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36)
236. 템플 스웩
“애정씬?”
“네. 달달한…… 그런 거.”
“그래. 그게 왜?”
헨드릭스 감독의 눈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남자 주인공 역에 시우를 캐스팅할 때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여자 주인공 역을 구하는 것은 배로 더 힘들었다.
‘시우를 뽑을 때는 그냥 좋다고 신이 났었지.’
막상 시우를 뽑고 나서 보니, 밸런스를 위해 여자 주인공도 존재감 강한 배우를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시우처럼 춤과 외모, 연기 삼박자를 두루 갖추는 것까지는 너무 욕심이라 바라지 않았고.
이중 두 가지만이라도 관객들을 사로잡고 시우와 어울려 줄 수 있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는데, 솔직히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찾고 찾던 중-
브라질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에서, 거의 모든 곡에 나와 여전사처럼 완전히 몰입해 춤을 추는 그녀를 발견했다.
뭐하는 친군지는 몰라도 그녀의 춤에서 신들린 듯한 느낌을 받은 헨드릭스는 당장 그 영상 속 주인공을 수소문했고, 결국 찾아냈다.
마치 맹수처럼 강렬한 블루그린 눈동자.
구릿빛 피부에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이 소설 속의 다크 엘프처럼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야라 라세르다. 나이도 시우와 비슷하고. 천운이 따른 캐스팅이었어. 문제는…… 영어 억양이랑, 아니야 이건 나름의 묘한 매력이 있으니까 괜찮아. 진짜 문제는 연기 경험이 적다는 점이지.’
큰 단점을 큰 장점이 씹어 먹는 경우라 도박하는 심정으로 섭외를 진행했다.
신뢰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헨드릭스는 야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최대한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생각이었다.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야성미와는 별개로 얼굴에는 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는 야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신이 없어요.”
“음?”
자신이 없다고?
“시우와 애정씬이?”
“네.”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런지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을까? 딱히 키스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댄스 영화기 때문에 애정씬의 수위는 매우 낮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야라는 조금 창피한지 민망해하며 말했다.
“그, 그렇죠.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시우를 볼 때 눈빛이나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 친구들이 그러는데 제 눈빛이 너무 도발적이고 강해서, 달달한 느낌이 전혀 안 난다고.”
시우를 좋아하는 역할이라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당연히 시우에게 배틀 거는 역할인 줄 알았다고…….
“감독님. 저는요. 브라질에 찾아오셨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지금은…… 배우보다 케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거든요. 진짜 걸크러쉬한 그런…… ‘쩌는’ 걸그룹 되고 싶은데…….”
‘쩌는’이라는 단어는 그냥 한국어로 뱉어 버리는 그녀였다.
헨드릭스 감독은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충분히 알아.”
“네. 제가 바로 짐 싸서 브라질을 떠나온 이유도 이 영화에 시우 윤이 출연하기 때문이잖아요.”
“아까 보니까 대화 많이 나누던데?”
야라의 얼굴 표정이 잠깐 배시시 풀어졌다.
그러나 곧 강인한 다크 엘프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길게 숨을 한차례 내쉬고 굳은 각오가 서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우에게 꼭 제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그러면 제 꿈을 이루는 데 엄청 큰 자신감이 생길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연기 못해서 시우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요. 댄스 외에 중요한 연기는 시우와의 애정씬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시우와 직접 만나고 나니까 더 자신이 없어져요. 시우는 굉장히 대단한 배우잖아요. 전…… 브라질에서 연극 무대 몇 번 서 본 게 전부인 사람이고…….”
헨드릭스 감독은 시우와 만난 그녀가 시우의 아우라에 주눅이 든 것이라고 판단했다.
‘큰일 났네. 시우의 아우라는 연기할 때가 진짠데. 벌써부터 이러면 나중에는 어떡하지?’
헨드릭스 감독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직 촬영까지 일정이 조금 남아 있잖아. 그때까지 시우를 찾아가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구하도록 해. 너의 연기 파트너는 시우니까 최대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트레이닝도 계속 열심히 하고.”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야라는 감독의 따뜻한 격려에 주먹을 불끈 쥐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 * *
똑똑똑-
“시우야, 뭐 하니.”
케빈이 방문을 노크하자 안쪽에서 시우가 외쳤다.
“그냥 있어. 들어와~”
케빈은 문을 열었다.
방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는 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게임을 하나 싶었는데 모니터에는 게임 영상 대신 글자들이 빼곡했다.
케빈은 시우의 책상 위에 작은 아이스크림 컵을 내려놓았다.
“고마워.”
“소설 쓰는 거야? 엄청 꾸준히 하네.”
시우는 손을 멈추고 아이스크림 컵을 집어 들었다.
“쉬엄쉬엄 하는 거야. 근데 왠지 쓰다 보니까 소설이라기보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되고 있어.”
“네가 늘 보는 게 대본이니까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지. 어디 함 볼까? 제2의 할리와트가 될 수 있을지…….”
“어허~”
시우가 전광석화처럼 창을 전환했다.
글자들이 사라지고, 시윤이와 시아가 복실이와 네로를 안고 있는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함부로 보시면 안 됩니다. 아저씨.”
“에이, 무슨 일기도 아니고 소설은 보여 주고 평가를 들어야지.”
움찔.
아니, 뭐…….
일기긴 한데…….
“공개는 할 건데, 다 쓰고 정식으로 할 거야~”
“그때까지 형한테도 안 보여 준다고? 진짜?”
“예외 없음.”
“알았다. 알았어. 우리 시우 시나리오 쓰는 솜씨도 이 형이 아니까 기대가 돼서 그런 거지. 언제 다 쓰는데?”
“일단 1부는 올해 안에 마무리하려고.”
“……2부도 있어?”
케빈의 동그래진 눈을 보고 시우는 크게 웃었다.
“마음만 먹으면 100부작까지 가능함.”
“100부작?!”
“음, 그런데 재미없고 밋밋하게 끝난 인생들도 많아서…….”
“뭐?”
“아니야. 작품 속 설정상, 뭐 그런 게 있어.”
“흠~ 심심풀이로 쓰는 줄 알았더니…… 진짜 나중에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제의 들어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김칫국 마시지 마시고요.”
물론…… 영화화에 대한 꿈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가능하다면 할리와트 시리즈처럼 멋지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인생을 이곳에서 영화로 만들고, 내가 전생의 나를 연기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저려 온다.
기쁜 걸까.
아픈 걸까.
그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나는 전생에 너무 많은 것들을 두고 왔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건…….’
이곳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빠와 엄마.
시윤이.
시아.
반드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오래 살게 해 줄 복실이와 네로.
시우는 레몬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밝게 웃었다.
“맛있네. 아이스크림은 사랑이지.”
케빈은 자신이 가져다준 아이스크림 컵 하나에 저렇게나 행복해하는 시우를 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치. 일 끝나고 아이스크림 한 스푼 딱 입에 넣는 게 요즘 내 낙이야. 아, 너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하지 않아?”
케빈의 말에 시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이렇게 됐네.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순삭된다니까. 이거만 먹고 나갔다 올게.”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라.”
“넵.”
시카고의 관광 명소인 밀레니엄 파크 앞.
시우는 짜장 라면과 파 맛 시리얼이 든 백팩을 메고 니콜라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우가 미국에 오기만을 기다리던 할리와트 친구들이 오랜만에 다시 뭉치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헨리는 학교의 시험 일정과 겹쳐 올 수가 없게 됐고.
루시는 LA에서 지금 차로 오고 있는 중이라 약간 늦는다고 했다.
“직접 만난 지는 진짜 꽤 됐네. 우리 대스타 닉. 요즘 아주 잘나가던데.”
영화의 대박으로 할리우드 차세대 배우들 중,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게 된 니콜라스였다.
왔다 갔다 배회하며 10분 정도 시간을 보내자 시우의 앞쪽으로 번쩍거리는 노란 스포츠카 한 대가 도착했다.
차문이 위로 날개처럼 멋지게 열렸고.
안에서 키가 큰 한 금발의 미남자가 나왔다.
시우는 깜짝 놀랐다.
‘……옷이 왜 저래?’
후줄근한 회색 옷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그 남자가 시우에게로 다가왔다.
시우는 주춤주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은 분명 자신이 아는 니콜라스인데, 패션은…….
“이야~ 슈! 브롸~ 덜! 이게 얼마만이야!”
니콜라스는 시우를 꽉 안고, 한참을 웃었다.
반갑게 인사를 한 시우가 떨어지자마자 물었다.
“옷이 진짜 특이하네. 무슨 스타일이야?”
“어~ 자유분방한 스타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나만의 스톼일~ 좋은 옷? 버려. 비싼 옷? 버려. 내게 맞는 옷! 편한 옷! 나는 이제야 진정한 패션에 눈을 떴어.”
“…….”
“이것이야 말로 템플 스웩! 아, 예전에 한국 가서 사촬 체험할 때 진짜 좋았어.”
“……!”
아…….
어딘가 낯익다 싶었는데, 스님 옷에 악세사리 걸친 패션이었구나.
“……멋지네. 응. 훌륭해. 템플 스웩. 예~”
“예~! 가자. 시우. 루시 안 왔으니까 우선 애피타이저 먹고, 루시 오면 디너 먹자.”
“그래.”
시우가 니콜라스와 같이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하려는 찰나.
시우의 휴대폰이 진동을 했다.
발신자는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여주인공 야라 라세르다였다.
‘무슨 일이지?’
시우는 니콜라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시우가 야라와 잠시 통화를 나누는 동안, 니콜라스는 시우가 건네준 파 맛 시리얼을 기대에 찬 얼굴로 뜯어 봉지 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아, 마침 밀레니엄 파크라 근처긴 한데…… 친구랑 선약이 있어서 지금은 좀 만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쉿트!”
시우의 귓가로 누군가의 욕설이 들려왔다.
시우가 고개를 돌리자, 니콜라스가 볼이 빵빵해진 채 입을 우물거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걸렸구나.
과자를 어렵게 씹어 삼킨 니콜라스가 혓바닥을 내민 채,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왜 누군데? 일 있어?”
“아니, 영화 같이 출연하는 여주인공 친구인데 연기 문제로 상의할 게 있다고 해서…….”
“그래? 그럼 오라 그래~ 우리도 다 연기자잖아! 연기 얘기 좋지! 으…… 근데 이건 녹차 라떼 맛이 아닌데?”
“파 맛이야.”
“……으헉, 왜 진작 말 안 했어?!”
“네가 안 물어보고 먹었잖아. 거기 파 그려져 있는데~”
“하아…….”
“그보다 진짜 오라고 해?”
“……그래. 내가 루시한테 물어볼게.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그리고 잠시 후.
루시는 오랜만에 시우와 만난다는 생각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차를 주차장에 세웠다.
니콜라스도 오랜만이고, 또 시우와 영화를 촬영한다는 새로운 친구도 누군지 궁금했다.
‘시우랑 친한가? 무슨 역할이지?’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루시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자리로 걸어갔다.
“헤이~ 루시!”
어디선가 니콜라스의 활기찬 외침이 들려왔다.
여전했다.
‘오지 여행 목적지 정해졌다던데…… 어딜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도착한 루시의 눈앞에 묘한 패션을 한 니콜라스가 나타나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루시는 니콜라스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시우를 찾아 니콜라스의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시우가 있어야 할 니콜라스의 맞은편 자리에…….
시우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라틴 스타일의 화려한 외모를 지닌 한 여성이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