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29)
229. 완벽한 무대
검무(劍舞).
검을 들고 추는 춤이라면 언제나 손쉽게 최고의 자리를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경험치가 다르니, 누구도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검무를 비롯해 여러 차원, 여러 나라의 많은 춤들을 한 몸에 익힌 시우라고 할지라도 이곳에서의 춤들은 죄다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락킹이니, 탭 댄스니, 삼바, 탱고…….
온갖 다양한 춤들을 방에서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는 세계.
시우는 자신이 접한 이곳의 춤들 가운데 가장 신기했던 비보잉과-
자신이 과거에 익힌 춤과 흡사하면서도 표현이 자유로운 현대 무용을 택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숨을 흡 들이켰다.
얼굴을 들어 올린 시우의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음악이 울리고-
흰색 셔츠가 부드럽게 흩날렸다.
시우는 두 팔을 벌리고, 왼쪽으로 우아하게 상체를 꺾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몸의 밸런스가 굽혀지는 시우의 몸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었다.
원곡의 격한 안무와는 상반되는 분위기로 시우는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크고 거친 음악 속에서 시우의 손과 몸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광경에 일순간 연습실에 있는 모두가 시선을 빼앗겼다.
웅크렸던 몸이 점점 곧게 펴지며, 왼팔이 연습실 천장을 향해 위로 올라가고, 시우의 오른쪽 다리가 연습실 바닥을 힘차게 밀어 냈다.
파앗!
연습실 바닥을 떠난 오른쪽 다리가 마치 뒤돌려 차기를 하듯,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그와 반대로 시우의 머리는 밑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절도 있는 피치 턴-!
리듬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 등에도 많이 등장하는 우아하기 그지없는 동작이 시우의 몸을 통해 힘 있게 펼쳐졌다.
‘여기서 중요한 건…… 턴아웃!’
턴아웃이란 발과 다리를 엉덩이 관절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했다.
턴아웃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몸이 비틀어지지 않는다.
시우는 전문 무용수들도 놀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안정적인 턴아웃을 구사했다.
첫 동작부터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허공을 가르고 그림처럼 내려온 시우의 오른발이 다시 연습실 바닥에 닿은 순간-
시우의 몸은 마치 풀려난 맹수처럼 자유롭게 MGS 연습실을 휘저었다.
때론 품위 있게, 그리고 때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듯 감정적으로-
압축된 한 편의 드라마를 시우는 노래와 춤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비트가 빨라지고, 음악은 점점 거칠어졌다.
현대 무용에 접목된 비보잉 동작들도 위화감 없이 절묘하게, 기어를 바꿔 가며 무대의 템포를 조절했다.
루아는 좀 전에 오빠 때문에 얻은 실망과 상처를 잠시 잊고, 완전히 몰입한 채 시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말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우가 있는 연습실 중앙의 그 공간이 이미 세상 어느 곳보다도 화려한 공연장 같았다.
루아는 왠지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윤시우가 앞에 있는 것도 감동적이었고, 자신이 윤시우의 춤을 보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성덕이었다.
MGS의 남자 연습생들과 입구 쪽에 몰려 있는 여자 연습생들이 모두 넋을 잃고 있는 그때-
시우의 노래가 들려왔다.
연습실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기에 노래를 부르는 시우의 조그만 숨소리마저 생생했다.
소리가 입안의 공기를 밀어내며, 섬세한 울림과 함께 시우의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언제부턴가 난
검은색이 좋아졌지
아니 그냥 아무 이유가 없어
원래 진짜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어
원곡에서 리빅이 뒷골목 양아치들처럼 강하게, 더욱 강하게 소화했던 파트를 시우는 부드럽게 부르고 있었으나…….
노래하는 시우와 눈이 마주친 연습생들은 공포로 오금이 저려 왔다.
뭐지?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데 왜 이렇게 살이 떨리지?
약간 비틀어진 입꼬리와 예리하게 바뀐 눈매, 그 안에서 언뜻 스치는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눈빛-
문 대표는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날 뻔했다.
‘저, 저, 저 눈빛!!’
문 대표는 기함했으나, 루아와 여자 연습생들은 열광했다.
거친 눈빛과 표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속을 온통 헤집어 놓고 있었다.
리빅의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야 할 파트를 시우는 원래 혼자 부르는 노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계속 소화해 나갔다.
‘다음은 랩 파트.’
로이는 완전히 시우의 노래가 되어 버린 자신들의 곡 블랙을 들으며, 찌릿찌릿 등허리에 전율이 일어났다.
이제는 랩이다.
랩도 할 수 있어?
시우는 로이의 마음속 의문을 듣기라도 한 듯, 화려한 턴과 동시에 꼭 사람이 바뀐 것처럼 표정을 싹 갈아 치웠다.
‘배틀이니까, 좀 놀아 줄까?’
시우는 랩을 장전하기에 앞서 혀로 아랫입술을 살짝 적시고,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뒤로 한껏 쓸어넘기는 약간 느끼한 제스처를 취했다.
“꺄악~!”
“와!!”
“뭐야, 뭐야, 뭐야. 태하 선배님?”
바로 리빅의 래퍼이자 현재 배틀의 진행을 맡고 있는 태하의 시그니처 포즈였다.
그 포즈를 취하며 진행자 태하 쪽으로 돌아서는 시우의 모습에 구경하던 연습생들은 기절할 정도로 흥분했다.
태하는 잠깐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웃으려 애쓰는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한차례 질끈 깨물고 말았다.
시우를 향해 괜히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태하의 허세가 흥미진진하게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이윽고-
시우가 태하를 옆에 둔 채, 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연습생들을 휙 둘러보며 랩을 시작했다.
우린 항상 자신이 없었지
연습생 때부터 그냥 왠지
망할
자신이
없었다니까?
JUST A WINNER [그냥 승리자]
시우의 랩이 나오자, 연습실의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딘가 막힌 듯한 텁텁한 목소리, 그리고 일부러 약간 뭉개는 딕션과 가사를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화려한 플로우-
태하의 랩과 100% 일치했다!
분명 시우가 랩을 뱉고 있었지만, 마치 태하의 랩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더 강렬하다!
넷상에서 종종 패러디되는 랩할 때 나오는 태하의 인상 쓰는 표정까지 슬쩍 따라한 시우는, 꼭 태하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태하의 최상위 버전 같았다.
우린 얌전한 척
하는 위대한 예술가
There’s gold in my head [내 머리에 금 있다]
오늘도 겸손한 척
연약한 척
허리를
숙였
지만
사실
우린
트랩 장르의 랩 스킬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다, 중간에 뚝 끊어졌다.
태하의 랩을 똑같이, 그러나 훨씬 수준 높게 구사하며 태하의 정신을 별나라로 날려 보내고 있던 시우가 충격에 빠진 모두의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바꿨다.
툭툭 뱉는 담담한 플로우에, 시우의 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실렸다.
MGS야. 다 알아서 엎드려.
배틀? NO
판정? NO
공정함? NO
우리는 JUST A WINNER
Because we are MGS
랩 가사가 원곡과 달라졌다.
적지에서의 통쾌한 역습.
환호하던 MGS 연습생들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고, 슈 엔터 연습생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시우가 날카롭게 꼬집어 주자 가슴이 뻥 뚫렸다.
랩을 멈춘 시우는 심사위원석을 돌아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시우의 눈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할랩하않.
할 랩은 많지만 방송이고 연습생 애들도 있으니까 하지 않겠다.
물 흐르듯이 턴한 시우의 몸이 다시 음악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빅의 격렬한 댄스를, 예술적인 현대 무용과 리빅보다 거친 비보잉을 섞어 재해석해 버리니 극과 극을 오가는 마치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성을 지닌 천재 댄서가 탄생했다.
로이는 연기자이면서도 랩, 춤, 노래 모든 것이 압도적인 시우를 보다가 이상하게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뭔가 시원해진 느낌.
‘……졌다. 너무 굉장하다.’
상대는 저렇게 빛이 나고 있는데, 자신은 문 대표의 압박에 자신이 사랑하는 춤과 노래를 두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 놓고 이 길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하긴, 너무 부끄러웠다.
로이는 이제 순수하게 시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으로 치닫고 있는 시우의 무대를 지켜봤다.
음악은 점점 빨라졌다.
시우는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호흡의 흐트러짐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높은 음들을 리드미컬하게 때려 내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면 저렇게 해낼 수 있는 거지?
로이는 계속해서 오싹오싹 소름이 돋았다.
빠른 템포로 속도감 있게 달려가던 곡의 마지막 지점-
탕!
시우의 발이 연습실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높게 솟구쳐 오른 시우의 몸이 활처럼 팽팽하게 나선형으로 휘며 가볍게 착지했다.
아크로바틱 턴 동작을 하는 시우의 살짝 올라간 셔츠 사이로 선명한 복근이 보이자 루아를 비롯한 여자 스태프들과 연습생들은 저마다 얼굴을 붉히며 방송임을 잊고 소리를 질러 댔다.
부드럽게 이음 동작으로 두 무릎을 땅에 대고 고개와 상체를 든 시우가 가쁜 숨을 내쉬며 무대를 마쳤다.
모든 것을 불사르는 듯한 무대.
연습실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할 말을 잊은 듯 끝난 무대를 마친 시우를 멍하니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만 보기에는 아까운 무대였다.
경악을 금치 못한 MGS 연습생들도 현실을 부정하는 분위기였다.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못했다.
드륵-
의자 끄는 소리가 조용한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문경수 대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문 대표는 말없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문 대표답지 않은 기립 박수에 연습생들도 따라 박수와 환호를 시우에게 보냈다.
엄청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시우의 무대에 취해 있던 로이는 문 대표가 패배를 인정했나 싶어, 의외라는 눈빛으로 문 대표를 올려다봤다.
문 대표가 좀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말했다.
“어~ 최고네. 잠깐…….”
아까처럼 문 대표가 심사위원석을 벗어나자 김 이사가 따라붙었다.
문 대표는 따라오지 말라는 듯이 손짓으로 제지하고, 혼자 연습실을 나갔다.
밖으로 나간 문 대표는 연습실 문을 닫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이런 젠장, 숨도 못 쉬고 보고 있었어.’
카메라도 있는 마당에…….
문 대표는 패배를 직감했다.
심정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게 복잡했다.
자리를 잡은 후 자존심이 무너진 적이 없었는데,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었다.
“후우…….”
문 대표는 3분 50초 동안 이어진 시우의 강렬한 춤과 랩, 노래.
그리고 그 빌어먹을 눈빛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마지막 엔딩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공중에서 하늘을 걷듯 뒤돌기를 해, 착지한 후 무릎을 꿇고 심사위원석을 노려보는 그 윤시우의 포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문 대표는 힘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요실금 증상에 대해 검색을 했다.
* * *
– ㅠㅠㅠㅠ 춤이 역대급
– 현대무용이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어요! 와, 윤시우 춤 진짜 잘 춘다.
– 시우 랩할 때 완전 사이다 ㅋㅋㅋㅋㅋ
– 시우가 갑자기 프리스타일로 MGS 깔 때 문경수 표정 좀 많이 쫄아 보이던데 ㅎㅎㅎ
– 누가 봐도 슈 3조가 이겼는데 스타일 운운하면서 자기네 회사 애들한테 표 주는 MGS 클래스 잘 봤습니다.
– 윤시우 정의구현
– 지호 많이 성장했네 ㅠㅠ BSR31 떨어지고 어떻게 됐을지 항상 걱정됐는데 이번에 꼭 뽑혀서 슈 엔터에서 데뷔하면 좋겠다!
– 시우랑 지호랑 둘이 어릴 때부터 학교 같이 다닌 친구라는 소문 있던데 진짠가??
– 시우가 태하 랩 복사해서 업그레이드시켜서 하는 거 보고 놀라서 기절하는 줄
– 재능이 미쳤음 ㅠㅠ
– 나 윤시우야. 다 덤벼. 연기? 노래? 랩? 춤? 또 뭐 있냐…….
– 얼굴
– 슈 엔터 애들 왜케 수준 높음?? MGS랑 비교해도 꿀리긴커녕 오히려 더 잘하는 거 같기도 하고…… 와…… 그냥 소규모 기획사가 아니라 소수 정예 기획사인 듯
배틀 영상은 순식간에 수천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댄스 영화를 함께 촬영하기로 한 바비 헨드릭스 감독으로부터 춤의 장르를 너에게 맞춰 주겠다는 전화가 오기도 하고, 각종 음악 예능에 러브콜이 오기도 하는 등-
다시 또 핫하게 달아오른 시우였지만, 시우는 현재 낯선 장소에서 차디찬 의자에 앉아 스크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스크린에 윤시우라는 이름이 떠오르자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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