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74)
174. 반값
위잉-
시우의 휴대폰이 울었다.
시우가 화면을 확인하자, 로건 호크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주차장 들어가는 중.] [네. 빨리 와요.] [OK. 배우들 음료 선물하려고 예약했는데, 매장에서 음료가 좀 늦게 나왔어. 다 같이 들고 올라가려고.] [많아요? 도와줄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본을 챙기고 가방을 어깨에 메려는 순간, 뒷자리에 앉은 여배우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어수선하게 흘러내린 적갈색 머리와 호기심 가득한 에메랄드빛 눈동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젊은 여배우였다.
‘에이미 우드였나?’
모델 출신 배우라고 들었다.
미국 드라마의 몇몇 에피소드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연기력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모델 출신 배우라고 하면, 역시 바다아이 파워모드였던 지석이 형이 떠오르네.’
준비되지 않은 발연기 페스티벌로 바다아이 초반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고생시킨, 임지석.
바다아이를 찍을 당시, 자기가 연기로 밥이나 먹고 살지 걱정하던 지석은 현재 연기력도 받쳐 주는 톱스타로 성장해 영화와 드라마를 활발히 오가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꿈을 이뤘다.
그리고 그 꿈의 시작점으로 인터뷰에서 항상 바다아이를 언급하며, 유치원생 시우가 자기를 업어 키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시우는 익숙하지 않은 연기에 매일 불안해하던 지석이 오버랩되어 살짝 웃는 얼굴로 에이미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에이미는 시우의 미소에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뒤늦게 같이 인사를 했다.
주연 배우인 로건이 사온 음료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자, 맥과이어 감독과 조감독이 들어왔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리딩이 시작됐다.
리딩은 감독이 뽑아온 씬을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이었다.
그 후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씬 분석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맥과이어 감독은 콘티와 대사를 배우의 연기 스타일에 맞게 수정할 생각이었다.
“씬 7 해 볼까요?”
몇몇 조연 배우들이 빠르게 몰입했다.
리딩 현장의 유일한 아역 배우인 갈색 머리 남자아이가 긴장된 분위기 속에 큰 소리로 대사를 쳤다.
“우와! 엄마, 나 저거! 저거 살래!”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리딩실 허공을 가리켰다.
소년의 근처에 앉아 있던 중년 여배우가 대사를 받았다.
“윌, 조용히 있어. 육아 로봇을 찾고 있어요. 음, 저렴한 모델로 보여 주세요.”
“엄마 나는 저게 좋아! 제임스가 쓰는 안드로이드야! 얼마 전에 퀸시에서 나온…….”
시우는 로건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그 소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아역 출신이기 때문인지, 아역 연기자들에게는 한없이 마음이 열린다.
아이가 제법 실감나게 연기를 하자 시우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쉿! 한마디만 더 하면 당장 나갈 거야.”
“치…….”
“하아, 좀 더 싼 건 없나요?”
조감독이 매장 직원의 대사를 읽어 주었다.
“그러시다면 육아 전문 안드로이드는 아니지만, 육아 기능이 들어가 있는 범용 안드로이드 기기는 어떠세요? 구형이긴 하지만 출시된 지 3년 밖에 안 됐고,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잘된 괜찮은 모델입니다.”
여배우는 대답을 할 듯 말 듯, 구형이라는 말에 잠시 망설이는 표현을 한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랑 가격 차이가 많이 나나요?”
“반값입니다.”
“한번 보여 주세요.”
듣고 있던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타고 혼자 내적 대사를 뱉어 봤다.
‘나는 반값에 팔리고 있어.’
“다음은 씬 13 가 볼까요. 등장인물들 준비하세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시우의 차례가 왔다.
대본을 확인한 배우들은 모두 시우에게 집중했다.
로건 호크와 더불어 전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한국의 배우, 시우 윤!
할리와트에 함께 출연했던 니콜라스 넬슨과 루시 라일리가 굵직한 영화의 주연으로 들어간 것과 다르게, 시우는 이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안타까움과 기대가 뒤섞인 동료 배우들의 시선 속에 시우는 묵묵히 연기를 준비했다.
‘잘하자. 집중!’
여러 모로 많은 영감을 준 무알콜 와인 쁘띠와 외할아버지의 바이크 팻맨, 주머니 속의 시끄러운 친구 플렉스를 위해서라도…….
시우는 안드로이드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안드로이드가 되고 싶었다.
머리를 대본에 박고, 중얼중얼 대사를 혼자 읊어 본 시우는 이내 다시 얼굴을 들었다.
곁눈질로 시우를 보고 있던 배우들은 거짓말처럼 싹 변한 시우의 표정에 순간 흠칫 놀랐다.
사람…….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뒤편에 앉은 에이미는 배우들의 얼굴에 떠오른 놀란 감정을 읽고, 시우를 봤다.
‘뭐지? 뭐야?’
대사를 친 것도 아니고, 얼굴만 들었을 뿐인데 왜 다들 놀라는 거야?
에이미는 의자에 앉은 몸을 이리저리 틀어 가며 시우의 옆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애썼으나, 온리 뒤통수만 보였다.
‘……뭐냐고! 나도 보고 싶어!’
그때, 시우의 입에서 마치 무손실 음원 같은 잔잔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물결치듯 흘러나왔다.
* * *
[폴트 – 생존자들, 개봉 첫날 150만 관객 동원! 신기록!> [첫날부터 터졌다! 폴트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달성 가능성은?> [흥행머신 최민철 감독, 은퇴작에서 커리어 하이 찍을까> [최민철 감독 “윤시우의 연기에는 한계가 없다.” 재난 현장의 국민 아들내미로 돌아온 월드 스타 윤시우>“귀여운 외모에 밝은 미소…… 좋으냐?”
“아니. 좋긴 뭐가 좋아. 그냥 하는 말인 거 다 알아.”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니거든? 형은 왜 맨날 나 몰아가? 그리고 귀엽다는 말 좋아할 나이도 지났거든?”
“진짜 안 좋아? 귀여운 외모에 밝은 미소.”
“……히이~”
기사를 보며 형과 티격태격하던 시윤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시우는 그럼 그렇지 하고, 시윤의 엉덩이를 발로 가볍게 쳤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여학생들의 선물 공세에 자기가 형을 닮아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걸 자각하게 된 시윤은 외모 칭찬 기사를 보고 부끄럽지만 신이 났다.
시윤은 민망한지 두 팔을 파닥대며 촐싹거렸다.
“먼지 나니까 앉아.”
“내 방에 공기청정기 있어서 먼지 없거든~”
“그게 아니라 형 덕분에 먼지가 없는 거거든~”
“……형이랑 무슨 상관이야?”
“넌 몰라도 돼. 애들은 굳이 알 필요 없는 이 세상의 신비하고 무서운 초자연적인 그런 게 있어.”
“뭐래. 아, 맞다. 나 형한테 상담할 거 있어.”
기사를 보여주려고 동생 방에 잠깐 들른 시우가 떠나려는 찰나, 시윤이 뜬금없이 상담 요청을 해 왔다.
생전 안하던 짓이라 시우는 의아해하면서 시윤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또 헛소리를 하려는 건…….
시우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후, 방문에 기댄 채로 말했다.
“뭔데. 형 약속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돼. 긴 얘기면 저녁 때 듣자.”
시윤은 침대에 걸터앉아 푹신푹신한 자신의 리키 마우스 베개를 꼭 끌어안았다.
품에 안은 베개 위로 얼굴을 걸친 시윤이 아직 초등학생 티가 많이 나는 앳된 얼굴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럼 요점만 딱 듣고 나가~ 나도 그게 좋아.”
“그래.”
시우는 얼른 말해보라고 손짓을 했다.
시윤은 입술을 오물거리다 베개를 힘껏 안으면서 말했다.
“……내가 중학생이 됐잖아.”
“응.”
“그래서 이대로 놀기만 하면 안 될 거 같고…… 형 열심히 일하는 거 보니까…… 나도 뭔가 해 보고 싶고…….”
“응.”
“그러니까 뭐냐면…… 나한테 꿈이 생겼어!”
시윤이의 꿈?
평소 게임 공략과 장비 조합 같은 것만 물어보던 시윤이가 꿈을 이야기하자, 시우의 눈동자에 깊은 관심이 스쳤다.
“알았어. 뭔데.”
“같은 반 친구 아빠가…… 체육관 관장님이시거든?”
“……응.”
“애들이랑 놀러갔는데 너무 멋있는 거야! 그래서…….”
“…….”
“나 종합 격투기 선수 하면 안 될까?”
중학교 1학년.
그렇게 어리진 않지만, 본인 생각만큼 다 큰 건 절대 아닌 나이.
친구네 격투기 체육관 놀러갔다 온 동생이 “우와~ 멋있다~”하고 격투기 선수 될래! 외치면 “그래! 형이 응원할게!”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형이 몇이나 될까.
시우도 그랬다.
“너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
“뭐? 격투기 선수가 되느냐, 못 되느냐?”
“귀에서 진물이 날 때까지 잔소리를 듣는 거랑-”
“헉!”
“아니면…….”
“아, 아니면?”
“귀에서 진물이 나기 직전까지 잔소리를 듣는 거.”
“……엄마~!”
형의 잔소리를 피해 방 탈출을 시도하는 시윤에게 시우가 말했다.
“싫으면 다른 꿈 찾아봐라.”
시우는 도망가는 시윤이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팡팡팡 때려 주면서 계속 쫓아가다,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아, 내 영화 내가 직접 영화관에서 보는 거 좀 쑥스럽던데.’
황사 마스크를 쓴 시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 앞을 서성였다.
‘그래도 정태 부탁이니까 같이 가야지.’
빵~!
클랙슨 소리가 울렸다.
플렉스와 서로 방해해 가며 폰으로 블록 쌓기 게임을 하던 시우는 고개를 들었다.
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고, 안에서 뽀글이 파마를 한 중년 여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정태 엄마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네.”
“미국 다녀왔다며?”
“저번 달에요.”
“그래. 고생했겠다. 얼른 타.”
시우는 조수석에 앉아 정태와도 인사를 했다.
정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엄마에게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시우와 정태, 정태 엄마가 탄 차는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관으로 가는 동안 정태 엄마는 아들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들이 나온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시우랑 영화를 다 보러 가네~ 정태랑도 어릴 때 이후로 이렇게 영화 보러 나온 적 없었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하하.”
시우는 계속 대답을 이어 가기가 힘들어 웃음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호호. 아유, 영화 개봉하자마자 대박 터졌더라. 축하해. 시우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수진 씨는 늙질 않네. 평생 예뻐. 부럽다. 그나저나 우리 정태도 옛날에 이수진 씨랑 영화 했었는데 우리 정태 이름 기억이나 하시려나 모르겠다~”
“왜요, 당연히 기억하시죠.”
“그럴까? 그럼 고맙고…… 우리 정태도 시우처럼 이렇게 다 컸는데…….”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정태 엄마였다.
시우는 청소할 때 쓰는 냄새 제거 마법으로 정태 엄마의 향수 냄새를 은밀하게 쓱쓱 지워 내면서, 도착할 때까지 정태 엄마의 말상대가 되어 주었다.
영화관에 도착한 세 사람은 곧장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와, 우리 아들이랑 시우 덕분에 영화관 진짜 오랜만에 온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직전, 정태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잠깐 화장실.”
“그래. 다녀와라. 엄마랑 시우는 여기서 기다릴게.”
“아니 잠깐, 시우도 같이…….”
“……응? 남자애들도 화장실 같이 가니?”
“하하, 우리가 워낙 친하잖아!”
정태는 시우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정태가 시우를 바라봤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태의 어깨에 시우가 손을 올렸다.
“형, 진정해. 왜 그래.”
시우는 정태에게 심호흡을 시켰다.
시우의 도움으로 조금 진정한 정태는 말없이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다 속내를 털어놓았다.
“시우야. 나…… 연기 잘한 거 맞아?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
“왜 실망을 해? 한 장면이긴 해도 임팩트 있게 잘 나왔잖아.”
“아니…… 나는…… 항상 엄마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이었으니까…….”
욱신-
말을 꺼낸 정태도, 듣는 시우도 마음이 아파졌다.
시우는 동생처럼 구는 것을 멈추고,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하는 정태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정태가 듣고 싶어 하는…….
아니, 들어야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형이 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왔을 뿐이야. 형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형이야.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가져.”
정태는 시우의 말에 차츰 마음이 놓여 왔다.
그래.
괜찮을 거야.
마음을 가다듬는 정태의 얼굴을 보며 시우는 정태가 여전히 엄마의 인정을 바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가자. 형. 영화 시작하겠다.”
“응.”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