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6)
16. 펫피월드
시우와 복실이, 네로에게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왔다.
메시지 내용을 몇 번씩 유심히 읽은 현주는 혼자 발을 동동 구르다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빰빠빰빠빰빠빰빠-!
영화 [아마데우스>의 오프닝으로 유명한 모차르트 25번 교향곡이 통화 연결음으로 흘러나왔다.
음악이 끊기고, 휴대폰 너머에서 도진이 전화를 받았다.
[응, 현주야. 나 지금 퇴근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오빠.”
[말해. 왜?]“인싸에 이상한 메시지가 왔어.”
[이상한…… 일단 아무것도 누르지 말고, 주소 같은 거 적혀 있어도 들어가지 마. 오빠가…….]“우리 애들한테 광고 모델 해 달래.”
[그래, 요즘 인싸 피싱이 그런 식으로…… 뭐?]“얼른 와. 같이 얘기하자.”
40분 뒤, 도진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입을 살짝 벌리고 코- 자고 있는 시우를 들여다본 도진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현주와 함께 안방으로 갔다.
현주는 시우가 깨지 않도록 문을 살살 닫았다.
그리고 곧장 휴대폰을 도진에게 들이밀었다.
“오빠, 이거 봐.”
도진은 침대에 앉아 메시지를 확인했다.
무척 정성스럽게 쓴 정중한 제안이었다.
다만 바로 모델 계약을 맺자는 얘기는 아니었고, 복실이와 네로가 카메라 테스트에 합격하면 그때 계약에 대해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
“음, 사기는 아닌 거 같네.”
“응응. 진짜 맞지? 내가 혹시 몰라서 인터넷 찾아봤는데 정말 펫피월드 전화번호였어.”
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펫피월드…… 어디서 들었더라. 우리 애들 사료 브랜드 아냐?”
“맞아. 사료도 펫피월드 거고, 네로가 엄청 좋아하는 간식 츄르르도 여기 거야. 동물들 옷도 팔고, 캣 타워랑 장난감…… 하여간 강아지랑 고양이가 쓰는 물건은 다 만들어.”
펫피월드는 국내 반려동물 용품 시장의 6할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아주 큰 회사였다.
나머지 4할은 외국 브랜드들과 초저가 브랜드들이 나눠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현주가 물었다.
도진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글쎄, 당신 뜻은 어때? 해 보고 싶어?”
“으으음…… 사실 쪼끔 해 보고 싶어.”
솔직하게 말한 현주는 약간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 * *
다음날.
오전 일과를 마친 현주는 소파에 앉아 심호흡을 길게 했다.
매트 위에서 복실이와 뒹굴고 있는 시우를 한 차례 본 뒤, 현주는 인싸 메시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기다리자 펫피월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펫피월드 마케팅 팀장 최형식입니다.]“안녕하세요. 인싸 메시지 보고 연락드렸어요. 시우랑 복실이, 네로 엄마인데요.”
[아! 어머님! 이렇게 전화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현주는 펫피월드의 마케팅 팀장과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그럼 어머님~! 생각해 보시고 날짜 정해서 연락 주세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통화를 끝낸 현주는 긴장이 풀렸는지 눕다시피 소파에 등을 묻었다.
펫피월드 측과 나눈 대화를 도진에게 문자로 보내 놓고, 현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복실이를 베고 누워 있는 시우가 너무 심심해 보인 탓이었다.
“우리 시우, 엄마 통화하는 거 조용히 기다려 주고 있었지? 이제 엄마가 놀아 줘야겠다. 맞다, 책 볼까? 잠깐마안.”
현주는 작은방으로 향했다.
작은방에는 현주의 전자 피아노와 빨래 건조대, 키가 큰 책장 두 개가 있었는데 책장 위쪽에는 도진과 현주의 책들이, 아래쪽에는 시우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약간 휑한 느낌이 들던 시우의 책장도 지금은 한태수가 선물해 준 자연 관찰 책 세트로 인해 꽉 들어찬 상태였다.
책장을 볼 때마다 한태수 배우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현주였다.
“엄마~!”
현주가 거실로 들고나갈 책을 고르는 사이, 시우가 엄마를 찾아 작은방으로 기어 왔다.
돌 전후로 잘 걷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는 게 편한 모양이었다.
속도도 기어갈 때가 훨씬 빨랐다.
파파팟!
시우는 마치 훈련된 군인처럼 팔과 다리로 거실 바닥을 밀며 작은방으로 진격해 왔다.
그런 시우를, 복실이와 네로가 좌우에서 호위하듯 쫓아오고 있었다.
자신이 작은방에 들어오자마자 우르르 따라오는 세 아이들을 보면서 현주는 귀여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사진으로 찍어 두고 싶은 광경이었다.
휴대폰을 소파에 놓고 온 게 아쉬웠다.
아직 출연이 확정되지도 않은 펫피월드 CF가 현주는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작은방 문턱을 넘어온 시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다음 현주에게 다가와 폭 안겼다.
현주는 조그만 시우의 몸을 꽈악 안고 흔들어 준 뒤, 아들에게 물었다.
“시우가 책 골라 볼래? 어떤 거 볼까?”
현주의 유도에 따라 책장 앞에 선 시우는 책 제목들을 살펴봤다.
‘책 진짜 많네. 이거 살 돈이면…… 아니다. 선물받은 걸로 이런 생각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엄마가 행복해하니까 됐어.’
시우는 책이 싫었다.
물론 책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 말해 유아용 책과 아동용 책이 싫었다.
밤에 부모님 몰래 책장 위로 기어 올라가 아빠의 보물인 희곡 [영화관의 유령>이나 엄마의 소장 도서 [파리연인>을 읽으며 언어 공부를 해 온 시우에게 유아용 책이 맞을 리 없었다.
손을 움직여 책 몇 권을 고른 시우는 엄마에게 안겨 거실로 나갔다.
복실이와 네로도 역시 따라 나왔다.
현주가 매트 위에 [다람쥐> 책을 펼치자 시우와 복실이, 네로가 우르르 모여들었다.
셋은 책을 가운데 두고 삼각형 형태로 앉았다.
꼭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현주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요즘은 인싸에 사진을 업로드하자마자 댓글들이 초 단위로 달리곤 했는데, 현주는 매번 겪으면서도 여전히 신기했다.
“자, 엄마가 읽어 줄게요. 네로야. 다람쥐 얼굴에서 발 좀 치워 줄래?”
* * *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현주는 주말에 잠깐 시댁을 다녀왔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만나 월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니 어느새 목요일이었다.
현주는 들뜬 표정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현주가 오랜만에 자신을 꾸미는 모습을 보며, 옆에서 시우의 옷을 입히던 도진이 말했다.
“예쁘다. 화장 자주 하고 다녀.”
현주가 웃으며 물었다.
“평소엔 별로라서 그래?”
“아니. 평소에도 예뻐. 다른 종류의 예쁨이지. 그냥 네가 즐거워 보여서 한 말이야.”
“알았어. 시우 옷은 다 입혔어?”
“양말만 신기면 돼.”
양말까지 신은 시우는 두 발로 걸어 소파 위에 놓여 있는 아기 띠를 찾았다.
“현주야. 시우 봐라. 우리 아들이지만 진짜 똑똑하다.”
“시우가 얼마나 영리한데. 이런 건 새 발의 피야. 오빠. 아기 띠 나 주고 복실이랑 네로 차에 데려다 놔.”
“그래. 유모차도 트렁크에 실어 놓을게.”
“고마워. 오빠가 비번이라서 좋다. 혼자 할 때는 외출 준비 하루 종일 걸리는데.”
“너 혼자 애들 셋 데리고 차도 없이 어떻게 가. 비번 아니면 월차라도 내야지.”
도진의 활약으로 외출 준비는 빠르게 끝이 났다.
온가족이 집 밖으로 같이 나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간혹 산책이 가능한 고양이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늘 네로만 혼자 집을 지켰었다.
– 우어어어어~! 우어어어어~!
익숙하게 창밖을 구경하는 복실이와 달리 네로는 차에 탄 순간부터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현주가 이동장 안으로 손을 넣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해도.
– 하악! 하아악! 흐아아악!
필사적으로 손을 피하며 하악질을 해 댔다.
“왜 그래, 네로야. 병원 가는 거 아니야. 놀러 가는 거야.”
– 우어어어어~!!
참다못한 복실이가 네로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분위기 딱 잡고 여유롭게 경치 구경 좀 하려는데 뒤에서 자꾸 괴성을 내지르니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 멍멍멍!
– 냐아아아아-!!
흠칫.
조수석의 복실이는 화들짝 놀라 의자 뒤로 몸을 숨겼다.
자신이 짖는 소리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죽어라 비명을 지르는 네로였다.
– 끼잉. 끼잉.
복실이가 이르는 것처럼 도진을 보며 낑낑댔다.
도진은 운전을 하면서 한 손을 뻗어 복실의 몸을 만져 주었다.
그 와중에도 네로는 계속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결국 시우가 나섰다.
“안대!”
– 냐아아아-!
“안대애애-!”
‘병원 가는 거 아니니까 그만해애애-!’
시우는 네로와 똑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놀러 가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 우어어어~!
“안대애애~!”
‘집에서 놀자고? 이 바보 녀석아. 거기 가면 네가 좋아하는 츄르르가 산처럼 쌓여 있어어어~!’
– ……냥?
네로가 소리 지르기를 멈추고, 이동장 밖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호박색 눈동자 속에 1만 볼트의 전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복실이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온 후부터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멀쩡한 자기 밥을 놔두고 매번 남의 밥그릇을 탐내질 않나, 곤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달려들어 우다다 쫓아다니질 않나, 게다가 자신과만 놀아 주던 시우랑도…… 시우랑도 요즘엔 더 친해 보이고…….
– …….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복실은 좋았던 과거를 회상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복실이었다.
집안 내 서열은 최하위였지만, 막내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꼴찌였다.
그런데.
네로가 들어오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분명 사료 짬밥으로 봤을 때 자신이 네로보다 위에 있어야 정상이었건만, 심지어 시우에게 듣기로 나이도 자신이 2살 많다던데, 수틀리면 계급장 떼고 형 대접 따위 없이 냥이 펀치를 날려 대는 네로에게 당할 재간이 없었다.
놈은…….
싸움을 잘했다.
복실이는 자신에게도 네로와 같은 날카로운 발톱과, 냉장고 위까지 올라가 온갖 먼지를 다 끌고 나오는 민첩성과 대담성, 신발장 우산 꽂이 안에 몸을 욱여넣고 들어가 있는 유연성 등이 있었다면 서열 싸움에서 이렇게 쉽게 밀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 끄응.
엄마, 왜 저를 개로 낳으셨나요.
복실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엄마를 찾으며 고양이로 태어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네로에게 당하다 보니 고양이의 모든 것이 부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엄마~ 저기 강아지 봐~ 진짜 귀여워~!”
신호 대기에 걸려 시우 가족의 차가 멈춰 서 있는 사이, 옆 차 뒷좌석에 탄 남자아이가 복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이 엄마가 복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강아지 얼굴 봐. 인생을 아는 표정인데? 호호호!”
차가 다시 출발했다.
복실은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을 똑바로 맞으며 복실은 해방감을 만끽했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
그런 복실을 가만히 보고 있던 시우가 말을 걸었다.
“부부부.”
‘뭐 하냐.’
– 왈.
시우를 돌아보고 짧게 짖는 복실.
복실의 얼굴을 확인한 시우는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도리질을 했다.
“우웅?”
‘너 우냐?’
– 멍멍!
복실이는 바람 때문에 눈이 시려서 그렇다고 열심히 외쳤지만 시우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시우를 피해 얼굴을 돌리던 복실과 이동장에서 나와 뒷좌석에 앉아 있던 네로의 눈이 마주쳤다.
네로는…… 우연찮게도 마침 혀를 내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털 고르기를 하다 혀 넣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
– …….
– …….
– 멍멍멍! 크르르르!
– 냐앙! 하악! 하악!
“얘들아. 왜 그래. 사이좋게 있어야지. 그만!”
현주가 소리쳤다.
엄마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시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저 녀석들 데리고 CF를 찍어야 한단 말이지.’
찰나지간 일어났던 소란은 현주가 아이들의 입에 간식을 밀어 넣어 주면서 끝이 났다.
시우도 바나나맛 쌀과자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후로 십여 분 정도를 더 달려 시우 가족은 펫피월드 본사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가자 현주와 통화를 했던 펫피월드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마케팅 팀장 최형식입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를 할 때도 느꼈지만 목청이 꽤 큰 남자였다.
도진과 현주에게 인사를 한 그는 시우 가족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팀장에게 몇 가지 설명들을 들을 수 있었다.
“시우는 얼마 전까지 영화 촬영했다고 하셨으니까 저희가 걱정이 안 되고요. 문제는 복실이랑 네로인데. 이런 촬영이 처음이라 적성에 맞는지를 좀 볼 거예요. 만약 테스트 받고 괜찮다 싶으면, 오늘 바로 계약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될 겁니다.”
시우, 복실, 네로 3형제가 광고업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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