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11)
211. 진실
“으아악-!!”
젊은 남자의 비명이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얼마 전, 친구들과 브루클린의 한 식당 앞에서 웨이터용 안드로이드를 집단으로 짓밟아 때려 부순 그는 이번에는 반대로 사냥감의 입장이 되었다.
관객들은 남자의 뒤를 암살자처럼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뒤쫓는 시우를 보고, 오한을 느꼈다.
분명 지금까지 자신들이 봐온 친절한 안드로이드 다니엘과 다를 게 없는 얼굴과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차갑고 소름이 끼쳤다.
정확히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뚜렷하게 대답할 말이 없었지만, 연기가 뭔가 달랐다.
몇몇 관객들은 시우의 눈빛에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자신의 두 팔을 쓸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남자를 붙잡은 시우는 짧고 강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Kill Them All-”
그리고 가차 없이 남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안드로이드에게 저지른 것과 똑같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필요에 의해 쓰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폐기되고 공격당하는 모든 안드로이드를 대변하듯-
시우는 입을 살짝 다문 채로,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손을 움직였다.
남자의 얼굴이 깨지고, 정신없이 미안하다고 외치던 남자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남자가 의식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시우의 몸에서 뻗어 나온 살 떨리는 기운들이 스크린을 뚫고 관객들에게까지 공포심을 전달했다.
관객들은 차분하고 정적인 표정 뒤로, 폭력성을 폭발시키고 있는 시우의 연기에 홀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었다.
관객들의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지금까지는 시우와 로건에게 이입해, 애꿎게 공격당하는 안드로이드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만약 안드로이드가 저렇게 어떤 이유든 간에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한다면?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안드로이드 다니엘과, 지금 스크린 속에 있는 다니엘의 얼굴을 한 살상용 안드로이드의 모습이…….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거짓말처럼 겹쳐 보였다.
결국은 안드로이드가 아닌가.
윌과 다니엘의 따뜻한 교감을 통해 잠시 외면하고 있던 안드로이드 포비아가 관객들의 뇌리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무섭다.
에어컨이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상영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객들의 혼란과 긴장이 절정에 다다를 쯤, 밤이었던 영화 속 시간대가 환한 낮으로 바뀌고.
반 안드로이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하늘로 솟구친 수많은 주먹들이 카메라에 비쳤다.
그들은 땅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주먹을 쳐들며 외쳤다.
“Kill Them All-!!!”
안드로이드를 전부 죽여라.
우리에게 직장을 돌려 달라.
안드로이드 제조사인 퀸시를 파괴하고, 안드로이드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을 끌어내려라.
쿵-! 쿵-! 쿵-!
마치 군인들처럼 행군하는 시위대의 앞을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긴 대치가 이어지다 해산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 무렵,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시위대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공격했다!!”
그 외침은 폭동과 약탈의 기폭제가 되었다.
안드로이드 보호법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주인공 윌의 이야기를 지나, 다니엘을 잡으러 경찰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씬이 펼쳐졌다.
“다니엘!! 당장 도망가!! 잡히면 끝이야!!”
시우는 만들던 트러플 오일 파스타를 퉁 내려놓고,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
집의 입구는 경찰들이 막고 있고, 비상계단 쪽에도 경찰이 있을 확률이 높고.
밖으로 그냥 뛰어내리긴 너무 높고.
그렇다면?
급박한 상황 속에서 탈출로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던 시우가, 화려한 디자인의 보드 한 대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메모리에서 흐릿하게 누군가 자신에게 보드를 가르치는 듯한 영상이 스쳤다.
어린 윌이 다니엘에게 플라이보드를 태워 주는 기억이었으나, 아직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다니엘은 영상을 제대로 판독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다 보드 위로 올랐다.
“윌, 창문으로 나가도 될까요?”
“그런 거 따질 때야?! 가!”
시우는 고층 아파트 창을 통해 바깥으로 몸을 내던졌다.
CG 타임이었다.
시우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속도감 있게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입체적인 영상과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에 관객들은 자신들이 직접 스카이다이빙하는 기분을 느끼며, 한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미래의 뉴욕이 아름답게 상영관 사방에 설치된 스크린을 가득 수놓았다.
영화를 본 이들이 빼놓지 않고 꼽는 명장면 중의 하나였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서 다이빙을 한 시우는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윌과 같은 라인에 살던 한 할머니가 창밖을 보며 티타임을 즐기다, 사람 형체의 뭔가가 밑으로 휙 떨어지는 것을 보고…….
“…….”
놀라 멍하니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카펫 위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한 템포 늦은 비명-
“아아아악-!”
할리와트와 드래곤의 알에서 웨스트우드 교장 역으로 출연했던 할머니 배우의 시우를 위한 우정 출연이었다.
할머니는 주름이 진 손을 양쪽 뺨에 대고 귀엽게 “악! 악! 악!” 비명을 세 차례 더 내지른 뒤, 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그리고 911을 누르는 그 순간-
창밖에서 뭔가가 위로 휙 솟구쳐 올라가는 광경이 보였다.
미래의 뉴욕을 배경으로 화려한 보드를 탄 시우가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멋진 자세로 보드를 컨트롤하며, 잠시 허공에 멈춰 선 시우는 문득 창문 안쪽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하고 안심하시라는 듯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보냈다.
그 후, 시우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뉴욕의 하늘 위로 날아갔다.
멀어지는 시우를 보던 할머니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쯧쯧 혀를 찼다.
“요, 요즘 젊은 것들이란……!”
* * *
안드로이드 폐기장-
안드로이드 부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곳에서, 다니엘은 눈을 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꼭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생생했다.
망각이란 단어를 모르는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일까.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인간처럼 눈을 깜빡이는 시우의 눈동자 위로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스쳤다.
웃음도 화도, 눈물도…… 인간의 감정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흘러나오는지 모든 답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었다.
상대가 날 위해 무언가를 해 줬을 때는 웃는다.
기쁘게.
올바르지 않은 일을 당하거나 공평하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는 화를 낸다.
얼굴을 일끄러뜨리고.
[이렇게.]시우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관객들은 감정을 하나하나 학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시우를 보며,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함과…… 가슴 한편의 공포를 느꼈다.
엔지니어인 윌이 공들여 최고의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시켜가며, 오랜 시간 같이 웃고 운 그 안드로이드가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있었다.
아레나에서 내키지 않는 싸움을 하며 배운 고통과 광기.
더러운 욕심.
돈에 대한 집착.
생명에 대한…… 멸시.
[지금은? 지금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다니엘의 생각들이 시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들려왔다.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시우의 얼굴을 주시하는 동안, 시우의 얼굴 근육이 조금씩 변해 갔다.
그 표정은-
폐기장에서 몸을 일으킨 시우가 주위를 둘러봤다.
안드로이드의 부서진 팔다리와 머리가 보였다.
만약 아레나에서 폐기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숨어 극적으로 탈출하지 못했다면, 그도 이렇게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것이다.
아니, 쓰레기‘처럼’이 아니다.
기동을 멈춘 모든 안드로이드는 인간들에게 실제로 쓰레기니까.
“아…… 아아…….”
안드로이드 잔해 속에서 시우는 목소리를 냈다.
차츰차츰 그 소리는 인간의 울음소리와 같아졌다.
관객들은 무미건조하게 울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시우의 모습에 마음이 저려 왔다.
격하지 않은 그 침착한 연기가…….
오히려 더욱 슬프게, 관객들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영화는 후반에 접어들면서 긴장감을 더해 갔다.
다니엘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던 윌이 뛰어난 엔지니어 동료들과 힘을 모아, 인간을 공격한 범인이 다니엘을 흉내 낸 군용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후 증거를 찾아내는 과정들이 첩보 영화처럼 화려하고 속도감 넘치게 전개되었다.
시우가 뉴욕의 빌딩숲 사이에서 보여준 보드 추격씬에 이은 또 다른 명장면.
미래형 자동차들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추격씬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졌다.
지석과 수현은 다른 관객들과 같이 거칠게 흔들리는 상영관 좌석 위에서,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추격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파아앗-!
차가 이곳저곳에 미친 듯이 충돌을 했고, 의자가 앞으로 기울이지며 상영관 바닥이 무너질 때는 모든 관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관객들의 혼을 싹 빼놓은 추격씬은 윌이 탄 자동차가 어린 학생들이 탄 버스를 피하려다 건물 외벽에 충돌하면서 끝이 났다.
“크윽…… 젠장! 빌어먹을! 어떻게든 해 봐!”
윌이 조수석에 있는 동료에게 외쳤다.
동료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이렇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뭘 할 수 있겠어!”
“답답하긴!”
“암호를 해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총소리가 들리고, 자동차 유리가 박살이 났다.
윌이 외쳤다.
“시간이 필요하면 저 놈들한테 잠깐 쉬다 쫓아오라고 부탁해 봐!”
“저 미친놈들 총을 막 쏴 대네! 우리가 찾긴 제대로 찾은 모양이야!”
축배를 들 여유가 없는 게 슬플 따름이었다.
타앙-! 타앙-!
또다시 들려온 총소리.
뒤이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윌의 동료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윌-!!”
윌의 왼쪽 팔과 가슴에서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제기랄! 나와! 뛰어야 해!”
동료는 윌을 끌고 차에서 내렸다.
윌은 동료와 같이 골목으로 뛰어들면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나 진짜 총 맞은 거야?”
“머리에도 맞고 싶지 않으면 빨리 가자! 그 녀석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윌은 약간 풀린 눈으로 두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가야한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그러면,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 텐데…….
폐기됐다고 들은 다니엘이 살아 있었다.
‘……진짜 다니엘일까. 날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지도 몰라.’
메시지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다니엘이 놈들 손에 의해 폐기되었다면, 메모리를 복제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불안했다.
함정일까 봐 불안한 게 아니라, 다니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이 기대감이 배신당할 까 봐 불안하다.
“달려…… 달려야 돼…… 이 모든 폭동을…… 전쟁을 멈춰야 해…….”
언젠가는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생존권을 두고 싸우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것은 윌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야……! 우리는 모두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알려야 해…… 헉…… 헉…….”
타앙!
윌과 함께 달리던 동료가 머리에 총을 맞고 바닥으로 푹 고꾸라졌다.
함께 오랜 시간 일하고, 부당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일에 동참해 준 친구였지만…….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윌은 괴롭게 욕설을 내뱉고,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윌의 상의는 어느새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석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수현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스크린에 못 박혀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재회-
윌도 다니엘도 영화 내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했다.
윌은 다니엘의 품에서 숨을 가늘게 내쉬고 있었다.
추운 겨울, 눈이 흩날리는 맨해튼-
모든 것이 시작된 그곳에서 한 사람과 한 안드로이드가 다시 만났다.
모여 있던 반 안드로이드 시위대는 누군가 쓰러져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삼삼오오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입이 열렸다.
“울보 윌.”
“언제적 별명을…… 부르는 거야…….”
“왜 울고 있어요.”
다니엘은 윌의 눈가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윌이 말했다.
“오해하지 말라고…… 이건…… 기뻐서 우는 거니까…….”
“뭐가 그렇게 기쁜데요.”
“네가 돌아왔잖아.”
“……난 계속 윌의 옆에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아니, 그러지 마. 내가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거야. 어릴 때 네가 내 세상을 되돌려 놓은 것처럼…… 그러니까…… 넌 이제 네 삶을 살아…….”
“윌…….”
“암호 해독은 끝났어? 그럼 이제 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줘.”
그 말과 동시에 광장의 대형 스크린에 모든 진실이 담긴 영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일제히 의아한 얼굴로 스크린 속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쳐다봤다.
다니엘은 윌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윌.”
윌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다니엘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윌이 떠난 것을 확인한 다니엘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심장 역할을 하는 기계 장치를 꺼내, 붉게 물든 윌의 가슴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반 안드로이드 시위대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로 서서히 눈을 감았다.
날아온 눈송이가 다니엘의 눈가에서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