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58)
158. 챌린지
작품은 마음에 들었다.
장르도 그렇고,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영화였다.
다만 비중이 낮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영화가 과연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찍기로 해 놓고 수년을 허송세월하는 영화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다 완성이라도 되면 다행이지만 엎어지는 영화들이 훨씬 많았다.
맥과이어 감독의 SF 영화에서 바로 그런 위험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현실은 아직 투자도 받지 못한 상황인데, 스케일만 컸다.
시나리오가 아까워 얘기라도 들어 볼까 자리에 나온 것이지, 사실 굳이 나올 이유도 없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감독님이 열정은 있어 보이는데…….’
열정만으로 영화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돈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는 특히나 더욱 더 큰 돈이.
‘작품은 해 보고 싶고…… 그런데 비중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렵네.’
시우는 작품과 캐릭터에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을 솔직하게 맥과이어 감독에게 털어놓았다.
맥과이어 감독의 표정이 환해졌다.
시우가 출연하고 말고를 떠나,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칭찬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었다.
“좋게 봐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나오는 동양인 안드로이드 역에는 시우 윤 배우 외에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아요. 아니, 실은 아까도 설명했다시피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안드로이드의 설정을 동양인으로 바꿨습니다.”
맥과이어 감독은 시우의 표정을 살폈다.
시우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나 원하는데도 주연이나 비중 있는 조연은 주기 힘들다는 얘긴가. 할리우드 문이 내 생각보다도 더 좁구나.’
“언제 촬영 들어갈 계획이세요?”
시우의 질문에 맥과이어 감독이 대답했다.
“지금 투자 관련해서 꽤 긍정적인 반응들을 얻고 있고, 함께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팀이 있어서 조금씩 계속 준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착착 맞아떨어지면 내년이 끝나기 전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들어갈 수도 있어요.’라는 말이 좀 걸리지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시우는 감독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맑고 고운 큰 눈을 한차례 바라보곤, 시원하게 대답을 했다.
회사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으니까.
“내년 하반기까지 들어간다면, 저도 합류하도록 할게요.”
‘뭐, 내가 돈 때문에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주연만 고집할 이유도 없고. 그냥 작품 보고 가자.’
시우가 호쾌하게 수락해 버리자, 오히려 맥과이어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진짜?’
한번 믿어 보겠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우와 눈이 마주친 맥과이어 감독은, 그런 시우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출연료가 할리와트 때보다 많이 낮아진 것이 불만일 수도 있고, 비중을 더 달라고 고집하며 계속 할 듯 말 듯 밀당을 할 수도 있을 텐데, 흔쾌히 결정을 내려 버리는 시우의 눈빛에서 작품에 대한 순수한 호감과 호의가 느껴졌다.
‘이 배우는 뭔가 다르다. 다른 배우들과는 분명히 뭔가가 달라.’
프로레슬러 같은 겉모습과 반대로 예리한 신경을 가진 맥과이어 감독은, 앞에 앉아 시럽 잔뜩 넣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동양인 미소년으로부터 어떤 초월적인 아우라를 감지했다.
사사로운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 태도는 마치…….
인간보다 우월한, 뭔가 다른 존재.
‘완벽에 가까운 안드로이드?’
맥과이어 감독은 테이블 밑에서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운전을 하던 케빈은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물었다.
“굳이 빨리 결정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우리는 아쉬울 게 없잖아. 그들 말대로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한 후에 합류해도 충분했을 거야.”
“아쉬울 것도 없지만, 손해 볼 것도 없잖아. 오늘 시나리오 추가 분량도 확인했고. 얼마 전에 감독님 전작들 보고 연출 능력도 알았고.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서 간을 보기 보다는, 작품에 힘을 실어 주는 편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
“음, 힘을 실어 준다고?”
“주연은 아니라도 에반의 차기작이라면 꽤 화제가 될 테니까.”
지금은 이 작품에 아는 사람들만 관심을 갖고 있겠지만, 자신이 합류한다는 기사가 나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될 것이다.
현재 찍고 있는 재난 영화 폴트도 자신의 출연 결정 이후, 투자 금액이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뭐, 비중이 아쉽긴 한데…… 한번 해 보고 싶어. 마음에 들어.”
시우의 의욕을 느낀 케빈은 슬쩍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원하면 해야지. 이 영화 잘만 만들면 대박 나겠더라.”
그래도…….
역시 비중이 아쉬웠다.
케빈은 약간의 기대감과 조금 속이 쓰린 기분을 동시에 느끼면서 시우와 같이 호텔로 향했다.
* * *
[윤시우, 할리우드 차기작은 SF 영화> [윤시우의 마음 사로잡은 크리스 맥과이어 감독은 누구?> [주연 아닌 조연이라도 괜찮다. 초심으로 돌아가 성인 배우로 커리어 쌓겠다는 윤시우의 도전> [할리와트 완결편 연말에 개봉. 그리고 윤시우의 배우 인생 2막은 조연부터 다시 천천히> [쿵푸 영화 유행 끝나자 동양인 주연 영화 없는 할리우드의 현실 재확인>– 쿵푸 영화도 동양인 안 쓰고 팬더 쓰더라
– 이건 어쩔 수 없는 걸지도…… 한국 영화인데 주인공이 중동 배우인 거랑 같은 느낌이려나……
– 시우도 주연은 무리였나 보다 ㅠㅠ 하긴…… 흑인 주연도 찾아보기 힘든데…… 아쉽다…….
– 그래도 해외에서 광고도 찍고 하는 건 시우밖에 없어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를 기대해 보자고요~
– 크리스 맥과이어 미국에 사는 영화 매니아들만 아는 숨은 보석 같은 감독인데…… 시우랑 어떻게 연결이 됐네?
– 주연은 아니어도 조연으로라도 비중 많으면 좋겠다
크리스 맥과이어 감독이 한국 포털 실검 1위를 차지하는 등,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팬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댓글들을 시우의 SNS와 게시판에 쏟아 냈다.
준조연.
즉 조연 중에서도 비중이 적은 조연이라는 말은 분위기상 자세히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시우의 할리우드 차기작 소식이 베일을 벗은 가운데, 한국에서의 영화 촬영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우가 미국에서 촬영하고 온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공개가 되었다.
[난 뭐든 될 수 있어.]쿵쿵쿵-!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기 어린 표정과 도발적인 눈빛-
씩 웃는 시우의 자신만만한 얼굴 위로, 브랜드 로고가 활처럼 휘어지며 익사이팅하게 그려졌다.
보는 이들을 전부 홀려 버리는 시우의 매력적인 미소는 단숨에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해당 브랜드의 매출이 껑충 뛰어올랐고, 스트리머들에 의한 광고 패러디도 줄을 이었다.
챌린지의 시작은 할리와트 시리즈가 배출한 또 다른 월드 스타 니콜라스였다.
친구인 시우와 한국 팬들을 위해 제작한 영상이었다.
시우가 광고에서 온갖 스포츠를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 준 것처럼, 니콜라스는 스포츠 브랜드 광고에 나온 멋진 음악을 틀어 놓고 온갖 한국 음식들을 미친 듯이 먹는 영상을 찍었다.
짜장면, 족발, 비빔밥, 순대 등이 니콜라스의 입으로 사라지는 장면들이 짧게 짧게 편집되어 흘러나왔고.
마지막에는 꾸물대는 산낙지를 쿵쿵쿵-! 뛰는 심장소리와 함께 열심히 씹어 먹었다.
니콜라스는 전 세계의 마이튜브 시청자들을 향해 시우처럼 씩 웃고는 어설프게 한국어로 말했다.
[난 뭐든 먹을 수 있어.]니콜라스의 얼굴 위로 스포츠 브랜드 로고를 약간 비틀어 바꾼 이미테이션 로고가 멋지게 떠올랐다.
이내 화면이 검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영상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찰나 니콜라스의 조그만 한국어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홍어 빼고.]니콜라스가 예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우의 마튜 라이브 방송에서 홍어롤 먹으며 고통스러워하던 것을 기억하는 한국 팬들은 니콜라스의 귀여운 재치에 너도 나도 영상으로 화답했다.
간단하게는 동네 어린이 놀이터에서 온갖 놀이기구를 탄 다음 ‘난 뭐든 탈 수 있어’를 외치는 중년의 스트리머부터, 이것저것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물어뜯은 다음 ‘난 뭐든 물 수 있어.’라고 자막으로 짖으며 씩 웃는 시베리안 허스키까지.
각종 기발한 패러디 영상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유행이란 것은 가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탄생해 빠르게 번지곤 한다.
원래는 아시아 지역에서만 내보내기로 했던 시우의 CF가 재미난 놀이가 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미국에 위치한 스포츠 브랜드 본사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기로 했다.
“시우 윤에게 연락해서 모델 계약 연장 제시해! 금액은 다섯 배로 올려! 그리고 시우 광고 전 세계로 내보내! 촬영 당시 비하인드 영상도 홈페이지에 업로드하고!”
“스포츠 스타도 아닌데 그렇게 큰 금액을요?”
“지를 때 질러야지. 앞으로 아시아 시장은 시우 윤으로 가자고!”
시우 광고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놓은 매출 자료를 보면서 그는 자기들이 시우의 파괴력에 대해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뭔가가 다르다.
똑같이 웃는 얼굴을 찍어도, 이 배우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타고난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촬영 영상 보니까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운동 능력이 좋던데, 도대체 정체가 뭐야?’
* * *
2년 전, 영화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를 끝으로 굵직한 활동이 없었던 시우가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친구들과 만든 웹 드라마가 한편 있긴 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메이저 활동은 아니었다.
‘영준이 공부 응원해 주려고 가평 놀러갔다가 플라이보드 한 번 탄 게, 이렇게 나비 효과가 되나.’
세계 최고, 최대 스포츠 브랜드와 연장 계약을 맺게 된 시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연말에 할리와트 완결편 개봉하고 나면 그 시점에 정점을 찍고, 앞으로는 봄날 대신 겨울이 올 거라 예상했는데 한동안 스포츠 브랜드 광고로 인기가 식을 날이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대가로 커다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시우는 지금 찍고 있는 영화도 잘 돼서, 해외 개봉까지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장에 앉아 있는 시우의 옆으로 케빈이 다가왔다.
“잠깐 대표님 전화 좀 받고 왔다.”
“왜, 무슨 일 있어?”
케빈은 빙그레 웃었다.
“미국에서 맥과이어 감독이 계약에 변동 사항 없는지 확인차 전화했대.”
미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CF 대박으로 인해 갑자기 시우의 몸값에 변동 사항이 생긴 것이다.
혹시 이것이 계약에도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맥과이어 감독과 투자자들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케빈이 말했다.
“혹시 출연료를 더 원한다면 올려 주겠다고 하던데.”
“음, 상황 달라졌다고 그렇게 입장을 바꾸긴 좀 그래.”
시우는 오늘 촬영할 대본에 시선을 둔 채, 별로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감독님이 너 만난 뒤에 영감을 받으셔서, 시나리오에 네 비중이 좀 더 늘어났다고 하시네. 일을 더 많이 하면 당연히 보수도 더 받아야지.”
당연한 이치였다.
비중이 늘었다는 말에 시우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시우가 아이처럼 설레는 얼굴로 얼마나 늘었는지, 좀 더 자세히 물으려는 순간.
멀리서 최민철 감독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우는 조연 배우들과 같이 카메라 뒤쪽에 서서 진지하게 승석의 연기를 지켜봤다.
승석은 멍하니 부서진 건물 잔해 위를 헤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승석이 주변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잠시 얼굴을 들었다가, 다시 고개를 떨궜다.
승석의 입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승석은 앞에 보이는 수진을 향해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가다 입을 열었다.
“우리…… 우리 아들이랑…… 캐치볼 해 줘야 하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