱉을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뿌잉뿌잉! 입으로 방귀! 뿡! 뿡! 뿡! 푸우우~!”
‘……아저씨. 웃어 줄 테니까 그만해.’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시우는 누가 간지럽히기라도 한 것처럼 있는 힘껏 웃음을 터트렸다.
꺄르르르-!
어쩔 수 없이 터트린 웃음이었지만, 아기 짓의 프로답게 영롱한 눈빛부터 사랑스러운 표정,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목소리까지 천사가 따로 없었다.
“오~! 웃는다! 내가 오른쪽에서 찍을 테니까, 김 촬감! 왼쪽에서!”
이한수 감독과 촬영 감독이 아기 띠 안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시우를 여러 각도로 촬영했다.
“카아, 귀여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태수야, 수고했어. 네 개그를 시우가 좋아하네.”
이한수 감독은 결과물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역시 시우다.
수진이 직접 이 아기를 픽한 이유를 이제는 모든 스태프들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도 만약 이후에 아기를 또 촬영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시우와 작업하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무조건 이 아이만 찾겠어.’
이한수 감독은 흡족한 눈빛으로 시우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다.
영화 내내 마스코트처럼 계속 나올 예정이니, 끝날 때쯤에는 관객들이 시우에게 정을 많이 붙였을 것이다.
관객들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시우의 얼굴을 쓰기로 이한수 감독은 최종 결정을 내렸다.
초대작 드라마 미스터 문라이트에 이어 팬층이 매우 두터운 이번 영화에서도 영광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 엔딩 베이비 시우였다.
* * *
영화 촬영이 끝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고 밤잠을 못 이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현주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태수, 이수진 같은 배우들과 같은 화면 안에서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여 주던 시우는 자신의 아들이지만 굉장히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앞으로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이래서 정태 엄마가 정태를 아역 배우 만들려고 하는 건가?”
늦은 저녁,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현주는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무슨 단속을 나가야 해서 늦는다더니 정말 자기 전에나 들어오려는가 보다.
설거지를 마친 현주는 고무장갑을 벗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한 뒤 아기 침대로 향했다.
이제는 약간 비좁아진 작은 아기 침대 안에서 시우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 침대 밑에서는 복실이와 네로가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시우와 마찬가지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현주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찾았다.
“……응?”
휴대폰을 집어 든 현주는 사진을 찍기에 앞서 인싸 앱을 열었다.
집안일을 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인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현주는 메시지를 읽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장난인가? 진짜? 말도 안 돼.’
– 안녕하세요. 시우, 복실이, 네로 어머님! 국내 최대, 국내 1위 반려동물 용품 회사 [펫피월드>입니다. 연락을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