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49)
249. 댄스 타임
촬영 장소는 실내 댄스 연습실이었다.
한편에 키보드와 드럼 같은 악기들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밴드 연습실로도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컷, 컷, 컷!”
헨드릭스 감독의 외침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댄서들의 몸이 멈췄다.
역시 쉽지 않다.
헨드릭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안 살지?’
춤을 추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 수호가 깨달아 가는 씬이건만…….
처진다.
시우 혼자만 즐겁게 연기를 해내고 있었는데, 주변 분위기가 맞물리지 않으니 그림이 이상하다.
게다가 연습 때만큼 댄서들 간의 호흡이 잘 맞지도 않고.
‘내가 미쳐서 원테이크로 찍자고 했나 보다.’
누굴 탓할까.
헨드릭스 감독은 원테이크 촬영을 포기하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오늘 촬영을 위해 동원된 와이어 캠과 대형 크레인, 드론을 보면 수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롱테이크 기법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욕심난다.
‘될 때까지 해 보자!’
헨드릭스 감독은 ‘예상대로’ 오늘 촬영은 장기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왜 이렇게 굳어 있어~ 연습이랑 실전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그렇고 지금 다들 너무 무거워!”
한 댄서가 헨드릭스 감독에게 대답했다.
“며칠째 비가 와서 그런가. 습도도 높고. 뭔가 처져요. 상쾌하지가 않아.”
확실히 컨디션이 안 올라온다.
가뜩이나 시카고는 오대호 인근이라 습도가 높은데, 폭우로 인해 현재 습도가 사람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바뀐 촬영 장소.
그 탓에 일부 바뀐 동선.
댄서들의 컨디션 난조까지.
악재가 겹쳤다.
“…….”
헨드릭스 감독은 망할 빗줄기를 원망하며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식사 시간도 가까워졌으니까 휴식 취하면서 리프레시 합시다!”
해 좀 보고 싶다.
시우는 스태프들이 가져다준 샌드위치 몇 개를 품에 안고, 앉을 자리를 찾았다.
누구와 밥을 먹을까 잠깐 헤매던 시우의 눈에 데니 그레이엄 교수 역의 배우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촬영이 끝났음에도 퇴근하지 않고, 원테이크 댄스 씬을 구경하기 위해 현장에 남아 있었다.
혼자 앉아 샌드위치 포장을 벗기고 있는 그를 향해 시우가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먹을까요?”
시우가 웃으며 말을 걸자, 황금색 스포츠머리와 턱을 감싸고 있는 단정하게 관리된 황금색 수염을 가진 중년 배우 톰이 옆자리를 내주었다.
“좋지.”
톰과 함께 앉은 시우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귀엽게 입을 우물우물 거리다 이내 톰에게 말했다.
“정말 근엄한 교수님 같으셨어요.”
톰은 머쓱하게 웃고는 손사래를 쳤다.
“대본에 적힌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이야. 음…… 좀 아쉽긴 했지만.”
톰의 표정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종종 짓는 표정이었다.
“그럼 재촬영하자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헨드릭스 감독님도 촬영 욕심이 많은 분이라, 아마 들어주셨을 텐데.”
톰이 고개를 저었다.
“재촬영해도 딱히 더 나아질 게 없어. 그냥 내 욕심이지. 난 대본 전체를 봤을 때, 이 데니라는 교수 캐릭터가 수호에게…… 좀 더 밝고 경쾌한 스승이었으면 했거든.”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저도 시나리오 읽을 때는 안 그랬는데 촬영이 진행될수록, 영화가 좀 무거워지고 있는 느낌이 들긴 해요.”
시우가 알아주자, 톰은 월드 스타라 대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이 잘 통한다고 여기며 조금 신이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 그럴 때 분위기를 풀어 줄 수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주면 좋잖아. 수호가 다시 밝아지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면 좋을 텐데…… 하는 그런 나의 건방진 생각이랄까. 하하하. 뭐, 변변찮은 커리어도 없이 나이만 먹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니에요~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에요.”
영화에…….
약간 위트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시우도 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어둡다.
그렇다면 주변이 밝아야 한다.
주인공이 진지하다.
그렇다면 주변이 좀 엉뚱해야 한다.
그것이 밸런스다.
관객들을 웃기기만 해서도, 울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관객에게 한 가지 감정만을 강요하면 어느 순간 지치고 만다.
‘그레이엄 교수의 캐릭터를 대본대로 이렇게 무겁게 가져가면, 관객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어. 캐릭터와 감정의 대비 효과도 미미해지고.’
역시, 말하는 게 좋을까.
그렇지만 감독의 의도를 존중해야…….
‘……그래도 말은 꺼내 볼까.’
좀 전의 촬영분이 그레이엄 교수의 첫 등장 씬이었다.
캐릭터를 수정할 기회는 지금뿐이다.
마침 배우인 톰도 퇴근하지 않고 대기 중이고…….
시우는 일어났다.
샌드위치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해소해야 한다.
별거 아닐지도 모르나, 이러한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관객들의 몰입감을 결정짓는다는 걸 시우는 알고 있었다.
헨드릭스 감독에게 의견을 내러 가기 전, 시우가 톰을 돌아보고 물었다.
“우리 재촬영하자고 해 볼까요? 개성 있는 그레이엄 교수 어때요?”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무명 배우로만 살아온 중년 배우 톰.
톰은 의아한 얼굴로 시우를 올려다보다 주섬주섬 먹던 샌드위치를 챙겨 들고 시우를 쫓아갔다.
* * *
촬영장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헨드릭스 감독은 시우를 보며 정말 신기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 열심히 하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를 이끌고 갈 줄 아는 배우다.
헨드릭스는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시우가 다가와 그레이엄 교수의 캐릭터에 관한 톰의 아이디어를 전달해 줬을 때, 그는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이유 모를 찝찝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래. 그거다.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이야기에 매몰되어 버리는 탓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혹은 마음속으로 느끼면서도 수정하기가 두려워, 이대로 가야 하는 이유들을 열거하며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경우도 있다.
시우는 그런 헨드릭스 감독에게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건데, 전에 씬 57. 여기서도 좀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데, 시우 생각은 어때?”
“씬 57…… 그런 거 같아요. 그럼 그 장면과 이어지는 씬 60에서 제 연기가 약간 달라져야 할 텐데. 이 부분도 재촬영이 가능할까요?”
“일정이 빠듯하긴 하지만…… 음…….”
헨드릭스 감독의 앞에 선 시우와 톰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배우들이 이렇게 열정을 불태워 주는데 감독이 약한 소리를 뱉을 수는 없다.
“오케이! 상황이 어디까지 허락할진 모르겠지만, 되는 데까지 해 보자고!”
헨드릭스의 눈도 불타올랐다.
촬영 중반에 이르러 지쳐 있던 마음이 다시 기운을 얻었다.
시우와 헨드릭스, 톰이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자유롭게 타진하며 토론하는 모습에 어느 순간 야라도 참전을 했다.
그리고 댄서들도 하나둘 그 분위기에 휩쓸려 시키지도 않았는데 휴식 시간을 반납하고, 동선을 맞춰 보기 시작했다.
시우는 갑자기 열기가 오른 촬영장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다들 텐션이 올라왔네. 음, 좀 더 도와줄까?’
본인이 환경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높은 습도에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시우가 반쯤 남은 샌드위치를 마저 우물거리며 동네마실을 돌 듯 촬영장을 한 바퀴 돌았다.
“다들 슬슬 촬영 들어가자고~ 쉬라니까 왜 다들 연습을 하고 있어? 컨디션 안 좋다더니.”
헨드릭스 감독이 외쳤다.
댄서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하다 무심코 입을 열었다.
“……왠지 느낌이 괜찮은데? 눅눅하지도 않고 선선하네?”
“건물 전체에 제습기라도 돌렸나.”
“실내에서 제습기 오래 돌리면 사람도 수분 뺏겨서 안 좋아. 뭐지?”
“아까 곰팡이 냄새 났는데, 지금은 어디서 아로마 향 같은 게…….”
“그니까. 아까 시우가 돌아다니면서 뭐 하던데 혹시 향수 뿌렸나?”
“에이, 설마. 그런다고 갑자기 곰팡이 냄새가 사라져?”
댄서들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시우에게 향했다.
시우는 댄서들 사이에 섞여 걸어오다가 눈이 마주친 댄서들에게 미소를 날려 주었다.
댄서들은 그 미소가 어쩐지 지금 촬영장에 흐르고 있는 향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우랑 가까이 있을 때 맡은 향기랑 비슷한 거 같아.”
“맞아. 나중에 시우 무슨 향수 쓰는지 물어봐야겠다.”
“나도.”
몸과 마음의 힐링을 마친 댄서들은 재차 각오를 다졌다.
원 테이크 촬영.
헨드릭스 감독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멋진 장면을 완성시키고픈 욕심은 감독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테이크 26!”
헨드릭스 감독의 목소리에 댄서들은 25번의 실패의 역사를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그때 시우가 짧게 외쳤다.
“즐기면서~!”
그 순간, 긴장으로 물들어가던 댄서들의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댄서들이 웃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헨드릭스 감독은 그 모습에 어쩐지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다.
“레디! 액션!”
제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수호가, 제니의 손에 이끌려 함께 춤을 추는 씬.
그러던 중, 연습실을 찾은 제니의 친구들이 두 사람의 춤을 구경하다 하나둘 합류하게 되고.
연습실은 곧 축제 분위기의 아주 신나는 난장판이 된다.
정신 나간 것처럼 다들 미친 듯이 춤을 춰 대는데, 그곳에는 형식도 부담도, 열등감도 경쟁심도 없다.
그저 너무 즐겁다.
잊고 산 게 억울할 정도로.
시우와 야라의 커플 댄스는 이후에 촬영할 예정이었고, 지금은 댄서들이 난입을 하는 장면부터 원 테이크였다.
“예에에~!”
“볼륨 더 올려!”
“제니, 네 남자친구 춤 좀 추는데?”
“우리도 같이 놀자고!”
한 남자 댄서가 시우 쪽으로 돌진했다.
댄서들의 난입에 시우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주춤거리는 연기를 했다.
시우에게 달려들던 남자 댄서가, 다른 댄서들의 도움을 받아 허공으로 휙 솟구쳐 올랐다.
그는 날쌘 짐승처럼 시우와 야라의 머리 위를 넘어가더니,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등짝을 연습실 바닥에 비비며 현란한 비보잉의 시동을 걸었다.
팽그르르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돌아가던 남자의 몸이 로켓처럼 쏘아져 올라오며 시우의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남자는 시우에게 덤벼 보라는 듯한 눈빛으로 비보잉 스텝을 계속 밟다, 한 손 백텀블링을 선보였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파워무브를 펼쳤다.
시우의 회복 마법으로 몸이 쌩쌩해진 덕분인지, 25번이나 저런 춤을 췄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박력이 굉장했다.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다른 댄서들이 등장했다.
다음, 또 다음.
‘뭐야…… 왜 다들 컨디션이 갑자기 이렇게 좋아진 거야?’
헨드릭스 감독은 충격적일 정도로 패기가 넘쳐나는 댄서들의 춤에 잔뜩 고무되었다.
촬영 전에 받은 좋은 예감대로 중반까지 훌륭하게 무사통과.
이제 흥분한 시우가 반대로 댄서들 사이로 난입을 해야 한다.
하나. 둘. 셋.
시우의 몸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온다 싶더니, 앞서 했던 댄서의 비보잉 동작을…….
서서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배워 본 적 없는 댄스-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움츠러들어있던 몸과 마음이 되살아났다.
히어로물 주인공들의 변신 전후 모습처럼-
시우의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화려한 실력파 댄서들 사이에서, 시우의 손이 자신의 셔츠를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풀어헤쳤다.
억눌러 있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모니터를 통해 시우의 근접 샷을 지켜보고 있던 헨드릭스 감독의 입이 벌어졌다.
압도적이다.
변신 히어로다.
“시우. 근육. 찍어. 몸이 살아 숨 쉬고 있어!”
헨드릭스 감독이 혼신의 힘을 다해 속삭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