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51)
151. 딸기라떼
“미국에서 자꾸 연락이 온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는 여전했다.
촬영 스태프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응시하던 태우는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는 에어컨 바람이 세트장에 더 잘 퍼지도록 마법을 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연락요? 할리우드?”
태우는 싱긋 웃었다.
호기심에 찬 시우의 눈빛이 귀여웠다.
“할리우드도 있긴 한데. 연락이 제일 많이 오는 건…….”
“……?”
“플라이보드 대회에 참가해 달라고. 마이애미 쪽에서 그렇게 연락이 와.”
“…….”
“이참에 연기 관두고 전향할까?”
태우의 실없는 농담에 시우는 한숨과 함께 손에 들린 시원한 딸기라떼를 한 모금 쪽 빨았다.
“들어오는 역할이 아직도 다 그냥 그래요? 조연이라도 작품만 괜찮으면 할 수 있는데.”
시우를 어릴 때부터 키운 갓 엔터의 신영민 대표는 한 번 조연을 맡으면 계속 조연만 들어올 가능성이 있으니 어떻게든 주연 배우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애초에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에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도 캐스팅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관객들은 분명히 할리와트의 귀여운 소년 에반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들어오는 역할이 대부분 에반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밝고 활기찬 동양인 친구였다.
역할도 작품도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고, 심지어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아시아 마케팅 수단으로 굳이 없어도 되는 동양인 친구를 만들어 시우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아역 배우로는 정점을 찍었으나, 성인 배우로는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문을 두드려야 할 것 같았다.
‘음, 에반의 인기를 내 인기로 착각하면 안 되겠어.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
단역부터가 아닌 게 어디야.
‘에반 이미지 벗으려면 고생 좀 하겠네.’
쪽쪽쪽- 츄르륵-
딸기라떼가 밑바닥을 드러냈다.
시우는 아쉬운 얼굴로 투명한 컵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음료가 한가득 차있었는데 막상 마셔 보니 양은…….
입맛을 다시며 시우는 입안으로 넘어온 딸기라떼의 양을 체크했다.
“160ml인가…… 심한데?”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모부.”
이게 바로 미국에서의 자신의 인지도가 아닐까?
부족함 없이 꽉 차 보이지만 얼음(에반)을 빼면 의외로 빈약하다.
시우는 얼음만 가득 남은 컵을 옆에 두고, 촬영장에 막 도착한 하승석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태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괜찮아. 말해. 그래? 미국에서? 장르가 뭔데?”
할리우드에서 시놉시스라도 들어왔나?
시우가 걸음을 멈추고 태우를 돌아봤다.
태우는 자신을 신경 쓰는 시우에게 말했다.
“이따 얘기해줄게. 하승석 선배님께 인사드리러 가 봐.”
“넵.”
다시 몸을 돌린 시우는 걸음을 떼면서 귀를 쫑긋 기울여 보았다.
뭐, 사실 별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SF? 으음, 감독 이름이?”
SF라.
제대로 못 만들면 돈만 엄청 갖다 버리고 최악의 망작을 찍어 내는 장르가 아니던가.
“크리스…… 맥…… 맥 뭐? 맥과이어?”
미국은 넓다.
배우도 많고 감독도 많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감독이네.’
시우는 아기 염라 때처럼 멀리 보이는 승석에게 다다다 달려가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SF…… 장르는 재밌겠다.”
“크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승석은 자신이 나이가 든 것을 계속 증명하고 싶은지 촬영 때마다 스태프들을 모아 놓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옛날 얘기를 무한반복하곤 했다.
“시우야, 한 번만 다시 해 봐. 응? 한 번만.”
“……지난주에도 했잖아요.”
“임마! 지난주는 지난주지!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것처럼 하루에 우리 시우 애교 열 번은 봐야지!”
“아저씨. 제가 옛날의 그 어린이집 다니던 꼬맹이가 아니에요. 저…… 고등학생이에요.”
시우는 짐짓 의젓하게 말을 했다.
그러나 왕년의 카리스마 배우 승석은 나이가 들고 카리스마를 내다 버리기라도 했는지 포기하지 않고 시우를 졸랐다.
“에이, 시우야 그러지 말고…… 아저씨가 네 애교 보고…… 오래 살게. 응? 한 번만~”
시우는 잠시 망설이다 머리가 희끗해진 승석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서비스를 해 줬다.
‘아, 진짜. 다 큰 몸으로 하긴 부끄러운데…….’
시우는 얼굴을 살짝 돌린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 가암히…… 염라한테 꼬맹이래…….”
시우의 낯빛이 자연스럽게 발그레해졌다.
“으하하하! 아이구, 귀여워! 우리 꼬맹이가 몸만 컸지 그냥 귀여운 건 똑같아! 일루 와, 아저씨가 옛날처럼 함 업어 줄까?”
최민철 감독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겨우 나은 무릎 다시 박살 내고 싶어? 시우만 보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리네. 그렇게 좋냐. 촬영 준비나 해.”
승석은 최민철 감독과 조금 툴툴대다가 시우와 리허설을 했다.
촬영장에서 시우를 자꾸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승석이었으나, 일이 시작되자 승석의 눈빛이 바뀌었다.
“시우야. 잠깐 기다려 봐. 거기서 표정은…… 자, 우리 생각을 해 보자. 진영이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승석이 팔짱을 낀 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시우는 진영의 대사들을 곱씹으며 대답했다.
“일단 유년시절 일에 미쳐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
대답을 이어 가던 시우는 진영에 이입하여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그런 시우를 승석은 흐뭇하게 쳐다보며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시우가 겪었던 전생의 기억들 속에서도 분명 이런 케이스는 있었다.
어린 몸으로 엄마와 동생들을 지켜야 했던 일.
아버지의 부재.
뚝뚝.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린 시우는 이미 감정도 잊힌 오래 전의 빛바랜 기억임에도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몰입도 있게 해내는 시우를 본 승석은 가까이 다가가 다독여 주었다.
“그래. 잘했어.”
이렇게 시우는 진영이라는 캐릭터에 한 발 더 다가갔다.
“테이크3! 레디, 액션!”
피난처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쓰나미를 맞이한 사람들.
진영이 엄마와 사람들을 가까이 있는 고층 건물 위로 피신시키다 마지막에 남아 물길에 휩쓸린다.
그리고 진영의 아빠가 진영을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씬.
시우와 승석은 수조 속으로 잠수를 했다.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는 뿌연 물속에서 승석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시우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물살이 너무 빨랐다.
시우는 뒤에서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수중 연기를 펼치는 승석을 보며 마법으로 물살을 흐름을 좀 늦출까 고민했지만 그러면 장면이 제대로 완성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저씨, 힘내요!’
외부에서부터 펑펑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을 타고 돌덩어리 소품과 의자 등이 날아왔다.
퍼억! 퍼억!
시우는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 내며 버텼다.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맨몸으로 수중 연기를 마주 대하자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과, 진영이 느끼는 거대한 두려움이 시우의 마음속으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괴로워…….’
진영에게 이입한 시우가 발버둥을 치다 지쳐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쯤, 누군가 시우의 몸을 붙잡았다.
승석이었다.
승석이 시우를 끌고 위로 올라오자 최민철 감독이 외쳤다.
“컷! 오케이! 승석이 잘했어! 둘 다 괜찮아?”
물에 흠뻑 젖은 채, 밖으로 빠져나온 승석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괜찮아. 물이 따뜻하네.”
“그래. 다행이네. 시우는?”
시우는 젖은 머리를 흔들며 옅게 웃는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저 바다아이 출신이에요.”
“허허. 좋아. 믿음직스럽네.”
할리와트 때처럼 마법으로 물을 데워 가며 승석과 수중 촬영 씬을 반복해서 찍은 시우는 잠시 뒤, 물에 젖은 모습으로 녹색 크로마키 월드 앞에 섰다.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체력 회복도 하지 않은 채, 시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
“좀만 힘내서 해 보자! 레디, 액션!”
물에서 빠져나온 시우와 승석이 차오르는 물을 피해 사람들을 찾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씬.
최민철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승석에게 부축받고 있던 시우가 승석을 거칠게 밀어냈다.
“저리…… 저리 비켜요.”
시우가 밀치는 힘에 의해 승석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지친 탓에 몸을 가눌 힘도 부족해 보였다.
시우는 벌러덩 넘어지는 아빠의 모습에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신경을 끄고 고개를 돌렸다.
한계가 왔는지 시우는 입술을 깨물고 절망적인 눈빛으로 크로마키 벽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물바다가 되어 버린 도시의 모습이 비쳤다.
발밑을 내려다본 시우는 금세 발목까지 다시 올라오고 있는 바닷물을 상상하다,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아아악!!”
시우는 자신의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지른 다음,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손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는 바닥을 짚었다.
시우가 처절하게 악을 썼다.
최민철 감독과 스태프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고요하게 시우의 연기를 지켜봤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그냥…… 이럴 거면 그냥…… 마트에서 죽어 버릴걸…….”
너무 힘들다.
다 박살 났다.
지친다.
무너진 건물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을 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여진을 뚫고 죽어라 걷고 또 걸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제 끝난 것 같았다.
다 함께 구조를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쓰나미가 왔다.
모든 게 다 엉망이었다.
옆에서 승석이 소리를 쳤다.
“에라이, 남자 새끼가…… 정신 바짝 차려!”
* * *
시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얼마 전, 수중 촬영이 너무 고단했는지 그때의 꿈을 꾸며 얼굴을 찌푸리고 두 주먹에 힘을 꽉 쥔 채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으으음…….”
물속에서 날아오는 온갖 물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시우의 뺨 위로, 축축한 뭔가가 닿았다.
오돌토돌한 돌기가 시우의 볼을 싹 핥았다.
낼름낼름-
시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네로…… 너냐…….”
호박색 눈을 가진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리란 예상과 다르게, 하얀 뭔가가 슥 시야에 스쳤다.
“……응?”
돌기가 난 혓바닥이 한 차례 더 시우의 얼굴을 핥았다.
시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앵무새 부리가 보였다.
– 머글 꺼~ 머글 꺼~ 마시께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인데?
시아의 말투와 묘하게 겹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시우가 벌떡 일어났다.
“으악! 뭐야!”
– 앵무새
“아니, 네가 왜 여깄냐고?!”
– 알렉산더얼~
시우가 알렉산더를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 때.
우다다다다!
거친 발소리와 함께 시아가 등장해 열려 있는 방문으로 쓱 얼굴을 내밀었다.
“오빠아~! 새가 와써어!”
알렉산더가 말했다.
– 오빠. 오빠. 오빠.
시우가 알렉산더의 말을 막았다.
“아냐. 아냐. 네 오빠 아니다.”
정신을 차린 시우는 책상에 놓인 달력을 확인했다.
익스트림 멤버들이 놀러오기로 한 날이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시우가 거실로 나가자,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익스트림 멤버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복실이와 놀고 있는 이제는 제법 큰 꼬물이 3형제도 있었다.
“우리 시우~ 잠꾸러기구나!”
알렉산더를 어깨 위에 올린 시우는, 형들과 인사를 나눈 뒤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제이슨이 물었다.
“근데 네로는 어디 갔어? 고양이. 시윤이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라.”
“네로?”
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어딘가 있겠지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냉장고 위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네로가 눈에 들어왔다.
네로의 궁둥이가 씰룩이는 것을 본 시우는 다급히 외쳤다.
“네로야! 안 돼!”
타앗!
시우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알렉산더를 날카롭게 쏘아보던 네로가 냉장고 위에서 뛰어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