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07)
207. 밥 감독
시우의 시린 눈빛이 오디션장에 있는 모두와, 카메라 너머에 있는 시청자들까지 단숨에 꿰뚫었다.
사방이 숨을 죽인 그때-
시우가 냉혹한 얼굴로 보이지 않는 검을 내리쳤다.
휘익!
전생에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적을 베었던 시우였기에, 검을 내리긋는 단순한 동작조차도 범상치가 않았다.
검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동작이 깔끔하면서 날카로웠다.
심사위원석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의 손이 움찔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검날이 자신의 살갗을 베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등허리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왔다.
순식간에 좌중을 압도해 버린 시우는 휘두른 검을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괴롭게 움켜쥐듯 가렸다.
그 손의 움직임은 묘하게 느릿느릿하여, 유리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스로의 얼굴을 덮은 시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시우는 떨리는 손끝으로 자신의 얼굴에 튄 핏방울을 쓸어내리는 연기를 보여 주고, 그 손을 꽉 말아 쥔 다음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손에 잠시 가려져 있던 시우의 핏기가 사라진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달빛이 내려앉은 듯이 아름다운 그 얼굴이,
부서질 듯 위태롭게-
울음을 참듯이-
억지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흡에서부터 연기가 시작된다던 이홍균 감독의 말과 같이 시우의 숨소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거칠어졌다.
뒤이어 눈동자가 흔들리고, 웃으려 애쓰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시우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놈들이 나를 임금으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내가 이 나라의 임금이란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무겁게 가라앉는 시우의 목소리.
그 속에 담긴 허무함, 무언가에 대한 허기짐이 시우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으로 묵직하게 파고 들어왔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우의 강렬한 연기에 오디션 참가자들이 미동도 없이 눈만 크게 뜨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시우의 눈가가 씰룩이더니, 이내 커다란 웃음소리가 오디션장에 울려 퍼졌다.
“하, 하하……! 하하하하-!!!”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시우는 배를 부여잡고 과장되게, 숨이 넘어갈 듯이 웃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목이 터져라 웃던 시우가 오디션 참가자들을 향해 외쳤다.
시우의 손이 심사위원석을 거칠게 손가락질하는 중이었다.
“이, 이놈들…… 하하, 하하하! 다 죽어 널브러진 것 좀 보거라! 아주 우습지 않느냐! 어리석은 역적 놈들! 이런들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다더냐! 하늘이 뒤집어지기라도 한다더냐! 아니! 아니지…… 아니고 말고…….”
시우의 웃음소리가 차차 잦아들었다.
“다들 눈을 뜨고 지켜보도록 해라…… 내가 이놈들을 찾아내 모조리 불태워 죽이고…… 이 나라의 임금이 누구인지…… 하하…… 하…….”
괴로울 정도로 웃고 웃던 시우의 눈가가 붉어지는가 싶더니, 왼쪽 눈에서 작은 눈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오디션장은 고요했다.
연기가 끝났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모두가 입을 벌리고 무대 중앙에 선 시우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시우는 시선을 움직여 심사위원들과 스태프들, 참가자들과 카메라를 스윽 확인한 뒤 슬레이트를 치듯 손뼉을 짝 부딪쳤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손가락을 들어 왼쪽 뺨에 흐른 눈물방울을 슬쩍 닦아 낸 시우는 조금 멋쩍은 미소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다, 다 했어요~ 되게 부끄럽네요…….”
순식간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시우를 향해, 넋을 잃고 있던 참가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 온몸으로 연기해야 한다는 이홍균 감독의 말이 이제야 피부에 와닿았다.
살아 있는 진짜 연기를 봤다.
한순간 작품 속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시우는 박수를 치는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조용-
박수 소리가 끝나자 다시 오디션장이 적막에 빠졌다.
꿀꺽-
심사위원석의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짝짝짝-
이홍균 감독의 뒤늦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뻥 뚫리네! 이거지! 내가 말한 연기가 바로 이런 거야. 자, 다음은 누구니…… 성규?”
성규의 머리가 이홍균 감독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쿵!
성규는 당황한 나머지 무릎으로 테이블을 찍었다.
“으윽! 아, 아니…… 다음 나야? 그렇지. 나구나.”
이 연기 다음에, 시우와 같은 연기를 해야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사극에서 천민 연기 전문인데.’
성규는 넉살 좋게 입을 열었다.
“우리 연기 배틀하기로 한 거잖아. 오케이. 내가 졌다! 기권!”
“……네?”
시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을 때, 성규의 의도를 눈치챈 재호가 뒤질세라 재빨리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솔직히 이 연기 다음에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하냐. 나도 기권. 이홍균 감독님 판정까지 갈 것도 없어. 시우야. 네가 최고다.”
재호는 보란 듯이 엄지손가락을 카메라와 시우에게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유리는 후배들의 행동이 재밌어 놀리는 투로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언제는 연기하라는데 빼면 배우 아니라며?”
성규는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
“예전에 신일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연기를 60년 넘게 했는데도 배우가 되려면 아직 먼 것 같다고…… 저희도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 기회에 시우랑 붙어서 이길만한 연기 준비되면 그때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우 오늘만 출연하고 다음부터는 안 나오는데, 어떻게 붙으려고?”
“네. 그러니까요.”
“……응?”
예능감을 발휘해 일단 도망간다는 식으로 말은 하고 있었지만, 시우의 연기에 자극을 받은 성규와 재호는 다음에 멘토로서 참가자들에게 보여 줄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연기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우는 두 배우의 눈 속에서 능청스러움 밑에 깔린 열정을 느끼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 * *
밥 감독은 멍한 표정으로 광고를 보고 있었다.
TV에 등장한 남자는 씩 웃는 얼굴로 자신의 금니를 드러내 보이며,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뱉었다.
[야, 들어 봐. 영어 잘하고 싶지? 영어 진짜 잘하고 싶지? 열심히 해도 잘 안 되지? 너의 잘못이 아니야……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된 거야. 네가 게을러서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야!! 아니라고!! 선생이 게으른 거야…… 지금 당장 모두영어를 검색해 봐. 넌 곧 영어로 프리스타일 랩을 하게 될 거야.]뭔가 정신없는 광고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밥 감독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밥 감독은 방금 전에 본 시우의 연기를 떠올렸다.
충격적이었다.
그토록 엄청난 카리스마라니.
한국의 사극이라는 낯선 장르의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물결치듯 작은 TV를 통해 이곳까지 전해져 왔다.
시우가 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취할 때는, 얼음을 그대로 삼킨 듯 가슴이 서늘해졌고.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릴 때는 그 기세에 눌려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는…… 아니, 시우 윤은…… 에반이나 폴트의 주인공 같은 학생 연기에 특화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밥 감독의 중얼거림을 들은 옆자리의 뉴 노멀 시네마 직원이 입을 열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연기들을 워낙 잘해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현재 개봉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서 안드로이드 연기도 정말 영혼을 갈아 넣은 것처럼 소화해 냈고…….”
“아까 그 연기처럼 말인가?”
뉴 노멀 시네마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시우 윤을 배우로서 깊이 신뢰하는 이유입니다.”
“…….”
밥 감독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두근두근-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갑작스럽게 연기 요청을 받고도 저런 연기를 보여 주는데…….
자신들의 작품에 출연하더라도 열정이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니…….
트래비스 대표의 장담대로 시우 윤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배우였다.
밥 감독은 홀린 듯 휴대폰을 들고, 미국에 있는 트래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틀렸습니다.”
[……다짜고짜 뭐가 틀렸다는 거죠? 불길하니까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당신이 옳았어요! 시우 윤은 굉장한 배우입니다!”
[오~ 그거야 제가 늘 하는 말이었죠. 그런데 미팅은 내일 아닙니까? 벌써 만났나요?]“아뇨.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알게 됐습니다. 시우 윤은 정말 엄청난 집중력과 표현력을 가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말문이 터진 밥 감독은 흥분한 목소리로 다다다 이야기를 쏟아 냈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트래비스는 좀 전에 공항에서 서울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이 감독이 왜 이러나 싶어 당황했다.
[……오케이. 진정해요. 그럼 시우 윤을 캐스팅하는 건에 대한 신중론은 이제 집어치워도 되는 건가요?]“구겨서 쓰레기통에 내다 버려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우 윤을 캐스팅해야 해요. 시우 윤 캐스팅에 우리 영화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하하. 아니, 바비. 그건 제 판단이었던 거 같은데.]“하하하. 어찌 됐든. 반드시 결과를 내고 돌아가겠습니다.”
어색한 웃음 끝에 밥 감독은 전화를 끊고, TV 스크린을 꾹꾹 눌렀다.
시우의 연기를 돌려 볼 요량이었다.
뉴 노멀 시네마 직원이 그런 밥 감독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비, 터치스크린이 아닌 거 같아요.”
밥 감독은 머쓱하게 스크린 옆에 붙은 조작 버튼을 눌러 시우의 사극 연기를 다시 재생시켰다.
몇 번을 봐도, 밥 감독과 직원은 시우의 연기에서 전해지는 오싹한 소름을 지울 수가 없었다.
– ㅠㅠㅠㅠㅠㅠ 시우야…… 당장 이홍균 감독님이랑 사극하러 가자……!
– 왕의 길 때 삼베옷 입고 뛰어다니던 모습도 너무 귀여웠는데 ㅠㅠ 그러고 보면 그때도 미래의 왕이었지
– 우리 시우는~ 왕이 될 상이로다~
– 사극 연기는 일반 연기랑 달라서 쉽지 않은데 발성도 그렇고 진짜 연기 잘한다…….
– 소속사 일 안하냐? 사극 왜 안 하는 거야 ㅜㅜ 이렇게 잘하는데 왜 그런 거야 왜!!
– 우리 집 강아지가 시우 연기보다 갑자기 낑낑대며 도망가더라…… 우연이겠지?
– 동물도 알아보는 연기력 ㄷㄷㄷㄷㄷㄷ 지렸다
– 내 눈에만 칼 보였냐?
– 나도 보였음 몇 번 돌려 봤는데 계속 보였음 ㅎㄷㄷ
– 시우가 팔을 늘어뜨렸을 때는 칼이 바닥에 끌리는 것까지 보이더라
– 난 내가 베이는 느낌이었음
– ㅋㅋㅋ 전생에 죄를 많이 졌나 봄?
– 시우 갑자기 웃을 때 너무 놀랐는데 눈물 떨어지는 거 보고 울컥했다
– [윤시우 보고 넋 나간 최유나 움짤> 저도 이러고 봤어요 ㅠㅠ
* * *
다음 날.
시우는 슈 엔터 사무실에 도착해, 대본 탑을 살펴보고 있었다.
태우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시우, 그 방송 나간 후로 사극 캐스팅 문의가 엄청 들어와.”
“그래요?”
“그럼~ 와, 사극 연기도 그렇게 잘할 줄은 이모부도 미처 몰랐다. 완전히 스타일이 다른 연기인데 말이야. 혹시 언제 연습 같은 거 해 봤어?”
딱히…… 해 본 적은 없는데…….
“많이 봐서 그렇죠 뭐~”
시우는 해맑게 웃고는 돌아섰다.
그때, 사무실 직원이 달려와 말했다.
“바비 헨드릭스 감독님과 뉴 노멀 시네마 직원분들 도착하셨습니다.”
태우와 케빈, 시우는 진지해진 얼굴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으로 밥 감독이 들어왔다.
“시우!”
밥 감독은 시우를 발견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시우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에 시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밥 감독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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