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83)
183. BSR31
“덥다. 너무 덥다.”
장을 보고 돌아온 매니저 케빈이 죽는 소리를 해 댔다.
지난 7월 서울을 뜨겁게 달군 폭염이 8월에는 LA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케빈은 식료품 바구니를 식탁에 올려놓고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눕혔다.
“집에 오니 살 거 같네. 하아. 악순환이다. 에어컨을 안 틀면 당장 우리가 더워 죽겠고, 에어컨을 틀면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늘어진 미역 같은 행색으로 횡설수설하던 케빈의 눈에 전원이 꺼진 에어컨이 보였다.
“응? 에어컨이…… 꺼져 있네?”
근데 왜 이렇게 집이 시원하지?
청량감 넘치는 서늘한 공기가 거실을 휘감고 있었다.
얼마 전, 윤시우 팀 스태프들이 촬영장에서 주고받던 여름맞이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적인 존재가 근처에 있으면 갑자기 공기가 차게 느껴진대요. 막 서늘하고…….]쭈뼛-!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케빈이었으나 더위에 심신이 지친 상황이었다.
케빈의 등골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 그 순간, 시우가 식료품 바구니를 뒤지다 말했다.
“형 오기 바로 전까지 에어컨 틀어 놨었어.”
“…….”
“진짜야.”
“……아, 그래. 근데 왜 껐어?”
자연 바람이 좋아서 에어컨 끄고 내가 직접 바람을 만들었거든,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기에 시우는 잠깐의 머뭇거림 끝에 입을 열었다.
“냉방병 걸릴까 봐, 잠깐 껐어.”
“그래? 잘했어. 컨디션 관리 신경 써야지. 다음 촬영은 모레니까 잘 준비하자. 몸에 좋은 거 한국에서 많이 받아 왔으니까 홍삼이랑 도라지청이랑…… 또 뭐 있더라. 여하튼 많이 먹어.”
“알았어. 고마워. 형도 같이 먹어. 형이 건강해야 나도 일에 집중이 되지.”
케빈은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 시우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런 좋은 배우를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게다가…….
시우가 물었다.
“이따 간단하게 게살볶음밥 먹을래?”
매니저에게 요리해 주는 배우라니.
케빈은 조금 감동한 얼굴로 시우에게 되물었다.
“완두콩은 안 넣을 거지?”
시우는 자신이 만든 게살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싱크대 앞에 섰다.
시우가 요리를 했으니 설거지는 케빈이 하는 게 옳았으나, 시우의 설거지 속도가 월등히 빨랐기에 케빈은 다른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마법으로 설거지 통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릇들을 씻어 낸 시우는 정화까지 완벽히 마친 뒤 젓가락과 그릇들을 정갈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 배송이 온 무쇠 프라이팬을 경건한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아름답군.”
주물 마스터의 손에 의해 빚어진 북유럽에서 날아온 무쇠 프라이팬.
밝게 빛나는 멋진 블랙 컬러-
고급스러운 호두나무 손잡이-
요리의 품격을 끌어올려 줄 압도적인 존재감이 묵직하게 시우의 마음을 때렸다.
‘훌륭해. 이 정도 퀄리티라면 이 무쇠 프라이팬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불러도 무방…….’
시우가 프라이팬에 취한 그때, 쓰레기를 들고 옮기던 케빈이 뒤에서 프라이팬을 보고 놀라 한마디 했다.
“와, 진짜 크다. 그걸로 사람 때리면 뼈 부러지겠는데?”
“…….”
시우는 육중한 프라이팬을 손에 들고 휘둘러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터라 예전이랑 다르게 한 번씩 쉬어 가는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우는 이런저런 취미들을 즐기곤 했는데, 최근에는 요리였다.
전생에 만들었던 요리들을 이곳의 재료들로 비슷하게 재현해 보기도 하고, 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독특한 레시피를 따라 해 보기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끔은 만든 요리를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직접 배달하기도 하고-
[엄마, 내일 아침 집앞에 보면 애들 쿠키랑 밑반찬 몇 개 도착해 있을 거예요.]“그래? 알았어. 그런데 도대체 어느 사이트에서 새벽 배송시키는 거야? 네가 만든 음식이랑 맛이 정말 비슷하던데?”
[음…… 그건 비밀~ 엄마 좋아하는 닭개장도 시켰으니까 밥 챙겨 드세요.]“고마워. 시우야. 우리 아들밖에 없네.”
전화를 끊은 현주는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 기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어릴 때 쪽쪽이 물고 기어 다니는 시우를 분유 타 먹이고 기저귀 갈아 가며 열심히 키웠더니, 시우는 어느새 훌쩍 자라 든든함을 안겨 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자신이 시우를 돌보는 게 아니라 시우가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현주는 어린 시우의 손을 잡고 지호와 다 같이 동물원에 갔던 시절의 꿈을 꿨다.
곰들이 차를 밀어 주는 꿈을 꾸면서 피식피식 웃는 얼굴로 현주는 아침까지 푹 숙면을 취했다.
주말 아침.
시윤은 관장님과 약속한 대로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다 현관 앞에 놓인 네모난 종이 박스를 발견했다.
“나갈 때만 해도 없었는데? 새벽 배송이 아니라 아침 배송이네. 힘드시겠다.”
박스를 안고 들어온 시윤은 엄마를 돕기 위해 직접 박스를 열고,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을 것들이 뭐가 있나 살폈다.
“……어? 쿠키다!! 이거 형이 만들어 준 쿠키랑 똑같은 맛 나는 거기서 시킨 거네!! 윤시아!! 윤샤샤!! 먹을 거다아~!!”
지쳐 있던 시윤의 얼굴이 대번에 확 밝아졌다.
우당탕!
시아와 복실이가 시윤의 방에서 요란하게 뛰쳐나왔다.
“뭔데에~?!”
먹이를 노리는 벨로시랩터처럼 눈을 빛내며 달려온 시아는 상자에 예쁘게 담긴 밀크쿠키과 치즈쿠키를 발견했다.
복실이를 부둥켜안고 신나서 방방 뛰는 시아에게 시윤이 물었다.
“너…… 너 왜 오빠 방에서 나오냐?”
토끼 모양 치즈쿠키를 왁 베어 문 시아는 너무 맛있는지 까르륵 웃고는 대답했다.
“응! 오빠 태블릿으로 큰 오빠 사진 보려고~”
“형 사진? 왜, 보고 싶어?”
“우웅……!”
쿠키를 우물거리는 시아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울상이 됐다.
시윤은 시아의 풀 죽은 모습에 얼른 쿠키를 들어 시아의 입에 들이밀었다.
“이건 사자 쿠키. 먹어.”
“와구!”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시윤은 자신이 밥을 먹기도 전인 동생에게 쿠키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그러면 혼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아직 깨닫지 못한 채, 자상하게 시아의 옷으로 떨어지는 쿠키 가루들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오빠 집에 오다가 시우 형이랑 되게 닮은 사람 봤다!”
“웅? 큰 오빠는…… 우물우물~ 미국에 있자나~”
“그니까 닮은 사람 봤다고~ 멀리서 봤을 때는 진짜 똑같아 보였는데 걷는 자세랑 막…… 시아야, 오빠랑 나눠 먹어야지. 혼자 다 먹으면 나쁜 어린이야~”
시아는 과자를 씹던 입의 움직임을 딱 멈추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시윤에게 말했다.
“엄마가…… 나쁜 어린이라고 하지 말래써…… 나쁜 행동이라고 말해야 된대써…….”
“……미, 미안해.”
시윤은 방금 전까지 신나게 과자를 먹다가, 눈물방울을 또르르 떨어뜨리는 어린아이의 예민한 감수성과 마주했다.
“나쁜 어린이라고 해서 미안해~ 오빠가 잘못했어. 이따 오빠가 한 시간 동안 업어 줄게!”
“……진짜?”
“응. 어차피 오빠 운동도 해야 돼. 그러니까 시아가 오빠한테 업혀서 도와줘.”
“알았어! 고마워, 오빠.”
쪽~
시아는 작은 오빠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해 주고, 다시 쿠키를 사냥했다.
시우의 미국집 오븐에서 탈출해 텔레포트까지 해 가며 한국으로 건너온 역사적인 쿠키들은 시아의 입안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고 있었다.
건조기에서 빨랫감을 가지고 나오던 현주가 쿠키를 흡입하고 있는 시아를 발견하고 경악해 발을 멈춘 사이-
시윤은 엄마가 나온 줄도 모른 채, 자상하게 동생을 쳐다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앗, 투표 오픈 시간이네. 오늘도 지호 형한테 한 표…….”
케이팝 아이돌로 데뷔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소속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지호에게 한 표를 던지려던 시윤은 어플을 열기도 전에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현주가 물었다.
“……시윤이가 시아 쿠키 준 거야?”
“아뇨. 저는 그냥 먹을 게 있다는 말밖에 안 했어요. 시아가 혼자 뜯어서 먹은 거예요.”
“어휴~”
* * *
채널 XTV 사옥.
마지막 생방송 경연을 앞둔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호는 대기실에서 혼자 벽을 보며, 안무를 다시 확인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고…… 뒤로 빠진 다음…….’
드디어 생방까지 진출했다.
당당하게 데뷔의 꿈을 이루기까지 앞으로 한 고비.
기대하다 실망하기를 몇 차례 반복해서인지, 지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들뜨는 기분을 쉽사리 붙잡을 수가 없었다.
데뷔-
4년 가까이 그 목표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렸다.
‘한 걸음만 더……!’
손끝의 위치, 팔의 각도 등 거울도 없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상상해 가며 끊임없이 연습을 하는 지호를 멀리서 일단의 남자 연습생들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열심히 하네…….”
카메라와 마이크에 잡히지 않도록 한 연습생이 동료 연습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게. 방송에서 유지연 동생인 것도 철저히 감추고. 그거 알렸으면 단숨에 인지도 올라갔을 텐데.”
대단하다거나 정정당당하다는 투의 말투는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있지만 계단으로 가도 우리 정도는 밑에 깔고 간다는 얘기지.”
“집도 엄청 잘살고. 쟤는 솔직히 오늘 떨어져도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연예인 가능하잖아?”
“그렇지. 우린 흙수저고 지호 님은 금수저잖아. 우리 지호님 카메라 보라고 열심히 연습하고 계시는 거 봐라.”
BSR 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자 연습생 31명 전원이 참가한 XTV 오디션 프로그램 BSR31.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모 아이스크림 브랜드명을 연상시키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오디션에서, 연습생들의 최종 목표는 쿼터(4가지 맛 아이스크림)가 되는 것이었다.
31명 중에서 4명-
바늘구멍이었다.
패밀리 사이즈(5가지 맛 아이스크림)도 하프갤런(6가지 맛 아이스크림)도 아닌 쿼터.
한 그룹의 최소 인원수라고 볼 수 있는 4명.
경쟁은 당연히 미친 듯이 치열했다.
방송 제목을 위해 31명 인원을 맞추려고 데려온 어설픈 연습생들 몇몇이 초반에 떨어져 나가고, 오디션 열기가 달아오른 중반부터는 총만 안 든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지호는 마지막까지 생존한 8명의 연습생들 중, 3위로 생방 진출을 결정지은 상태였다.
아직 앳된 귀여운 외모와 맑은 음색-
춤에 대한 센스는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실수 없이 안무를 수행하는 성실함 등이 인기의 요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운명의 생방 무대가 시작됐다.
8명의 연습생들이 팬들 앞에 등장하자, 큰 환호가 쏟아졌다.
데뷔 확률은 50프로.
둘 중의 하나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고, 다른 하나는 눈앞에 있는 이 많은 팬들을 등에 업고 XTV 방송사의 지원 아래 해외에서 데뷔 MV를 찍는다.
연습생들은 수많은 생방 카메라와 팬들을 마주한 순간, 마음속의 간절함이 몇 배로 뛰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무대는, 8명이 함께 꾸미는 화려한 댄스 무대였다.
지호는 연습한 것들을 되새기며 웃는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섰다.
BSR31 실시간 댓글 창.
– ……뭐 하는 거야?? 유지호 왜 저래??
– 와, 민폐갑. 애들이 무대 준비하려고 진짜 많이 고생했을 텐데, 혼자 무대를 말아먹네?
– 헐, 대박. 생방 되니까 본 실력 나오네. 동선도 안 외우고 뭐 했냐.
– 실망…… 계속 정신 못 차림…… 멘탈 나간 듯…….
– 불쌍하다. 인기 상승세 탔었는데 생방에서 갑자기 찬물을 이렇게 끼얹냐. 실전에 약한 타입인가 보네.
BSR31 프로그램 대기실.
지호는 머리를 감싸 쥐고 땅을 보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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