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85)
185. 씬 35
지호는 딱 한 달만 아무 생각 없이 놀고, 그 후에는 회사를 알아보러 다니겠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호 녀석…… 그 한 달 동안 아마 연습할 거야.’
어릴 때부터 봐 왔기에 지호의 행동 패턴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진다.
……녀석은 놀 줄을 모른다.
뭐, 그런 부분은 누나인 지연도 비슷했다.
시우는 성실한 지연, 지호 남매를 떠올리며 살포시 웃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
‘그나저나 나도 최근에는 노는 법을 잊었나. 쉬는 날이 생겨도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한숨이 나온다.
예능 핑계로 준영, 승현과 베이비 오브 레전드를 할 때가 좋았는데.
현재는 두 사람도 작품 때문에 하차를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잠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준영-승현-시우 3형제를 대신해 들어가는 이들이 바로 익스트림 5형제.
시우는 아기가 된 익스트림 멤버들이 덕구네가 만들던 마을을 이어받아 완성시키는 모습도 꽤 재밌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음, 내 유모차를 제이슨에게 렌탈해 줘야겠군.’
쪽쪽이를 물고 혼자 전동 유모차를 끄는 아기 제이슨을 상상하며 시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늦은 저녁.
LA 영화 세트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우를 반기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시우야~ 이모부 왔다~ 선물 가져왔어!”
슈 엔터 대표이자 시우의 이모부인 태우였다.
선물이란 소리에 시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선물이란 단어는 왜 이리 설레는 걸까.
“선물요? 뭔데요? 아, 아니…… 오셨어요. 이모부.”
“너 방금 속마음 딱 들켰어.”
서운해하는 태우를 향해 시우는 민망한지 슬쩍 웃어 보였다.
시우의 귀여운 미소에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가고 만 태우는 케빈에게도 인사를 한 뒤, 식탁 위를 가리켰다.
“한국의 네 팬들이 보낸 선물을 이모부가 모아 왔지.”
“오~”
팬들이 보낸 손편지를 읽는 일은 시우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기대 가득한 얼굴로 뛰어간 시우는 식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 탑’을 발견했다.
“…….”
선물이란 게…….
태우가 껄껄 웃으며 다가왔다.
“너의 팬들이 보낸, 대본이야. 폴트 생존자들 개봉하고 나서 엄청나게 들어왔다.”
폴트 홍보 프로모션 때 시우가 한국 활동과 미국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국내 작품들의 컨택이 쏟아지고 있었다.
시우는 대본들을 훑어보면서 어마어마한 양에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와아. 이래서 제가 노는 법을 잊어 가는 건가 봐요.”
케빈이 말했다.
“일하는 법을 잊는 것보단 낫잖아.”
태연한 얼굴로 굉장히 무서운 말을 던진 케빈은 몸을 부르르 떠는 태우와 시우를 지나쳐 책 탑 앞에 섰다.
“일단 내가 다 읽고, 간단하게 평 적어줄게. 특별히 추천할 만한 거 있으면 따로 빼 놓고.”
“응. 고마워. 형.”
시우는 언제나 열심히 일해 주는 케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태우는 식탁 앞에 나란히 서서 대본을 뒤적이고 있는 시우와 케빈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자신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 많은 책들 사이에서 대본 하나가 거짓말처럼 눈에 들어왔다.
“…….”
태우는 그 책의 표지를 잠시 매만지다 시우와 케빈의 눈치를 본 뒤, 소심하게 슥…… 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손뼉을 맞부딪치며 외쳤다.
“어휴~ 둘 다 저녁 먹어야지? 촬영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배고프겠다. 내가 삼겹살 사 왔어.”
대본에 박혀 있던 시우와 케빈의 시선이 휙 위로 올라왔다.
뜨거운 반응에 태우가 흐뭇해하며 물었다.
“누가 구울래? 내가 사 왔으니까 굽는 건 너희가 할 거지?”
시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에어~ 뿌라이어~ 님께서 구울 거예요.”
* * *
“로맨틱 코미디 특이한 거 있더라.”
“로코?”
“내년에 스무 살 되면 성인 된 기념으로 로코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스무 살 되자마자 로코는 좀 이르지 않아?”
“로미오와 줄리엣은 청소년이었어. 이른 건 없어, 일러 보이게 만드는 작품과 연기가 있을 뿐이지.”
냉정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끼이이익-!!!
전방에 뭔가가 있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고, 동시에 케빈이 운전하는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시우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
조용-
고개를 든 시우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두운 밤, 달빛이 휘영청 밝은 인적이 드문 길-
촬영을 마친 시우와 케빈은 LA 동쪽에 위치한 한 전원형 주거 도시를 지나는 중이었다.
“……뭐지? 시우야, 혹시 봤어?”
케빈이 물었다.
“아니, 나는 옆에 집들 구경하고 있었는데. 뭐였어? 사람은 아니지?”
“사람은 아냐. 도로에 작은 뭐가 있었어. 동물…….”
“…….”
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가 나가 볼게.”
“아냐, 같이 가.”
케빈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가자, 시우도 따라 나섰다.
헤드라이트가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도로 위에 작은 뭔가가 보였다.
“개?”
눈이 좋은 시우가 정정했다.
“로봇 강아지야.”
“아…… 몇 년 전에 한참 유행이었지…….”
1990년대 후반 처음 세상에 등장한 로봇 강아지는 발전을 거듭해, 한때 미국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었다.
시우와 케빈도 공원에서 운동을 할 때 이따금씩 마주치곤 했다.
“부서졌네. 차에 밟혔어.”
이대로 도로에 둘 수는 없었기에, 시우는 망가진 로봇 강아지를 들고 우선 차로 돌아왔다.
뒷좌석에 놓인 로봇 강아지 몸체를 보며 케빈이 시우에게 물었다.
“일련번호 같은 걸로 주인 찾아 줘야 되나? 로봇 강아지 관리 센터 같은 게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차를 잠깐 길가에 세워놓고, 케빈은 폰으로 센터 전화번호를 검색해 연락을 취했다.
잠시 후-
“직원이 알아봤는데 AI가 고장나서 폐기된 제품이래.”
“폐기?”
“뭐, 직원 말로는 아마 그냥 버린 거 같다고. AI가 고장나면 수리 비용이 새로 사는 비용이랑 큰 차이가 없어서 보통 버리고 새로 산대. 매년 신형 나오니까.”
시우는 자신의 옆자리에 놓인 로봇 강아지를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형. 어쩐지 우리가 지금 찍고 있는 영화 내용같다. 강아지에서 인간으로 몸만 바꾸면 똑같잖아.”
‘만약 안드로이드인 다니엘이 이 모습을 봤다면…… 음?’
시우는 불현듯 폰을 들고 맥과이어 감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좋은 아이디어야. 특별히 제작비를 필요로 하는 부분도 아니니까 한번 찍어 보자고. 아, 혹시 그 망가진 로봇 강아지 촬영날 가지고 올 수 있어?”
시우의 제안과 맥과이어 감독의 결정으로 씬 42.5가 탄생했다.
며칠 뒤-
“씬 35! 가겠습니다!”
“샷건 가져왔습니다!”
“세팅 완료됐습니다!”
씬 35와 씬 42.5는 모두 윌의 집 앞 거리 씬이었기에, 일정에 맞춰 함께 촬영을 하게 되었다.
촬영 세팅을 기다리는 동안 로건이 몸을 풀면서 시우에게 말했다.
“감정 잡기 쉽지 않아. 샷건 들고 집 뛰쳐나온 게 한참 전인 거 같은데, 다음 씬을 이제 찍네.”
시우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윌의 집 거실 복도가 엄청 길었나 봐요.”
둘은 잠시 마주 보고 웃은 뒤, 프로답게 표정을 정비했다.
“레디, 액션!”
총이 든 가방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윌은 이성이 날아간 눈빛으로 무인 택시들이 정차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뒤이어 시우가 윌을 쫓아 나왔다.
“윌!”
“뭐! 따라오지 마!”
“당신은 현재 매우 흥분한 상태입니다. 상당히 높은 확률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우선 집으로 돌아가 술기운을…….”
“닥쳐!! 내가 술 마셔서 그런 거 같아?! 네가 뭘 알아!!”
로건은 핏줄이 선 눈으로 시우를 노려보며 열연을 펼쳤다.
감정 잡기 힘들다던 말은 역시 엄살이었다.
불과 얼음-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인 윌을 앞에 두고, 시우는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대사를 쳤다.
“네.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저는 당신의 안드로이드로서 소유자를 안전히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너는!! 내…… 내 가족이었다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로건을 보며, 따뜻한 미소가 아닌 따뜻함을 흉내내는 듯한 미묘하게 다른 미소를 지은 시우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윌. 저는 당신의 가족입니다. 그러니 진정하고…….”
“으아악!! 너 말고!! 그, 그 자식…… 없애 버릴 거야…….”
비틀대며 땅에 잠시 무릎을 꿇은 로건은 총이 든 가방을 품에 꽉 안고 다시 택시로 걸어가려 했다.
로건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시우는, 감독과 스태프들이 ‘뭐지, 방금? CG 처리도 안 했는데 진짜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 거 같은데?’ 하며 놀라는 사이 로건의 몸을 뒤에서 단단하게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로건은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로 몸부림을 쳐야 할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드로이드인 다니엘이 인간과 다른 강한 힘으로 인간 윌을 가볍게 끌고 가야 했다.
그런데 상황상 윌은 가지 않겠다고 거칠게 발버둥을 쳐야 한다.
너무 발버둥을 치면 시우가 자신을 끌고 가기 힘들 것이고, 그렇다고 연기를 대충 할 수도 없으니 그 중간 지점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온 답은, 초반에는 힘껏 발버둥을 치고 시우가 약속된 사인을 주면 발버둥을 서서히 줄이는 것-
그런데.
질질질질질-!
“뭐, 뭐야! 놔! 놓으라고! 내가 주인이야! 나를 이렇게 짐짝처럼 끌고 가는 게 말이 돼?! 잠깐만! 누가…… 누가 그놈 죽인대?! 겁만 주려는 거야! 겁만! 다니엘이 느꼈을 공포가 어떤 건지 알려주려고 했을 뿐이라고…….”
운동을 해서 힘에 자신이 있다는 시우의 말을 듣긴 했다.
그러니 마음껏 반항해도 된다고…… 듣긴 했다.
끌고 가는 와중에 좀 추하게 바닥을 구르게 될 수 있으니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도…… 듣긴 했다.
로건은 건장한 자신이 마구 발버둥을 치는데, 단숨에 끌고가는 시우의 힘에 경악을 했다.
“놔,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 발로 가면 되잖아!!”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는 리얼 안드로이드였다.
* * *
BSR31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종영된 후-
최종 4인에 선발된 BSR 엔터테인먼트 4명의 연습생, 아니 신생 보이그룹 K4의 멤버들은 연습실에서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한창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신 안 차려? 데뷔까지 한 일 년 남았냐? 어? 그래? 되게 여유 있지? 정신 차려! 한 달 뒤에 이따위 실력으로 무대 어떻게 올라갈 거야?”
트레이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K4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력이 미흡해서?
애들이 열심히 안 해서?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 끝나고 애들이 뽑혔다는 생각에, 마음을 놨는지 그때보다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번아웃 현상으로 보였다.
그러나 트레이너가 황당해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방금 전 마치 트레이너처럼 큰 소리를 낸 것이, 트레이너인 자신이 아니라 K4의 리더인 민교였기 때문이다.
‘……춤은 지도 고만고만하면서. 뭐 어쨌든 애들 군기 하나는 확실히 잡네. 누가 이렇게 쪼아야 애들이 긴장을 하지.’
쓴소리 대신 해 주니 나쁠 건 없다.
민교는 한 명, 한 명 지목해서 멤버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24살.
아차 하는 순간, 무명인 상태로 서른이 된다는 걸 민교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습생 생활 오래하면서 선배들 그렇게 되는 거 많이 봤겠지.’
트레이너는 잠시 민교가 애들을 혼내게 둔 다음, 적당한 타이밍에 나섰다.
“자~ 그만그만! 민교도 너무 심하게 잡지 말고. 이따 저녁 때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연습 확실히 해 놔.”
트레이너가 떠난 뒤-
민교는 4위로 막차를 타고 합격한 준호를 붙잡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준호는 데뷔 결정되기 전이랑, 후가 너무 다른 민교의 태도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이다 잠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황당하네. 지호가 1위할까 봐 드러운 수작이나 부린 주제에 완전 혼자 에이스에 리더에 센터에 1위랍시고 다 해먹네.”
준호는 한동안 씩씩대다, 화장실 벽에 기댄 채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몇 차례 터치하자 동영상 하나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나오자 얼른 음량을 0으로 줄인 준호는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영상의 등장인물은 데뷔가 확실시되다 막판 이변으로 떨어진 지호와 1위 민교였다.
‘지호 안 떨어졌으면 내가 4위로 못 붙었을 테니까 민교한테 고맙긴 한데…….’
영상 속에서 민교의 뒷모습이 보였다.
민교는 지호의 어깨를 붙잡고 서 있었다.
주위를 한차례 두리번거린 민교는 자신이 심상찮은 기색을 느끼고 뒤쪽에서 몰래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음소거 상태라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준호는 몇 번이나 이 영상을 봤기 때문에 민교의 대사를 알고 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띤 준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말했잖아. 이 새끼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