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19)
219. 반응
[월영아~!]말에 치일 뻔한 월영의 몸이 뒤로 휙 날아가고, 범우가 한달음에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정욱은 월영의 이름을 외치는 자신의 표정이 꽤 괜찮았다고 자평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과 당황과, 월영을 던진 이에 대한 분노가 적절하게 믹스되어 있어.”
감독에게 지적을 많이 받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단지 감독과 스타일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연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가 S급 연기력은 아니어도, A급 연기력은 된다고.”
정욱은 항변하듯 일부러 더 자신만만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TV에서는 흙바닥에 쓰러진 월영이 일어나기 위해 몸을 바둥거리는 씬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곧……!
“꿀꺽.”
애써 허세를 부리던 정욱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른침을 삼키는 그의 목젖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정욱의 조마조마한 시선 끝에, 남색 도포 끝자락이 비춰졌다.
카메라는 아주 공을 들여 천천히-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위로, 멋진 도포를 따라 올라갔다.
카메라 앵글 속으로 어디선가 날아온 꽃잎들이 흩날렸다.
“……!”
정욱의 눈이 질투로 이글댔다.
‘나 등장할 때는 꽃잎 없었는데?!’
예쁜 꽃잎들이 남색 도포 앞에서 춤을 췄고, 그 위로 시우의 붉은 입술과 그린 듯이 오똑한 콧날과 시리게 빛나고 있는 먹빛의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분명 시우의 본래 눈 색깔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렌즈를 낀 느낌도 전혀 없었다.
기묘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물씬 일렁이는 시우의 눈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순간.
정욱은 왠지 모르게 시청자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로 들려오는 듯했다.
“이런 젠장……!”
정욱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윤시우가 잘생긴 거야 자신도 눈이 있으니 인정한다.
그런데…… 기존 남주를 쩌리로 만들어 버리는 이 브금과 연출은 도대체…….
카메라는 시우의 눈빛과 표정, 몸짓 하나까지 세밀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부 전달해 주고 있었다.
“…….”
심하게 삐친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문 정욱은 무서운 눈초리로 TV를 쏘아봤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시우의 연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괜찮으냐?]품위 있는 낮은 목소리-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정확하게 시청자들의 귓속으로 파고드는 딕션.
시우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드라마의 모든 분위기가 그에게로 집중됐다.
그런데 위화감이 없다!
위화감이 있어야 하는데…….
뭔가 안 어울려야…… 하는데…….
이러면 꼭…… 네가 주인공 같잖아…….
정욱은 혀로 입술을 적시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손을 들어 괜스레 자신의 앞머리를 반복해 쓸어 넘겼다.
시우를 올려다보는 유빈의 표정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설렘이 느껴지는 눈빛-
그러고 보니…….
촬영 중간에 쉴 때 차에만 틀어박혀 있는 건, 자신처럼 유빈도 똑같았다.
그런데 윤시우 왔을 때는 차에 안 들어가고 평소 자신과는 안 하던 대사 맞춰 보는 연습을 아주 촬영 내내 한 그녀였다.
“눈이 아주…… 좋아 죽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온다.
입에 사탕 하나를 넣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정욱의 눈앞에서 시우가 붉은 입술을 비틀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방금 날아간 이가 너 말고 누가 있느냐.]클로즈업된 시우의 얼굴에서 수려미가 철철 흘러 넘쳤다.
입으로는 거짓말을 해도,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정욱은 순간 시우의 미소에 감탄해 멍하니 넋을 잃고 TV를 쳐다보다 사탕을 그대로 삼켰다.
“……크허억-!”
정욱의 주먹이 시우의 미소에 놀란 자신을 책망하듯, 맹렬하게 스스로의 가슴을 때렸다.
퍽! 퍽! 퍽!
“컥! 크억, 우엑……!”
그러나 한번 넘어간, 나름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사탕은 입안의 달콤함 대신 가슴의 통증만 욱신 남겨주고 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요란한 호들갑 끝에 통증에서 해방된 정욱이 물을 한잔 마시고 돌아오자, 드라마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위급해 보여 서둘러 구하려다 보니 그만, 사람을 들어 던지고 말았구나. 팔이 아주…… 휴~ 얼마간은 붓도 들기 힘들겠어. 그런데 이거 원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안 하니…….]월영은 시청자들 눈에도 보일 만큼 실제로 얼굴을 약간 붉힌 채 조그맣게 대답했다.
[……고, 고맙소.]선이 비뚤어진 월영의 갓을 바로 해 주려는 그때.
월영의 옆에 있던 범우가 끼어들었다.
[어딜 손대는 것이냐!]탁!
정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우의 손을 쳐내는 자신의 손길이 매우 남자답고 멋졌다.
자신이 연모하는 여인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성난 모습!
이제…… 이제 됐다.
TV 꺼야지.
뒤에는 별거 없으니까.
정욱이 아까 물을 마시러 갈 때 던져 놓은 리모컨을 집어 들려는데, 한발 앞서 TV에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대치 씬이 등장했다.
“…….”
월영의 흑단 같은 머리가 흘러내리기 직전-
월영의 앞을 비스듬히 가로막은 범우와, 월영과 마주보고 있는 선이 아주 짧은 찰나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받는…….
그 장면.
자신의 머리가 너무 크게 나오는 그 장면.
감독에게 편집해 달라고 했는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엔딩 씬이라 안 된다고 거절당한 그 장면.
바람 소리와 함께-
일주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 월영의 엔딩 음악이 들려오고-
비현실적인 시우의 외모와, 비현실적인 자신의 부은 얼굴이 TV 화면 가득 떠올랐다.
“에이…….”
정욱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값비싼 가죽 소파에서 일어났다.
“씨…….”
그리고 알파벳 A와 C를 찾으며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TV에서 월영의 긴 머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솔직히 아주 쬐끔 마음이 있었던 같은 회사 여자 연예인 고유빈이 윤시우를 무슨 첫사랑 영화 찍듯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다 필요 없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정욱은 소주를 깠다.
“뭐 어쨌든…… 남주는 나니까…….”
댓글 반응 살펴보기에 중독 증상을 보여 매니저가 걱정을 할 정도였지만, 오늘만큼은…….
댓글을 안 보기로 했다.
* * *
– 실시간 시청률 대박 상승했네 ㄷㄷㄷㄷ
– 이것이 방송가에 전설처럼 떠도는 윤시우 찬스
– 시우 오빠 나와서 본방 사수했어요~ 학교 끝나고 또 볼 거예요 존잼 ㅠㅠ
– 윤시우 파이팅! 흥해라♡♡♡
– 정욱이랑 비주얼이 차이가…… ㅎㅎㅎ
– 비주얼로 배우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연기력으로 판단하셔야죠. 그러니까 진지하게 윤시우 메인 남주 기용을 제작진 분들께 요청드립니다. 제발요. 어제 갑자기 드라마 몰입감 열 배 상승했음. 진짜요.
– 계속 말로만 나오던 월영이 첫사랑 오라버니가 윤시우였네~
– 시우 오라버니 ㅋㅋㅋ 고유빈보다 동생인데 표정이랑 눈빛 너무 어른스러워서 너무 잘 어울리더라.
–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라고…… ㅠㅠ
– 와 최고 시청률 찍었네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시청률이라니 시우 효과 제대로네
– 윤시우 선비 옷 입은 거 너무 잘 어울림. 다음 회가 끝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ㅠㅠㅠㅠ 시우 사극 복장이랑 사극 연기 계속 보고 싶은데 ㅠㅠㅠㅠ
– 시우 눈 색깔이 이번에 묘한 느낌 나는 검은색이던데 아무리 봐도 렌즈 낀 티도 전혀 안 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시우 칼라 렌즈 어디 건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신가요? ㅠㅠ
– 정욱 얼굴 크기 실화냐
[윤시우 출연, ‘월영’ 자체 최고 시청률 기록!> [윤시우, 등장과 동시에 드라마에 차원이 다른 몰입감 안겼다! 시청자들 뜨거운 반응!>현주는 빗발치는 전화에 시달렸다.
영화를 찍을 때와는 또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드라마 출연은 반응이 굉장히 즉각적이다.
친구들부터, 알고 지내는 동네 분들, 먼 친척들까지 드라마 잘 봤다며 축하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현주는 아들이 월드 스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곤 했다.
집에서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만 자주 보다 보니 종종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현주는 아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보낼까 하고, 과일을 준비해 시우 방으로 향했다.
“엄마아~ 나두 먹으면 안 돼?”
시아가 현주를 졸졸 쫓아왔다.
매일매일 시아하고만 붙어 지내는 터라, 오랜만에 잠깐 아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 볼까 했는데 역시 무리인 모양이다.
“알았어. 시아도 큰 오빠한테 갈까?”
“응! 큰 오빠한테 바둑 가르쳐 달라고 할래~”
“바둑? 그래.”
태권도 학원과 바둑 학원은 어쩌다 시우부터, 시윤이, 시아까지 초등학생 시절의 필수 코스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시윤이도 꽤 잘했지만, 시아는 얼마 전 아버지에게 천재바둑학원 관장 자리를 물려받은 최택 관장으로부터 무척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자주 듣고 있었다.
똑똑똑-
“시우야.”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자, 안에서 시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현주는 과일 쟁반을 든 채, 팔꿈치로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우는…….
PC 화면을 바라보며 양손에 뭔가를 꽉 쥔 채로, 한쪽 손을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와아~ 물꼬기다!”
시아가 화면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대형 모니터 속에서 [월척!!] 이라는 커다란 글자와 함께, 전설의 민물송어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그스름한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VR로 게임을 하다 엄마의 노크 소리를 듣고 잠깐 VR을 벗은 시우는, VR 머신을 다시 얼굴에 쓰고 자신이 잡은 ‘전설의 민물송어’를 보며 헤실헤실 행복하게 웃었다.
“와, 드디어 잡았다. 대박. 지호한테 자랑…….”
조용-
시우는 슬그머니 VR 머신을 다시 벗어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엄마와 시아가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과일 쟁반을 발견한 시우는 재빨리 엄마에게 다가가 쟁반을 받아 들고, 멋쩍게 웃었다.
“흠흠- 아…… 이게 낚시 게임인데요. VR 쓰고 이렇게 조종기 두 개로…… 허공에다 릴질을 하는 거예요. 엄마도…… 한번 낚아 보실래요?”
민망해하는 시우의 귀여운 모습에 현주는 그만 웃고 말았다.
드라마에서 본 그 신비롭고 멋진 선비님과 방에서 혼자 생쑈 – 현주 입장에서는 – 하고 있는 이 아들 녀석이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엄마는 괜찮아. 지호랑 같이 하는 거야?”
“……네에. 지호가 어제 새벽에 레인보우 숭어를 낚았…… 아니, 하하. 무슨 일이세요?”
“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들어오나. 너 얼굴 보려고 왔지.”
시아가 나섰다.
“오빠~ 나랑 과일 먹자! 이거 먹어! 아~”
시우는 포크를 들고 달려오는 시아를 한차례 꼭 안아주고 과일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현주는 그런 시우와 시아를 흐뭇하게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시우야, 엄마가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그러는데. 내용은 안 물어볼게. 다음 주에 혹시 너 두 번 다 나오니?”
“아뇨, 알려진 대로 한 편만 나와요.”
“그렇지? 에휴~ 다들 실망하겠네. 반응이 엄청나.”
“아직 등장밖에 안 했는데요?”
“등장만으로도 엄청나.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이런 성인 역할도 자연스럽게…….”
우다다다-!
현주가 말을 잇는 그때, 밖에서 네로의 우다다 소리가 들렸다.
뭔가에 쫓기듯 네로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시우의 침대 위로 급하게 올라갔다.
뒤이어 네로를 그렇게 달리게 만든 장본인.
로봇 강아지 플렉스가 탁탁탁-! 발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시우~ 집으로 너에게 메일이 날아왔어.]“메일? 무슨 메일?”
[병무청에서 신검 통지서가 왔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