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21)
221. 자객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시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들이 모시는 도련님의 팔을 함부로 꺾은 범우를 향한 분노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선의 호위무사들은 침착하게 다시 뒤로 물러났다.
범우의 호위무사들 또한 범우의 눈짓에 검을 집어넣었다.
충돌을 피한 가운데, 범우가 붙잡고 있던 선의 팔을 내던지듯이 놓았다.
질투가 난 남주가 갑작스레 등장한 월영의 첫사랑 오라버니를 노려보는 씬이었다.
중요한 것은, 노려보는 그 얼굴이 시청자들에게 밉지 않게 전달돼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현실에서조차 시우에 대한 질투를 활활 불태우던 정욱이었기에, 그런 사랑스러운 질투를 표현해 내지 못하고 상당히 강한 투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 한순간 범우라는 캐릭터가 악역처럼 보일 정도였다.
[……노려보는 거 진짜 밉상이다.] [연기를 왜 저렇게 하지? 이번 화에서는 시우랑 고유빈 사이에서 방해꾼 역할로 나오는 건가?] [설마, 아무리 그래도 남주인데?] [근데 진짜 존재감이…… 시기에 빠진 서브…… 아니, 서브도 아니고 제3의 약간 성격 나쁜 남주 같은…….]영상을 통해 수아의 동료들이 솔직한 감상들을 늘어놓았다.
수아는 연이은 혹평에 정욱이라는 배우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우와 외모든 연기력이든 존재감이든 대놓고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시우와 정욱이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을 교차하고 있을 때.
월영이 흘러내린 머리를 질끈 동여매며 앞으로 나섰다.
“지금 환한 대낮에~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범우 오라버니!”
“으, 으응? 왜 그러느냐.”
피식-
월영이 자신을 먼저 부르자, 범우는 선에게 보란 듯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선의 표정이 좀 더 딱딱하게 굳었다.
저 남자는 대체 뭐지?
혜아의 정인인가?
혜아도 많이 컸으니 연모하는 이가 있을 만도 하지…….
태연함을 가장한 시우의 얼굴 뒤로, 공허함과 쓸쓸함이 가을의 낙엽처럼 한 겹 덧씌워졌다.
시청자들은 시우의 눈빛이 서서히,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분명 같은 질투였지만, 정욱의 연기와는 달랐다.
자연스럽게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도, 정욱이 아닌 시우에게 공감을 하고 이입을 했다.
날 보며 시우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수아와 동료 기사들은 드라마에 빠져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시우의 눈빛이 지나가고, 월영의 대사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대체 이들은 다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범우의 호위무사들을 보며 낮고 빠르게 범우에게 속삭이는 월영.
범우도 월영에게 속삭였다.
“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졸, 졸부집 아들 아니냐. 내가 어릴 때부터 어디 납치라도 당할까 참 걱정이 많으셔서…… 하, 하하. 미안하구나.”
월영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아까 말에 치일 때나 도와주시지.”
“너무 가까이 쫓지 말라고 말을 해 놔서…… 다음부터는 좀 가까이 쫓으라고 말을 해 둘까?”
어색하게 웃는 범우를 찌릿 째려본 월영이 한숨을 내쉬고 선을 돌아봤다.
선은 다정하게(?) 귓속말을 주고받는 월영과 범우를 보며, 주인 잃은 강아지에서…….
주인을 잃고 비까지 맞은 강아지로 눈빛이 변했다가, 월영이 돌아보자 얼른 표정을 원래대로 바꾸고 짐짓 어른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범우를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두근거림이 가득한 얼굴로 월영이 말했다.
“선 오라버니……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 *
준영과 수진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수진은 시우의 연기를 나노 단위로 분석해 가며, 시우가 등장할 때마다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준영은 수진이 그렇게 혼자 밝은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녀의 옆얼굴을 슬쩍 한 번씩 훔쳐보곤 따라 웃었다.
“수진 씨, 혹시 마실 거 필요해?”
“아니. 지금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어. 그보다 너 이거…….”
수진의 손가락이 거실 테이블 위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는 태블릿을 가리켰다.
“왜 계속 켜 놓는 거야?”
“아, 이거 실시간 댓글 창이야. 수진 씨도 시우 응원 한 마디 달래?”
해맑게 웃으며 태블릿을 들이미는 준영이 귀여워 수진은 그만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됐어, 드라마나 봐. 난 또 게임하나 했네.”
“내가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쉿. 대사 안 들리잖아.”
“……미안.”
드라마에서는 월영과 선이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수진은 솔직히 시우가 나오니까 본방사수를 하고 있을 뿐, 드라마의 이전 내용을 전혀 몰랐다.
단지 최근 인기가 높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걸리는 부분이 없었다.
시우의 연기가 위화감 없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마치 오늘이 남주와 여주가 처음 만나는 1화 같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선과 월영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때, 벨이 울렸다.
준영이 일어났다.
“시우야! 들어와.”
시우가 준영의 집을 방문했다.
시우는 수진과도 인사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데이트하시는데 제가 방해한 거 아니에요?”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요즘 작품 없어서 데이트야 매번 하는 거고. 우리 시우 너무 보고 싶어서 불렀지. 시간 맞추기가 되게 힘들잖아. 솔직히 쟤랑 단 둘이 있는 거 재미없어.”
농담기가 섞인 말투로 수진이 말하자 준영도 짐짓 과장되게 충격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헉…… 재미없다니…… 너무하십니다…….”
시우는 약간 어린애 같은 준영과 딱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수진이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두 사람과 같이 웃었다.
‘차가 막혀서 좀 늦었네. 드라마는…… 아, 이 부분이구나.’
준영이 건네주는 주스 잔을 받아들고 시우는 TV를 봤다.
선은 눈앞에서 움직이는 월영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월영의 눈이 깜빡일 때마다.
월영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월영의 표정이 변할 때마다.
오랜 시간 찬바람만 가득했던 선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왜 그렇게 자꾸 웃으세요, 오라버니?”
선과 월영은 말을 잠시 묶어놓고, 숲속을 걸었다.
선이 뒷짐을 진 채,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신기해서 그런다.”
“뭐가 말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월영.
그런 월영을 보는 선의 눈빛이 녹아내릴 듯이 부드러웠다.
“네가 내 앞에 있다는 게.”
“……!”
월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나 그 말이 싫지 않은지, 푹 숙인 그녀의 얼굴 밑으로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저도…… 이리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런 둘의 모습이 무척 풋풋하고 예뻐, 시청하던 수진은 자기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띠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시우는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씬이었다며 멋쩍어했다.
‘으아악…… 나온다……!’
시우는 조용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살짝 TV를 확인했다.
자신과 유빈의 눈빛 교환-!
오랜만에 남장을 벗은 월영이 쭈뼛거리며 선을 쳐다보자, 선도 이끌리듯 그녀의 눈을 응시하는…….
그러면서…….
달콤하게 웃어야 하는…….
‘…….’
시우는 아예 눈을 가렸다.
둘은 수줍은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느지막이 시선을 돌리며 숲의 경치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오, 오라버니는 참…….”
“……쉿.”
월영이 홍시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선에게 말을 꺼내려는 찰나, 방금 전과 다르게 얼굴이 차갑게 돌변한 선이 월영의 말을 막았다.
준영은 순식간에 바뀌는 시우의 표정 연기에 감탄했다.
달콤하게 세상 따뜻하게 웃던 얼굴에서, 고작 1-2초만에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는 연기-
두 개의 표정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겠지만, 극과 극을 오가는 그 표정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와, 마법처럼 변하네.’
같은 배우가 봐도, 아니 어쩌면 같은 배우이기 때문에 시우의 연기력과 표현력이 더욱 대단하게 다가왔다.
선은 천천히 월영의 옆으로 이동했다.
월영이 의아해하는 사이, 숲의 나무 뒤에서 굵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거참, 눈치도 빠르시군!”
숨어 있던 도적 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이 냉랭하게 말을 뱉었다.
“……재밌구나. 이런 곳에 도적 떼라니, 너무 부자연스러운데?”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이게 다 높으신 나리들께서 꽃놀이에 정신이 팔려 민생을 돌보지 않은 결과 아니겠소~”
선은 놀란 월영을 등 뒤로 보내고, 도적 떼를 막아섰다.
재수가 없어 호위를 떼어 놓고 왔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호위가 없을 때를 노려 습격을 한 것인지-
분명한 것은 없었으나 합리적으로는 후자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후우, 바라는 게 뭐냐.”
도적으로 가장한 자객 무리는 검 끝으로 월영을 가리켰다.
“됐고. 우리도 지체 높은 도련님께는 별로 관심이 없소이다. 그 계집아이만 넘겨주면, 고이 보내 드리겠소.”
선은 빙긋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강하게 호통친 선이 벼락같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휙!
선이 한 자객의 팔을 그림같이 후려 찬 다음, 휘청이는 놈에게서 검을 빼앗아 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객 우두머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의 움직임을 본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저 계집을 빨리 잡아!!”
십여 명의 자객들이 월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달려들었다.
잘 훈련된 모습이었다.
액션씬이 펼쳐졌다.
시우는 오디션 프로 ‘연기의 신’에서 빈손에 들린 무형의 검으로도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 실력을-
여실히 보여 주기 시작했다.
특별히 CG가 삽입된 것도 아닌데, 시우의 몸이 바람처럼 수풀 위를 누볐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와, 기세가 중국 무협 전문 배우들조차 한 수 접어 줘야 할 정도로 예리하기 짝이 없었다.
준영과 수진은 손에 땀을 쥐고 시우의 활극을 감상했다.
자객의 무릎을 밟고 위로 솟구쳐 오른 시우의 다리가 자객의 얼굴을 걷어찼다.
시우가 움직일 때마다 자객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그러던 중, 시우가 눈앞의 자객들을 상대하는 동안 자객들의 우두머리가 등 뒤에서 시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앗!
“크윽!”
시우가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시우의 등부터 허리까지 붉은 선이 그어졌다.
시우의 무릎이 꺾이고 자객이 검을 위로 치켜든 절체절명의 순간-
자객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
쓰러지는 자객의 뒤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월영의 모습이 보였다.
자객은 자신의 급소를 붙잡고 지독한 고통에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멋진 발차기로 정확히 적의 급소를 가격한 월영이 선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정신을 차린 선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월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들을 따돌리고 주막에 도착한 선과 월영은 서로를 마주본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선이 말했다.
“사람은 불렀느냐?”
“네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당연히 그게 문제지. 네 안위만큼 중요한 건…… 없다.”
월영은 잠시 선의 얼굴을 응시하다, 파리해진 선의 안색에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됐고! 이쪽으로 오세요.”
월영이 선의 옷고름을 잡아당겼다.
선이 당황해 외쳤다.
“뭐, 뭐 하려는 것이냐.”
“아유~ 제가 잡아먹습니까?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우물쭈물하는 선의 옷을 월영이 당차게 벗겨 냈다.
시우의 단단한 몸이 드러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