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47)
247. 문경수 in 시카고
현대 무용이란 고전 발레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무용으로, 정해진 형식과 기교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의 본질을 자유롭게 개성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된 무용이었다.
보통 현대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의 경우, 미국보다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쪽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비도 국비 수준으로 저렴한 데다 무용을 배우기에는 여러 모로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현대 무용을 배운 인재들이 미국의 공연 시장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미국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안무가 데니 그레이엄 또한 그러한 케이스였다.
그레이엄 교수는 한국에서 부상으로 낙심해 있는 수호를 설득해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준 사람이었고, 수호가 미국에서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호는 현재 한국 대학을 자퇴한 것처럼, 어렵게 다시 기회를 얻은 미국 대학에서도 출석하지 않고 있었다.
위이잉-!
수호의 휴대폰이 울린다.
그레이엄 교수였다.
학교와 병원에 다시 나오라는 연락일 것이다.
늘 그렇듯이, 너무 감사하지만 수호는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그레이엄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을 때,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절치부심하여 춤을 다시 시작하겠다거나 하는, 그런 각오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수호는 발신자 그레이엄 교수의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휴대폰을 뒤집었다.
진동이 멈췄다.
“…….”
답답하다.
맥박이 빨라지고,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눈앞이 어지럽다.
제니에게 지갑을 돌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호는 집 근처의 공터로 향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찾는 사람이 없는 자신만의 장소였다.
헨드릭스 감독과 스태프들은 달빛 아래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우를 보며, 덩달아 가슴을 억누르는 답답함을 느꼈다.
수호의 감정에 물들어 간다.
아프고, 지친다.
하루하루가 괴롭다.
잠들 때마다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은데, 알람과 함께 일어나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살아 있을 뿐이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래,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한국에서는 자신이 없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다들 춤을 추고 있을 테고.
이제 곧.
아니.
어쩌면 벌써.
자신을 앞질러 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시우는 뭔가에 홀린 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들을 하나둘 천천히 밖으로 꺼내 놓는다.
음악과 춤은 올가미처럼, 머릿속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그렇게 도망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동작들이 여전히 생생했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시우는 춤을 췄다.
스태프들은 촬영을 떠나 순수하게 시우의 춤에 마음을 빼앗겼다.
원래는 영화 후처리 때 이 씬의 백그라운드에 음악을 깔아 줄 생각이었던 헨드릭스 감독은 시우의 춤이 이어질수록 생각이 바뀌어 갔다.
시우의 춤이 그대로 음악이 되고 있었다.
시우가 움직일 때마다 귓가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일었다.
‘미쳤어…… 시우는 정말 미쳤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무용가들의 춤을 봤지만, 이런…… 이런 몰입감과 아우라는 본 적이 없어.’
손끝의 움직임, 시선의 이동, 심지어는 들릴 리가 없는 숨소리에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세상이 시우에게 빨려 들어간다.
모두의 넋을 잃게 만들던 시우의 춤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실이 끊어지듯 밸런스를 잃더니 어딘가 모르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는 시우의 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마음이 아프다.
완성되어가던 예술 작품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다.
무너진다.
이내 시우의 춤이 멈췄다.
“아아악!!!”
끔찍하다.
남겨지는 기분.
도태되고, 낙오되는 기분.
“아아아아악!!!”
악에 받친 비명을 내지르며 시우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얀 얼굴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걷잡을 수 없는 억울함과 분함이, 시우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먹거리게 만들었다.
케빈은 시우가 정말 신기했다.
미국에서 같이 살면서 매일 얼굴 보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작품 얘기하고, 놀고…….
몇 년을 그렇게 지내왔는데도 때때로 낯설다.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케빈은 경호원들을 퇴근시키고, 먼저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조용했다.
‘플렉스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플렉스는 현재 시우의 부모님 댁에서 아이들의 학업과 건강 관리 등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마음대로 데려올 수 없는 바쁜 몸이었다.
케빈은 자신을 뒤따라 들어오는 시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연기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왠지 무거운 분위기.
케빈은 일부러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하하~ 시우야, 오늘 잘했어! 모니터링 뒤에서 봤는데 진짜 역대급 영상미랑 네 연기가 더해져서…… 와, 진짜 모니터링 하는데 숨을 못 쉬겠더라. 너무 잘했어!”
“응, 고마워. 형도 고생했어.”
시우가 짐을 직접 정리하려 하자, 케빈이 말렸다.
“됐어. 놔둬. 내가 가볍게 운동 삼아 정리하면 돼. 넌 일단 가서 씻고 좀 쉬어라.”
“그래도…….”
케빈은 시우의 등을 밀어 반강제적으로 욕실에 집어넣었다.
“샤워하고 나와. 피곤하면 반신욕이라도 하고.”
“알았어. 고마워. 형.”
케빈의 손이 시우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욕실로 들어간 시우는 정신도 차릴 겸 간단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반신욕을 준비했다.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너무 떠올렸나 보다. 정신적으로 지치네. 후우.”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해내고 싶었지만 해내지 못한 일들.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한 사람들.
정신의 한 구석에 가둬 둔 괴로웠던 기억들이 풀려났다.
욱신-
시우는 옷을 벗고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는…… 반신욕하면서…….’
모바일 게임이나 해야지.
물속에 휴대폰과 두 손을 담그고 시우는 요즘 유행하는 게임을 실행시켰다.
일을 해서 집을 사고, 그 집을 넓혀 가며 인테리어를 하는 게임이었는데 시우는 무과금으로 소소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열심히 게임이 돌아가고 있는 시우의 휴대폰 화면에 루시가 접속했다는 알림이 떴다.
루시와 헨리, 니콜라스도 이 게임을 좋아했는데 니콜라스의 경우에는 빌딩 한 채를 소유 중이었다.
– 시우!
루시에게 메시지가 왔다.
– 응. 들어왔네. 이따 너희 집에 갈게.
– ??? LA야?
– 아니 게임에서 집
– 아…… 하하! 오늘 촬영했어?
– 응 끝나고 집에 와서 쉬는 중
– 전화해도 돼?
– 그래
게임을 일시 중단하고 잠깐 기다리자 휴대폰이 울렸다.
시우는 물속에 담궈 놨던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응.”
[시우. 촬영 잘했어? 야라가 오늘 촬영 되게 중요하다고 했는데.]“LA에 있으면서도 우리 영화 진행 상황을 다 아네.”
[그러게.]루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잘했는지는 모르겠고, 열심히는 했지.”
[네가 열심히 했으면 엄청 잘한 거지~ 빨리 영화 개봉해서 나도 보고 싶다.]시우는 문득 드는 생각에 루시에게 물었다.
“맞다, 네 영화도 개봉한댔잖아. 언제 해?”
[이미 했거든…… 관심 좀 가져 줄래?]“하, 하하하. 알았어. 미안.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꼭 보러 갈게.”
[응, 보고 감상도 말해 줘.]“평론가 앨런 스페이더처럼 뼈를 조각내듯 비평해 줄게.”
[……아니, 그건 싫어.]시우와 루시가 티격태격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전화 너머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앙~ 냐앙~]고양이 소리가 점점 커졌다.
“웬 고양이 소리야?”
[하아…… 나도 모르겠어. 우리 집 강아지랑 친구 되더니 며칠 전부터 우리 집에 눌러앉았어.]“하하! 뻔뻔한 녀석이네.”
[어떡하지? 막 내 방까지 들어와. 주인이 없나?]“데리고 동물병원 한번 가 봐.”
[응. 그래야겠어. 그리고 얘가 계속 나 쫓아다니면서, 자꾸 나한테 뭔가 말을 해. 계속 냥냥거리는데…… 전에는 나 잘 때 갑자기 들어와서 내 얼굴을 발로 계속 누르는 거야.]“그건 꾹꾹이라는 건데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이야.”
[냐앙~~ 냐아아앙~~]고양이 울음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다.
[이것 봐~ 들려? 계속 이러면서 나 쫓아다녀.]시우는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알았어. 함 바꿔 봐.”
[뭐?]“바꿔 달라고.”
[고양이를?]“응.”
진지한 시우의 목소리에 루시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무심결에 휴대폰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가 앞발을 휴대폰 위에 턱 올리더니, 또 한차례 크게 울었다.
[냐아아앙~!]시우가 크게 웃었다.
루시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왜 웃어? 얘 목소리 진짜 크지?]시우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 얘가 뭐랬냐면 말이야.”
[……응.]“나 좀 키워 줘~ 그러는데?”
시우와 루시는 즐겁게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우는 차츰차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양이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로 30분가량 시우와 통화를 하던 루시는 아래층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시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길게 통화했네~ 재밌었어.]“나도.”
[괜히 쉬는데 방해한 거 아니지?]“아냐, 그냥 반신욕하면서 게임하고 있었는데.”
[……응? 반신욕?]“응.”
[지금 그럼…… 그럼. 이만.]“그래. 고양이…….”
뚝.
“한테도…… 응? 여보세요? 말하는데 끊어~”
휴대폰을 밑으로 내린 시우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 * *
문경수 대표는 김 이사와 함께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내렸다.
비서들과 같이 밖으로 나온 문 대표를 시카고의 폭풍우가 반겨 주었다.
쏴아아아아아-!!!
빗줄기가 사람을 두들겨 팰 수 있을 것처럼 세차다.
“뭔 날씨가…….”
문 대표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자 남자 비서가 말했다.
“비가 많이 오네요. 일단 차 타고 숙소로 이동하시죠.”
“그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이따위야.”
불길하게…….
설마 몸소 여기까지 왔는데 성과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망할, 그럼 진짜…….
진짜…… 그놈의 작곡 능력만 아니면…….
“빨리 가자고!”
“넵! 회장님!”
비서들은 신경질적인 문 대표를 차에 실어 빠르게 숙소로 옮겼다.
숙소에 짐을 푼 문 대표는 잠시 커피로 몸을 녹이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흠! 흠! 크허흠!”
김 이사는 목청을 가다듬는 문 대표를 보며 정말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거칠 것이 없는 문 회장님이 시우를 대할 때면 뭔가 좀…… 기분 탓인지 안쓰러워 보일 때가 있다.
문 대표는 초조한 마음으로 윤시우가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설마, 지난번처럼 노려보진 않겠지?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하, 하하하.’
[여보세요?]화들짝!
이러고 싶지 않다.
정말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놀란 문 대표의 손에서 휴대폰이 날아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