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18)
218. 루가
눈 위쪽부터 목까지 이어진 하얀 경계선이, 펭귄의 까만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펭귄은 당당하게 가슴을 쫙 펴고, 단춧구멍 같은 눈을 오만하게 뜨며 시우를 봤다.
– 꾸어어~
“……!”
시우와 시윤의 다리 앞에서 뒤뚱뒤뚱 움직이다 화를 버럭 내는 펭귄.
펭귄의 검은 부리를 본 시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때, 멀리서 뛰어오는 사육사가 보였다.
“혼자 어디를 또 갔어~ 펭구야!”
– 꾸이?
다다다-
펭귄은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시윤은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펭귄 때문에 겁에 질려 손으로 급소를 보호하며 뒷걸음질 쳤다.
시우는 허둥대는 시윤이 귀여워 그대로 구경하고픈 마음도 들었지만, 동생을 도와주기로 했다.
딱딱!
사육사가 도착하기 전, 시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면서 펭귄을 불렀다.
“펭구야~ 펭구. 이봐. 친구. 이리 와.”
시윤의 다리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고 기를 쓰던 펭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펭귄 말을 하는 이상한 인간이 서 있었다.
마스크 위에서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시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펭구가 뭔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시우에게 향했다.
“좋아. 형한테 와. 오늘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 놀러 나왔어? 얌전히 사육사 누나 기다릴…….”
다다다-
말이 통하는 것과, 말을 듣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육사를 기다리자는 말에 펭구가 시우의 다리 사이로 돌진했다.
남자 사육사들이 어떨 때 자신에게 겁을 먹는지 분명하게 알고 저지르는 의도적인 위협!
시우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시우의 손도 본능적으로 그곳을 보호하고 있었다.
백 번을 살든, 대마법사든 뭐든 공포에 떨게 만드는 위협 스킬을 보유한 펭구였다.
“얘, 얘 왜 이래!”
동물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자, 펭구는 곧바로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더욱 뻣뻣하게 쳐들었다.
어느샌가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하던 시윤이 형의 약한 모습을 녹화한 뒤,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이거 영상 지호 형한테 보내 줘야지.”
“야! 윤시윤!”
자신이 직접 놀리면 용돈이 준다.
형을 놀리는 건 지호 형에게 맡겨야 한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젊은 사육사가 도착했다.
오늘 아쿠아리움 펭귄 캠프에서 유치원 아이들과 놀아주고, 잠시 자유를 누리던 펭구의 탈주극도 막을 내렸다.
시우는 밑으로 내려온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쓰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펭귄 이렇게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잖아요. 너무 귀여웠어요.”
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펭구야~ 만나서 반가웠어. 집에 가야 할 시간이야. 아, 네 원래 집은 남극인가?”
사육사의 품에 쏙 안겨 있는 귀여운 펭구에게 시윤이 작별 인사를 했다.
시우는 방금 전과 다르게 온순해진 펭구를 보다 시윤에게 말했다.
“얘는 남극에서 온 애 아냐.”
“그럼? 맞다. 여기서 태어난 애일 수도 있겠네. 그럼 남극은 한 번도 못 가 봤겠구나.”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사육사님 얘 훔볼트펭귄 맞죠?”
사육사는 펭귄 종류를 바로 알아보는 시우를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잘 아시네요.”
“훔볼트펭귄은 남미 쪽에 살지 않나요? 조그만 갈라파고스펭귄이랑 친척이고.”
“네! 맞아요. 페루랑 칠레 해안에 살아요.”
시우는 어떠냐는 듯이 시윤을 쳐다봤다.
“형이 이 정도야.”
“……쳇, 그래. 형 똑똑하다. 으휴~ 그런 거 어떻게 아는 거야?”
“아기 때부터 쪽쪽이 물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를 봤거든.”
“뭐래~ 엄마가 형 맨날 핑크포로로만 보면서 사자 가족 춤 췄다고 그랬어!”
“그건 이제…… 됐다. 됐어.”
“말 막히니까 됐대.”
사육사는 아쿠아리움에 놀러온 사이좋은 형제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 꾸우우~
훔볼트펭귄 펭구가 울었다.
사육사가 펭구를 달랬다.
“그러게 왜 도망가.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맘마에 비타민 넣어 놨어.”
사육사는 인사를 하고 펭구를 데리고 떠났다.
뒤뚱뒤뚱 걸어 사육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펭구의 뒷모습이 꼭, 엄마와 같이 가는 어린아이 같아 무척 귀여웠다.
시윤은 그런 펭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형. 이제 루가도…… 저렇게 집에 돌아가겠네.”
그 말에 시우의 눈 속에 아기 때부터 매년 만나온 루가의 동그란 얼굴이 떠올랐다.
“꼭 바다가 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 고향이라면 모를까. 떠나려면…… 준비할 게 아주 많을 거야.”
“잘된 일이긴 한데 못 보는 건 좀 많이 서운하다. 형은 안 그래?”
“…….”
시우는 말이 없었다.
* * *
어두운 통로 끝에 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이 환해지고 관람석이 설치된 넓은 전시관이 나타났다.
마치 물 속 세상으로 들어온 듯, 거대한 수조가 시우와 시윤을 맞이했다.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관람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펭귄 캠프에 참가했다가 마지막으로 아쿠아리움을 한 바퀴 더 돌아보고 가는 유치원생 아이들이 수조에 달라붙어 신나게 비명을 질러 댔다.
“와아아~!”
“꺅!”
“돌고래 예쁘다~”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들의 위쪽으로, 천천히 수조 안을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보였다.
하얀 피부와 볼록한 이마, 항상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입.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은 언제나 한결같이 부드럽고 상냥했다.
수조로 다가가며 시윤이 말했다.
“형, 진짜 신기하지 않아?”
“뭐가?”
“내가 어릴 때 형 손잡고 루가 보러 왔을 때…… 이 수조가 진짜 세상에서 제일 큰 바다 같았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많이 작아 보여. 내가 커서 그런 걸까?”
“어릴 때 보고 겪은 것들은 대부분 다 커다랗게 기억에 남아. 시설이든…… 감정이든…… 원래 그런 거야.”
“응. 루가는 자기가 바다로 돌아간다는 거 모르겠지?”
“이제 알게 될 거야.”
“어떻게?”
“글쎄.”
시윤은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는 형의 얼굴을 의아한 듯이 돌아봤다.
형은 평소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수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서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형의 눈을 본 시윤은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시우는 시윤과 같이 수조 앞에 섰다.
루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었다.
몸을 비틀어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루가의 수영 실력도, 루가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아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버블링도 똑같았다.
달라진 것은 시우가 아기 때 본, 루가의 뒤쪽에서 정적으로 움직이던 벨루라는 친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시우가 온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루가는 아이들에게 한차례 더 버블링을 발사해 주고, 힘껏 헤엄쳐 수조를 빙글 돌아 시우가 있는 쪽으로 왔다.
루가의 커다란 몸이 시우의 앞에 멈춰 섰다.
“우와아~!”
아이들은 여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온 루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우와 시윤의 양옆으로 몰려들었다.
시우가 수조의 유리 벽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루가도 교감하듯 시우의 손이 닿은 유리 벽에 자신의 입을 맞댔다.
시우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늘 하던 작별 인사 같은 의식이었다.
그리고 점점 지쳐 가는 루가를 치유해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우의 손에 잠시 입을 대고 있던 루가가 얼굴을 조금 들고, 시우에게 물었다.
[벌써 가?]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더 있다 갈 거야.’
루가의 표정이 밝아졌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표정이겠지만 시우는 알 수 있었다.
루가는 시우의 얼굴에 대고 버블링을 연달아 발사했다.
예쁜 물의 고리들이 시우의 얼굴 위로 날아왔다.
“예쁘다!”
“엄마~ 저것 봐~”
시우의 얼굴 앞에서 버블링이 유리에 부딪혀 사라지자, 아이들은 또 다른 버블링을 기대하며 루가를 응시했다.
루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버블링을 끊임없이 발사했다.
시우가 미소를 띠고 속으로 말했다.
‘넌 애들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응. 난 아이들이 좋아. 날 외롭지 않게 해 주는 유일한 존재니까.]‘그래.’
[하지만 아이들 중에서도 네가 제일 좋아! 넌 내 하나뿐인 친구야. 네가 없었다면…….]‘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네. 그런데 난 이제 아이가 아냐. 이렇게 컸잖아.’
루가는 시우의 훌쩍 자란 키를 빤히 내려다보다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이 작거든?]‘아, 그러네.’
시우는 루가를 따라 한껏 웃고 말았다.
여전히 귀여운 친구였다.
그리고 소중한-
시윤이 옆에서 루가를 향해 바다로 가게 된 걸 축하한다며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루가에게는 당연히 들리지 않았다.
시우는 혼자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시윤을 위해, 루가에게 장난 한 스푼을 부탁했다.
루가가 시우 앞에 있던 얼굴을 갑자기 옆으로 돌리며 입을 와아앙 크게 벌렸다.
“으악!”
시윤은 자신의 머리를 먹으려 하는 루가에게 놀라 뒤로 물러났다가, 또 당했다는 걸 알고 짐짓 화난 척 허리에 손을 올렸다.
루가는 미안하다는 듯이 시윤에게 버블링 한 개를 날려 줬다.
그것을 본 시윤은 또 금방 배시시 풀어져 수조 벽에 붙어 루가를 열심히 눈에 담았다.
“형, 이제 루가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너무 슬프다.”
“응.”
시우는 시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수조 유리 벽에 다시 손을 갖다 댔다.
루가가 자연스럽게 다시 입을 대려 하자 시우가 말했다.
‘루가. 뒤로 가서 있어.’
‘얼른.’
루가는 휙 몸을 돌려 수조 중앙으로 물러섰다.
시우는 수조 한가운데 외롭게 선 한 마리의 벨루가를 향해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수심 1,000미터까지 잠수를 하는 벨루가에게 수심 10미터에 불과한 이곳은 너무 좁다.
시우의 손에서 뻗어 나온 신비한 기운들이 루가의 몸을 휘감자, 루가의 눈앞에 신기하게도 넓고 아름다운 바닷속 세상이 펼쳐졌다.
푸른 바다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곳에는 단단한 벽도,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놀란 나머지 우뚝 멈춰 서 있는 루가의 머릿속으로 어디선가 따뜻하고 편안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루가는 그 음악 소리가 마치 자신의 오랜 친구 시우의 목소리 같다고 느꼈다.
포근했다.
시우가 말했다.
‘이제 넌 이곳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루가는 바닷속 풍경을 천천히 둘러봤다.
어딘가 그리운…….
흐릿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바다.
시우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일까.
루가는 그리움과 슬픔이 뒤섞인 눈으로 바닷속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런 루가를 보고 있는 시우에게 루가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루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 *
정욱은 거실에서 TV를 켰다.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오랜만에 맞은 휴식일이었다.
마침 월영 본방이 시작될 시간-
자신이 나온 부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TV로 모니터링하는 집착남이었다.
기사 집착-
댓글 집착-
모니터링 집착-
“휴, 오늘 방영분 윤시우 등장하는 화네.”
보고 싶지 않다.
정말 보고 싶지 않은데, 손이 저절로 가는 이 마법.
TV에서 광고가 끝나고 월영 본방이 시작됐다.
윤시우는 후반에 나오기 때문에 앞부분은 자신과 고유빈의 분량이 대부분이었다.
지이잉-
전동 소파가 소리를 내며 뒤로 젖혀졌다.
‘음~ 좋아~’
정욱은 값비싼 가죽 소파에 앉아 자신의 연기를 감상했다.
문제점을 찾으려거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한 모니터링이라기보다…….
“크~ 잘했어. 이 정도면 잘한 거지.”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곧 등장할 윤시우로 인해 불안감이 커질수록, 정욱은 스스로를 계속 칭찬했다.
“멋있어. 와, 얼굴 귀티 나는 거 봐.”
그러던 중-
드디어-
[아니~ 이게 편하니까 이렇게 다니죠!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면서 어디 돌아다니겠습니까?]윤시우 등장씬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욱은, 왠지 떨려 오는 마음을 부여잡고 인터넷 실시간 댓글 창을 켰다.
혹시…….
내가 더 멋있다고 할 수도 있잖아?
혀로 입술을 적시며 TV에 집중하는 그때.
윤시우가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욱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와작 구겼다.
“이런 젠장……!”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