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39)
239. 테라 아레나
시카고, 웨스트 35번가에 위치한 테라 아레나.
NBA의 신생 농구팀인 시카고 블루윙즈의 홈구장이다.
현재 이곳은 팀의 성적이 무척 좋은 상황이라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배급사 코스모스 픽처스의 대표 러셀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시카고 블루윙즈 팀의 구단주와 같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촬영에 협조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하하,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우리 팀이 창단한지 얼마 안 돼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부족한데 이렇게 잠깐이나마 영화에 언급되면, 우리도 좋지. 부담 갖지 말고 부탁하라고. 러셀.”
“대학생 시절에 매일 함께 농구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우리 둘 다 어엿한 사업가로군. 참 시간이 빨라.”
“그러게 말이야. 부자가 됐고. 가족도 생겼지. 밑에 지금 시우 윤도 와 있는 거지?”
“그래.”
“우리 딸이 할리와트랑 같이 컸거든. 시우에게 꼭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어.”
둘은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차장에 진입했다.
시우는 주차장 한편에서 주차 안내 요원 옷을 입고 촬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오~ 시우 윤!! 사인 한 장만…….”
갑자기 웬 아저씨가 시우에게 접근해 사인을 요청하자, 스태프들이 신속하게 그를 가로막았다.
러셀이 소개를 해 준 후에야 스태프들은 안심하고 뒤로 물러났다.
“제 딸이 진짜 팬이에요!”
“아~”
“사인이 너무 받고 싶다고 저를 들들 볶더라고요. 하하하.”
시우는 촬영에 흔쾌히 협조해 준 그에게 사인을 해 주고, 농구장이 시설이 너무 좋다는 등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그럼 촬영 힘내시고, 오셨으니까 이따 경기도 볼 거죠? 제가 모든 스태프분들을 위해 자리를 준비했는데.”
“네. 당연히 봐야죠. 저 스포츠 엄청 좋아해요. 게다가 오늘은 또…….”
“……?”
“음…… 그러니까…… 빅 매치잖아요.”
마침 시카고로 원정을 온 상대팀이 시우가 케빈과 종종 응원하러 다니던 LA 베이비스였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아저씨는 시카고 블루윙즈의 구단주니까, 굳이 그런 말을 꺼낼 필요는 없겠지?
‘재밌겠다. 이번 시즌 첫 관람인가. 나도 농구하고 싶네.’
“다시 한번 갑시다! 준비하고~ 액션!”
헨드릭스 감독의 사인과 동시에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시우는 이미 자신의 분량을 마무리한 상태였지만, 촬영을 돕기 위해 진짜 주차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람처럼 계속 열심히 경광봉을 움직였다.
주인공 수호와 제니가 두 번째로 만나는 씬이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 안에서 제니의 엄마 역을 맡은 배우가 대사를 쳤다.
“이렇게 가족끼리 외출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그래야 하는 거야. 너도 그런 이상한 춤은 관두고…….”
“이상한 춤이라니?”
뒷좌석에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야라가 좀 더 인상을 찌푸리며 뾰족하게 외쳤다.
“엄마가 내 춤을 제대로 본 적이나 있어?”
제니와 수호, 둘 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는 것은 똑같았지만 배경은 달랐다.
제니는 꽤 풍족한 집안에서 곱게 곱게 자라다 뒤늦게 춤에 빠졌다.
현재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댄서가 되기 위해 독립하려 애를 쓰는 입장이었다.
반면 수호는…….
엄마 역의 배우가 딸에게 질 생각이 없다는 듯, 더욱 큰 소리를 냈다.
“봤지! 네가 보러 오라고 했을 때, 안 갔다고 했지만 사실은 가서 봤어! 가족이니까! 그런데 아주……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런 미래도 없는 일에…….”
“뭐라고?!”
“됐다. 여기까지만 말하자. 오늘만큼은 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구나.”
“먼저 말을 꺼낸 건 엄마잖아!”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빠가 주차 요원 쪽으로 핸들을 꺾으며 둘을 말렸다.
“그만~ 오늘 내 생일이잖아. 그만해 줄 수 없을까?”
엄마와 딸은 나란히 콧바람을 내뿜으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그리고 야라의 시야에, 차창 밖에서 경광봉을 휘두르고 있는 시우의 모습이 들어온다.
“…….”
가만히 그쪽을 응시하던 야라의 눈이 점점 커진다.
“어?”
수영장에서 본 그 남자?
맞나?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그녀가 탄 차가 그 주차 요원으로부터 멀어진다.
“컷! 오케이!”
모니터를 통해 차 안에서의 상황을 지켜보던 헨드릭스 감독이 한층 좋아진 야라의 감정 연기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야라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차에서 내렸다.
멀리서 시우가 잘했다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주고 있었다.
연기 선생님이나 다름없는 시우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야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떠났다.
다음 씬은 제니가 가족들과 경기를 보고 나온 상황이었다.
“와, 마커스는 진짜 최고의 선수야. 상대팀이라도 인정할 건 해야지. 아마 이번 시즌에도 MVP를 쉽게 따낼 거야. 제니. 아까 마커스와 하이파이브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야라는 엄마 역의 배우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차로 향했다.
“뭐…… 나쁘지 않았어요.”
아빠 역의 배우는 흥분한 모습으로 연기를 이어 갔다.
“나쁘지 않긴, 평생 기억에 남을 엄청난 일이라고. 아마 마커스 사우스게이트는 NBA에 역사를 바꿀 위대한 선수가 될 거야. 마커스가 우리 팀으로 이적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일을 맞아 신이 난 아빠를 배려하기 위해 제니는 엄마와 다투지 않고 얌전히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야라와 엄마 역의 배우기 차에 타자 아빠 역의 배우는 차를 출발시켰다.
테라 아레나의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가운데, 야라는 문득 드는 생각에 누군가를 찾듯 차창 밖을 두리번거렸다.
야라가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어느 순간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어?”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봐야지.
그 남자가 맞는지.
그때, 구해 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앞쪽의 차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가 다른 곳으로 구역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우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야라는 아빠 역의 배우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아빠, 오늘 즐거웠어요. 먼저 가세요.”
“뭐?”
야라는 멈춰 서 있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우는 여러 대의 촬영용 차량들을 상대로 주차 안내를 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사실 흉내만 내면 되는데 이 주차장의 구조가 전부 머릿속에 그림처럼 들어온다.
차를 몰고 가던 스태프들은 앞에서 능숙하게 경광봉을 휘두르는 시우의 모습을 보며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 안내하는 모습조차 멋지네.’
“어느 쪽으로 가면 돼요?”
한 여성 스태프가 운전석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정해진 대사였다.
시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손짓으로 좌측을 가리켰다.
여성 스태프는 이게 뭐라고 이렇게 두근거리나 스스로도 의아해하며 시우가 가리킨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어느새 차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주차장이 한적해졌다.
시우는 지친 얼굴로 경광봉을 밑으로 늘어뜨렸다.
그리고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퇴근하려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시우의 팔을 툭툭 쳤다.
멈칫-
얼굴을 돌린 곳에는 밝게 웃고 있는 야라가 있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긴장한 것치고는 적응도 잘하고 있고, 표정도 좋네.’
심지어 영어도 ‘대사’를 칠 때만큼은 꽤 정확하다.
연기든 영어든 제법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학생이었다.
시우의 눈빛이 야라의 얼굴에 닿았다.
처음에는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는 느낌을 카메라에 전달하고, 그 후에는 알아봤지만 특별히 내색하지 않는 표정을 얼굴에 담았다.
카메라가 시우의 눈빛을 찍기를 기다리던 야라가 신호에 맞춰 입을 열었다.
“헤이~”
“…….”
“어…… 카일라의 파티에서…… 수영장…….”
“…….”
“그러니까 음~ 혹시 평소에 수영장에서 사람을 구해주는 일이 많아? 그래서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나? 난 그런 일이 처음이라…… 네가 엄청 기억에 남아 있는데. 하하하!”
“알아. 누군지.”
“앗! 알아?”
다행이라는 듯이 웃는 그녀의 옷차림새를 카메라가 한차례 슥 훑었다.
연기에 몰입한 시우가 내적 대사와 함께 눈빛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잘 사네.’
아르바이트는 왜 한 걸까.
들고 있는 저 작은 백만 팔아도 파티에서 접시를 나르며 버는 돈의 몇 배를 쉽게 얻을 거 같은데.
뭐 됐어.
잘살든 못살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수호는 돈 많은 인간들의 허세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허영을 한국에서 질리도록 맛봤기 때문에, 돈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감정을 드러내 놓지 않았지만, 시우의 얼굴 위로 희미한 냉기가 알 듯 모를 듯 덧씌워졌다.
시우를 마주 보고 있던 야라는 그 온도차를 느끼고 어쩐지 가슴이 서늘해졌다.
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처음과 똑같이 자신의 앞에 서 있을 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거절당한 것처럼 마음이 욱신 아팠다.
‘이런 게 연기인가?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해서 정말로 눈을 못 쳐다보겠어. 신기해.’
* * *
주차장에서의 촬영이 끝났다.
이제 저녁부터 밤까지는 오랜만에 다 같이 긴장을 풀고 신나게 즐기는 시간이었다.
빰빠빰빠빰빠~!
어딘가 익숙한 음악 소리가 농구 코트에 울려 퍼졌다.
구단주와 배급사 대표 러셀을 따라 입장한 시우는 자리에 앉으려다 엉덩이를 멈췄다.
‘뭐지, 이 노래? 뭔가 그리운…… 그리운 멜로디인데…….’
시우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때.
시우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그 맛은 여전한 레전드 명곡이 스피커를 뚫고 터져나왔다.
– 와우! 베이비 라이온! 빰빠빠 빰빠빠빠! 빰빠빠 빰빠빠빠!
“…….”
– 베~ 이~ 비~ 라이온!! 뚜 루루 뚜루!! 귀여운~ 뚜 루루 뚜루!!
미국판 사자 가족 음악이 강렬하게 관중들의 귀를 때림과 동시에 대형 스크린에 시우의 얼굴이 떴다.
구단주가 시우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위쪽의 금니가 인상적이었다.
“시우를 위한 이벤트! 하하하!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네. 마음에 드네요.”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시우도 씩 웃어 주었다.
“와아아!!”
“시우~!”
“정말 보고 싶었어!!”
“시카고에 온 걸 환영한다!”
열광적인 환호가 쏟아졌다.
코트와 가장 가까운 플로석에 헨드릭스 감독, 야라 등과 같이 앉은 시우는 자신을 쫓아온 카메라를 향해 반갑게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꺄아악~!”
함성이 더 커졌다.
시우를 비롯한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관중들과 웜업 중인 선수들까지 모두 즐겁게 디스코 버전 사자 가족 음악에 취한 그 순간.
코트 위쪽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댄스 타임>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떠올라, 화면 속에서 흔들흔들 춤을 춰댔다.
‘……뭐야, 댄스 타임?’
시우는 불길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옆에 있는 야라를 보자, 야라는 기대에 가득찬 얼굴로 시우를 보고 있었다.
할리와트 초창기에 미국 방송에 나와 이 춤을 너무 춰댄 게 잘못이었다.
“하하, 내가 이젠 다 커서…… 설마 춰야 하는 건가? 안 시키겠지?”
시우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대형 스크린이 3분할 되면서 세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4살이나 됐을까?
왼쪽에는 귀엽게 생긴 볼이 빵빵한 한 여자아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NBA의 역사를 바꿀 천재 플레이어라는 마커스 사우스게이트.
중앙에는-
불길한 예상은 항상 맞아떨어지곤 한다.
몸을 풀던 천재 가드 마커스의 눈이 벤치 뒤쪽에 있는 시우에게 향했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그 무엇도 남에게 져선 안 된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