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50)
150. 플라이보드
무더운 여름이었다.
가평에 도착한 영준은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러 가는 줄 알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수능을 3개월 정도 남겨 놓은 시점에, 이것으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이제 남은 시간은 필사적으로 달릴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영준은 동생들을 잘 챙겨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동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멀미 안 했어? 다 괜찮아?”
시우가 대답했다.
“형 안 했으면 우리도 안 한 거야. 형이 제일 약하잖아.”
움찔-
영준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일부러 크게 웃었다.
“하하. 내가? 시우야. 형이야~”
자신의 가슴을 탁탁 치는 조그만 영준의 옆으로 경호가 지나가며 말했다.
“형, 혹시 업히고 싶으면 말해.”
덩치 큰 경호 옆에 서자 마치 영준이 아빠랑 함께 놀러 온 중학생처럼 보였다.
진아도 까르륵 웃고 영준에게 말했다.
“오빠, 이따가 경호한테 어부바 해 달라고 해~”
“뭐, 뭐래! 이것들이! 야, 너희 기어 다닐 때, 난 걸어 다녔거든~?”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고 싶은 영준은 자신이 한 살 연장자라는 걸 강조했다.
“형, 진정하고 물이나 마셔.”
시우가 자신의 백팩에서 손수건에 싸인 생수병을 꺼내 영준에게 건넸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과 찜통 같은 더위, 버스 안에서의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영준은 물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켜려 했다.
“…….”
물이 얼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시우야, 물 얼어서…….”
그렇게 말하던 영준은 장난기가 충만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시우를 발견하곤,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너 일루 안 와! 형을 놀리면 되겠어?!”
시우가 빵 웃음을 터트렸고, 경호와 진아도 영준몰이에 신나게 웃었다.
영준은 시우를 쫓아 한참을 뛰어다니다, 숨을 헥헥대며 다리를 멈추었다.
“진짜…… 배우가 아니라 운동선수 아냐? 왜 이렇게 빨라.”
응? 아니, 잠깐.
‘……버스를 타고 꽤 오래 왔는데, 어떻게 물이 한 방울도 안 녹을 수가 있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영준은 영리한 머리로 의문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냉백~!’
“에이, 순간 오싹했네.”
시우의 백팩 안에 보냉백이나 미니 아이스박스 같은 게 들어 있나 보다 생각한 영준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멀리 도망가 있는 시우를 향해 물었다.
“됐어. 이 귀여운 동생 녀석아. 형이 용서한다. 이제 여기서 뭐 할 거야?”
영준은 눈앞에 펼쳐진 북한강의 넓은 풍경을 감상했다.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벌써부터 수험 스트레스로 꽉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영준의 눈에 강가에 높게 솟아 있는 타워 크레인이 보였다.
번지 점프대였다.
경호가 뽀얀 턱살 위로 순진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형~ 우리 번지 점프 하자. 형이 내 생일날 그랬잖아. 요즘 너무 답답해서 번지 점프라도 하고 싶다고~”
형을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착한 경호였다.
“…….”
말을 잃은 영준의 어깨에 시우가 팔을 올렸다.
“아가 때 미끄럼틀 탄 것처럼 함 타 볼까? 스트레스 제대로 풀고, 대학 합격 가자.”
“꺄아아아악-!!!”
번지 점프대에서 북한강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영준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영준은 자신의 몸에 걸쳐진 장비들을 내려다봤다.
착잡했다.
인간은 왜 위험을 무릅쓰는가.
아니, 왜 위험을 즐기는가.
번지 점프,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롤러코스터 등등.
‘……이 모든 역사의 시작에는 미끄럼틀이 있지.’
인간은 미끄럼틀을 통해 처음으로 스릴을 배우고…….
“난 안 된대~”
두려운 나머지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던 영준의 귀에 경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100kg을 가볍게 뛰어넘는 경호는 모두의 예상대로 퇴짜를 맞았다.
경호는 시무룩한 모습이었다.
진아가 말했다.
“나중에 다이어트해서 다시 와야겠네.”
경호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됐어…… 번지 점프가 아무리 재밌어도 먹는 거랑 비교가 돼? 난 밑에서 기다릴게. 아, 시우야. 영준이 형.”
장비를 착용하고 위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시우와 영준의 고개가 움직였다.
경호는 두툼한 손으로 쑥스럽게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며 말했다.
“진아 무서워할지도 모르니까 잘 부탁해.”
“나, 나를 왜 네가 부탁해!”
진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딱히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던 영준이 시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쟤네 무슨 사이야?”
시우는 영준의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왁!!!”
“흐익!”
팍팍팍!
냥이 펀치보다 약한 영준의 주먹질을 몸으로 받아 내며 시우는 한참 웃다가, 영준을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시우, 영준, 진아는 타워 꼭대기로 올라갔다.
영준은 올라가는 내내 눈을 꼭 감고, 시우의 몸을 붙잡은 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시우는 번지든 수능이든 자신감을 갖길 바라며, 영준의 등에 대고 어릴 때처럼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 왔어, 형. 눈 떠 봐.”
영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
50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자연의 모습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우의 기운을 전해 받은 영준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두려움 대신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영준의 머리를 쓸고 지나가자 영준은 그동안 공부와 성적에 쫓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전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을 조여오던 불안과 고민들이 작게만 느껴졌다.
“와……!”
영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졌다.
시우는 영준의 등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이제 영준 스스로 걸음을 떼기를 기다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이 부르는 소리에 영준은 자기도 모르게 점프대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다리의 떨림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쓰리! 투! 원!”
직원이 숫자를 셌고, 마지막 말은 시우와 진아도 함께 외쳤다.
“번지-!”
영준의 몸이 북한강의 물줄기 위로 자유롭게 떨어져 내렸다.
강물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 * *
뉴턴의 물리 법칙, 세 번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모든 작용에는 그와 똑같은 크기로 방향만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
그 원칙이 적용된 것이 바로, 하늘을 나는 플라이보드였다.
파아아아앗-!!
전문 강사가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보드 밑으로 물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고, 강사는 멋지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아아~!”
여름을 맞아 물놀이를 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했다.
보드에 탄 채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강사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진짜 멋있다!”
진아가 외쳤다.
경호는 옆에서 또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이것도 못 타. 나 괜히 왔나 봐.”
진아가 경호를 위로했다.
“괜히 오긴~ 난 같이 와서 좋은데?”
경호의 입이 헤 벌어졌다.
“어? 그, 그래? 사실…… 나도 좋아! 내가 카메라로 잘 찍어 줄게! 아까 시우 번지 점프 뛰는 것도 다 찍었으니까…… 시우야, 나중에 네 마이튜브에 올려~”
“응, 그래. 고마워.”
‘진아한테 꼼짝 못하네.’
시우는 금세 기분이 풀어진 경호를 보며 웃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플라이보드 시범을 보인 강사가 물 위로 내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뿌듯한 얼굴로 돌아오던 강사는 갑자기 들려온 고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윤시우다!!!”
몰래 물을 마시느라 마스크를 잠깐 내린 시우를 알아보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플라이보드 쇼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직원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얼른 뛰어갔다.
강사도 의아한 얼굴로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헉! 진짜 윤시우다!’
강사의 눈에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환하게 웃는 얼굴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시우가 보였다.
‘으아아! 윤시우를 보다니!’
뭐지? 촬영인가?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켜 달라고 외치는 영준을 시우의 매니저로.
옆에 든든하게 서 있는 덩치 큰 경호를 시우의 경호원으로 착각한 강사는 카메라를 찾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시우에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까 플라이보드 너무 멋있었어요~”
시우는 강사를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평소의 장난기 많은 모습 대신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시우였다.
친구들은, 이것이 슈퍼스타 모드구나 하고 감탄했다.
강사는 상기된 얼굴로 시우에게 몇 마디 말을 걸다가, 불현듯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 시우에게 물었다.
“혹시 플라이보드 관심 있으세요? 한번 배워 보실래요?”
수많은 휴대폰 카메라들이 시우를 찍고 있는 가운데, 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트 분사나 뉴턴의 법칙 따위 필요 없이, 그냥 날아다니는 녀석이라는 걸 모르는 강사는 홍보도 할 겸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봐야지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우를 물가로 이끌었다.
* * *
[세계의 재밌는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요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배우 시우 윤의 멋진 플라이보드 실력을 함께 보시죠.]차분한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왔다.
작업실에서 팀원들과 햄버거를 먹던 크리스 맥과이어 감독은 우물우물 움직이던 턱을 멈췄다.
시우 윤?
올해 초에 LA에서 소매치기를 잡은 그 녀석?
몸놀림이 상당했지.
맥과이어 감독은 입에 있는 햄버거를 삼키고, 슥 얼굴을 들었다.
오늘은 나초 가루 대신 빵 가루가 덥수룩한 수염에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시우? 할리와트의 에반? 감독님이 캐스팅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친구 아니에요?”
팀원 중 하나가 물었다.
맥과이어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거와 피자를 초토화시키고 있던 팀원들은 다 함께 TV로 눈을 돌렸다.
파아아아앗-!!
윤시우가 발밑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대며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시우가 하늘로 떠오릅니다. 이것은 SF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에반으로 익숙한 시우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유행인 플라이보드를 즐기는 모습입니다.]“해설이 쓸데없이 진지하네.”
“그러게.”
팀원들은 언밸런스한 해설을 두고 키득댔다.
그때, 시우의 몸이 슝-!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맥과이어 감독과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용해진 작업실에 TV에서 나오는 쓸데없이 진지한 해설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스팟라인. 슬라럼. 시우가 기본기를 보여 주며 몸을 풉니다. 그리고 이제…… 오~! 시우가 슈퍼 히어로로 변하기 시작합니다!]TV 속에서 시우는 화려하게 물줄기를 분사하며 북한강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밑에서 멍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강사와 사람들의 얼굴이 잠깐 영상에 잡혔다.
파아앗-!
스핀과 퀵 스핀, 제자리에서 돌던 시우의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시우는 다리를 쭉 펴고 발목을 뒤로 탁 재꼈다.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면서 발을 튕긴 시우는 슈퍼맨처럼 몸을 일자로 펴고 하늘을 날았다.
시우의 발밑으로 작은 무지개가 나타나고 있었다.
“오오오!!!”
맥과이어 감독과 팀원들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 자, 슈퍼맨이 된 시우가 어디로 가는지 볼까요!]파아악-!
시우의 몸이 물속으로 내리꽂혔다.
그러더니, 촤아악-!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흠뻑 젖은 시우의 젖은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시우는 카메라를 향해 V를 그려 보이곤 다시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돌고래가 된 듯 물과 하늘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 돌핀이었다.
“와우……!!”
맥과이어 감독의 손에 들린 감자튀김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그는 시우의 돌핀 기술을 구경하다, 벌떡 일어나 작업용 책상으로 향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SF 영화에 등장할 보드의 디자인들이 몇 종류 그려져 있었다.
“……연초의 액션도 그렇고, 이 아이는 반드시 캐스팅해야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