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3)
23. 모. 든. 것. 은. 면. 역. 력. 때. 문.
[펫피월드 CF #1 강아지 사료 편]캐주얼 정장을 입은 복실이가 등장했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복실이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끼잉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본 가족 영화 [패딩턴>처럼 CG 처리가 된 복실이의 입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요즘 피곤한지 입맛도 없고 컨디션도 안 좋고…… 매일 누워서 잠만 자고 싶다…….”
그때, 과학자 가운을 걸친 아기 시우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쿠웅-!
거실 중앙에 아이언맨처럼 착지한 시우는 조그만 몸을 일으켰다.
시우는 귀여운 외모와 상반되는 비장한 눈빛으로 입에 물고 있던 쪽쪽이를 부웁-! 하고 뱉었다.
쪽쪽이가 총알처럼 날아가 바닥에 박혔다.
복실이는 입을 떡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우가 복실이를 향해 손을 멋지게 뻗더니.
사자후를 내질렀다.
“아부부부-!”
그러자 갑자기 시우의 주변이 우주로 변했다.
“빠뿌야아아-!”
우주 한가운데서 강렬하게 옹알이를 하는 시우의 좌우로 마치 무협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필체로 커다란 글자들이 쾅쾅 찍혔다.
모. 든. 것. 은. 면. 역. 력. 때. 문.
깨달음을 얻은 복실이는 만화 기법이 들어간 눈으로 후광이 비치는 시우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런 거였어……!”
시우는 복실의 앞에 앉아, 경건하게 두 손을 뻗었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고급스러운 사료 그릇 하나가 나타났고, 아무것도 없던 시우의 손에서 갈색의 사료들이 샘솟듯이 올라와 빈 그릇을 가득 채웠다.
순간, 음악이 바뀌었다.
[유 레이즈 미 업>.입맛이 없다던 복실이가 정신없이 사료를 먹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나왔다.
그릇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은 복실이가 얼굴을 들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뾱- 뾱- 뾱- 뾱-
시우는 창문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시우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자막과 함께 화면 전환이 짧게 짧게 일어나면서, 시우의 귀여운 얼굴이 다양한 각도로 클로즈업되었다.
“아웅!”
– 나는!
“우아부부!”
– 펫피월드의!
“부부부붑!”
– 과학자다!
슈웅-!
시우는 창밖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별이 되었다.
끝으로 하얀 화면이 떠올랐다.
중앙에는 [펫피월드>라는 글자가, 오른쪽 밑에는 [next 고양이 간식 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영상을 본 도진과 현주는 말이 없었다.
내용은 그렇다 쳐도.
시우가…….
너무 귀여웠다.
* * *
늦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었다.
“날씨 진짜 좋다. 이제 가을이네. 이러다 또 금방 겨울 되겠지.”
도진은 드라이기로 자신의 머리를 말리다 현주에게 말했다.
시우의 바람막이 옷을 찾고 있던 현주가 웃으면서 놀리듯이 입을 열었다.
“오빠도 이제 늙었나 보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면 나이 든 거라잖아.”
흠칫.
소파에 앉아 있던 시우는 왠지 찔려, 쓰러지듯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도진은 드라이기를 끄고, 농담을 던졌다.
“그럼 군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막내들이네. 군대 가면 시간 진짜 안 가거든.”
도진의 눈이 아들 시우에게 향했다.
“……우리 시우도 나중에 커서 군대 가겠지? 지금은 저렇게 조그만 아긴데.”
현주가 도진에게 살짝 화를 냈다.
“오빠, 아직 한참 먼 얘긴데 왜 벌써 그런 말을 해.”
이번에는 도진이 장난기 섞인 얼굴로 현주를 놀렸다.
“어린 시우한테나 먼 얘기지, 나이 든 우리한테는 금방이야.”
“안 돼애. 우리 시우 군대 가면, 나 진짜 밤마다 걱정돼서 잠 못 잘 거야.”
외출복을 갖춰 입은 도진이 소파에 누워 있는 시우를 안아 들었다.
“자, 우리 아들. 군대는 나중에 어른 돼서 가고, 오늘은 아빠랑 물고기 보러 가자!”
“무꼬기?”
“시우, 물고기 좋아하지?”
“무꼬기 냠냠.”
현주가 눈에 잘 띄는 노란색 바람막이 옷을 시우의 몸에 걸쳐 주면서 말했다.
“아냐, 시우야. 먹는 물고기 말고. 물고기 친구들 보러 갈 거예요. 거기 가면 상어도 있어~!”
“상어?”
“응. 상어. 와아악! 무서운 상어 구경하고 와. 이빨도 뾰족뾰족해.”
도진은 시우를 안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럼 다녀올게. 시우야, 엄마 안녕 해.”
시우가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주는 단둘이 외출하는 부자의 모습이 걱정스럽기도 했고, 보기 좋아 흐뭇하기도 했다.
“오빠, 진짜 나는 안 가도 돼? 지금이라도 준비할까?”
현주가 물었다.
“아빠랑 아들이랑 둘이 시간 좀 보내게, 엄마는 쉬고 계세요. 몸살 기운도 있다면서. 알았어요?”
“네에, 알았어요. 오빠,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복실이와 네로에게도 인사를 하고, 도진과 시우는 집을 나섰다.
건물 옆 주차장으로 간 도진은 차 문을 열고 뒷좌석 카시트에 시우를 앉혔다.
아빠가 안전벨트와 가슴 버클을 채워 주는 동안 차 안을 두리번거리던 시우는 옆자리에 놓여 있는 스티커 한 장을 발견했다.
시우가 그 스티커를 빤히 보고 있을 때, 아빠의 손이 나타나 가볍게 스티커를 집어 갔다.
도진은 시우의 안전벨트를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차 뒤로 가서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스티커를 제거하고,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한 스티커를 뒷유리에 붙였다.
[위급 상황 시 아이 먼저 구해 주세요. 남아 RH+O>.떨어지지 않도록 스티커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준 도진은 운전석에 올라 차의 시동을 걸었다.
“시우야, 이제 갈까? 엄마랑은 나중에 동물원 같이 가자. 아빠가 오늘 재밌게 놀아 줄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는 아쿠아리움을 향해 출발했다.
시우는 운전을 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말없이 한참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이 있는 복합 쇼핑몰에 도착한 도진은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냈다.
시우를 유모차에 앉히고, 기저귀와 물병, 아기 손수건 등이 든 백팩을 등에 멨다.
도진은 유모차를 밀고 쇼핑몰로 올라갔다.
도중에 시우가 입이 심심하다고 까까를 외쳐, 단호박 맛 아기 과자 하나를 물려 주었다.
“와~ 엄청 크다. 시우야, 여기 멋있지? 아빠랑 모험을 떠나 보자, 우리 아들.”
“우와아!”
시우가 소리를 질렀다.
쇼핑몰의 크기가 마치 드래곤의 레어를 연상케 했다.
어제 새벽, 엄마 휴대전화로 이것저것 사전 조사를 해 온 시우였지만 역시 직접 와서 보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물고기 보기 전에 잠깐 돌아다닐까? 시우 어떤 거 구경하고 싶어?”
도진이 물었다.
시우는 떠오르는 몇 개의 단어 들 중, 한 가지를 골라 입에 담았다.
“드온…….”
“응? 돈? 뭐 어떤 거, 시우야?
“드온.”
“……더워? 시우 겉옷 벗을까?”
“드오온~!”
“알았어. 아빠가 옷 벗겨 줄게. 이리 와 봐.”
시우의 노란색 바람막이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도진.
시우는 도리질을 치며 다시 말했다.
“아빠~ 드온!”
도진은 답답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열었다.
“하아. 시우야, 미안. 아빠가 잘 들을게. 다시 말해 봐.”
“…….”
“…….”
“……드론.”
복합 쇼핑몰 3층에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드론 매장에서는 현재 할인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딱 3일만 진행되는 특가 행사였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 시우 진짜 똑똑하다. 전에 아빠가 TV 보면서 딱 한 번 가르쳐 준 거 같은데 드론을 기억하고 있었어? 어휘가 막 쑥쑥 느네.”
드론 매장 앞에서 도진은 시우를 안아 들었다.
할인 행사 때문에 사람이 무척 많아서, 유모차를 몰고 다니기가 조금 애매했다.
매장 입구 쪽에 유모차를 세워 두고, 도진은 시우와 함께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위이잉-!
부우웅-!
웽웽웽-!
여러 대의 드론들이 매장 위를 날고 있었다.
“지금 날고 있는 저거는 뭐예요?”
“네~! 고객님! 이쪽으로 오시면 제가 상품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기요, 이거 행사 오늘로 끝이에요? 몇 시까지 해요?”
“네~! 고객님! 행사는 오늘 5시까지입니다. 이쪽에서 상담 조금만 받아 보시겠어요?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저 커다란 건 얼마예요? 저것도 지금 할인돼요?”
“네~! 고객님! 물론 할인이…….”
직원들이 드론 시연과 손님 응대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히 드론 비행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뒤섞여 약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도진은 아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몸을 피했다.
“여기서 보자, 시우야. 비행기 구경해. 날아다닌다.”
시우는 아빠 품에 안겨서 드론들의 비행을 감상했다.
‘재밌어 보이네.’
하나 갖고 싶었다.
밤에 복실이랑 네로랑 같이 가지고 놀면 꿀잼 예약이다.
‘참 신기한 세상이야.’
저렇게 물건 하나 자유자재로 날리려면 마나가 상당히 필요할 텐데, 여긴 건전지 몇 개로 끝이다.
아니, 건전지도 필요 없다.
충전만 하면 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론 사 달라고 하면…… 아, 이건 너무 비싸. 엄마, 아빠가 내가 번 돈은 통장에 넣어 놓고 절대 안 건드린다고 했으니까…… 내가 벌어 와도 소용이 없네.’
미스터 문라이트에 잠깐 나오고 받은 얼마 안 되는 금액부터 펫피월드 광고를 찍고 받은 꽤 큰 모델료까지, 고스란히 시우 통장에 넣어 둔 도진과 현주였다.
시우가 스무 살이 되면 주기로 서로 합의를 했다.
덕분에 시우는 날고 있는 드론을 보며 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근처에 서 있던 한 중년 남자가 도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네?”
도진과 시우가 돌아봤다.
시우의 얼굴을 확인한 남자는 안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 맞는 거 같은데? 맞죠? 민서야, 네가 맨날 따라 하는 그 빠뿌야아 하던 그 아기…….”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우와아-!”
핑크포로로라도 만난 것처럼 기쁨의 탄성을 발했다.
살짝 빨개진 얼굴로 도진은 시우를 알아본 중년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
“그렇죠? 맞죠?”
“네에. 그, 그렇습니다.”
“오오! 민서야! 빠뿌야 아가 맞아.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중년 남자의 큰 목소리에 드론만 쳐다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시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애들이 싸웠나? 아닌데? 어? 저 아기…….”
“야! 야! 야! 야! 빠뿌야잖아!”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시우를 알아봤다.
변성기에 접어든 남자 중학생의 고함 소리가 드론 매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귀에 팍 내리꽂혔다.
남자 친구와 함께 드론을 구경하고 있던 한 젊은 여자도 시우를 발견했다.
“꺄악! 진짜 귀여워! 실물이 더 귀여워! 나, 나도 사진 찍고 싶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돼?”
자신의 팔을 붙잡고 묻는 여자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되물었다.
“뭔데?”
“빠뿌야라고! 빠뿌야 아기!”
“아~ 그 모든 것은 면역력 때문?”
“그래! 지금 빵꾸똥꾸 이후 최고의 유행어잖아. 이 빠뿌야아! 자기야. 내가 만약 사진 못 찍으면, 자기가 나랑 아기랑 같이 보이게 멀리서라도 찍어 줘. 알았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