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9)
19. CF 촬영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굴러다니는 경호를 두고, 시우와 영준은 기차 집을 나섰다.
아직 목적지를 모르는 영준은 친구와 손을 잡고 다닌다는 사실이 마냥 좋은지 표정이 밝았다.
시우는 영준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은밀하게 미끄럼틀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아장아장 열심히 걸어간 두 아기는 마침내 미끄럼틀 앞에 다다랐다.
시우가 멈춰 서자 바닥만 보며 쫓아오던 영준이 얼굴을 들었다.
“…….”
미끄럼틀을 발견한 영준의 표정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시우가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려 하자 영준이 손을 뺐다.
“시러…… 무서…… 미끄어…… 시러…….”
강력한 거부 반응.
아기들을 쫓아온 키즈카페 직원이 영준에게 말했다.
“무서워서 타기 싫어? 그럼 다른 거 할까? 저기로 가면…….”
직원은 영유아용 볼 풀장을 가리켰다.
영준은 그쪽이 끌리는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덥석.
시우가 영준의 팔을 잡았다.
“가치이~”
“시러…… 안 해…….”
사실 영준의 반응은 당연히 예상대로였다.
엄마와 타는 것도 싫다는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시우와 미끄럼틀을 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우는 과학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여기서 시우의 과학이란, 다른 사람들에게는 초자연 현상인 마법이었다.
머릿속으로 복잡한 마법 공식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이어 영준을 붙잡은 손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불안과 공포로 물들어 있던 영준의 안색이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 갔다.
“후웅…….”
영준은 싫다고 손을 빼는 대신 미끄럼틀 쪽을 슬쩍 봤다.
어른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유아용 미끄럼틀이었으나, 영준에겐 까마득한 높이였다.
그런데 영준은 아까와 달리 몸이 떨리지 않았고, 무서워 도망가고픈 마음도 조금 옅어졌다.
왠지 기운이 났다.
“시러…….”
여전히 몸의 중심을 뒤에 두고 입으로는 싫다는 말을 뱉고 있었지만, 시우가 이끄는 대로 점점 미끄럼틀로 다가가는 영준이었다.
‘징징거리면서도 따라오네. 귀여운 녀석.’
시우는 웃는 얼굴로 먼저 미끄럼틀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러다 영준을 돌아보고 한 번 더 손을 잡아줬다.
‘혹시 모르니까 좀 더 줄까?’
은은한 빛이 맞잡은 두 아기의 손안에서 다시 한 차례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실 시우가 한 일은 단순했다.
영준에게 마나를 약간 불어넣어 준 것뿐이었다.
몸 안의 기운에 따라 사람의 행동도 달라지는 법이니까.
“바바~!”
시우는 손을 흔들고 계단을 올랐다.
영준은 밑에서 시우가 하는 양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끝까지 다 올라간 시우가 까르르 웃으며 몸을 슈웅~ 미끄러트렸다.
“꺄아아-!”
시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신나게 비명을 지르면서 밑으로 내려왔다.
정전기로 인해 시우의 머리카락이 일제히 위로 치솟았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키즈카페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만면에 엄마 미소를 내비쳤다.
삐죽삐죽 올라간 머리로 시우는 재차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꺄아아-!”
시우가 미끄럼틀을 세 번 탔을 때, 드디어 영준이 움직였다.
영준은 시우와 키즈카페 직원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계단 위에 올려놓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준 엄마는 그 광경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다 황급히 휴대폰 카메라를 꺼냈다.
손잡이를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오른 영준은 미끄럼틀 정상에서 밑을 내려다보더니 주저앉았다.
“후엥…… 우으…….”
시우가 미끄럼틀 끝에서 자신을 불렀다.
“이이 와~”
엄마를 외치려던 영준은 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시우를 보고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다시 미끄럼틀에 앉았다.
아까 시우가 잡아 줬던 손이 아직도 따뜻했다.
“후우웅…….”
동생 시우와 아기 엄마들, 키즈카페 직원 누나와 기차 집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경호까지.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침내 영준이 몸을 앞으로 미끄러트렸다.
슈웅-!
“우아아아악-!”
키즈카페에 영준이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꺄아아-!”
“우아악-!”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가득이었다.
뒤늦게 미끄럼틀의 재미에 빠진 영준은 시우와 끝도 없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나중에는 경호도 합세를 했다.
아기들이 사이좋게 미끄럼틀을 타며 노는 것을 바라보던 영준 엄마는 몸을 돌리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영준이가 저렇게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꽉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논 아기들은 땀으로 머리를 흥건히 적신 채, 엄마들을 찾아왔다.
“엄마~!”
시우가 현주를 불렀고.
“엄마.”
영준이도 엄마 품으로 폭 들어갔다.
그리고-
“어어마…….”
뒤뚱뒤뚱 시우와 영준이를 따라 서툴게 걸어오던 경호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튀어나왔다.
“……!!”
경호 엄마는 귀를 의심했다.
“경호야, 뭐라고?”
경호는 엄마의 다리를 껴안고 다시 말했다.
“어마…….”
다른 사람 눈에는 커다란 곰 같아도 자신의 눈에는 불면 날아갈 작은 아기 왕자님 같은 경호가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경호 엄마는 처음으로 듣는 엄마 소리에 울컥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엄마 여깄다. 우리 경호 엄마 여깄어. 이리 와. 우리 아가.”
엄마 품에 안긴 경호는 쪽쪽이를 물고 있는 시우를 본 뒤, 단어 하나를 더 입에 담았다.
“마마…….”
“어머, 어떡해. 맘마? 지금 맘마 한 거야?”
현주가 미소를 짓고 경호 엄마에게 말했다.
“봐, 어느 순간 갑자기 한다니까. 축하해. 엄마 소리 처음 들은 거.”
“으응…… 너무 감격스러워.”
“휴우, 우리 시우는 첫 엄마 소리를 드라마 촬영 때 해 가지고. 난 뭐…….”
경호 엄마와 영준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현주가 일부러 과거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 말이 나오자 친구들 사이에 웃음이 퍼졌다.
“우리 중에 제일 부러운 사람도 현주고, 제일 안쓰러운 사람도 현주네.”
진아 엄마가 말했다.
* * *
정태 엄마가 말했다.
– 선물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커라~!
시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자들을 보면서 정태 엄마의 마지막 인사말을 떠올렸다.
향수 아줌마의 말대로 그 이후 선물 복이 넘쳐 나고 있었다.
얼마 전 키즈카페에서 함께 놀았던 영준의 엄마, 미주 이모가 고마웠는지 여름옷들과 새 젖병들을 보냈다.
정태 엄마의 선물과 달리 크게 비싸진 않아도 정상적으로 예쁜 옷들이었다.
젖병도 여름을 앞두고 최근 안쪽에 흠집이 많아져 엄마가 바꾸려 마음먹고 있던 것을, 미주 이모가 평소에 시우가 쓰는 브랜드로 선물해 줬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수진 엄마가 돌 선물로 주문한 나의 오두막 침대가 도착하겠지. 그냥 선물로 부자 될 기세네.’
시우는 저번처럼 사진을 찍기 위해 만세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 * *
그리고 며칠 후.
시우 가족의 차는 펫피월드 본사 근처에 있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도진은 양손에 이동장 두 개를 들고 앞장서 걸었다.
현주는 시우를 안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도진을 쫓아갔다.
펫피월드 마케팅 팀장이 밖으로 나와 시우 가족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오시느라 힘드셨죠? 오늘 그래도 날씨가 맑아서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팀장은 이런저런 서론을 늘어놓은 뒤, 본론을 꺼냈다.
“애들 컨디션은 어떤가요?”
3일 전부터 현주가 매일 듣고 있는 질문이었다.
현주는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네. 좋아요.”
긍정적인 대답에도 팀장은 여전히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아기와 동물.
촬영 시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출연자들이다.
잘 풀리면 대박이고, 안 풀리면 악몽이었다.
대박 영상이 나오더라도 그 촬영 과정은 역시 악몽일 테고.
그러니까 결과물의 퀄리티를 떠나 오늘 하루는 어찌 됐든 악몽이 될 거란 얘기다.
세트장에 도착한 현주는 팀장의 안내에 따라 아예 촬영이 진행 될 세트장 중앙까지 들어갔다.
“어머님, 우리 동물 친구들 여기 풀어 주세요. 나가지 못하도록 잘 막아 뒀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애들이 장소에 익숙해지면 여기서 바로 스타일링 들어갈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현주가 시우를 내려 주고 복실이와 네로의 이동장을 열 때, 안경을 쓴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다가와 도진과 현주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은 도진과 현주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마케팅 팀장이 소개를 해주려는 찰나 남자가 직접 입을 열었다.
“저는 광고업계의 떠오르는 샛별. 이번 CF의 감독을 맡게 된 최샛별이라고 합니다. 별 감독이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진은 별 감독과 악수를 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우 아빠입니다.”
“시우 엄마예요.”
별 감독은 현주와도 악수를 하고 말을 이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문라이트. 그 눈물의 엔딩 씬. 저도 정말 인상 깊게 봤는데요. 이렇게 윤시우 배우님과 함께할 기회가 생겨 무척 영광입니다.”
“……네?”
현주는 당황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이수진 배우님과 한태수 배우님은 들어봤어도, 윤시우…… 배우님?
“아, 저…… 네.”
현주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별 감독이 바닥에서 탐색 중인 복실이와 네로를 본 뒤 말했다.
“우리 복실 배우님과 네로 배우님까지. 오늘 정말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네요.”
독특함을 넘어, 뭔가 이상한 아우라가 풍기는 감독이었다.
약간 벙 쪄 있는 도진과 현주를 두고 별 감독은 준비할 일들이 남았다며 자리를 떠났다.
“하하하!”
마케팅 팀장의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감독님이 좀 예술가 스타일이세요. 자기만의 세계가 있으셔서. 분위기가 남다르시죠?”
“많이…… 남다르시네요.”
도진이 대답했다.
“그래도 실력은 굉장히 좋으시니까. 잘 찍어 주실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도진과 현주는 감독의 실력보다, 아이들이 무사히 촬영을 마치는 데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우리 시우, 잘할 수 있지?”
도진은 손등으로 시우의 볼을 만지며 물었다.
“응!”
시우는 힘차게 대답했다.
아내에게 말로만 듣던 시우의 촬영 현장을 직접 본다는 게, 꽤 설렜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빠는 아빠인 모양이다.
도진은 널뛰기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메고 온 가방을 뒤졌다.
물병을 찾아 뚜껑을 열고 입안으로 물 몇 모금을 넘기는 그때.
도진의 뇌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푸웁-!”
난데없이 도진이 바닥에 물을 뿜었다.
“콜록! 콜록!”
“오빠, 왜 그래? 괜찮아?”
현주가 도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시우 아버님, 괜찮으세요?”
팀장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도진을 살폈다.
도진은 입에 묻은 물을 닦으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팀장에게 물었다.
“혹시 저 감독님, 예전에 연극하던 분 아니세요?”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아셨어요? 20대 때 연극하셨다고…….”
“아…….”
맞네. 최샛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최샛별이라는 이름은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었다.
뭔가를 눈치챈 현주가 팀장 몰래 도진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응. 들어 본 사람.”
10년 전, 대학로 유명 극단 [별맛단>의…….
“천재…….”
“진짜? 저 감독님 천재야?”
천재인 건 맞다.
다만.
“천재…… 병맛 연출가였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