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91)
191. 생방 무대의 진실
늦은 밤, 시우는 소파에 앉아 야구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1차전-
올해의 우승팀을 가릴 결승전은 공교롭게도 LA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 간의 동네 대결로 압축되었다.
덕분에 LA 지역은 요즘 야구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시우야. 짜잔. 이거 봐라. 로건에게 선물받은 명품 와인 오프너다.”
“응.”
“처음 개시할 거야. 안 봐?”
집에 자주 놀러오는 로건의 영향으로 최근 와인 세계에 발을 들인 케빈은, 살짝 흥분된 얼굴로 시우를 불렀다.
문득 로건의 와인 만들기 영화 홍보 영상 조회 수가 궁금해진 시우는 손에 든 폰으로 마튜에 접속했다.
‘2위 굳히기에 들어갔군. 내 영상은 압도적 1위고~’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영상 조회 수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해하면서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생긴 케빈의 새로운 취미에 동참해 줄 참이었다.
“알았어. 명품 오프너는 뭐가 다른지 구경해 줄게.”
그리고 나서 자신은 케빈의 와인 타임을 위해 연어 샐러드를 만들 것이고, 혼자 분위기를 내는 케빈 옆에 앉아 주스를 홀짝일 것이다.
……연어를 돌돌 말아 그 속에 고추냉이를 몰래 넣어서 내줘야지.
시우는 샘솟는 즐거운 아이디어에 입가에 매운맛 미소를 지은 채, 식탁으로 향했다.
케빈은 자랑하듯 오프너를 내밀었다.
“되게 고급스럽네.”
시우는 은은하게 멋스러움을 풍기는 명품 오프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이 말했다.
“이 오프너는 와인 코르크 마개를 상처 하나 없이 꺼낼 수 있대.”
와인 애호가들 중에는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반적인 오프너가 코르크에 구멍을 뚫어서 꺼내는 방식인 반면-
이 오프너는 길이가 다른 2개의 얇은 날을, 병 입구에 틀어박힌 코르크와 병 사이로 슥 집어넣어 살살 돌려 빼내는 방식이었다.
시우는 냉장고에서 연어를 꺼내며 케빈을 지켜봤다.
케빈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엄숙하게, 병과 마개 사이에 오프너의 날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코르크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오프너를 흔들어, 병과 코르크 사이에 낀 두 날을 깊숙이 들어가게 만든 다음, 한차례 심호흡을 살짝 내뱉고-
코르크를 빼내기 위해 오프너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 생각보다 잘 안 나오네.”
“…….”
“시우야. 이거 되게 뻑뻑하다. 좀 더 돌려야 되나?”
케빈이 오랜만에 행복한 얼굴로 와인을 따고 있는 모습을 보던 시우는, 아무래도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저기, 케빈 형.”
“왜?”
“형이 오프너 돌릴 때마다 와인 병 입구 안쪽 유리…… 갈리고 있어.”
“…….”
“그만 돌려. 와인에 유리 가루 띄워서 먹고 싶은 거 아니면.”
“……쉿트!”
화들짝 놀라 케빈은 오프너에서 손을 뗐다.
케빈이 병 입구 안쪽을 살펴보자 시우의 말대로 미세한 가루가 나오고 있었다.
“뭐, 뭐가 잘못된 거지?”
시우는 연어를 내려놓고, 와인 병 앞으로 갔다.
‘여기저기 내 손이 안 가는 곳이 없다니까~’
“형, 잘 봐. 돌릴 때 약간 요령이 필요한 거 같아.”
어린 시우가 셔츠 팔소매를 걷고 와인 오프너를 잡는 모습에서, 예고도 없이 무심하게 어른미가 뿜어져 나왔다.
케빈은 왠지 모르게 시우로부터 믿음직한 고수의 향기를 느꼈다.
시우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오프너와 병을 두 손에 쥐고 힘을 넣는 찰나.
따악-!
TV에서 배트가 공을 때리는 호쾌한 소리가 들렸다.
해설자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
식탁에 서 있던 시우와 케빈은 동시에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야구공이 밤하늘을 날아, 관중석 상단에 시원스럽게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시우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홈런 타구를 구경하느라, 케빈과 똑같이 유리를 갈고 있던 시우는 오프너를 놓고 소파로 갔다.
한국의 이모부로부터 온 전화였다.
“네~”
태우는 인사도 없이,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우야. 혹시 한국 기사 봤어?]“무슨 기사요? 저 지금 야구 보고 있는데요.”
[지호랑 정민교 영상이 올라왔어!]“정민교요?”
[지호 나온 BSR31에서 민트색 머리 한…….]“아, 배추 머…… 아니. 지호한테 걸려 넘어진 그 사람요?”
* * *
시우는 케빈과 나란히 앉아 한국 포털로 들어간 뒤 기사를 찾아 읽었다.
연예란에서 많이 본 기사 1위부터 5위까지가 전부 K4 정민교 관련 기사였다.
[오디션 프로 BSR31의 충격적인 진실! 익명의 스태프 촬영 영상 일파만파!> [데뷔 앞둔 K4 대형 악재! 리더 겸 센터 정민교 인성 논란!> [BSR 엔터테인먼트 사실 확인 중. 공식 SNS는 팬들 항의에 침묵으로 일관>난리도 아니었다.
시우는 우선 익명의 스태프가 여러 기자들에게 뿌렸다는 문제의 영상을 확인했다.
BSR31 생방 무대 당일.
채널 XTV 사옥 대기실.
휴대폰 카메라로 몰래 찍었는지 소파 팔걸이가 영상의 하단 1/3을 가리고 있었지만, 나머지 2/3 부분에는 대기실의 생생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영상 첫 부분부터 시우는 머릿속에서 핀이 하나 뽑히는 기분을 느꼈다.
지호가 억울한 얼굴로 울음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촬영자가 지호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상찮다는 생각에 촬영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런 지호 앞에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민트 머리 민교가 보였다.
민교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지호를 향해 타이르듯 말했다.
[지호야. 너랑 나랑 동선 바꿀까 하다가. 이미 전체 연습도 다 끝났으니까, 괜히 우리끼리 무리수 두지 말고 그냥 원래대로 하자고 했잖아. 다른 멤버들한테 혼란 줄 수도 있다고.]지호는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친 다음 다시 얼굴을 들고 말했다.
[……형이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이때, 민교가 갑자기 주위를 슥 둘러본다.
시우와 케빈은 무서우리만치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런 민교의 행동을 초고화질 영상을 통해 낱낱이 보고 있었다.
민교는 거들먹거리는 눈빛으로 지호의 어깨에 한 팔을 올렸다.
지호와 민교의 몸 각도가 틀어지면서, 영상에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 찍히게 됐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말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그 상황 속에서-
민교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말했잖아. 이 새끼야.]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짓누르는 강압적인 음성-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지호의 뒷목을 민교가 손으로 꽉 잡는 광경이 보였다.
민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억지 부리지 말고 떨어졌으면 그냥 얌전히 꺼져. 남의 밥그릇 탐내지 말고. 넌 어차피 일 안 해도 평생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잖아? 형은 그렇지가 않아요. 이거 떨어지면 바로 군대 가야 돼. 갔다 나오면 할 게 없어.]영상을 끝까지 본 시우와 케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시우가 입을 열었다.
“형. 나 스케줄 비는 날 언제야? 한국 좀 다녀와야겠어.”
* * *
– 대박. 진짜. BSR31은 오디션 프로가 아니라 반전 호러 영화였네.
– 와 정민교 되게 착하고 열심히 사는 애 같았는데 인성 ㅎㄷㄷㄷㄷㄷ
– 말투 봐라. 많이 놀아 본 듯. 욕할 때 겁나 찰짐
– 민교야. K4 다른 멤버들한테 피해 그만 주고 알아서 나와라. 그리고 유지호 다시 데려와야 할 듯.
– 정민교 계속 1등했는데 밑에서 지호 순위 무섭게 치고 올라오니까 눈에 뵈는 게 없었나 보다…… 와…… 나 그런 줄도 모르고 지호 욕 엄청 했는데 ㅠㅠㅠㅠ
– 내가 소름 끼치는 기사 주소 하나 찍어 줄게. [K4 리더 정민교. K4 공식 SNS 통해 입장 표명. “지호에 대한 악감정 전혀 없어요. 지호 응원 부탁드려요.”>
– 민교야…… 누나가 진짜 네 팬이었는데…… 믿을 수가 없다……. ㅜㅜㅜㅜㅜㅜㅜ
– 빠르게 손절하자. 이런 애들 아이돌 돼서 성공하면 큰 사고 친다.
– 영상 끝에 지호 누나 찬스랑 친구 찬스는 무슨 소리? 집 잘 사나?
– 그러고 보면 지호가 잘 자란 도련님 분위기에 오디션 때 인성도 착했는데…… ㅠㅠㅠㅠ 설마 정민교가 저런 녀석일 줄이야…….
– 지금 말했잖아 이 ㅅㄲ야…… 말투 무서워서 손 떨림
– BSR 엔터는 진짜 다 몰랐나? 아니면 알면서도 돈 되는 애니까 그냥 무시하고 간 건가? 그럼 공범 아냐?
– BSR 공식 입장 떴음!!
[BSR “오해에서 비롯된 일, 두 연습생 모두 원래는 형제처럼 사이좋았다.> [K4 정민교 “지호와 만나서 오해 풀고 서운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할 것.>“야 이 새끼야!! 너지!! 너 맞지!!”
민교는 연습실 마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발차기가 준호의 가슴으로 향했다.
준호는 뒤로 쌩 도망가 피하면서 주변의 회사 직원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이번 일로 우리 팀 데뷔 무산되게 생겼는데!”
아니다.
데뷔를 무산시키기엔 이미 너무 많은 돈이 투자됐다는 걸 준호는 알고 있었다.
거기다 BSR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라, 채널 XTV라는 거대 방송사까지 얽힌 아주 복잡한 문제였다.
절대.
무산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쳤다고 터트렸을까.
이렇게 지금도 걸림돌인 데다, 언젠가 활동 도중에 인성 문제로 팀에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힐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양아치를 잘라 버리고.
자신들은 지호랑 똑같이 민교에게 시달린 포지션으로 동정표를 얻으면, 오히려 죄 없는 멤버들을 꼭 데뷔시켜 달라는 여론이 만들어질 것이다.
준호는 그때 대기실에서 영상을 촬영한 자신의 손에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다.
“너 맞잖아!! 네가 지호 데려오네 어쩌네 지껄였잖아!!”
“그거야 나도 홧김에 해 본 말이지! 그러게 평소에 잘 살지 그랬어! 인성은 다~ 돌아오는 거야!”
“너 내가 오늘 가만 안 놔둔다!!”
눈이 뒤집힌 민교가 최소한의 가식조차 벗어던지고 미친 황소처럼 돌진하는 그 순간.
연습실 문이 열리고 BSR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들어왔다.
“뭐 하냐! 정신 안 차려! 안 말리고 뭐 해!”
직원들은 그제야 달려들어 흥분한 민교를 뜯어 말렸다.
BSR의 대표 양재형은 야심차게 기획한 K4 프로젝트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민교는 준호가 의심스러워 때려잡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자신은 민교를 때려잡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깝게 유지호만 놓쳤잖아! 그냥 유지연 동생인 거 까고 무슨 일이 있어도 데뷔시켰어야 했는데!’
그냥 둬도 1, 2위로 충분히 합격할 거 같아서, 차라리 합격한 뒤에 정정당당하게 붙었다고 선전하기 위해 아껴 뒀다가 일이 틀어졌다.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멤버였는데…….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일 저녁에 시간 비워 놔!”
“왜, 왜 그러시는데요?”
눈이 돌아가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던 민교가, 대표인 재형 앞에서는 순식간에 분노를 조절했다.
혹시라도 자신을 손절할까 봐, 겁을 먹은 눈빛으로 앞으로 나온 민교는 쭈뼛대며 재형의 눈치를 살폈다.
재형은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지호가 지금 연습생으로 있는 기획사 가서…… 후우…… 거기 대표랑 지호랑 만나서…… 사과하고…… 말 맞춰야지 이 새끼야…… 너 가서 헛소리 하지 말고 무조건 지호 비위 맞춰. 알았어?”
* * *
슈 엔터테인먼트.
대표 태우는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직원이 문을 두드리고,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태우는 착잡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BSR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재형과 K4의 멤버 정민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권 대표~! 오랜만이야!”
“네. 안녕하십니까. 양 대표님.”
“어휴, 애들 다툼에 이렇게 우리가 나서야 되고…… 힘들다, 힘들어. 하하.”
양 대표는 대충 넘어가고픈 의도가 보이는 너털웃음과 함께 태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음, 애들 다툼요?”
태우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 그들에게 앉기를 권했다.
“일단 앉으시죠.”
“그럴까?”
양 대표는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소파에 몸을 앉혔다.
민교도 조금 머뭇대다 양 대표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양 대표가 물었다.
“그런데 지호는 어딨어? 지호랑 할 얘기가 참 많아~ 오해도 풀어야 하고~ 우리 민교가 동생 같은 지호랑 서운한 감정도 좀 풀고 싶다고 하고~”
태우가 말했다.
“아, 지호한테는 약속 시간을 내일 저녁이라고 알려 줬어요. 우선 지호 없이 얘기를 들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지호 대신…….”
똑똑똑-!
“들어와.”
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는, 싸늘한 냉기를 풀풀 풍기는 시우가 서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