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15)
215. 월영
시윤이는 아기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모든 아기들이 그렇겠지만, 시우가 느끼기에 시윤이는 좀 더 그런 편이었다.
거실에 내려 두면 끊임없이 바쁘게 기어 다니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탐험하곤 했다.
안전한 놀이 매트를 벗어나기 일쑤라 유치원생이던 시우는 엄마와 같이 동생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다.
엉금엉금-
철퍼덕!
그러다 자기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가끔 고꾸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바닥에 턱을 콩 부딪치고 엉엉 울었다.
“으아앙! 흐으윽! 우으으!”
시윤은 앙증맞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붙잡고 울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엄마를 지나쳐 시우에게 와서 폭 안겼다.
엄마도 좋아하지만, 형아에게 안기면 신기하게도 아픔이 싹 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땐 참 귀여웠지.’
시우는 자신의 옆자리에서 울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엉금엉금 급하게 기어 다니다 어딘가에 쿵 부딪치고 울음을 터트리던 아기가, 많이 컸다.
그래도…….
시우의 눈에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는 시윤이었다.
처음으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 시윤이 실컷 울도록 둔 뒤, 시우는 티슈를 꺼내 동생에게 건넸다.
시윤은 우느라 빨개진 얼굴로 티슈를 받아 들고는 눈물을 훔쳤다.
“크흥!”
엉엉 우느라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쓱쓱 닦고는 시윤이 퉁퉁 부은 눈으로 시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실컷 울고 나니 그제야 민망함이 밀려왔는지 시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형.”
시우는 그런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피식 웃으며 항상 시윤에게 해 주던 애정 표현을 했다.
쓱쓱-
머리를 쓰다듬는 무심한 듯 애정이 듬뿍 묻어 있는 손길에 시윤은 다시금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으며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오늘 많이 속상했구나.”
시우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눈가에 몽글몽글 맺혔다.
“……응. 내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어. 그냥…… 그냥 그동안 체육관에서 형들과 훈련할 때는 몰랐는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오늘 붙은 상대는 격투기를 배운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재능이 굉장한 사람이었다.
시윤은 강열과의 스파링을 통해 프로 격투기 선수가 된다는 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시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시우가 티슈로 눈가를 닦아 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너만 그런 게 아닌데? 나도 그렇고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선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입을 주욱 내민 시윤이 시우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형은…… 맨날 뭐든 잘 해내잖아.”
“아니야. 너도 형 밖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거 본 적 없잖아. 형도 실수하고 경험하고 미국 나가서도…… 아,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할 때가 많았어.”
시윤에게 이야기를 하던 시우는 자신이 전생에 많은 생을 살았어도, 새로운 세계에서는 항상 또 적응하고 부딪히며 배워 갔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럼 형은 이럴 때 어떻게 했어?”
“이럴 때?”
“응.”
시윤은 다시 시무룩해진 얼굴로 자신의 손을 꼼지락댔다.
시우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음……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은지. 좌절을 느끼면서도 계속 도전하고 싶은지. 그걸 생각했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시우의 말을 곱씹으며 시윤은 차츰 진정해 가고 있었다.
막연하게 멋있어 보이는 격투기를 친구들과 하겠다고 덤볐다가 여기까지 왔다.
자신은…… 격투기를 평생 하고 싶은 걸까?
오늘처럼 매번 다른 상대와 대결을 하고, 때리고 맞고 또 지게 되면 그것을 딛고 일어나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그렇게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시우의 대답은 시윤을 생각하게 했고, 자신의 미래도 그려 보게 했다.
그런 시윤의 마음을 시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동생이 너무 기특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시윤은 고개를 돌려 형을 똑바로 쳐다봤다.
시우도 눈을 맞추고 시윤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형.”
“왜?”
“나…… 좀 더 많이 생각해 볼게…….”
“그래.”
시우가 웃자, 시윤도 멋쩍게 형을 따라 웃었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그때.
꼬르륵-
시윤의 배에서 천둥처럼 큰 소리가 났다.
시우가 시윤의 배를 가만히 내려다보자, 시윤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큰소리로 외쳤다.
“피, 피자 먹으러 가자!”
시우는 피자 가게를 찾아 차를 돌렸다.
시우와 시윤의 웃음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다.
강열은 더플백을 어깨에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휴우, 그 녀석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니겠지?”
스파링 할 때는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끝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자신이 너무 많이 때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미안한 마음을 강열은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다.
“에이, 몰라. 정식으로 붙은 건데 이렇게 미안해하는 것도 예의가 아냐. 당연한 거라고~”
말없이 인도를 걷던 강열은 머리를 벅벅 긁고는 중얼거렸다.
“나중에 또 체육관 합동 훈련하면 그때 맛있는 거라도 사 주지 뭐. 애가 착하고 귀엽던…… 헉!”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강열의 눈앞에 횡단보도가 보였다.
자신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였다.
그러나 강열은 우왕좌왕하다 길가에 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올해 초에 자신을 뻥 차 버린 전 여자친구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잘 만나다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문자 한 통 보내 놓고, 자신을 차단해 버린 예의라곤 밥을 말아먹은 그 여자.
윤시우에게는 매주 팬레터를 보내면서 자신에게는 손 편지 한 번 안 써 준 그 여자.
“후우, 후우, 뭐야. 여기서 마주치냐! 어휴…… 나, 나 오늘 윤시우 봤는데…… 잘생기긴 진짜 미친 듯이 잘생겼,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 하하.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윤시우를 나는 오늘 직접…… 아…….”
소심하게 혼자 종알거리고 있는 사이 신호가 바뀌고 그 여학생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열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붙잡은 뒤, 윤시우랑 직접 인사한 썰을 전 여친 앞에서 자랑스럽게 풀고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 찌질한 일이었다.
“왜 헤어지자고 한 건지라도 좀 알려 주지…… 여전히 엄청 예쁘네…….”
가만히 숨어 있던 강열은 그녀가 완전히 길을 건너자 조심스럽게 나무 뒤에서 나왔다.
길 맞은편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전 여친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강열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사인 받아올걸. 그럼 좋아했을 텐데. 크흑. 에이 씨, 왜 눈물이 나고 난리야! 우으으…… 버릴 거면 이유라도 알려 주지…….”
두 주먹으로 자신의 눈을 꾹 누른 강열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관장님…… 우리 블랙 타이거 애들이랑 언제 또 만나요? 아뇨, 꼭 스파링 말하는 거 아니고 가끔 교류한다고 하셨잖아요. 담달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윤시윤 걔가 오늘 좀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다음에 맛있는 거라도…… 훌쩍…… 사 주려고…… 훌쩍…… 아뇨? 울긴 누가 울어요! 목, 목이 잠겨서 그래요.”
* * *
“컷! 오케이!”
정욱은 모니터링을 마치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한 원로 배우가 간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그런 정욱을 발견하고 물었다.
“또 차에 가 있으려고?”
“아, 네. 선생님.”
“좀 이렇게 스태프들이랑 얘기도 하고, 촬영장 공기도 마시고, 대사도 맞춰 보고 해야지. 어떻게 그렇게 밴에만 틀어박혀 있냐.”
“피곤해서요.”
백발이 성성한 원로 배우는 자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말을 탁 받아치는 후배의 모습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쉬어라. 피곤하면 쉬어야지.”
“네. 선생님. 그럼.”
정욱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밴으로 발을 돌렸다.
뒤에서 원로 배우의 매니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요즘 젊은 배우들 다 그러잖아요. 이해하세요.”
괜히 주연 배우 심기 건드렸다가 촬영 스케줄에 지장 생길까 봐 걱정하는 말투였다.
원로 배우는 짧게 한마디만 뱉었다.
“얼마 전엔 온 윤시우는 안 그러던데?”
멈칫.
정욱의 발걸음이 잠깐 제자리에 멈췄다가, 이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정욱의 매니저가 정욱을 달랬다.
“형이 이해하세요. 나이 든 분들이 다 그렇죠 뭐.”
“아, 됐어. 담배나 한 대 가져와. 짜증나게.”
자신의 밴 뒤로 간 정욱은 매니저와 함께 담배를 한 대 피고, 밴으로 들어갔다.
매니저가 정욱에게 말했다.
“형, 차에서 쉬세요. 필요하면 부르시고요.”
“오냐~”
차 문을 닫은 정욱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습관처럼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나 댓글을 보면 기분만 나빠진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이 짓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관련 기사들이 줄지어 펼쳐졌다.
[‘월영’ 시청률 매주 고공 행진, 경쟁작 없다> [퓨전 사극 인기 부활, 여주인공 고유빈 열연!> [고유빈과 비교되는 남주인공 정욱의 연기력 논란> [남주 미스 캐스팅 논란, 잘 나가는 월영의 옥에 티> [사극과 맞지 않는 정욱의 말투와 발성, 왜 논란이 일었을까>정욱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휴대폰을 집어던진 그는 흥분해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뭐 어쨌다고! 이 기레기들, 맨날 자극적인 기사 뽑아내려고 아주…… 건수 하나 잡으니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네! 아, 개짜증나.”
정욱은 차창을 탕탕탕 두드렸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차 문을 열었다.
“네, 형.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야. 솔직히 말해 봐.”
“뭘요?”
“내가 연기 그렇게 못하냐? 내가 이렇게 기사로 까일 정도로 연기를 못하냐고.”
매니저는 바짝 긴장을 탔다.
배우를 달래는 것도 매니저의 일이었다.
그런데 또, 더러운 게 뭐냐면 그냥 달래기만 해선 안 되고 나름 근거를 제시하며 그럴듯하게 달래 놔야 진정이 된다.
“아, 아니죠~ 형이 이런 사극 분위기가 처음이라 그래요. 초반 촬영 때 약간 분위기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건데, 이 정도면 엄청 빨리 적응하신 거죠~ 근데 이…… 이 기레기 놈들이 문제죠. 항상 그래. 항상.”
정욱의 구겨졌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치? 배우들마다 다 자기 말투가 있는 건데, 그걸 존중을 안 해 주고…… 무슨 사극 말투에 안 맞네 어쩌네. 지들이 그 시대 살아 봤어? 이런 말투, 저런 말투 있는 거지.”
“그럼요~ 그렇죠! 만약 진짜 형 연기가 엉망이었어 봐요.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올 리가 없어요!”
“그렇다니까! 솔직히 내가 일등공신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나불대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어휴, 너…… 너…….”
“네.”
“얼마 전에 윤시우 와서 연기했잖아.”
“그랬죠.”
미쳤었지.
“걔랑 나랑…… 막…… 물론 약간 차이는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연기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야.”
“……네?”
“너. 진짜 양심에 손을 얹고, 있는 그대로 말해 봐. 윤시우랑 나랑 연기력 비슷하지 않냐?”
“…….”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매니저는 양심과 직업 정신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
“아…… 윤시우랑요…… 연기력 말씀이시죠?”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네.’
매니저의 머릿속에서 얼마 전, 윤시우가 특별 출연 촬영을 하러 온 날이 휘리릭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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