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65)
165.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11월에는 수능이 있었다.
시우는 은주와 같이 카메라 앞에 섰다.
준비하고, 하나- 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자, 둘이 동시에 외쳤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시우가 먼저 말했다.
“배우 윤시우입니다~”
“배우 황은주입니다~”
“수능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수험생 형, 누나들! 열심히 준비하신 만큼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전국에 계신 모든 수험생 언니, 오빠들~ 파이팅하세요!”
시우와 은주가 힘내라는 듯이 카메라에 대고 주먹을 불끈 쥐자, 태우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슈 엔터 사무실-
수험생 응원 영상을 촬영한 시우는 사무실 소파에 등을 묻고 앉았다.
고개를 뒤로 젖힌 시우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벌써 수능이구나.”
예전에는 크리스마스가 와야 한 해가 끝났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수능 소식이 들리면 한 해가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은주가 시우 옆에 털썩 앉았다.
“내년에는 우리 차례네. 난 대학 안 갈 거지만. 시우야. 넌 대학 갈 거야?”
시우는 공부를 잘했다.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험만 보면 전교 1등이었다.
바둑도 천재고, 공부도 천재고, 연기도 천재고…….
그중에 얼굴이 제일 천재고…….
시우와 나란히 앉은 은주는 시우의 그린 듯이 예쁜 옆얼굴에 새삼 시우느님의 은혜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남자애는 도대체 어떤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는 걸까?’
바로 앞에 있는데도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시우의 옆얼굴이 슥 돌아가더니, 이번에는 앞얼굴이 보였다.
은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야, 넌 진짜 잘생겼다. 다음 세상에 너로 태어나고 싶어.”
“뭐래. 오싹하게. 그나저나 대학이라……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아직 일 년 남았으니까. 솔직히 출석할 자신이 없어서.”
“응. 나, 나도 그래서 안 가는 거야.”
“넌 아직 그 정도로 스케줄이 많지 않잖아.”
시우의 얼굴에 떠오른 장난기를 본 은주는 버럭 외쳤다.
“많아질 거거든! 쳇.”
은주와 학교 얘기를 나누던 시우는 영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영준이는 공부 잘하고 있으려나. 수능 끝나면 어디 재밌는 데라도 데리고 갈까.’
수능 당일.
수능을 마치고 나온 영준은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 가채점을 시작했다.
“맞았고…… 맞았고…… 어? 이것도 맞았네?”
영준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헉, 뭐야. 애매하던 문제 지금까지 거의 다 맞았어.”
영준은 마지막까지 채점을 마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말도 안 돼…….”
미쳤다.
손이 떨렸다.
이것은 기적이다.
수험 생활 내내 코피 쏟아 가며 노력한 자신을 하늘이 도와줬다.
“영준이 장난 아니다. 운 좀 따르면 진짜 스카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
친구의 말에 영준은 실감이 나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스카이 합격하면 우리 부모님 우셔. 하지만 아직 모르는 거니까. 전부 다 잘 봤을 수도 있잖아.”
카페를 나온 영준은 친구들과 서로 일 년 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은 뒤 버스를 탔다.
오늘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수험 뒷바라지를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도 드리고-
또 인터넷으로 수능 난이도도 확인하고-
친구들과는 내일 만나 미친 듯이 놀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번지 점프.’
시우, 경호, 진아.
버스에서 내린 영준은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하면서 동생들을 떠올렸다.
동생들과 가평에서 번지 점프를 한 이후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점프대에서 두려움을 이겨 낸 것처럼,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어깨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도 풀렸다.
재충전이 됐는지 공부에 집중이 잘됐다.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형이니까, 그동안 용돈 모은 걸로 애들 좋아할 만한 데 데리고 가서 놀아 줘야겠다.’
형 노릇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 조그만 영준이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신나게 집으로 달려갔다.
* * *
시우는 젊은이들의 성지인 홍대 한복판에 지어진 커다란 규모의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영준과 경호, 진아도 시우의 뒤에서 입을 벌리고 함께 서 있었다.
“크네. 사람도 많고.”
시우의 혼잣말에 미리 정보를 알아보고 온 영준이 대답했다.
“여기 진짜 예약하기 힘든 곳인데…… 가격도 비싸고.”
자신이 모은 용돈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오면 좋았겠지만, 이곳은 영준이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중에 밥이라도 맛있는 거 사 줘야지.’
시우는 건물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효은 PD에게 받은 모바일 티켓을 보여 주고 1층 입구로 들어가니, 이곳의 마스코트인지 귀여운 사막여우 한 마리가 시우를 반겨 주었다.
‘할리와트의 바하리야 교수님 생각나네.’
그러나 이쪽은 어린왕자의 사막 여우인 모양이었다.
사막 여우의 옆쪽에, 예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와 작별할 때 건네는 말이었다.
[안녕-내가 비밀을 말해 줄게-
아주 간단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왜냐하면-
VR로 봐야 하거든!]
VR-
Virtual Reality-
이제는 흔해 빠진 단어였으나, 이번에 한국에 정식 출시된 VR은 좀 달랐다.
일명 New VR 1세대.
구 VR은 종종 해 봤지만 뉴 VR은 영화 촬영 때문에 바빠 아직 경험이 없었다.
‘VR 예능이라…….’
현재는 CP가 된 이효은 PD가 기획하고, 과거에 우리아이 예체능을 만들었던 김정수 PD가 연출하는 예능이었다.
‘우선 경험이나 해 보자. 뉴 VR이라고 딱히 특별할 것 같진 않은데.’
시우는 게임을 할 때도 어설픈 VR보다는 자신의 피지컬을 확실하게 뽐낼 수 있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선호하는 아날로그파였다.
VR은 체험,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하다 보면 금방 질린다.
솔직히 별로 구미가 당기는 예능은 아니었다.
다만 어린 시절의 인연이 있고 티켓을 선물로 받았으니 친구들과 같이 놀러 온 것이다.
영준과 진아는 화려한 VR 테마파크를 둘러보기 바빴고, 시우와 경호는 일단 먹거리가 뭐가 있는지부터 체크를 했다.
시우와 경호가 핫도그와 감자튀김 등, 간식거리를 사들고 돌아오자 영준과 진아가 달려와 외쳤다.
“장난 아냐! 사람들 하는 거 저기 대형 스크린에 보이는데 너무 재밌어 보여!”
“나는 저거 할 거야!”
진아가 흘러나오고 있는 게임 영상 하나를 가리켰다.
핫도그를 입에 문 경호가 눈을 돌렸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잘생긴 남자들이 우르르 모여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는 키친이 보였다.
“우와…….”
경호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부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진아가 경호의 팔을 붙잡고 설명을 했다.
“폭삭 망한 작은 음식점의 딸이 되는 거야~ 그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각 파트별로 재능 있는 요리사들을 한 명씩 영입해서 키우고, 그러면서 돈도 벌고 평판도 올리고 손님 모으고~ 그런 거야!”
경호는 눈을 끔뻑거리다 말했다.
“……요리사가 다 남자야?”
“응. 왜?”
“후응…….”
“혹시 게임에 질투하는 거야?”
“아, 아, 아니야~”
얼굴이 빨개진 경호를 보며, 진아는 귀엽게 헤헷 웃고는 냅다 게임 코너로 달려갔다.
“앗…….”
경호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진아를 향해 손을 뻗다, 이내 시무룩하게 핫도그를 다시 입에 집어넣었다.
시우는 저 둘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꽤 궁금했으나 둘이 알아서 할 일이었기에 섣불리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흐음~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나~”
어르신처럼 뒷짐을 지고 시우는 느릿느릿 VR 테마파크를 돌아봤다.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장 라이프?”
목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며 소젖도 짜고, 말도 관리하고, 달걀도 파는 게임이었다.
꽤 힐링 되겠구나 생각하며 시우는 걸음을 옮겼다.
“인어가 되는 것도 있네.”
바다아이 때 생각이 났다.
잠시 추억이 돋았다.
“전형적인 판타지 게임이나 총 쏘는 게임도 많고…… 뭐가 많네. 뭘 하지?”
뉴 VR 앞에서 시우는 선택 장애를 겪고 있었다.
* * *
[열일하는 윤시우, 예능 출연 결정! 이효은 손잡고 VR 예능에 도전!] [개인 방송 아닌 공식 뉴 VR 방송 제작은 한국이 최초! 전 세계의 이목 집중!] [윤시우 광팬 자처하는 HS그룹 심태윤 회장, 이효은 새 예능에 개인적인 투자 의사 밝혀] [자타공인 연예계 겜돌이 송준영. 윤시우와 동반 출연 결정! 굿바이 파파 촬영 끝나고 곧바로 합류한다!] [캐나다의 별 루카스 베이커, 할리와트의 니콜라스 넬슨. 월드 스타들 연달아 SNS로 윤시우 공개 응원. 시우가 부르면 한국 예능 나가겠다.]“부담스러워서 못 만들겠어요. 흐어~ 시우 인맥이 아주…….”
우리아이 예체능 출신 김정수 PD는 커피를 마시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효은 PD가 말했다.
“오늘 첫 촬영인데 이제 와서? 진작 말하지 그랬어. 바로 다른 PD로 바꿨을 텐데.”
“아, 아니에요. 선배님. 농담인 거 아시면서~”
“나도 농담이야. 오늘은 처음이니까 계정 만들고 등록하고 뭐 이런 걸로 시간 꽤 갈 거야. 준영이랑 시우는 해 봤는데, 승현이는 급하게 결정돼서 차라리 아예 VR 하지 말고 오라고 했어. 헤맬 수도 있으니까 도와줘.”
“알겠습니다. 선배님도 오늘 오실 거죠?”
“첫 촬영이니까 당연히 가야지. 국장님도 오셔.”
“헉……! 아, 역시 부담스러워요…….”
이효은 PD는 부담감을 호소하는 후배의 등을 상냥하게 때려 주었다.
팍!
“정수야. 본격 뉴 VR 방송이 처음이라 시청자 반응 어떨지, 전 세계 모든 방송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연출 잘하자.”
“넵!”
그도 이제는 꽤 베테랑이었으나,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여전히 이효은 PD 앞에서는 말단 신입 사원이 되고 마는 김정수 PD였다.
12월-
연말을 맞아 방송사마다 시상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연과 행사로 연예인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기에 비해 상복이 없는 편인 시우는 시상식 일정을 확인하다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왜 그래?”
운전석의 케빈이 물었다.
“아니, 그냥. 나도 상 받고 싶어서…….”
어린아이같은 시우의 말에 케빈이 웃었다.
“그러게. 큰상을 못 받네. 너무 걱정 마라. 할리와트 하느라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거니까. 어른 되고 질리게 받으면 되잖아.”
할리와트의 경우 너무 상업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반감을 갖는 이들도 꽤 존재했다.
시우가 찍은 작품 중, 스릴러인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가 상을 받기 좋은 영화였으나 아깝게 놓쳤다.
“알았어! 어른 돼서 받지 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받을까?”
시우의 당찬 포부에 케빈은 또 웃었다.
잘 웃지 않는 성격의 케빈이었으나 시우 앞에서만큼은 자주 웃게 됐다.
차는 TVM 사옥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TVM 스튜디오에서 우선 세 명의 톱스타들을 모아 놓고, 새로운 예능 [신세계>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우와 준영, 승현은 각자 집에서 챙겨 온 어린 시절 사진들을 김정수 PD에게 건넨 뒤 뉴 VR 머신을 머리에 쓰고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시우와 준영은 익숙하게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고, 평소 게임을 하지 않는 승현은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계정을 생성했다.
계정 생성을 마치자, 본격적으로 영상 녹화가 이뤄졌다.
녹화는 1인칭과 3인칭으로 동시에 진행이 됐다.
– 윤시우 군~ 들려요?
“네. 들려요.”
– 준비됐어요?
김정수 PD의 목소리였다.
“승현이 형 준비됐으면, 저랑 준영이 형은 자동 OK죠.”
– 하하. 그럼 가 볼까요? 레디~ 액션!
익숙한 외침과 함께 시우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3. 2. 1.] [START!]자신의 계정 정보가 사라지고, 화면이 어두워졌다.
VR 머신을 쓴 시우는 편안하게 몸에 힘을 뺐다.
스튜디오 촬영이나 세트장 촬영이 아닌, VR 세상에서의 촬영-
영화 촬영과 영화 관람의 패러다임이 바뀔지도 모르는, 그 신세계로 시우가 몸을 던졌다.
파앗!
[‘베이비 오브 레전드’ 입장을 환영합니다!] [외모를 ‘사실모드’로 설정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시작하세요!]시우는 몸을 일으켰다.
앙증맞은 작은 손과 오동통한 팔이 보였다.
무거운 머리를 위로 들자, 광활한 녹색 초원이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와, 언제 봐도 리얼하다. 그나저나…… 형들은 어딨지?’
시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과 조금 떨어진 초원 한가운데, 하얀 티셔츠와 기저귀만 걸치고 있는 두 아기가 있었다.
시우가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아부부-!! 빠아아!”
시우는 당황했다.
말이 안 나온다.
시우는 놀라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직 어려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튜토리얼 미션 : 통신기 ‘쪽쪽이’를 찾으세요. 쪽쪽이를 입에 장착하면 대화가 가능해집니다.]튜토리얼 미션을 받은 시우는 일단 형들에게 갔다.
아장아장-
걸음이 느렸다.
아기 준영과 아기 승현이 걸어오는 시우를 발견했다.
준영은 신이 나서 초원 위를 굴렀고, 승현은 처음 해 보는 VR 세상에 놀라 얼어붙은 채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부?”
오밀조밀 귀여운 입술 사이로 침이 뚜욱 떨어져 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