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27)
227. 판정
아이돌 명가 MGS에도 고민은 있었다.
2년 전 데뷔시킨 걸그룹이 시장에서 부진하다는 것.
물론 여타 중소 기획사였다면 충분히 괜찮은 성적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MGS의 눈높이는 달랐다.
가뜩이나 회사 차원에서 전력 푸시한 리빅이 익스트림에게 밀려 속이 터지는 판에, 걸그룹까지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은 상황-
이전 아이돌들이 닦아 놓은 기반이 워낙 거대했기에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차기 보이그룹과 걸그룹은 정말로 회사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문경수 대표는 판단하고 있었다.
올 연말에 런칭하는 보이그룹을 데뷔부터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몇 년 후 런칭할 새로운 걸그룹 역시 반드시 세계 시장에 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루아는 그 차기 걸그룹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인재였다.
문경수 대표가 예뻐 죽는 열여섯 소녀는, 현재 좋아 죽는 눈빛으로 시우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문 대표도 김 이사도 루아의 저런 표정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시우의 인성이 나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로이는 그런 여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MGS 연습생이세요?”
루아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윤시우가 웃으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 주고 있었다.
윤시우를 보려고 MGS로 출근하다 괜히 슈 엔터 앞을 서성인 기억들이 루아의 머릿속을 스쳤다.
다른 팬들처럼 슈 엔터 앞 카페에서 10시간을 기다려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윤시우는 아이돌 연습생인 자신처럼 회사로 출퇴근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와…… 와아…… 네에! 저는 MGS 연습생 이루아라고 합니다! 잘, 잘 부탁드…….”
얼굴을 빨갛게 붉힌 소녀 루아는 반쯤 풀린 눈빛으로 꾸벅 배꼽 인사를 하다 심사위원석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루아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던 시우는 자신이 있는 테이블을 갑자기 머리로 들이받는 루아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연습실이 조용해진 가운데 누군가의 커다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아야-!!!”
문경수 대표였다.
동생의 책상 박치기에 입술을 씰룩이던 로이는 문 대표의 목소리에 얼른 웃음기를 지웠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 윤시우 앞에서 책상 박치기라니.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괴로울까.
그런 여동생의 마음을 떠올리면…….
“하…… 하하…… 괜찮아, 루아야?”
친오빠로서 진심으로 웃음이 새 나온다.
오빠의 웃음소리에 루아가 얼굴을 휙 들어 올렸다.
‘……으으!’
루아는 빠득 이를 갈고, 다시 봄눈이 녹아내리는 듯한 눈동자로 시우를 훔쳐봤다.
‘웃, 웃고 계시겠지? 망했다. 나 지금 완전 이상한 여자애 됐어.’
시우의 표정을 확인하려는 찰나, 누군가 루아 옆으로 달려왔다.
“루아야, 혹시 다쳤어?”
문경수 대표였다.
심사위원석에서 한달음에 뛰쳐나간 자신들의 회장님을 보며, 다른 연습생들은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마를 가리고 있는 루아의 손을 치우게 만든 문 대표는 루아의 얼굴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했다.
‘하아…… 하마터면 보석에 흠집 날 뻔했네…….’
훗날 루아가 MGS를 위해 올려 줘야 할 매출이 얼마인가.
한순간 아찔했다.
루아는 다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상했다.
방금 전만 해도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느낌이었는데, 아픔이 빠르게 사라진다.
분명히…….
테이블 모서리를 제대로 찍었는데…….
아주 정확하게…….
의아해하던 루아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우를 발견했다.
‘아…… 시우 님이 바라봐 주셔서 안 아파진 거야. 우리 오빠는 저렇게 웃겨 죽으려고 하고 있는데, 역시 시우 님은 인성이 달라!’
방긋-
루아는 자신의 이마를 잡고 좋아라 웃었다.
치유 마법으로 웬 여자아이의 이마에 솟아오른 혹을 가라앉혀 준 시우는 ‘웃지 말아야지, 웃지 말아야지.’ 속으로 되뇌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좀 괜찮아졌어요?”
“네에! 죄송해요! 놀라셨죠!”
“약간?”
“……죄송합니다. 책, 책상이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루아는 시우 앞에 있는 심사위원석 테이블 모서리를 손으로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쓰러진 시우의 생수병을 다시 바로 세워 놓고, 루아는 품에서 하얀 종이와 펜을 꺼냈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사인…… 사인…… 아…… 지금 촬영 중이니까 다, 다음에…….”
시우는 안절부절못하는 루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두 번째 배틀 끝나고 촬영 잠깐 쉬고 있어요. 주세요.”
팬들에게는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한 시우였다.
문경수 대표는 회사의 보물인 루아가 윤시우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있어 참고 있었다.
문 대표의 눈이 루아의 오빠인 로이에게 향했다.
‘……루아야 어리니까 그저 윤시우 얼굴 보고 좋다고 할 수도 있어. 오빠라는 놈이 잘 일러 줬어야지. 저, 저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데…… 눈빛으로 사람도 죽일 놈이야 저놈이!!’
로이는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는 문 대표의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재미없어지면 언제든지 관둬도 된다는 계약을 맺은 루아한테는 암말도 못하고 꼭 만만한 자기만 잡는다.
‘으휴, 내 동생이지만 아주 잘났다. 잘났어.’
문 대표의 눈치에 로이가 루아를 제지했다.
“루아야, 다른 연습생들도 있는 배틀 자리잖아. 회장님께서 오냐오냐하신다고 막 함부로 행동하고 그러면 안 돼. 윤시우 선배님께서도 당황스러우실 거 아냐.”
오빠의 잔소리에 발끈하려던 루아는 시우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너무 흥분했어! 예의 없는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실지도…….’
루아는 펜과 종이를 다시 품에 넣고 서둘러 말했다.
“죄송해요. 시우 오, 오, 오…… 윤시우 배우님! 저는 저기 구석에서 조용히 응원할게요! 이따가 저희 오빠랑 배틀하신다고요?”
루아가 로이를 가리켰다.
‘……로이 여동생이었어? 그래서 문 대표가 애지중지하는 건가?’
아니.
로이한테도 막 대하는 문 대표가 그럴 리가.
‘외모도 외모지만, 재능이 상당한 모양이네.’
“네. 혹시 배틀이 무승부로 끝나면 연장전 삼아 가볍게 살짝…….”
“꼭 이기세요! 골든 아티스트 어워즈 때 진짜 너무 멋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친오빠의 패배를 기원하며 루아는 후다닥 도망치듯 떠났다.
* * *
지호가 날아올랐다.
다른 멤버들에 의해 허공으로 솟구친 지호의 몸이 마치 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익스트림의 짐승돌 요한이 최근 무대에서 자주 선보이는 퍼포먼스였다.
“와아아……!”
적이라는 것도 잊고 MGS의 연습생들은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키가 큰 근육질의 요한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좀 더 소년 같고 선이 고운 지호의 퍼포먼스는 박력이 넘친다기보다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백조처럼 우아했다.
시우도 놀랐다.
‘비밀스럽게 애들이랑 뭘 준비하나 했더니…… 멋진데?’
꿈을 향해 날아가듯 연습실 위로 뛰어오른 지호가 공중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는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올랐던 지호가 두 다리로 MGS의 연습실 바닥을 단단하게 내리밟았다.
이어 4명의 멤버가 한 몸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칼군무를 펼쳤다.
안무 난이도가 평소보다 높았기에, 셰인은 자신을 믿어 준 멤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박자를 쫓아갔다.
‘할 수 있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슈 엔터가 지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항상 부끄러웠다.
미국에서는 친구들을 사귀는 일도 무척 힘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팝을 알게 되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뭔가에 홀린 듯이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어를 공부하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신이 케이팝 성지라는 MGS 사옥에서 춤을 추고 있다.
셰인은 껍질을 깨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을 쳤다.
‘할 거야…… 제대로 해낼 거야…… 나도……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거야……!’
고개를 들자 지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호가 옆으로 비켜서자 셰인은 단숨에 다리를 뻗어 그 빈 공간으로 치고 들어갔다.
지호를 지나쳐 갈 때, 지호의 팔이 스쳤다.
셰인은 자신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당당하게 팀의 앞쪽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You might be okay- [넌 아마 괜찮을 거야-]
It’ll be okay- [괜찮을 거야-]
반복되는 가사.
요즘 다시 트렌드가 된 멜로디 위에 랩을 얹어 놓은 싱잉랩이 셰인의 입을 통해 감각적으로 흘러나왔다.
음색이 매우 독특해 셰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MGS 연습생들은 눈을 크게 떴고 문경수 대표도 본능적으로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시우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는 셰인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한국 와서 많이 성장했네. 역시 내 귀는 틀리지 않았어.’
한국어 발음만 좀 더 다듬고 성량만 키우면 굉장히 유니크한 메인 보컬감이었다.
시우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 문 대표의 얼굴을 일별하고, 다시 슈 엔터 3조에게로 눈을 돌렸다.
춤을 추는 듯 안 추는 듯-
리듬을 타는 여유로운 댄스 끝에 멤버 한 명, 한 명의 음색이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멤버들 모두가 안정된 가창력을 바탕으로 힘 있게 소리를 내질렀다.
한데 모여 완성되어 가는 노랫소리가 연습실에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도저히 연습생들이라고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실력.
심사위원석의 로이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니, 얘네 뭐야? 한두 명이 잘하면 그냥 잘난 녀석이 있구나 할 텐데…… 지금까지 나온 슈 엔터 애들이 다 실력이 높아! 연습량은…… 분명 MGS가 업계 최고일 텐데?’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악명 높은 MGS다.
그래서 연습생들의 실력 편차가 적고, MGS에서 데뷔에 실패하고 나간 연습생은 타 기획사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다.
그런데…….
얘넨 대체 뭐냐고!
음악이 마무리되면서 슈 엔터 4명의 연습생이 이미 데뷔한 아이돌 팀이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엔딩 포즈를 취했다.
중소 기획사에게 MGS의 클래스를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슈 엔터의 충격적인 클래스만 확인하는 배틀이 되고 말았다.
로이는 입술이 바싹 탔다.
박수를…….
쳐 줘야겠지?
잘한 건 잘한 거니까.
그런데, 박수 쳐도 되는 거 맞지?
로이가 문 대표의 낯빛을 살피려는 그때.
이미 배틀을 마친 슈 엔터 연습생들 근처에 앉아 있던 한 여자 연습생이 벌떡 일어나 거리낌 없이 박수를 쳐 댔다.
“우와아!!! 진짜…… 최고…… 대박…….”
찐구의 우측에 앉아 있던 루아가 마구 박수를 치자, 자연스럽게 다른 MGS 연습생들도 하나둘 손을 맞부딪쳤다.
태우는 시우를 봤다.
기대 이상의 실력으로 MGS와 멋지게 한판 붙은 연습생들 덕분에 태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나이 먹고 이런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배우를 키워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시우야, 우리가 이긴 거 같지?’
태우가 눈으로 물었다.
시우는 살짝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린 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실력으론 이긴 거 같은데 판정은 모르죠.’
어쨌든 이곳은 적지였다.
게다가 MGS의 얼굴인 리빅의 연습실.
시우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문 대표를 봤다.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인간군상을 겪어 온 시우의 눈에는 너무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이 티가 났다.
한국 최대의 아이돌 전문 연예기획사 MGS가 연습생 배틀에서 소수 정예를 추구하는 슈 엔터에게 진다?
MGS가 지금까지 쌓아온 존재감에 커다란 금이 생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미처 상상조차 못한 문 대표였다.
‘뭐…… 표가 2 대 2로 갈려서 무승부 나오면, 내가 나가서 빡쌀내면 되니까~ 문 대표는 당연히 MGS 편들 테고. 이 녀석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궁금하네.’
시우는 로이를 봤다.
첫 번째 대결에서 자기 기준대로 슈 엔터 쪽에 표를 준 녀석이었다.
“아, 어렵다~ 어려워~ 우리 MGS 3조도 너무 잘했는데 슈 3조도 정말 잘하네. 요즘 애들이 다들 실력이 좋아. 하하하.”
문경수 대표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시우의 귀를 때렸다.
시우가 쳐다보자 문 대표는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종 승부니까 좀 신중하게 결정합시다. 긴장하고 봤더니 화장실이 급하네.”
문 대표는 로이에게 눈짓을 보내고, 연습실을 나갔다.
김 이사와 로이도 자연스럽게 문 대표를 보필하듯 복도로 따라 나갔다.
그런 세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시우가, 태우에게 말했다.
“이모부, 저도 화장실 다녀올게요~”
밖으로 나간 시우가 화장실을 찾아 걸음을 옮길 때-
예민한 시우의 귀에 어디선가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