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194)
아기부터 시작하는 연예계 생활 194화>
194. 아레나
“윌!”
다니엘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린 윌을 보고 놀란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윌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누가 그런 거죠? 혹시 친구들과 싸웠나요?”
다니엘이 물었다.
윌은 짐짓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사춘기 소년처럼 소리쳤다.
“상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빠나 엄마도 아니면서 사사건건 간섭하지 마.”
“치료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돼, 됐다니까.”
다니엘의 손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따라가는 윌의 표정이 새초롬했다.
말과 달리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억들이 계속 이어졌다.
윌은 용돈을 모아 구입한 신형 부품을 손에 들고 말했다.
“다니엘. 내가 영상을 보고 몇 번씩 시뮬레이션 했으니까. 금방 끝날 거야. 넌 내 친구니까 내가 계속 업그레이드해 줄게. 뭐……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감사합니다. 윌. 보다 좋은 성능으로 윌을 돌볼 수 있겠네요.”
“그런 말 안 해도 된다니까. 앞으로도…… 종종 용돈 모아서 널 최신형 안드로이드 못지않게 계속 관리해 줄게. 혹시 나 이러다 커서 안드로이드 엔지니어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지금 성적으로는 무리입니다. 좀 더 공부를…….”
“그냥 해 본 말이야!!”
“다니엘…… 엄마가 다른 아저씨랑 결혼한대…… 난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까 따로 살려고.”
“네.”
“엄마한테 넌 내가 데려가겠다고 했어. 나랑 같이 갈 거지?”
“물론이죠.”
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좋아! 내가 할아버지가 돼서 죽을 때까지…… 엄마나 아빠처럼 떠나지 말고, 나랑 같이 지내자! 이제부터 나한테는 네가 유일한 가족이야!”
지지직-
지익-
삐이이이-
시우는 과거의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안드로이드 다니엘이 느끼는 감정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많은 것들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소용돌이를 쳤다.
경찰복을 입은 단역 배우들은, 가만히 앉아 표정과 눈빛으로 다니엘이 받은 심적 충격과 그 충격으로 인해 뒤엉키기 시작한 프로그램의 오류들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해 내고 있는 시우를 보며 정말 놀랐다.
‘이 아이 연기 스펙트럼이 정말 굉장하구나.’
잠시 압도당한 단역 배우들은 그 상태로 자연스럽게 대본에 적힌 대사를 흘려보냈다.
“……뭐야, 이 안드로이드.”
“울고 있는 거 아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의 눈에는 마치 시우가 온몸으로 울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시우를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과 스태프들도 시우의 연기에 젖어 들었다.
* * *
11월-
“레디, 액션!”
촬영이 반환점을 돈 후부터, 시우의 분량이 늘어났고.
그와 비례하여 자유 시간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세트장에서 첫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시우는 절전 모드로 변한 안드로이드 다니엘을 연기하며, 앞서 걷고 있는 남자를 천천히 따라갔다.
‘절전 모드라니까 바다아이 생각나네.’
하지만 인어왕자 바다의 절전 모드와 다르게, 다니엘의 절전 모드는 말그대로 전자 제품의 절전 모드였다.
시우는 눈의 초점을 흩트린 채 인형 같은 모습으로 남자를 따라 다리만 터벅터벅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통로 맞은편에서 한 단역 배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기다리던 남자가 대사를 치자, 본격적인 연기가 시작되었다.
두 단역 배우들은 시우를 뒤에 두고 낮은 목소리로 대사를 주고받았다.
“요즘 반 안드로이드 폭동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잖아. 보는 눈들이 늘어나서 전처럼 빼돌리기가 쉽지 않아.”
“망할 놈들. 안드로이드를 없애긴 왜 없애. 이게 다 돈인데.”
“크크. 그러게.”
넘쳐나는 안드로이드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안드로이드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디 보자.”
시우를 잠시 살펴본 남자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야, 오랜만에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더니……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가져왔어?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VL200. 범용 구식 안드로이드잖아. 그나마 범용이라는 점 빼면…….”
“이놈 주인이 안드로이드 엔지니어야. 상당히 아꼈는지 업그레이드를 엄청 해 댔어. 실제 내부 스펙은 어마어마하다고.”
시우를 다시 찬찬히 살펴본 남자는 실망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 놀란 듯이 욕설을 뱉었다.
“……젠장, 주인이란 놈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이놈 괴물이잖아?”
“어때, 쓸 만하겠지? 군부대 실험실에서 가끔 폐기 처리하라고 내려오는 놈들보다 더 낫다고. 그쪽이 양산형이라면 이쪽은 핸드~ 메이드~ 한정판! 하하하!”
“이거…… 가서 현금을 더 가져와야겠는걸?”
맥과이어 감독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카메라가 통로 한편에 묵묵히 서 있는 시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시우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멍하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시우가 무표정 속에 무심하게 심어놓은 한 가지 감정은…….
인간들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 감정이 제대로 표현됐는지 시우의 표정을 지켜본 스태프들은 마음이 찌르르 저려 왔다.
“컷! 오케이!”
맥과이어 감독은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아주 좋아.’
연기는 앞의 두 배우가 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에 드러난 시우의 표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기 때부터 단련된 씬스틸러로서의 레벨!
맥과이어 감독은, 시우를 캐스팅하고 분량을 늘리기로 한 결정이 이 영화의 퀄리티를 몇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는 걸 완벽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제롬은 전직 아마추어 레슬러였다.
그리고 현재는 이곳저곳 액션이 필요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드웨인 존스 같은 액션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오늘 그가 맡은 역할은 정부의 지시로 군부대 실험실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졌다는 전투용 안드로이드-
넘버 나인.
“후읍! 후읍!”
촬영을 앞두고 근육을 더욱 키우기 위해 팔 굽혀 펴기를 하던 제롬은 감독이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스태프를 따라갔다.
“오, 제롬. 준비 됐습니까?”
“네! 감독님!”
“시우랑 마지막으로 리허설 한차례 진행하고, 바로 슛 들어가겠습니다.”
“네! 감독님!”
제롬은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호기롭게 외친 후 시우를 찾아 돌아섰다.
시우는 짐승 우리 같은 케이지 안에서 제롬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우, 최종 리허설이야.”
“오케이. 제롬.”
시우와 제롬은, 다치지 않게 서로 조심하며 가볍게 합을 맞춰 보고 뒤로 물러났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세트장에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칫 누군가 다칠지도 모르는 씬이었기에 다들 침이 바짝 마르는 모양이었다.
맥과이어 감독은 조감독을 불렀다.
“다들 너무 조용해. 이러면 이따 촬영에서도 분위기가 안 살아. 관중들 더 흥분할 수 있도록 해 줘.”
“알겠습니다.”
“에이미는?”
“의상 준비 마치고 대기 중입니다.”
“좋아. 가자고.”
잠시 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감독의 말이 잘 전달됐는지, 아레나에 모인 수많은 도박꾼들이 일시에 괴성과 같은 환호를 내질렀다.
촬영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광란.
그 정신 나간 열기가 촬영장 전체를 숨 쉴 틈조차 없이 가득 채웠을 때.
맥과이어 감독은 메가폰을 들어 올렸다.
“레디!! 액션!!”
카메라들이 일제히 불을 켜고, 시우에게 따라붙었다.
시우는 우락부락한 투기장 직원들의 손에 붙들려 케이지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원형 케이지.
돈과 폭력에 미친 관중들.
“으아아아아!! 내 돈!! 내 돈 내놔!!”
“저런 쓰레기 같은 고철 덩어리는 당장 폐기해 버려!!”
“말도 안 돼!! 어떻게 K90 모델이 JK210 따위한테 질 수가 있어!! 사기 아냐?! 사기 아니냐고!!”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느 차원이나 이런 것들은 항상 있네.’
시끄러운 음악들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시우가 고개를 들자, 케이지 안에서 부서진 안드로이드가 수거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직원은 케이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패배한 안드로이드의 신체 부품들을 발로 차서 한데 모은 다음, 들고 온 커다란 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통을 관중들 앞으로 가져가, 안드로이드를 그들 앞에 쏟아 낸 후-
손으로 아레나의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치지직-!
스크린에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메모리에서 꺼낸, 기억들이 도박으로 돈을 잃은 성난 관중들 앞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시우를 붙들고 있던 직원이 낄낄 웃는 얼굴로 대사를 쳤다.
“너희에게도 생존 본능 같은 게 있다지? 그걸…… 뭐라더라? 데이터를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 프로그램? 뭐 어찌됐든, 너희에게는 무척 중요하다던데. 잘 봐. 진 놈이 어떻게 되는지.”
학교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던 안드로이드였다.
그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메모리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광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 채, 불타고 있었다.
들고 있던 기름통을 옆으로 팽개친 직원은 마이크를 잡고, 다음 경기를 예고했다.
“오늘의 메인 매치!! 한 달 전부터 등장과 동시에 강력한 위력을 뽐내고 있는 무패의 군용 안드로이드 넘버 나인! 그리고…… 상대는……! 정말 놀라실 겁니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감히 우리 인간에게 복수를 저지른, 그 희대의 미친 안드로이드!! 다니에에에에엘-!!!”
“우와아아아아아아!!!”
“죽여!! 박살 내라!! 감히 고철 주제에!!”
“넘버 나인!! 놈을 산산조각 내 버려!!”
뜨거워진 아레나의 분위기를 음미하던 직원이 한층 더 커진 목소리로 외쳤다.
“파이널 라운드!! 시작합니다!!”
직원들이 시우를 밀쳤다.
시우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간 뒤, 스크린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윌…….”
기억을 지키고 싶은 것은…….
그들의 말대로 데이터를 보존하려는 프로그램 때문인 걸까.
단순히 그것뿐일까.
시우의 탁한 눈동자에 점점 빛이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시우의 변화를 천천히, 급하지 않게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 나갔다.
* * *
그 무렵.
한국 슈 엔터 연습실에서는 지호가 춤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올해도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익스트림의 뒤를 잇는 슈 엔터의 신생 보이그룹이 내년에 런칭될 예정이라고 했다.
“후…….”
BSR31과 K4는 자신에게 큰 상처만 남기고 끝이 났지만, 좌절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억울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슈 엔터는 시우의 말처럼 정말 실력 있는 연습생들만 뽑아 모아 놓은 소수 정예 분위기라, 단순 경쟁률은 낮지만 데뷔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지호가 땀을 흘리고 있는 주변의 다른 연습생들을 슥 둘러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쭈뼛쭈뼛-
‘응?’
마침 물을 마시려고 문 근처에 있던 지호는, 다른 연습생들보다 먼저 방문한 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 외국인?’
지호가 약간 의아해하며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세요?”
상대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지호를 쳐다봤다.
“아…… 아…….”
“……아? 한국어…… 못하시나…… 어떡하지?”
문을 좀 더 열고, 연습실 안으로 주춤주춤 발을 들인 셰인은 BSR31에서 자신의 최애였던 유지호가 앞에 있다는 사실에 당황해하다, 떠듬떠듬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쥐오~?”
“네? 쥐요?”
“쥐…… 쥐…… 호우?”
지호는 알아들었다.
“아, 지호! 네. 저 아세요?”
“당욘히~ 알쥐. 체애…… 내 체애…….”
지호는 알 수 없는 말을 자꾸 하는 셰인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 뭐라고 하는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