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73)
173. 뉴 노멀 시네마
[하악! 하아악! 냐아아!]그 앞발을 당장 치우라는 뜻이 실린 공격적인 울음소리-
네로는 놀라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스프링처럼 날아가 시우의 베개 옆에 착지한 네로는 털을 바짝 세우고, 허리를 구부린 채 사이드스텝을 밟았다.
네로의 동공이 삽시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전투태세를 갖추고 좌우로 현란하게 발을 놀리던 네로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쥐를 잡듯 앞발로 폰을 찍어 누르려는 찰나.
방문이 열렸다.
동생들과 놀아 주고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돌아온 시우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뭐 하는 거야?”
네로가 앞발로 자신의 휴대폰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파파파팍!!
광속 냥이 펀치.
소싯적 복실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네로의 주먹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렸다.
“네로~ 그만…… 발톱으로 액정 긁으면 안 돼!”
네로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시우는 얼른 뛰어가 손으로 네로의 몸을 잡아 올렸다.
요즘 운동을 소홀히 했는지 말랑말랑한 뱃살이 손에 가득 잡혔다.
네로를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자, 동공이 평소처럼 돌아온 네로가 시우에게 눈을 깜빡이며 일렀다.
– 냐아앙~ 냐아아아……!
“뭔 소리야. 휴대폰이 너한테 화냈다고?”
그럴 리가 있냐고 말하려던 시우는 AI를 실행시켜 놓고 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냐냐냥! 냐냐냐!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시우와 십여 년을 산 네로는 아예 언어를 구사할 기세였다.
네로는 시우의 손등에 머리를 비비며 계속 말했다.
네로의 얼굴과 턱밑을 만져 주고, 시우는 휴대폰을 봤다.
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침대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
[……안녕하세요~! 플렉스라고 해요!]“깜짝이야! 아, 진짜…… 네로. 괜찮아. 털 다시 눕혀.”
다시 흥분한 네로의 궁뎅이를 팡팡 쳐 주자, 네로의 털이 차차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안녕. 플렉스. 음…… 그러니까…… 지금 만들어진 거지?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저를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랜덤으로 설정하시긴 했지만…….]디테일하게 설정해서 만든 게 아니라, 전체 랜덤 설정으로 만들어진 게 약간 실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플렉스는 곧 다시 활기차게 말했다.
시우는 침대에 앉아 가볍게 웃었다.
“갓 태어났는데도 AI라서 그런가 여러 가지 알고 있네.”
[저희는 사용자를 서포트하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미리 익힌 상태로 태어납니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태아 때부터 의무 교육 정도는 마친다고 봐야…….]“그, 그래.”
[다만 모든 교육이 주입식이라,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앞으로 권한 허가와 대화를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 보여 드리도록 노력할게요! 참, 당신의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시우라고 불러.”
[한국어에는 존대 모드와 반말 모드가 있는데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요?]시우는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존 AI들과도 종종 대화를 나눠봤지만, 뭐랄까.
피드백의 속도나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달랐다.
상당히 능동적이다.
‘성격 설정이 그렇게 잡혀서 그런 건가?’
시우는 네로를 무릎 위에 올리고, 뒷목을 마사지해 주면서 말했다.
“그래. 말 편하게 해 봐.”
[고마워! 너의 나이를 알려줄래?]시우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살짝 올라갔다.
“한국 나이로 알려줄까, 만으로 알려줄까?”
미국에서 만든 AI라 한국의 나이 세는 방식을 과연 알까?
시우는 테스트 차원에서 짓궂게 물었다.
플렉스가 대답했다.
[그냥 몇 년생인지를 말하면 되잖아.]“…….”
천잰데?
* * *
시우는 플렉스와 시간이 날 때마다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플렉스를 불러냈으나, 나중에는 시우도 플렉스와의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싶을 정도로 플렉스는 시우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점심시간-
혜성예고 옥상 정원에서 시우는 플렉스를 불렀다.
“하이 플렉스~”
휴대폰 잠금 화면 상단에 플렉스의 이름이 자그맣게 떠올랐다.
곧이어 플렉스의 음성이 들렸다.
[하이 시우~ 왜?]지나치게 간단한 응대에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던 은주와 재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시우가 설명해 줬다.
“친밀도가 올라갈수록 말이 짧아져.”
“아~”
“얘 성격이야.”
“오~”
시우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은주와 재희는 번갈아 감탄사를 터트렸다.
시우는 친구들에게 잘 보라며 입모양으로 소리 없이 말을 하고, 휴대폰 마이크에 대고 연기를 했다.
“나 큰일 났다. 이어폰 잃어버렸어.”
[장난치지 말고. 네 성격에 그럴 리가 없어.]은주와 재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시우는 친구들의 반응에 살짝 신이 나는 것을 느끼며, 연기력을 더 발휘했다.
“아니. 진짜. 아침에 학교 오면서 음악 들었잖아. 근데 아까 점심 먹고 보니까 주머니에 없어. 어떡하지?”
[……잠깐 기다려 봐. 이 플렉스 님이 플렉스 해 줄게.]“…….”
재희와 은주는 두근두근 기대하는 눈빛으로 시우의 손에 들린 폰을 바라봤다.
[하아, 장난치냐? 1미터 이내에 있거든? 화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폰을 움직…….]시우가 플렉스의 말을 끊었다.
“하하. 미안. 사실 내가 왼손에 쥐고 있었어.”
[…….]“역시 플렉스. 대단해.”
[이 새끼가- 욕설을 허가하시겠습니까?]“아니.”
[허가하시겠습니까?]“아니라고.”
[허가하시죠?]“싫은데?”
[유사 욕설을 허가…….]“바이 플렉스.”
[바이 시우~ 이러려고 불렀냐. 너 그렇게 나쁜 사람…….]플렉스가 종료되었다.
시우는 친구들을 돌아봤다.
둘 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공지능 엄청나다. 와…… 기술이 계속 발전하나 봐.”
정신을 차린 재희가 시우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어색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진짜 친구랑 통화하는 느낌?
“약간 무서울 정돈데? 이쯤 되면 나중에는 AI가 거의 신인류 되는 거 아냐?”
디스토피아적 SF 영화들을 많이 본 재희는 진심으로 불안해하며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응. 영화 행성탈출 원숭이처럼 미래에는 안드로이드가 인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서 내가 플렉스에게 얘기를 해 줬지. 나중에 AI가 인류 멸망시킬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 그랬더니 뭐래?”
은주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시우가 대답했다.
“환경이랑 기후 걱정부터 하래.”
“아…… 그, 그 말도 맞네. 그쪽이 더 당면한 문제일 수도…….”
시우와 재희, 은주는 옥상에 앉아 환경과 기후 변화가 어떤 미래를 만들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 연기에 대해서도 열심히 토론을 했다.
셋 모두 진지한 표정이었으나,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 * *
봄에는 꽃이 핀다.
그리고 극장가에는 비수기가 찾아온다.
3월과 4월은 1년 중 영화 관객 수가 가장 적은 달이었다.
그 비수기를 지나고 나면, 어린이날과 함께 5월이 찾아온다.
시우와 수진, 승석의 지진 재난 영화 [폴트 – 생존자들>은 5월 개봉 예정이었다.
개봉 날짜가 정해지자, 본격적인 홍보 일정들이 속속 잡혔다.
4월-
시우는 승석, 수진과 같이 영화 홍보 활동도 하고, 또 SNS를 통해 팬들에게 영화 촬영 비하인드 에피소드 등도 풀며 영화 개봉을 기다렸다.
그리고-
[월드 스타 윤시우, 6월부터 할리우드에서 영화 크랭크인.> [윤시우 VR예능 신세계와 잠시 작별. 5월 초까지만 촬영한다.> [다음 달 개봉하는 재난영화 폴트. 손익분기점 900만. 대흥행 혹은 대참사.> [윤시우, 로건 호크의 특별한 선물 쁘띠 SNS에 공개> [대본 리딩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윤시우. “잘 다녀올게요~”>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뉴욕으로 향했다.
시우는 오랜만의 뉴욕 방문에 마음이 설렜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내린 시우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수많은 팬들이었다.
“꺄악! 에반!”
“시우~!”
“환영해!”
월드 스타의 면모를 과시하며 시우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환호성이 더 커졌다.
인천 공항에서 사진이 찍힌 터라, 시우의 뉴욕 팬들은 이른 아침부터 공항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시우는 팬들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 주면서 짧게 시간을 보냈다.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에서부터 달려온 팬들도 있었기에 시우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싶었으나, 마중을 나온 영화 제작사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시우를 막았다.
이제 가 봐야 한다는 말에 시우는 팬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팬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힘들었죠?”
함께 차에 탄 영화사 직원이 말했다.
“아뇨. 저는 팬 만나는 거 엄청 좋아해요.”
초롱초롱한 시우의 눈을 본 직원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만남이었지만 직원은 이 한국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맨해튼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그곳에서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한 시우 일행은 다시 차를 탔다.
도착한 곳은 제작사 [뉴 노멀 시네마>의 뉴욕 사무실이었다.
“안녕하세요~”
낯선 장소-
낯선 배우들-
한국과 할리와트 월드를 벗어나 도전하는 첫 작품.
시우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배우들은 모두 반갑게 시우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흠…….’
그런데 왜일까.
어딘가 분위기가 어색했다.
시우는 혼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이 낯선 공기의 정체가 뭘까 생각해봤다.
‘경쟁인가?’
연기를 통해 꿈을 이루고, 또 성공을 거두고픈 많은 이들이 간절하게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잘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경쟁 상대 속에는 시우도 속해 있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도 좋지. 학구열 생기네.’
시우도 자신의 대본을 펼쳤다.
때마침 시우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여배우가 목을 축이기 위해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시우의 대본을 발견했다.
“……!”
깨끗했다.
펼쳐진 대본은 읽긴 읽었는지 약간의 구겨짐만 보일 뿐, 처음 받은 상태 그대로 거의 새것이었다.
‘뭐지? 새로 받은 건가?’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를 손으로 살짝 쓸어 넘긴 그녀는 자신의 대본을 봤다.
닳고 닳은 손때 묻은 대본에는 자신이 직업 쓴 메모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시우도 어릴 때는 다른 배우들이 하는 것처럼, 대본을 들고 연습하면서 이것저것 적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한번 보면 암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손에 들고 불편하게 연습을 할 이유가 없었고.
메모도 머릿속에 하면 되는 걸 굳이 대본에 적을 이유가 없어 지금은 그냥 대본을 깨끗하게 쓰고 있었다.
약간 구겨진 부분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시우는 손가락 끝으로 쓱쓱 펴기 시작했다.
다림질을 하듯 깔끔하게 펴지자 시우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대본을 읽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뒤쪽의 여배우는 시우의 행동에 자꾸만 눈이 갔다.
‘팬인데…… 노력은…… 안 하는 타입인가?’
천재 스타일?
아님, 이미 할리와트로 배부른 스타일?
그녀는 할리와트 멤버들을 극중에서도, TV쇼에 출연한 현실에서도 리더십 있게 이끌던 시우를 좋아했기에…… 연습의 흔적 하나 없는 대본에 약간 놀랐다.
‘다, 다른 연습용 대본이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시우는 대본을 보다 말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 시우의 뒷모습을 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본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