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32)
232. 결승
주말 저녁.
대한민국 국민들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시안 게임의 메달 획득 최종 순위는 늘 한결같았다.
종합 1위는 금메달만 150개 정도를 따내는 압도적인 스코어의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2위 자리를 두고 다툰다.
특히 이번 아시안 게임은 일본과 종합 메달 개수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팽팽한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신연경 41득점! 여자 배구 일본 꺾고 금메달! 대한민국 금메달 64개로 일본 따라잡았다!> [잠시 후,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 획득시 종합 2위 가능성 UP!> [저녁에는 윤시우 & 최수아, 바둑 혼성 페어 종목에서 중국과 결승!> [이진환 9단 오전 10시부터 치른 남자 바둑 개인전 결승에서 2시간 40분만에 아쉬운 불계패. 중국의 19세 천재 기사 양양에게 덜미> [이진환 9단에 이어 금메달 도전한 여자 바둑 개인전 이민정 6단, 대만의 복병 17세 쉬옌루 2단에 반집패>– 바둑 3종목 다 결승 올라가서 금메달 3개 따는 줄 알았는데…… ㅠㅠ
– 여자 바둑은 최수아 없으면 이민정이 왕 아니었나. 결과적으로 패 바꿔치기 한 게 실수였네. 역시 세계 무대에서는 한순간의 안이함도 용납이 안 됨.
– 오늘 종합 성적에서 일본이랑 차이 벌릴 줄 알았더니…… 이따 저녁 때 윤시우랑 내일 야구에서 금메달 기대할게요 ㅠㅠ
– 윤시우랑 최수아도 모른다. 솔직히 둘 다 실력은 좋지만, 상대가 펑샤오랑 리잉이라…… 중국 페어 리그에서 50연승 넘게 한 그냥 밸붕급 호흡을 자랑하는 최강팀임. 윤시우랑 최수아는 급조된 팀이라…… 어렵다고 본다.
– 급조된 팀이라뇨~ 둘이 어릴 때부터 친해서 같이 바둑 공부하면서 큰 사이인데 오히려 시간으로 따지면 중국팀보다 더 오래됐을 거예요~
– 바둑은 뭐가 뭔지 잘…… ㅎㅎ 그냥 해설 열심히 들으면서 윤시우 열심히 응원할게요! 🙂
– 윤시우 바둑 둘 때의 그 진지한 얼굴 너무 좋다
– 시우야 금메달 따고 병역 혜택 꼭 받자 ㅜㅜㅜㅜㅜ ……근데 군복 입은 시우 모습도 좀 보고 싶긴 하다 ㅎㅎㅎㅎ
– 제 남동생이 그러는데 병역 혜택 받아도 훈련소는 간대요. 그때 보면 될 것 같아요! 시우 군대 가서 일 년이나 못 보면 너무 슬플 거 같아요!
오후 6시 20분.
특별 대국장이 마련된 부산의 한 호텔.
시우는 대기실에서 허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향긋한 허브향이 대기실에 퍼졌다.
선수단 분위기는 어두웠다.
이진환 9단의 은메달은 아쉽긴 해도 전성기가 지난 나이를 고려했을 때, 굉장한 선전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사실은 이진환 9단이 아니라 이십대 초중반의 어린 기사 중에서 대한민국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아 줄 기재가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세대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김상수 감독은 허브 차를 음미하고 있는 시우를 바라봤다.
‘……나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시우가 딱인데. 본업이 배우라……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 이렇게 가끔 대표팀에서 활약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젊은 기사들에게 큰 자극이 될 거야.’
반면 이민정 6단의 은메달은 대이변이었다.
특히 결승 상대가 무명에 가까운 대만의 어린 소녀라 더욱 안타까운 결과였다.
‘무난하게 앞서 가서 중반부터는 금메달 9부 능선을 넘은 줄 알았건만…….’
언제 기권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형세였으나, 대만 소녀가 끈기 있게 뒀고 결국 방심한 이민정 6단이 후반에 느슨한 수를 연발하며 통한의 반집패를 당했다.
반집패.
바둑에서 가장 미세한 패배로, 반집패를 당하면 그날 잠은 다 잤다고 보면 된다.
‘만약 시우랑 수아까지 지게 되면…… 바둑 종목에서 노 골드. 하아. 그리고 왜 수아를 여자 개인전에 안 내고 페어로 돌렸냐고 나한테 욕도 엄청 하겠지. 국가대표팀 감독직…… 선수들이 고맙게도 잘 따라 준다는 이유로, 내가 오래 해 먹긴 했지.’
김상수 감독은 만약 시우랑 수아가 진다면, 대표팀 감독직을 그만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한낱 내 일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지. 금메달을 중국이 하나, 대만이 하나 가져갔으니까. 우리도 하나 가져가면 공동 1위야! 시우랑 수아가 반드시 해 줘야 하는데…… 후우…….’
인재 풀에서도 밀리고, 국내 기전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게다가 상금 규모까지 작으니 중국이나 일본 기사들에 비해 수입도 떨어지고…….
한국의 바둑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믿을 곳이라곤, 윤시우뿐이었다.
이번 아시안 게임 성적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윤시우 덕분에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둑을 많이 가르쳐 현재 재능 넘치는 어린 꿈나무들이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꽤 등장하고 있었다.
만약 시우가 HS배에서의 활약으로 바둑 붐을 일으켜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국 바둑은 더욱 빠르게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시우가 또 활약해 준다면…….
2차 바둑 붐이 일어날지도…….
한국 바둑의 미래가 시우에게 달려 있었다.
김상수 감독은 시우가 부담을 가질까 봐, 이런저런 말없이 조용히 가서 시우의 어깨만 한번 꾹꾹 주물러 주고 뒤로 빠졌다.
“……?”
시우는 그런 김상수 감독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의아해하다 이내 속마음을 눈치챘다.
‘속이 타시는구나. 너무 걱정 마세요. 감독님. 인간에겐 지지 않아요.’
시우는 살짝 미소지은 얼굴로 허브차를 마저 마시고, 옆에 벗어 놓은 겉옷을 집어 들었다.
대한민국 대표팀 단복이었다.
흰색 바탕의 겉옷 앞부분에는 휘날리는 태극기가, 뒷부분에는 국가 이름이 영문으로 들어가 있었다.
시우는 대한민국 선수단 단복을 입고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대국실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마찬가지로 단복을 입은 수아도 결연한 눈빛으로 입을 앙 다문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우가 말했다.
“누나, 가자.”
“응!”
* * *
펑샤오는 파트너인 리잉과 같이 일찌감치 대국실로 입장을 했다.
윤시우와 빨리 마주 앉고 싶어 도저히 지체할 수가 없었다.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이 수놓아진 중국 대표팀 단복을 갖춰 입고, 펑샤오와 리잉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윤시우와 최수아를 기다렸다.
이윽고 대국실 문이 열렸다.
입장 모습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펑샤오는 자신들이 입장할 때와는 전혀 다른 온도에, 약간 맘이 상했으나 이해했다.
이곳은 한국의 홈그라운드고.
윤시우는 월드 스타니까.
‘뭐, 인기로는…… 우리가 이길 수 없지. 대신 우리는 실력으로 보여 주겠어. 바둑 기사라면 바둑으로 말해야 옳은 거니까.’
중국 리그에서 다른 페어팀들을 그냥 후려 패다시피 하며 쌓은 57연승 기록.
거기에 더해 이번 아시안 게임 8강전과 4강전 승리.
양심적으로 16강전의 부전승은 뺐다.
총 59연승.
윤시우와 최수아를 이기면 60연승 기록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동시에 갖게 된다.
펑샤오는 전의에 불타는 눈으로 윤시우를 노려봤다.
꾸벅.
시우가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펑샤오도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돌가리기 결과 시우와 수아는 백을 쥐었다.
바둑을 알든 모르든, 한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를 떠나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윤시우의 금메달 여부와 병역 혜택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국을 시청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의 팬들 또한 시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영어 해설 중계방을 찾아와 시우를 응원했다.
타악!
고요해진 대국실에 바둑돌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때때로 지나치게 안전한 수를 추구하지만, 대체로 견고하다는 평을 듣는 리잉이 첫 수를 두었다.
시우와 수아는 격려하듯 서로 한차례 시선을 교환하고, 함께 바둑판을 내려다봤다.
리잉의 첫 수는 우상귀의 화점.
촤르륵.
수아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나무로 만들어진 바둑통에서 바둑돌 하나를 꺼냈다.
시우와 어젯밤 늦게까지 상대팀의 기보를 분석하며, 초반 포석에 대해 의논을 많이 했다.
‘상대가 화점으로 나올 때는, 소목으로……!’
수아의 손이 좌하귀의 소목으로 움직였다.
타악!
검은돌과 흰돌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다음은 펑샤오의 차례.
‘소목?’
펑샤오의 매서운 눈빛이 수아의 얼굴을 슥 훑었다.
그리고 검은돌을 바둑판 위에 강하게 내려놓았다.
타악!
네 번째 차례인 시우는 펑샤오가 반상 위에 돌을 올려두자 마자, 곧바로 손을 뻗었다.
타악!
해설자들이 바빠졌다.
[중국팀이 먼저 양화점을 뒀고, 우리 최수아 윤시우 선수는 양소목으로 대응을 했습니다.] [윤시우 선수가 노타임으로 바로 뒀어요.] [네. 우리 두 선수가 뭔가 연구를 해 온 거 같아요.]시우는 양화점과 양소목으로 맞선 흑백의 돌들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인공지능처럼 계산하기 시작했다.
‘펑샤오와 리잉이 팀을 만든 건 작년 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몇 개의 팀들 중,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며 가장 두각을 드러냈고……. 중국 리그에서 공식전 57연승 기록을 올렸지.’
약점이 없어 보이는 무적의 페어였지만, 시우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 둔 바둑 100판을 분석해 보니, 상대가 백을 쥐고 양소목을 펼치면 초반 포석에서 평소보다 고전하는 기미가 보였지. 자, 어떻게 할래?’
승패는 재능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연구와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재능도 결실을 맺는다.
시우는 그냥 둬도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세력을 중시하는 중국과 반상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며 실리를 챙겨 가는 한국의 기세가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리잉이 둘 차례.
펑샤오가 리잉을 흘끗 쳐다봤고, 그 시선을 느낀 리잉도 펑샤오를 돌아봤다.
‘윤시우랑 최수아는 둘 다 전투형이야. 이렇게 계속 야금야금 점수를 잃다간 나중에 돌이킬 수 없어.’
페어 바둑은 대화 금지, 상의 금지였기 때문에 자신의 수와 약간의 눈빛만으로 파트너와 의사를 주고받아야 했다.
리잉은 좋지 못한 펑샤오의 표정에, 현재 상황을 상당히 불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생각도 같았기에 리잉은 잠시 태세를 정비하기로 했다.
윤시우가 둔 예리한 수.
그냥 계속 싸우자고 유혹하는 수.
더 이상의 전투는 아무래도 득보다 실이 크다.
이 수를 피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숨을 고를 여유를 얻기 위해, 바둑판을 노려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리잉은 마침내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윤시우의 수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왜지?
아직 초반인데?
아……!
여덟 수 전에 윤시우가 미리 두었던 한 수가, 절묘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시우는 편안한 얼굴로 리잉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기세 좋게 싸울 때는 몰랐겠지. 이제 빠져나갈 생각을 하니 막힌 길이 보일 거야.’
시우의 수를 진작에 눈치챈 수아는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시우의 옆얼굴을 봤다.
‘어떻게 저런 수를……!’
그리고 뒤이어 펑샤오의 얼굴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윤시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