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45)
245. 슈스
“레디, 액션!”
헨드릭스 감독의 신호에 맞춰 시우가 계단 위로 뛰어 올라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촬영감독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시우의 얼굴을 카메라로 잡아당겨 촬영했다.
뭔가 끔찍한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겁이 난 자신에게 화가 난다.
나 왜 도망친 거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그냥 춤만 보면 막 도망치고 싶어지는 건가?
“하, 하하…….”
시우는 자신의 꼴이 우스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왜 슬프냐.
“뭐 하는 거야 진짜…… 바보 아냐.”
속에서부터 끌어낸 작은 중얼거림이 무겁게 촬영장에 내려앉았다.
짧은 대사 한마디에 많은 감정들이 실려, 수호의 무너진 모래성 같은 마음을 잘 표현해 주었다.
수호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려 할 때,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한 그림자가 불쑥 뛰쳐나왔다.
“쑤우- 호오-!”
제니를 연기하고 있는 야라였다.
제니라는 캐릭터의 성격은, 춤에 미친 부분도 그렇고 야라와 실제로도 닮은 점이 많았다.
거기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시우에게 계속 조언을 구하며 노력한 터라, 야라는 이제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꽤 편안하게 연기에 집중해 있었다.
급하게 뒤쫓아 온 그녀가 입구에 서 있는 시우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어…… 어어…… 그러니까…….”
시우의 눈을 마주한 야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사를 쳤다.
“안, 안녕?”
그녀는 배시시 어색한 미소를 띠고 시우에게 인사를 했다.
시우는 무뚝뚝하게 얼굴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녕.”
가로등이 켜진 저녁 거리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린다.
차도에서는 레이싱을 하듯 빠르게 달리는 바이크의 엔진 소리가, 인도에서는 길을 오가는 요란한 차림새의 젊은 남녀의 말소리가 조금 시끄럽게 두 사람의 귀를 때렸다.
길거리의 여러 소음 속에서 제니가 물었다.
“……갑자기 왜 뛰어나간 거야?”
수호는 설명하기 어려워,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굳이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다.
수호가 대답하지 않자 제니는 나름대로 추측을 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화장실이 급했다거나…….”
수호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 보여, 농담 삼아 말을 꺼낸 그녀였으나 말하고 보니 정말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여기 옆 건물 2층에 있는데…….”
제니가 옆 건물을 가리켰고, 수호의 시선이 한순간 그곳으로 따라 움직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수호가 말했다.
“안 가도 돼. 괜찮아.”
시우와 야라가 찰나지간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시우의 눈을 본 야라는, 연습한 대로 입을 살짝 벌리고 은은한 장난기를 입가에 담았다.
“……혹시 바지 갈아입을 곳 필요한 건 아니지?”
무표정하게 연기를 이어 가던 시우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니야!!”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스타일의 수호가 버럭 외치자, 갑자기 차갑기만 하던 수호의 이미지에 나이에 걸맞은 귀여운 매력이 스쳤다.
“하하~ 아니면 다행이고!”
시우는 능숙하게 한 템포 쉬어 가며 템포를 조절한 다음, 메고 온 백팩을 열었다.
“됐으니까 이거나 받아.”
시우가 야라에게 뭔가를 던졌다.
탁!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그녀의 지갑이 원래 주인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고, 고마워.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하고.”
“근처니까. 따로 약속 잡는 것도 번거롭잖아. 그럼 난 간다.”
“아, 잠깐! 수호!”
“왜?”
“내 친구가 널 보고 이상한 말을 하던데, 너 혹시 현대무용 안무가 데니 그레이엄 선생님의 제자야?”
“……!”
수호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컷! 오케이~ 둘 다 좋았어!”
헨드릭스 감독의 외침이 시우의 점점 매서워지던 눈매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표정이 바뀐 시우는 웃는 얼굴로 야라와 스태프들에게 고생하셨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 촬영은 이걸로 끝이었다.
‘와, 시우 마지막 눈빛 무서운데 멋있었어!’
야라는 마치 고양이 눈처럼 빛나던 시우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오싹하다. 이런 게 연기구나!’
시우 덕분에 최근 춤만큼이나 연기가 재밌어진 그녀였다.
그녀는 방금 전 씬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을 안고 시우에게 촐랑촐랑 뛰어갔다.
촬영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한국 서울.
“이번 주 1위 후보는~”
“TUV-W-XYZ와 슈팅스타! 우리 얼른 만나 볼까요? 안녕하세요~”
두 남녀 MC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뒤쪽에 서 있던 두 보이그룹 멤버들의 얼굴이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무려…….
쇼케이스 날짜도, 앨범 발매일도, 첫 음방 데뷔일도 같은…….
MGS의 리빅 후속 그룹 TUV-W-XYZ와 슈 엔터의 익스트림 후속 그룹 슈팅스타였다.
우재는 카메라를 향해 씩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속으로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진짜 슈팅스타가 될 줄이야. 무슨 아이스크림이냐고.’
뭔가 되게 있어 보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내포된 그런 팀명을 원했는데, 현실은 지호가 지나가듯 던진 슈팅스타…….
슈라는 글자에 너무 집착을 했는지 결국 제한 시간까지 다른 이름을 떠올려 내질 못했다.
‘팬분들이 슈스가 될 운명이라면서 응원해 주시는 게 그나마 위안이네…… 뭐 저쪽도 팀명은 딱히…….’
MGS의 보이그룹 명은 TUV-W-XYZ.
여섯 명의 멤버들이 각자 T, U, V, X, Y, Z라는 예명을 사용했고.
가운데 있는 W는 팬덤 이름이라는데…….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ABC-D-EFG 같은 거지.’
우재와 TUV-W-XYZ의 한 멤버의 눈이 맞부딪쳤다.
파직-!
전기가 흘렀다.
둘은 내색하지 않고 다시 카메라로 눈을 돌렸다.
TUV-W-XYZ, 줄여서 TWX가 가 먼저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튜뷰~ 엑스와이지! 입니다!”
TWX 멤버들이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 박수를 쳤다.
최고의 엘리트 기획사인 MGS의 신인 보이그룹 답게 비주얼적으로 무척 화려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카메라가 슈팅스타 쪽으로 넘어왔다.
첫 1위 후보 등극에 잔뜩 긴장한 4명은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똑같이 목소리의 볼륨을 높였다.
셰인과 같은 동생 라인이면서도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인사드리겠습니다. 슈팅~”
“스타! 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부끄럽다.
이름이 왠지 부끄러워.
우재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열심히 물개박수를 쳤다.
우재의 옆에 있던 진구는 우연찮게 그런 우재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소개할 때마다 얼굴 빨개지네. 귀엽기는, 짜식.’
다 큰 척 시니컬하게 굴지만 사실은 어린애라는 걸 진구는 알았다.
‘리더는 지호지만 그래도 내가 맏형이니까 동생들 잘 챙겨야지! 시우도 특별히 나한테 부탁했고.’
탁!
진구가 우재의 어깨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팔을 올렸다.
우재는 갑자기 뭐냐는 눈빛으로 진구를 흘끗 쳐다봤으나, 카메라 때문인지 평소처럼 팔을 쳐내지는 않았다.
인사가 끝나자 남자 MC가 나섰다.
“네~ 두 팀 모두 반갑습니다! 그럼 TUV-W-XYZ부터 1위 후보 소감 들어 볼까요?”
잠시 후, 슈팅스타 멤버들은 무대를 위해 대기실에서 나왔다.
밖이 어수선했다.
“……모야아?”
셰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 앞쪽을 살폈다.
누군가 다투는 듯한 좋지 않은 분위기-
지호는 리더답게 한 팔을 들어 셰인과 형들의 걸음을 막고 먼저 앞으로 갔다.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싸가지 없는……!”
“싸~ 가~ 지는 썬배님들부터~ 챙기시고요~”
“뭐 이 새끼야?! 너 몇 살이냐? 어?”
“먹을 만큼 먹었어~♬ 늙을 만큼 늙었어~♬ 선배님, 혹시 그 신발도 중고월드에서 사신 거예요? 어이구, 돈 벌어서 새 신발 좀 사 신으세요. 너무 슬프다.”
“야 이, 개애샘키야아!!”
지호는 발걸음을 멈췄다.
낯익은 목소리, 아니 욕소리.
BSR 엔터테인먼트의 보이그룹 K4의 준호였다.
민교가 지호를 위협하는 영상을 몰래 찍어, 민교를 군입대 열차에 태워 보낸 장본인.
준호는 씩씩대며 맞은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데뷔와 동시에 K4에게 저격 인터뷰를 날린, 뒷골목 악동 스타일로 컨셉을 잡은 새로운 보이그룹 노랐스 파티V가 껄렁껄렁하게 서서 진짜…… 양아치스럽게 웃고 있는 중이었다.
준호가 개애샘키를 찾자, 노랐스 파티V의 리더로 보이는 멤버가 유들유들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야, 뭐해! 빨리 영상 찍어. 정민교 때처럼 우리도 다른 K4 선배님들 영상 찍어서 ‘선배의 갑질’이란 제목으로 마튜에 올리자.”
“와…… 진짜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지? 이거 완전 노랐스가 아니라 도랐슨데?”
준호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툼의 발단은 노랐스 멤버들이 데뷔 전 예고한 대로, 정말로 선배인 K4를 보고도 개무시를 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동안은 활동이 겹치지 않아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 슈팅스타부터 TUV-W-XYZ, 노랐스 파티V에 K4까지 보이그룹 대전이 일어난 터라 결국 충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몸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노랐스의 한 멤버가 지호를 발견했다.
“어?!”
그의 반응에 K4와 노랐스의 시선이 한꺼번에 슈팅스타 쪽으로 이동했다.
노랐스 리더의 입가에 걸린 웃음기가 한층 짙어졌다.
‘지호, 셰인, 우재, 진구였나? MGS 애들처럼 딱 떨어지는 얼굴들은 아니지만, 각자 개성 있게 잘생겼네. 실력도 좋고. 얘넨 마음에 들어. K4 놈들 짜증나니까 더 열받게 해주고 갈까?’
노랐스의 리더 AK는 슈팅스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 십니까~ 후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뭐, 이런…… 개…… 개황당한…… 와 진짜…….”
준호는 선배인 자신들은 무시하고, 오히려 후배인 슈팅스타에게 보란 듯이 90도 인사를 해 버리는 도랐, 노랐스 리더 AK를 보며 왠지…… 자신이 대들었을 때 민교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지호와 셰인, 우재와 진구는 예상치 못한 몇 개월 선배의 정중한 인사에 얼른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AK는 폭탄에 맞은 것 같은 굉장한 헤어스타일을 뽐내며, 지호에게 다가왔다.
“첫 1위 후보 축하해요. 슈 엔터 가길 백번 잘했네~ 하하. 오늘 1위 꼭 했으면 좋겠어요.”
“감, 감사합니다. 선배님.”
벙찐 얼굴의 K4 멤버들을 뒤로하고, AK는 노랐스 멤버들을 데리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지호는 BSR 엔터테인먼트 시절, 함께 데뷔를 꿈꾸며 땀을 흘렸던 K4 멤버들을 향해 다시 한번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준호는 떠나는 노랐스 멤버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지호의 인사를 받았다.
“어, 어어…… 그래…….”
“…….”
“1위 후보 축하해…… 잘 나가네…….”
“감사합니다.”
지호는 복잡한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준호와 다른 K4 멤버들을 바라봤다.
민교에게 그런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꽤 잘 챙겨 준 형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민교에게 밀려 탈락했을 때 나서서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미워하진 말아야지. 다들 절박했으니까.’
지호는 자신의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당당하게 K4를 지나쳐 갔다.
K4 멤버들은 1위 후보가 되어 무대로 올라가는 지호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젠장, 데뷔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데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데뷔하고 난 후가 진짜 전쟁이었다.
K4 멤버들은 BSR 엔터에서 낙오됐다고 생각한 지호가, 자신들보다 앞서 1위를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우가 작곡해준 곡, ‘유성’이 무대 위에 흘러나왔다.
네 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힘든 기억들을 풀어 내듯, 팬들 앞에서 필사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네, 이번 주 영광의 1위는……! 슈팅스타! 축하드립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