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75)
175. 폴트 – 생존자들
마스크를 벗은 시우는 입안으로 팝콘을 집어넣었다.
요즘 극장가의 먹거리들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역시 구관이 명관이었다.
시우는 캐러멜 맛 팝콘 박스를 품에 안은 채 스크린을 바라봤다.
최근 마이튜브에서 유행인 한 펭귄 캐릭터가 등장해 관객들에게 비상구 위치를 알려줬다.
짧게 한숨을 내쉰 시우는 양옆을 한 차례씩 본 뒤 조용히 생각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어색한 영화 관람 아닐까.’
우 정태, 좌 정태 엄마.
어쩌다 보니 가운데 앉고 말았다.
‘영화나 빨리 시작해라.’
시우의 바람을 들었는지, 상영관이 스르륵 어두워졌다.
많은 재난 영화가 그렇듯, 도입부는 평화로운 현재의 상황을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아기 때는 귀여운 미소로 엔딩을 주로 장식하며 엔딩 베이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시우였으나, 최근에는 영화의 오프닝을 맡는 일이 잦았다.
깜깜하던 스크린이 사람의 눈 모양으로 깜빡였다.
진영이 학교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광경을, 1인칭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윽고 상체를 일으킨 진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방의 스크린부터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상영관 좌측 벽면과 우측 벽면의 스크린까지 환해졌다.
스크린에 감싸인 관객들은 마치 자신들이 학교에 교정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평화롭게 축구를 하며 뛰어놀고 있는 남학생들과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여학생들이 보였다.
평범한 일상-
카메라의 시점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주인공 진영이 등장했다.
진영은 졸린 얼굴로 소위 말하는 멍을 때리고 있었다.
시우의 바로 앞쪽에 앉은 여대생들이 서로의 어깨를 때리며 윤시우 귀엽다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우는 괜히 민망해져 팝콘만 열심히 공략했다.
한편, 스크린 속 진영은 벤치에서 일어나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이는 중이었다.
관객들이 뭘 하나 궁금해할 때, 진영이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영화의 첫 대사를 던졌다.
“아~ 다 녹았어……!”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시우의 메소드 연기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태 엄마와 정태도 웃고 있었다.
시우는 약간 흐뭇했다.
웃게 해 드리려고 일부러 더 세상 끝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는데, 통했다.
‘보람차군. 표정 연기에 영감을 준 시윤이에게 나중에 수제 초콜릿이나 만들어 줘야겠다.’
입체적인 영상과 관객들의 시야각 수평 180도, 수직 120도에 모두 자리하고 있는 스크린, 학교 교정으로 불어오는 세세한 바람 소리까지 잡아내 전달하는 압도적인 음향 등-
시우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극장에 천만 영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특히 판타지 영화나 이런 재난 영화는 확실히 집에서 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지진 장면 나오면 현장감 굉장하겠다.’
영화 속, 초반 장면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최민철 감독은 일상에 큰 분량을 할애하지 않았다.
굳이 보여 주지 않더라도 일상에 대한 상상은 관객들 각자의 머릿속에 전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담겨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잠시 후-
“짐꾼이야. 짐꾼. 평소에는 일한다고 봐주지도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불러.”
진영은 철없이 투덜대며 쇼핑몰로 향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게임하러 나가려는 찰나 기습적으로 날아온 엄마의 호출이 몹시 불만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영이 쇼핑몰에 도착하자 카메라가 쇼핑몰 전경을 한차례 비췄다.
대형 쇼핑몰 앞에는 작고 예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놀이터와 바닥 분수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바글바글한 주말 인파와 시원하게 솟구치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진영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왔어? 어디야?]꼭 바로 옆에서 실제로 통화를 하는 듯한 수진의 목소리가 상영관에 울려 퍼졌다.
입이 쭉 나온 진영이 퉁명스럽게 대사를 뱉었다.
“앞에 왔어. 장 다 봤어? 빨리 나와. 나 얼른 놀러 가야 돼.”
[또 놀아? 공부는 안 해?]“아~ 주말이잖아~”
[……학교가 주 5일이니까, 공부도 주 5일로 하는 거야? 대단하다 정말.]“비꼬지 말고! 나 그냥 간다!”
[일단 들어올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와서 골라.]“됐어. 밖에 있을 테니까 카트 끌고 올라와.”
[알았어~ 고마워. 아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진짜 최곤데…….]뚝-
전화를 끊은 진영은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그늘막 안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불어오는 바람 소리-
횡단보도 근처의 차 소리-
진영의 귀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관객들이 의식하지 못하게끔 차츰 볼륨을 줄이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음향 기기들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상영관 안에서 모든 소리들이 사라졌다.
관객들이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
고요함 속에-
비둘기 떼가 날아오르는 광경이 보이고, 뒤늦게 관객들의 귓가에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불길하게 달라붙었다.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손을 꽉 쥐었다.
오장이 옥죄는 느낌이었다.
해맑은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아이가 엄마를 돌아보며 외쳤다.
“엄마~ 비둘기가 많아!”
지척에서 들려온 소리에 진영이 잠시 고개를 든 그 순간-
상영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스크린 속에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듯, 관객들이 앉아 있는 상영관 바닥도 서서히 떨려 왔다.
정태는 입을 헤 벌리고 팔걸이를 붙잡았다.
무서웠다.
이건…… 너무 진짜 지진 같잖아!
정신이 없었다.
혼이 나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세상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쇼핑몰 밑으로 커다란 유리들이 떨어지는 광경-
안전한 곳을 찾아 무작정 달리는 사람들의 비명-
부모를 찾아 겁에 질린 얼굴로 두리번거리다 다른 어른들의 발에 치이는 아이들의 겁먹은 표정-
정신없이 교차하는 장면들과, 흔들리는 영상에 관객들은 넋을 빼앗겼다.
“안 돼!”
젊은 부부가 떨어지는 유리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의 몸을 감싼 부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위를 봤다.
두 배우의 시선을 따라 영상이 상영관 천장 스크린으로 이동했다.
관객들의 시선도 자엽스럽게 위를 향했다.
천장 스크린에는 이곳이 실내임을 잊게 만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늘 위에서 사람 몸체보다 큰 유리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꺄아아악-!!”
“으아악!!!”
“꺅-!!!”
영화 속 배우들의 비명과 관객들의 비명이 한데 뒤엉켰다.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한껏 몸을 움츠렸다.
유리가 떨어짐과 동시에 앉아 있는 좌석이 충격을 받은 듯이 쿵! 하고 크게 흔들렸고, 그 어떤 비명보다도 큰 날카로운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관객의 귀를 때렸다.
모든 스크린이 블랙아웃 되었다.
암흑-
상영관 내에서 한순간 빛이 사라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관객들을 뒤덮었다.
실제로는 몇 초에 불과하나 관객들에게는 몇 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관객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끼이익……!
차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게 느껴지던 작은 소리가 급격하게 볼륨을 키워 갔다.
끼이익-!!
시각을 잃은 상태에서 가까워지는 차 소리를 들은 관객들이 또다시 비명을 지르려 할 때, 서서히 스크린이 밝아졌다.
전방 스크린에 은색 SUV 한 대가 나타났다.
지진으로 도로가 푹 꺼지면서 통제력을 잃은 SUV가 무섭게 관객들에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관객들은 숨을 흡 멈췄다.
바로 그때,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가 싹 사라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상영관 전체를 거칠게 채웠다.
스크린에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엄마에게 비둘기가 많다고 외친 여자아이의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 속에 달려들고 있는 SUV가 비쳤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전방 스크린에는 놀라 굳어 버린 멍한 표정의 여자아이가-
우측 벽면 스크린에는 넘어진 아이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땅을 기어 오는 모습이-
좌측 벽면 스크린에는 진영이 땅을 박차고 여자아이에게 달려가는 광경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모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애끓는 심정으로 진영을 바라봤다.
차가 여자아이를 덮치려는 찰나, 관객들의 응원을 받으며 몸을 날린 진영의 손이 여자아이의 어깨에 닿았다.
순간 영상의 속도가 빨라졌다.
파앗!
간발의 차로 SUV를 피한 진영과 여자아이가 바닥을 굴렀다.
들이닥친 SUV는 소화전과 충돌했다.
소화전이 터지면서 물줄기가 사방으로 솟구쳐 올랐다.
안도한 정태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옆자리에 앉은 시우를 돌아봤다.
영화관에서는 조용히 하는 게 매너지만,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비명이 들려오는 상황이었기에 지금이라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시우야, 진짜 장난 아니…… 너는 왜…… 왜 놀라고 있어?”
다른 관객들처럼 놀라서 숨을 멈추고 있던 시우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도 사람이라…….”
최민철 감독의 은퇴를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 엄마가 뛰어왔다.
“괜찮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아~ 으아앙!”
아이 엄마는 진영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허겁지겁 아이를 부둥켜안았다.
놀란 아이는 엄마에게 안겨 서럽게 울었다.
죽다 살아났다는 생각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있던 진영은 엄마를 부르는 아이 울음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시우는 스크린 속에서 시선 처리와 얼굴 근육의 세밀한 움직임만으로 넋이 나간 눈동자에 천천히 초점이 돌아오고, 퍼뜩 정신을 차리는 연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관객들은 시우의 시선과 표정이 만들어 내는 작은 변화들을 통해, 진영의 감정선에 완벽하게 이입을 했다.
잠깐의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관객들을 자신에게 끌어당긴 시우는 이제 그 감정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엄, 엄마…….”
벌떡 일어난 진영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 나왔다.
“전화…… 전화…….”
그저 한두 마디의 짧은 대사일 뿐인데, 관객들은 목이 메어 왔다.
진영에게 완전히 몰입을 한 상태였기에 엄마를 찾는 진영의 목소리가 무척 애처롭게 들렸다.
진영이 쇼핑몰 쪽으로 걸음을 내딛자 카메라가 진영의 1인칭 시점으로 바뀌어, 아수라장이 된 지상의 모습을 한꺼번에 관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
지옥이었다.
화면이 비틀대며 앞으로 전진했다.
관객들은 온전히 자신이 진영이 된 듯한 감정을 느꼈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치 옆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엄마를 부르는 진영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계속 들려왔다.
한쪽으로 가라앉고 있는 쇼핑몰이 보였다.
몇몇 관객들은 자신의 엄마가 그곳에 있는 기분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비켜! 비키라고!”
진영은 달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엄마아-!!!”
진영의 절규를 끝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웅장한 음악이 흘렀다.
사람들과 부딪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는 진영의 모습 위로 자막이 떠올랐다.
배급사 : HS 미디어
제작사 : 상상노리
감독 & 각본 : 최민철
[폴트 – 생존자들>붕괴되고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관객들 앞에 나타난 영화 제목이, 건물들과 같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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