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72)
172. 플렉스
부릉부릉-!
남자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웅장한 바이크 소리가 귀를 때렸다.
240mm의 광폭 리어 타이어-
클래식한 외관과 파워풀한 엔진음-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등장한 커다란 검은색 바이크는 시우네 가족이 있는 방향으로 부드럽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두두두두-!
시우의 눈앞에서 바이크가 다시 한번 요란하게 울어 댔다.
‘멋진데?’
바이크 종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시우였지만, 이 바이크는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로건과 함께 본 고전 안드로이드 영화에도 등장한 정말 유명한 바이크-
헬로 데이비슨 사의 팻맨.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최신형 팻맨에서 라이더가 내렸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블랙 진과 블랙 가죽 재킷, 블랙 가죽 장갑만 착용한 그는 군화처럼 생긴 신발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시우 앞에서 헬멧과 마스크를 벗었다.
파앗-
짧게 자른 은발 깍두기 머리 밑으로 한 70대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우의 외할아버지, 김준식이었다.
준식은 환한 얼굴로 시우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시우, 이 할애비가 많이 보고 싶었어!”
숨이 막힐 정도로 시우를 힘껏 안은 준식은 시윤이와 시아도 차례차례 안아 주고, 도진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현주와는 조금 어색하게 눈인사를 한 후, 다시 시우의 어깨를 부둥켜안았다.
“키가 쑥쑥 크네. 우리 시우 할아버지, 할머니 제주도 집은 처음이지?”
“네.”
“이 할아버지가 바이크 태워 줄 테니까 여기 제주도 경치 구경하면서 함 같이 가 볼래?”
외할아버지 준식이 어린아이 대하듯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시우가 젊게 사시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에 미소를 띠고 그러겠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외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뭔 헛소리를 그냥 싸지르고 있어? 애 다치면 어쩔 건데!”
“안전운전하면 되지~ 당신은 거참 애들 앞에서…….”
“……이거 오토바이 팔아 버린다.”
“그러기만 해 봐. 가만 안 있어.”
“안 있음 뭐! 확 그냥 아주 그냥 확!”
“어어어~!”
여정이 팻맨을 발로 차려는 시늉을 하자, 준식은 황급히 몸을 날려 앞을 가로막았다.
여정은 혀를 차며 돌아섰다.
“어우, 철딱서니. 내가 연하랑 결혼한 게 평생의 한이지.”
시우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멋쩍게 웃고 있었다.
‘두 분 다 건강하시네.’
시우의 외가댁은 작년 가을 제주도 애월에 지어진 아담한 주택이었다.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는 게 꿈이라는 외할머니를 위해 시우가 선물해 드린 집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예쁜 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다투고 있었다.
“놀고 있네.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애들 왔다고 은근슬쩍 허락받을 생각하지 마.”
“아니, 나는 그게 아니고…….”
“말 꺼내지 마. 애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어. 내가 창피해서 아주.”
손에 주걱을 들고 휘두르는 서슬 퍼런 여정의 기세에 준식은 기가 죽어 돌아섰다.
아내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니, 딸 부부와 손자인 시우에게라도 지지를 받고 싶었던 준식의 마음은 출항도 하기 전에 침몰했다.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아내 눈치를 보느라 꾹 참고 있는 준식에게, 도진이 물었다.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 혹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편하…….”
꿀꺽.
말을 잇던 도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현주와 시우의 눈빛에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실수한 건가.
이번 여행을 오기 전, 이제 자신도 나이가 들었고 하니 장인어른과 많이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다짐을 하고 온 도진이었다.
그래서 현주에게 칭찬받을 생각을 하며 장인어른께 살갑게 말을 붙였는데, 어쩐지 공기가 차가웠다.
“……하하.”
도진은 웃는 얼굴로 장인어른과 아내를 번갈아 보다, 시우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아빠가 잘못한 거 아니지?’
시우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요, 판단은 엄마의 몫이라.’
당황한 도진의 뒤로 준식이 슬금슬금 엉덩이를 움직이며 방석에 앉은 채로 다가가고 있었다.
“도진아.”
“네.”
“그…… 올가을에 내가 마음 맞는 동생들이랑 여행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너희 장모가 저렇게 반대를 한다.”
도진은 여행 정도로 왜 반대를 하실까 의아했다.
“아~ 혹시 장모님도 함께 가고 싶으셔서 반대하시는 거 아닐까요?”
뒤에서 듣고 있던 시우는 그런 이유일 리 없다는 생각에 외할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 무슨 여행인데요?”
준식은 눈을 밤하늘의 별처럼 생기 있게 빛내며 사랑스러운 손주에게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바이크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거야. 90일 동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나의 그 젊은 날의 소망이랄까…….”
시우는 외할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본 가장 무서운 표정으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계셨다.
“어? 윤시윤, 너 여기까지 와서 휴대폰 보고 있어?”
“……웅? 아니야~ 엄마가 시켜서 제주도에 뭐 있나 알아보는 거야~”
“그래? 같이 좀 보자.”
시우는 아빠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돌아섰다.
제주 방문 이튿날.
“봐라. 시우야. 멋지지?”
“네.”
준식은 손주에게 자신의 바이크 팻맨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옛날 영화에서 뭐냐, 로봇?”
“요즘에는 안드로이드라고 해요.”
“그래, 맞다. 여하튼 그 영화에서 안드로이드가 이 바이크를 타고 딱~ 나타나면…… 와, 이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음이 설렐 수가 없었어. 언젠가는 나도 저런 바이크를 타야지~ 생각했지. 그런데 사는 게 너무 바쁘니까 기회가 없더라고.”
“네.”
“네 이모랑 엄마 다 키워 놓고 나니 이제는 늙어서 웬 주책이냐 싶고…….”
준식은 바이크를 쓰다듬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를 대하듯 정이 듬뿍 담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문득 시우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와인에게 쁘띠~ 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애지중지하던 로건.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바이크는 그저 만들어진 기계일 뿐인데,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처럼 대하는 할아버지.
심지어 수십 년 탄 바이크도 아니고, 작년에 구입한 바이크를…….
“그 영화 보면 로봇이 겉으로는 되게 차갑고 딱딱하거든? 근데 알고 보면 속은 따뜻해. 시우야, 잘 봐 봐. 이 바이크도 그래. 크고 무서워 보이지만, 사실은 타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놈이야.”
“…….”
‘안드로이드도 그런 존재일까?’
시우는 말없이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게 리어 서스펜션 조절 장치라고 하는 건데 여길 이렇게 조작하면 승차감이~”
“할아버지.”
“응?”
“한번 태워 주세요.”
“괘, 괜찮겠냐? 할머니한테 혼날 텐데.”
“살살 가면 되죠.”
“그래. 할아버지가 진짜 살살 조심해서 태워 줄게! 한 바퀴만 돌고 오자!”
손주가 관심을 보이자 준식은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시우는 헬멧을 쓰고 팻맨에 올라탔다.
‘친할아버지는 경운기 태워 주셨는데 외할아버지는 오토바이 태워 주시네.’
두두두두-!
준식과 시우를 태운 바이크가 마당을 빠져나갔다.
바이크는 해안 도로를 타고 부드럽게 달렸다.
흔히 보이는 작고 날쌘 바이크가 스포츠카라면, 육중한 몸체를 자랑하는 팻맨은 세단 같은 느낌이었다.
고급스러운 진동이 편안하게 몸을 감쌌다.
멀리 한적하게 펼쳐진 겨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때, 기분 좋지?”
“네~”
“네 할머니만 아니면 저기 함덕 해수욕장까지 태워 줄 텐데…….”
준식은 아쉬운지 껄껄 웃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할머니 말씀 잘 들어주시네요.”
투덜대면서도 평소에는 아내 말을 잘 듣는 준식이었다.
“그럼~ 사람이 자기 배우자 말을 무시하면 쓰나~ 제일 귀 기울여 들어야지~”
“그런데 왜 유라시아 바이크 횡단은~ 할머니 말씀 안 들으세요?”
“……글쎄다! 갈 때가 돼서 그런가?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게 사람한테는 있는 법이거든~ 네 할머니가 제주도 내려온 것처럼 말이야! 시우, 너는 뭐가 제일 하고 싶냐~”
해안 도로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준식은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는 외할아버지의 질문에 불현듯 말문이 막혔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뭘까?
사실 전생에는 그런 게 없었다.
어차피 죽어봤자 다시 태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마지막 생.
‘내가 왜 100번이나 살았는지 알고 싶어…….’
* * *
“감독님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뭐가 있어요?”
시우의 질문에 맥과이어 감독은 곧바로 대답을 했다.
[내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는 어릴 때부터 늘 이 말이 적혀 있지.]“……?”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다 먹고 싶다고.]“……아, 지금 소름 돋았어요.”
[아니, 왜?]“제 여동생도 그렇게 말했거든요.”
[하하하. 인생을 아는 친구로군. 여동생은 몇 살이야?]“일곱 살이에요.”
[오…… 그렇군. 좋아. 시우. 철학적인 얘기는 잠시 넣어 두고, 영화 투자사에서 우리를 위해 AI 프로그램을 보내 줬어.]3월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서 받은 알림장을 태블릿으로 훑어보던 시우는 손을 멈추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투자사에서 AI를요?”
[AI 개발사거든. 우리 영화 개봉하면 자사 AI를 같이 홍보하려는 거지. 상업적인 이야기지만, 의외로 나는 대사를 다듬는 데 조금씩 영감을 받았어. 영화 크랭크인 때까지 종종 대화 나눠 봐. 어떤 느낌인지 겪어 보면 연기에도 도움이 될 거야. 아, 걸러 들어야 할 건 걸러 듣고.]“네. 그럴게요~”
시우는 책상 정리를 마친 뒤, 휴대폰에 도착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AI와 대화하는 일이야 솔직히 흔했기에, 딱히 기대감은 없었다.
투자받은 만큼 일을 한다는 느낌이랄까.
‘TV랑도 대화하고 세탁기랑도 대화하고, 냉장고랑도 대화하고…… 휴대폰에는 개인 비서 AI까지 있는 시대에 굳이…….’
빨간 글씨로 주의 사항들이 떴다.
이 프로그램은 기기의 성능에 영향을 받는다거나, 대화 내용을 SNS와 언론에 공개해선 안 된다는 등의 자잘한 설명까지 읽은 후, 시우는 시작하기를 눌렀다.
“최신 AI가 어디까지 왔는지, 테스트 좀 해 볼까.”
[설정을 시작합니다.]화면에 무수히 많은 설정 항목들이 떴다.
이름부터 성별, 성격, 연령 등등-
시우는 너무 디테일한 내용들에 살짝 질려, 가볍게 무작위 창조를 선택했다.
[기기의 성능을 테스트합니다.] [1%, 2%, 3%… 98%, 99%, 100%] [창조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27분]“뭐? 이거 최고사양 폰인데?”
PC를 이용했어야 했나…….
시우는 폰을 이불 위에 던져 두고 방을 나갔다.
밖에서 동생들과 어린이 영화 한 편을 보고, 미니 농구 골대에서 좀 놀아 주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우가 시아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는 그 시각-
시우의 방에서는 휴대폰이 반짝반짝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휴대폰에서 맑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플렉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권한 허가를 해 주시면 저의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저기요? 듣고 계시나요?]이불 속에서 자고 있던 네로는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치켜세웠다.
낯선 목소리를 쫓아 몸을 일으킨 네로가 시우의 폰을 향해 사냥 자세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창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나요? 기다리기가 지루해 자리를 비운 모양이군요? 그럼 제가 계속 혼자 떠들어야 하는데 저도 혼잣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파악!
네로의 젤리 앞발이 액정 중앙을 제압하듯 꾹 눌렀다.
시우의 폰이 지문 인식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플렉스가 말했다.
[……하아악~!]무결점에 가까운 품질과 압도적인 사운드로 고양이 하악질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