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44)
244. YCDI
“혹시…… 연예인 해 볼 생각 없어요?”
남자는 숨을 고르더니 다짜고짜 시우에게 물었다.
남자의 눈이 희번덕 빛나고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은 반밖에 안 보이지만…….’
마스크 위로 살짝 보이는 콧대와 눈매만 봐도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감이 확 온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눈빛이랑 분위기까지…… 아우라가 장난 아닌데?’
MGS나 갓 엔터 같은 대형 기획사들이야 오디션 보러 오는 친구들이 넘치고 넘치니, 그중에 고르면 된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기획사의 경우에는 보석 같은 인재가 알아서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SNS도 열심히 뒤지고, 발로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
“하아, 하아, 뛰어왔더니 숨이 차네. 하하. 멀리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감이 팍! 오는 거예요! 아, 저는 일단…… 휴우~ 아이고, 힘들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시우에게 명함을 줬다.
시우는 얼떨결에 건네받은 명함을 확인했다.
[YCDI 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 김도균>뭔가 그럴 듯한 직함이었으나, 회사가 밤톨만 한 탓에 부서의 구분 따윈 의미가 없었다.
도균은 최대한 호감 가는 미소를 만면에 띠고 시우와 눈을 마주쳤다.
‘느낌 좋아. 느낌이 너무 좋아. 마스크 한번 내려 달라고 하고 싶긴 한데, 당장 그러면 굉장히 실례일 수 있어. 일단 연락처 받아 두고 오디션 보러 오라고만 말해 두자.’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뭔가 그림 같다.
명함을 보다 위로 시선을 슥 올리는 그 작은 행동 또한 왠지 영상미가 뛰어난 멋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분위기가 넘친다.
‘포스가……!’
당황한 시우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애가 탄 도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몸의 밸런스도 그렇고,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배우 느낌이 있어요. 혹시 연기에 관심 없어요? 뭐 노래나 춤도 좋고. 한번 오디션 보러 와 주면 정말 고마울 거 같은데…….”
“아…… 네. 연기요?”
“푸우웁!”
어정쩡하게 선 채로 시우가 대꾸하자, 옆에 있던 정태는 참지 못하고 그만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도균은 갑자기 웃음이 터진 정태를 보고 의아해하면서도, 직업 정신을 발휘해 정태를 한차례 살펴봤다.
‘이쪽도 비주얼이 괜찮은데? 이 친구도 한번 오디션 보러 오라고…….’
도균이 명함 한 장을 더 꺼내려고 품에 손을 집어넣는 그때, 시우가 조용히 마스크를 밑으로 내렸다.
“……제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한데, 제가 소속사가 있어서요.”
“…….”
시우의 얼굴을 본 도균의 눈이 점점 커졌다.
도균은 찢어질 듯이 눈을 부릅뜨고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 뭐 이렇게 잘생긴…… 헉!! 후, 후광이 비친다!! 세상에 이런…… 이런 외모가…… 잠, 잠깐!’
말없이 시우의 얼굴을 뚫여져라 응시하던 도균이,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면서 외쳤다.
“와, 윤시우! 윤시우!”
시우는 멋쩍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네, 제가 윤…….”
“윤시우랑 똑같이 생겼어!!”
“네?”
“와, 이미지 진짜 완전 비슷한데? 심지어 윤시우보다 더 잘생겼는데?!”
확실히 실물이 더 나은 모양이었다.
정태는 웃다가 배가 당기는지 배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진짜 나는 윤시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어…… 진짜 한 수 위다. 한 수 위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네…… 감, 감사합니다.”
마스크 벗으면 알아볼 줄 알았는데, 설마 자신이 길에서 윤시우랑 마주쳤으리라곤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정태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연기자 윤시우 본인이에요.”
“뭐라고요?”
도균이 되묻자, 정태는 다시 친절하게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얘가 할리와트랑 폴트 생존자들의 배우 윤시우예요.”
정태를 멍하니 쳐다보던 도균의 머릿속으로, 폴트 생존자들의 영상 하나가 휙 스쳐 지나갔다.
무너진 건물에서 깔린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한 단역 배우.
그 얼굴과 정태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 그렇다면…….’
도균의 시선이 시우에게 향했다.
“…….”
“…….”
“……본인?”
“네.”
시우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시우는 운전대를 잡고 한국에서 지낼 때 종종 신세를 지는 블랙 타이거 짐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마침 시윤이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거기서 정태가 할 만한 몇 가지 동작 가르쳐 주고 저녁에는 지연 누나 만나서 밥 먹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영화 스태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고, 한숨 쉬어 갈 수 있었다.
‘가면 또 댄스 연습이 기다리고 있겠군.’
시우가 능숙하게 차를 몰고 있을 때,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정태가 말했다.
“YCDI가 유캔두잇의 약잔가 봐. 회사 SNS 들어가 보니까 그 말이 제일 먼저 뜨네.”
“그 기획사?”
“응, 그 직원분 되게 귀여우시던데. 회사 되게 가깝다. 너희 회사랑도 안 멀어.”
“그래? 본 적이 없는데.”
“주소 보니까 사옥 아니고 그냥 사무실 하나인 거 같아.”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도 규모가 천차만별이다.
으리으리한 사옥도 있고,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는 회사도 있다.
연습생들이 연습실이 아닌 일반 지하실에서 연습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뭐 사실인지는 직접 본 게 아니라서 알 수 없었지만.
“어? 시우야~ 너 예전에 초등학생 때 레인드롭 음악 좋아하지 않았어?”
레인드롭?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지?’
시우가 초등학생 때 자주 스트리밍했던 혼성 3인조 보컬 그룹이었다.
“응. 멜로디 라인이 예뻐서 엄청 들었었지.”
“맞아. 그래서 어른들이 너보고 어린데도 감성이 남다르다고 신기해했잖아.”
“갑자기 레인드롭은 왜?”
호기심에 도균이 건네준 명함을 보고, YCDI 엔터테인먼트 SNS에 접속해 본 정태는 이것저것 살펴보다 시우가 궁금해할 만한 소식을 발견했다.
“여기~ YCDI 대표님이 그 레인드롭 음악들, 작사 작곡하던 여자 멤버분이셔.”
“……이해인?”
“응.”
레인드롭의 노래 중, 특히 To Keep My Love from Me는 불과 며칠 전에도 들었다.
다른 곡들은…….
지금 와서 듣기엔 약간 올드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추억 보정이 들어가면 역시 꽤 좋다.
‘음, YCDI라…….’
시우는 블랙 타이거 짐의 지하 주차장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 * *
“레디, 액션!”
정태의 눈빛이 바뀌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촬영장의 공기가 진지해진 그 순간, 정태의 옆에 있던 깡패1 역의 배우가 상의를 확 벗어젖혔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카메라 앞에 선보인 그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근육들을 보란 듯이 움직여 댔다.
남자 주인공 역의 배우가 놀란 얼굴로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제 깡패2의 차례.
깡패2는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멋진 3연속 발차기를 펼쳤다.
감독은 평소의 운동 실력이 엿보이는 깡패1과 깡패2의 퍼포먼스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깡패3의 차례.
정태는 편집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영화 [주먹 쥔 김에>는 진지한 느와르물이 아니다.
유쾌 상쾌한 청춘 액션물이다.
근육 자랑?
교과서 같은 발차기?
남주를 위협하는 깡패라고 해서 꼭 그렇게 정형적이어야만 하는가-!!
정태는 시우에게 배운 대로 갑자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지형지물을 이용할 것!!’
벽이 보인다.
있는 힘껏 도약한 정태는 블랙 타이거 짐에서 수련받은 대로…….
‘그러고 보니 그 체육관 시설 진짜 좋았어.’
벽을 밟으며 뛰어오른 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중에서 팽이처럼 옆돌기를 했다.
휘익!
사람들의 놀란 표정이 보인다.
단 한순간이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주연이다.
정태의 몸이 빙글빙글 돌며 땅과 가까워졌다.
여기서 멋진 착지?
댓츠…….
노노…….
자신이 히어로 랜딩 동작을 마스터하자, 시우가 말했다.
영화 장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이 영화에서는 히어로 랜딩도 다른 타이밍에 나와야 산다고.
그후, 자신은 시우에게 낙법을 배웠다.
퍼어억!!
허공을 날아 빙글빙글 돈 정태의 몸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리허설 때 보여 준 착지 동작은 쌈이나 싸먹으라는 듯이 그대로 강렬하게 땅과 충돌했다.
‘허억!! 저, 저런…….’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정태는 짧게 한차례 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시우에게 직접 전수받은 낙법에다가 시우가 혹시 다칠까 몰래 넣어 준 보호 아티팩트 덕분에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의 질려 버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깡패3, 정태는 최대한 아파 보이게끔 꾸물꾸물 일어나.
어딘가 어설프게 히어로 랜딩 자세를 뒤늦게 갖추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남주를 노려봤다.
이제 위협.
“으아아아아아!! 뒤지기 싫음 돈 갚아라!!”
남주는 정태의 기백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이를 찧으며 넘어졌다.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남주의 핏기 없는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뒤, 조연출에게 말했다.
“저 단역 이름이랑 연락처 좀 알아와.”
촬영을 마친 정태는 언제나처럼 촬영장 구석에서 혼자 쓸쓸히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있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반응을 보니 기분이 끝내줬다.
정태는 뿌듯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흘러간다.
‘시우야, 네 덕분에 장면 살렸어! 난 한국에서 나한테 주어진 역할 계속 필사적으로 해낼 테니까. 너도 미국에서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해라!’
오랜만에 보람찬 하루를 보낸 정태였다.
몇 시간 뒤.
“레디, 액션!”
헨드릭스 감독의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장소는 여주인공 제니와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연습실.
수호가 제니를 찾아오는 씬이었다.
강한 음악 소리가 귀를 때리는 가운데, 시우는 조용히 감정을 잡고 앞으로 걸음을 뗐다.
좁다란 계단.
게다가 어둡기까지 해 발을 디디는 시우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무슨 땅굴도 아니고…….”
부잣집 아가씨인 줄만 알았더니, 질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부잣집 아가씨인 모양이다.
수호를 연기하는 시우의 얼굴에 귀찮음과 짜증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다 내려간 시우가 온갖 낙서로 지저분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음악 소리가 한층 더 커지고.
시우의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하 계단의 어두움에 익숙해져 있던 시우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쿵쿵쿵!
빠른 비트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카메라가 시우의 표정 변화를 빠르게 캐치했다.
당혹감.
순간적으로 연습실에서 춤을 추던 과거의 자신이 스쳐 지나가면서, 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수호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도망쳐 다녔는데.
그런데…….
수호의 시선이 무심코 빨려 들어가듯 한곳으로 향했다.
연습실 중앙에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던 제니가 수호를 발견하고 뛰어오르려던 몸을 멈춰 세웠다.
“하아…… 하아…… 왔어?”
자유롭게-
아름답게 움직이는 사람들.
수호는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어? 수- 호-!”
놀란 제니가 수호를 뒤쫓아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