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79)
179. 센트럴파크
“씬 12, 컷 5. 들어갑니다!”
“레디, 액션!”
사인과 동시에 시우는 카메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풀샷으로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시우는 워킹의 바이블을 보는 듯한 안정적인 동작으로 양발을 번갈아 내밀었다.
시우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로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어떻게 하는 거지?’
시우의 움직임이 약간 묘했다.
분명 자연스럽게 걷고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무게감이 느껴지는 발걸음.
호리호리한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함-
‘안드로이드가 인간보다 무겁다는 설정 때문인가?’
그걸 걸음에서부터 표현하다니…….
완벽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진 로건은 시우가 준비해 온 디테일한 연기에 속으로 감탄을 했다.
‘역시 시우. 나랑 통하는 면이 있어. 나도 지지 않게 노력해야겠군.’
걸어가는 동작만으로 로건을 감탄시킨 시우는 미트 안마기 안에 섰다.
‘원더풀……!’
로건은 또다시 흥분했다.
예리한 사람의 눈에는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로건은 봤다.
시우가 처음 발을 뗀 순간부터 기계 안쪽에 그려진 원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같은 보폭이었다!
이거다.
‘이것이 안드로이드의 걸음!’
연기 덕후 로건은 시우의 세밀한 표현력에 들떠, 혼자 카메라 뒤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한편-
로건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사이, 시우는 팔을 밑으로 내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두가 ‘왜 준비 자세를 취하지 않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시우의 몸을 인식한 기기가 작은 기계음과 함께 가동됐다.
위잉-
파앗!
미트 하나가 올라왔다.
시우는 가만히 선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팔을 옆으로 휙 날렸다.
퍼억!
전방이든 좌우 측면이든, 미트가 올라오는 곳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시야가 닿는 범위 내였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몸도 돌리지 않았다.
시우는 그저 우두커니 선 그대로 두 팔만 휙휙 움직여…….
퍼억! 퍼억! 퍼억!
미트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벌떡!
맥과이어 감독은 깜짝 놀랐다.
카메라를 향해 짓고 있는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무표정.
두 팔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미동도 않는 두 발.
원래 맥과이어 감독의 콘티에 그려져 있던 장면은, 시우가 저 기계 안에서 완벽에 가까운 멋진 복싱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안드로이드의 복싱!’
좀 전의 로건처럼, 맥과이어 감독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촬영 초반부터 시우는 자신의 존재감을 모든 이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컷! 오케이!”
맥과이어 감독은 신이 나서 외쳤다.
“훌륭해! 준비해온 걸 일부러 숨기고 있었군?”
시우는 안에서 몸을 풀며 대답했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니고, 방금 전에 떠올랐어요. 괜찮았나요?”
“당연하지! 그런 식으로 웨이스트샷이랑 몇 컷 더 추가로 찍자고! 체력은 어때?”
“문제없습니다. 이어서 바로 갈까요?”
“미트 때릴 때 오직 눈동자만 이쪽, 저쪽으로 휙휙 움직이는 걸 담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원하시면 다 합니다. 안드로이드니까요.”
“이런, 진짜 안드로이드 같으니라고!”
시우의 놀라운 활약으로 촬영장의 텐션이 올라갔다.
시우는 복싱 장면을 끝까지 멋지게 완성시켰다.
짝짝짝-!
스태프들이 개인 소장을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신기한 안드로이드 복싱을 보여 준 시우는 잠시 주스를 마시며 숨을 돌린 뒤, 다음 촬영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끝내고 세트장으로 이동하자고~ 친구들!”
마치 로큰롤 콘서트 현장처럼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맥과이어 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네!”
스태프들은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시우는 미트 안마기 안에서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안드로이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처음에는 감정을 어떻게 가리느냐와 감정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표현하느냐에 중점을 뒀지만, 여러 가지 경험과 고민을 통해 시우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AI 친구 플렉스는 감정을 가리는 기색도 없었고, 인위적으로 기분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영화 배경상 현재보다 더 미래에 만들어진 AI 안드로이드가 과연 인간에게 인위적인 느낌을 줄까?
“레디, 액션!”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과 다르게 그 어떤 불필요한 동작도 취하지 않는 것.
얼굴 근육 하나, 목소리의 높낮이 하나.
언제나 일정하게-
심지어는 동공의 움직임까지-
철저하고 치밀하게, 몸 안의 세포 하나까지 무심코 동작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
이를 테면 로건이 눈치 챈, 보폭의 일정함도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시우는 VR 머신과 AI 플렉스를 통해, 자신의 미세한 움직임을 일일이 체크하며 강도 높은 훈련으로 독자적인 안드로이드 연기를 만들어 왔다.
터벅. 터벅. 터벅.
복싱을 마친 안드로이드 다니엘이 기기 밖으로 나와 주인 윌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시우는 부드럽게 두 다리를 움직여 기다리고 있는 로건에게로 향했다.
촬영용 카메라에 둘러싸인 로건은, 시우가 약속된 거리까지 다가오자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연기에 돌입했다.
“역시 굉장해. 인간 따윈 상대도 안 되겠어. 너희의 복싱 라이벌은 아마 캥거루뿐일 거야.”
주인의 농담에 다니엘 역의 시우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시우의 입이 열리고, 살짝 높은 맑은 미성이 흘러 나왔다.
“윌, 캥거루는 안드로이드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목소리로 프로그래밍을 해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시우의 음성을 들은 몇몇 여성 스태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시우가 이 목소리로 자장가라도 불러 준다면 정말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질 것 같았다.
“농담이야. 다니엘. 못 알아들은 척 말라고.”
시우는 미소 띤 얼굴로 로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윌의 복싱 라이벌은 열 살 남자아이쯤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킬 수준이 비슷합니다.”
“오……!! 무슨 소리야! 열 살 아이가 나랑 비슷하다고?!”
시우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농담입니다. 방금 윌이 한 농담과 같은 맥락의 농담이라고 할 수 있죠. 농담은 인간들이 서로 친밀하게 주고받는 즐거운 언어 놀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너무 심한 왜곡은 정보의 오류를 일으킬…….”
“그만! 그만! 업데이트 이후로 말이 더 많아진 거 같아.”
“말을 줄이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목에 건 타올로 얼굴의 땀을 닦던 로건은, 잠시 타올을 얼굴에 덮은 채 움직임 없이 연기에 여백을 주고, 스르륵 타올을 밑으로 끌어내렸다.
방금 전과 다르게 약간 쓸쓸해 보이는 로건의 얼굴이 드러났다.
“……됐어. 나한테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잖아.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애들이 시끄럽게 굴기 전까지는 네가 말을 많이 해야지.”
“…….”
시우는 물끄러미 로건을 쳐다봤다.
“왜?”
“아닙니다.”
“뭔데, 됐어. 내 엄마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아닙니다.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윌의 기분이 다운된다는 것을 저는 충분히 학습했습니다.”
“좋아. 훌륭하군. 그럼 왜 그렇게 쳐다본 거지?”
시우는 가슴 높이로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후에 CG 처리가 되면 자신의 손 앞에 시계가 떠오를 예정이었다.
시각을 알리는 몇 개의 숫자들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시우가 말했다.
“저는 그저 수잔과의 데이트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이제 출발해야 한다는 걸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 그래.”
시우는 내내 한결같은 목소리로 안정되게 대사를 마무리 지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조금 높게 조정한 상태에서 모든 대사를 일정하게 소화해 내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사람처럼 말하고, 억양도 매끄러운데 묘하게 이질적인 시우의 연기에 맥과이어 감독과 스태프들은 신기함을 넘어 약간의 신비함까지 느꼈다.
“컷! 오케이!”
* * *
6월 말-
시우는 할리와트 크랭크업 이후 다시 오랜만에 미국 생활에 젖어 있었다.
가끔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립기도 했으나, 촬영이 바쁘게 진행되다 보니 외로워할 여유도 없이 순식간에 6월의 끝자락이었다.
간단하게 청바지와 흰 티를 입은 시우가 거실로 나오니, 한국에서부터 자신과 함께해 온 일명 윤시우 팀 멤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우~ 오늘도 멋있다!”
“준비 끝났어? 출발할까?”
“윤 배우님, 가는 길에 아아 한 잔?”
시우는 스타일리스트 누나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형이랑 누나들 드세요! 제가 살게요.”
“오오!”
떠날 준비를 마친 시우는 일행과 같이 차에 올랐다.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니 브런치 타임이었다.
아침을 거른 터라 배가 출출했다.
‘이따 카페에서 간단히 뭐라도 사 먹어야겠다. 응? 뭐지, 이건?’
정태 엄마의 메시지였다.
시우는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혹시 정태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확인을 했다.
– 시우야 미국에서 영화 찍고 있니? 나중에 한국 오면 아줌마가 어릴 때처럼 옷 사 줄 테니까 한번 보자. 타지에서 이것저것 힘들겠지만 응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힘내라.
오소소…….
시우는 소름이 쫙 올라왔다.
정태 엄마가 자신을 챙기는 것은, 자신이 아역 배우로 스타가 된 이후부터 항상 있어 왔던 일이지만 이번 메시지는 뭔가 달랐다.
‘……정태가 영화관 다녀온 후로 엄마 행동이 좀 달라졌다더니, 갑자기 나한테 이런 문자를 다 보내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태가 배우로 재도전하는 걸 알고 잘 챙겨 달라고…….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
시우는 정태 엄마가 아들이 죽는 광경을 보고 여러 가지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우는 어쨌거나 요즘 정태가 통화할 때 밝아 보이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카페에서 음료와 브런치를 구입한 시우 일행은 LA 외곽에 위치한 세트장으로 향했다.
“멋지지?”
맥과이어 감독이 물었다.
지난 체육관 촬영 때 맥과이어 감독을 놀라게 만든 시우는,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이 놀라고 있었다.
시우는 부끄럽게도 입을 벌리고 세트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CG 처리가 필요 없는 일반 세트장은 예전처럼 실제로 만들어 놓았다.
한데…….
전체가 CG로 처리되어야 할, 미래의 도시-
옛날 같았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녹색 월드에 갇혀 상상만으로 연기를 했어야 할 텐데, 렌즈 한 쌍을 눈에 착용하자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미래 도시가 시우의 눈앞에 펼쳐졌다.
“들은 거랑…… 다른데요?”
“다르다고?”
“더 멋지잖아요!”
“하하하! 그렇지?! 이것이 바로 뉴 AR이다! 와, 근데 너무 비싸. 그리고 나중에 CG도 정밀하게 다시 손 봐야 돼. 제작비가 이중으로 나가는 기분이라 다시 하라면 안 할 거 같아.”
“나중에 보급되면 가격도 좀 내려가겠죠?”
“그렇겠지. 자, 준비하자고. 오늘 표정 연기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해.”
“안드로이드라 갈 영혼이 없어요.”
시우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본 맥과이어 감독은 신뢰 가득한 손길로 시우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 주었다.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우는 도시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봤다.
이제야 진짜 SF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미래형 자동차들이 바쁘게 도로를 미끄러지며 달렸고, 허공에는 투명한 광고판들이 여러 광고 영상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정말로 미래 세상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시우의 온몸을 휘감았다.
‘짜릿하네. 언젠가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
문득 AI 친구 플렉스의 말이 떠올랐다.
‘환경과 기후로부터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군.’
고층 빌딩 아래 조성되어 있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보며 시우는 서서히 안드로이드로 변해 갔다.
촬영지는 LA 외곽이지만, 영화 속 배경은 뉴욕 맨해튼 한복판-
렌즈를 통해 미술팀이 디자인한 미래의 뉴욕을 바라보며, 시우는 사인을 기다렸다.
“레디, 액션!”
얼굴을 든 시우가 센트럴파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음을 뗐다.
안드로이드 다니엘이 윌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 상황이었다.
대낮의 햇살이 시우의 머리 위로 환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광원 효과도 좋네.’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던 시우의 앞으로 한 어린아이가 달려오다 넘어졌다.
잠시 발길을 멈춘 시우가 허리를 조금 숙이고 물었다.
“괜찮니?”
“……네. 괜찮아요!”
아이는 밝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곤 씩씩하게 일어나 뛰어갔다.
“조심해서 가렴.”
시우는 미소를 띠고 멀어지는 아역 배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길을 걷기 위해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멈칫-
시우의 움직임이 멎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커다란 체격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우와 눈이 마주친 그 배우는, 낡은 운동화를 끌고 시우에게 다가오더니 등 뒤에서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너 안드로이드지?”
“네. 그렇습니다. 무슨 일…….”
남자는 시뻘게진 눈으로 산탄총을 들어 올리고, 시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환한 대낮-
맨해튼 한복판-
센트럴파크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비명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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