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57)
157.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시우는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그려진 태권도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장소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해변 중 하나인 베니스 비치-
옆 동네 산타모니카 비치가 관광객들로 붐비는 가장 대중적인 해변이라면, 이곳 베니스 비치는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가득한 젊은 영혼들의 휴식처였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과 행위 예술가들, 개성 넘치는 온갖 상점들이 즐비했다.
시우는 해변의 거리 풍경을 보며 한국 홍대 앞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위기가 뜨겁네.’
촬영 준비를 마친 시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자들과 식스팩을 드러낸 젊은 남자들이 거리 한쪽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몸매를 훤히 드러낸 젊은 남녀들이 일제히 시우를 향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그들의 눈에는 단순히 촬영을 위한 환호가 아닌, 진심이 듬뿍 담긴 기대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왠지 부끄러운데.’
시우는 살짝 올라오는 민망함을 프로답게 떨쳐 내고, 진지한 얼굴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션 프론트 워크라고 불리는 보행자 전용 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시우를, 카메라가 빠르게 쫓아왔다.
타앗!
젊은 남녀들과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들을 배경으로 한순간 시우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앞에는 시우와 마찬가지로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들이 격파용 송판을 들고 있었는데, 높이도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솟구쳐 오른 시우가 벼락처럼 발을 내뻗자, 송판 하나가 박살 났다.
시우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다시 허공으로 뛰었다.
시우의 몸이 빙그르르 돌았다.
“와아아아아-!!!”
젊은이들의 환호성이 더 커졌다.
그들의 표정에는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의 몸이 저렇게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도 신기했고,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발차기가 나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마치 격투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발기술들이 시우를 통해 눈앞에서 연달아 펼쳐졌다.
촬영에 동원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구경하던 상점 주인들과 관광객들까지도 그저 입을 벌리고 시우를 홀린 듯이 쳐다봤다.
파악! 파악! 파악!
“……굉장하다. 다리에 기계라도 달았나?”
“젠장! 나 내일부터 태권도 배우러 간다!”
“굉장해!! 너무 섹시하잖아!! 꺄악!!”
시우는 사람 같지 않은 속도와 점프력으로, 송판을 끊임없이 박살 내고 있었다.
태권도 다음은 스케이트보드였다.
베니스 비치 모래사장에 위치한 스케이트보드 연습장-
평소 보더들이 화려한 묘기를 뽐내는 장소였다.
“자, 벗을까?”
“……꼭 벗어야 되는 거죠?”
시우는 감독에게 되물었다.
“그럼! 꼭 벗어야지. 몸 장난 아니던데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해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우는 연습장을 가득 메운 초롱초롱한 눈빛들 속에서 조용히 윗옷을 벗었다.
“꺄악!”
“와우!”
“오호우~!”
선명한 복근과 상체 곳곳에 자리한 잔근육들을 본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시우의 몸매에 또다시 감탄을 토해냈다.
시우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윗옷을 스태프에게 건네고, 스케이트보드 위에 한 발을 올렸다.
“모자! 모자!”
감독이 외치자 스태프 한 명이 브랜드 로고가 가운데 딱 박힌 검은색 모자를 들고 뛰어왔다.
브랜드의 운동화까지 맞춰 신은 시우는 보드를 타고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 속에 시우는 점프대를 오가며 슬슬 시동을 걸었다.
파앗!
이윽고 해변의 눈부신 햇빛 아래서, 시우의 몸이 스케이트보드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는 시우의 몸을 카메라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찍고 있었다.
그 외에도 시우는 복싱도 하고, 농구도 하고, 마운드 위로 올라가 강속구도 던지는 등-
여러 가지 스포츠들을 해냈다.
감독은 자신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멋진 장면들을 착착 수집해 갔다.
‘대단해! 배우가 아니라 운동선수를 했어야 하는 거 아냐?’
감독과 스태프들은 그저 감탄, 감탄, 감탄뿐이었다.
윤시우는 오늘 하루 피로한 기색도 없이 믿기지 않는 운동 능력을 계속해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감독과 스태프들은 시우의 팬이 된 상태였다.
스포츠 촬영의 마지막은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선수들과 같이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시우는 자세를 완벽히 따라하며 나중에는 누가 선수인지 모를 정도로 완벽한 스케이팅을 보여 주었다.
촬영을 도와주러 온 미국 대학교 쇼트트랙 선수가 끝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뱉었다.
“시우 윤은 우주인이야…….”
그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포츠 장면 촬영을 마친 시우는 스태프들과 함께 실내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오늘 아침부터 쭉 이어진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세트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40대 남자 배우가 시우에게 인사를 했다.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무명 배우였다.
“저는 이. 철. 수. 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억양이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정확한 발음으로 그는 한국어를 구사했다.
“네. 저는 윤시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만나서. 영광. 입니다.”
시우는 이철수와 악수를 나눴다.
촬영장에 식탁과 음식이 세팅되는 동안 시우와 철수는 의자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눴다.
철수는 한국인 월드 스타인 시우와의 만남에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시우가 사인도 해 주고, 한번 허그를 해 준 뒤에야 가까스로 철수는 진정을 했다.
“영어로 얘기하셔도 돼요.”
“오, 그래? 고마워. 시우. 다시 소개할게. 내 한국 이름은 이철수. 영어 이름은 찰스 리.”
“네. 반가워요. 아저씨.”
“내가 연기를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혹시 부족한 점이 있으면 따끔하게 가르쳐 줘.”
“저도 시작만 일찍 했지 모르는 거 많아요. 같이 열심히 해요.”
시우의 겸손한 말에 철수는 또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시우를 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대사 연습해 왔는데, 발음이랑 억양 좀 고쳐 줄래?”
“네. 얼마든지요.”
둘은 스태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석에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리허설을 반복했다.
얼마 후, 감독이 두 배우를 불렀다.
“시우~! 그리고…… 천수 씨였나? 이천수 씨?”
다다닷!
철수가 한달음에 달려갔다.
시우는 열정 넘치는 아저씨의 뒷모습에 자신도 따라 다다닷! 뛰어갔다.
철수는 감독에게 자신의 이름을 재차 소개하고 있었다.
“이철수! 입니다!”
“아, 죄송해요. 이철수 씨. 준비는 되셨어요?”
“네! 시우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요. 의욕이 좋네요. 하하.”
시우는 겉보기와 다르게 철수가 꽤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등에 살짝 손을 올려 주었다.
철수는 시우의 배려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둘은 준비된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식탁 위에는 그릇에 담긴 볶음밥이 놓여 있었다.
광고의 마지막 씬이었다.
시우는 츄리닝을 입고 식탁 앞에 앉아 볶음밥을 계속 먹어야 했다.
철수는 신문을 읽다가 밥을 먹고 있는 아들 시우에게 잔소리를 던지는 아빠 역이었다.
“갑시다! 레디, 액션!”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볶음밥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시우는 오늘 하루 종일 운동을 해서 꽤 피곤할 법도 한데, 아주 힘 있게 숟가락질을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숟가락을 움직이는 손놀림에서 왠지 모를 에너지가 느껴졌다.
철수는 정말 대단한 표현력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집중했다.
“…….”
물끄러미 시우를 바라보던 철수가 신문을 접은 뒤, 안경을 쓱 고쳐 쓰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시우의 숟가락질이 멈췄다.
밥을 먹다 얼굴을 든 시우는 씩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난 뭐든 될 수 있어.”
쿵쿵쿵-!
심장이 거칠게 뛰는 소리와 함께, 시우의 강렬한 두 눈 위로 브랜드 로고가 떠오르면서 광고는 끝난다.
“컷! 오케이!”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짝짝짝!
스태프들의 박수 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업체에서 시우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받아 들고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철수와도 인사를 나눴다.
“아저씨, 감사해요. 잘하시던데요.”
“하하. NG 많이 냈잖아. 나 때문에 밥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냐?”
“괜찮아요. 그리고…….”
“응?”
시우는 너무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결국은 아무것도 못해 낼지 모른다고 자신에게 고민 상담을 했던 철수 아저씨에게 따뜻하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아저씨도…… 뭐든 될 수 있어요!”
“……웁쓰. 나 잠깐 울어도 돼?”
“나중에 작품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격렬한 하루를 무사히 마친 시우였다.
* * *
“…….”
“…….”
네 남자가 멀뚱히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우는 앞에 놓인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커피에 시럽을 쭉쭉 넣었다.
작은 스푼으로 시럽을 섞으면서 시우는 생각했다.
‘영화감독이라고? 레슬러 같은데…….’
맥과이어 감독의 외모는 당장이라도 프로레슬링 로프 위로 올라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피니쉬 기술을 준비할 듯한 이미지였다.
맥과이어 감독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자신의 자랑인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졌다.
그의 눈은 날카롭게 시우를 관찰하고 있었다.
‘잘생겼군. 그리고 눈빛이 매력적이야. 에반처럼 귀여운 연기만 할 배우는 아니로군.’
볼수록 빨려 들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점차 멍해지는 눈으로 시우의 외모를 감상하던 맥과이어 감독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캐스팅 디렉터가 옆구리를 찌른 뒤였다.
“말하는 법을 잊은 건 아니지?”
정신을 차린 맥과이어 감독은 큰 눈을 끔뻑거리다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일단 만나고자 한 이유는 시우 윤을 캐스팅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화상으로도 말씀드렸지만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리는 게 우리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맥과이어 감독은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시우는 가만히 앉아서 감독의 설명을 경청했다.
사실 메일과 전화를 통해 들은 이야기와 크게 다른 바가 없었으나, 맥과이어 감독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설명을 마친 다음 뿌듯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봤다.
캐스팅 디렉터가 나섰다.
“미안해요. 했던 얘기 또 해서.”
화들짝 놀란 맥과이어 감독이 옆을 돌아보자, 캐스팅 디렉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야. 이런 것도 다 말했다고?”
“내가 일을 대충 하는 사람으로 보여? 설명은 됐으니까 너의 그 진심으로 시우를 설득해 보라고.”
“……그렇군.”
맥과이어 감독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시우를 쳐다보다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만들 테니, 우리와 함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시우 윤이 나온 작품들도 제가 다 챙겨 봤고 우리 영화에서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런 캐릭터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혹시…… 혹시 SF 싫어합니까?”
맥과이어 감독이 만나기 전의 자신만만함은 어디로 갔는지, 불안함이 감도는 표정으로 물었다.
케빈이 시우를 보자, 시우가 대답했다.
“……아뇨. 좋아하는데요.”
맥과이어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베이글을 자기도 모르게 살짝 휘두르며 외쳤다.
“그렇다면……! 몹시 잘됐군요. 혹시 우리 영화 시나리오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론 다 보여 드린 게 아니라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느낌이랄까? 회사 입장이 아니라 시우 윤 배우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시우는 이 열정적인 감독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음…… 그러니까 제가 안드로이드 역할인 거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