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51)
251. 난 단 거 안 먹어
“먹는 거야?”
승현은 시우의 눈빛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연기…… 연기 맞지?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동공에서부터 기이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즉흥적으로 만든 장면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몰입을 하다니…….’
꿀꺽.
마른침을 삼킨 승현은 시우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니야. 먹는 거 아냐~”
조용-
반응이 없는 시우와, 강아지 훈련사처럼 손바닥을 내보이고 있는 승현의 시선이 짧은 시간 치열하게 맞부딪쳤다.
시우의 표정이 풀어졌다.
“쳇.”
시우가 채윤의 목에서 얼굴을 떼자, 당황한 나머지 낯빛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윤이 카메라에 잡혔다.
약속된 연기였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시우의 짐승 같은 눈빛과 행동에 채윤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황급히 마음을 추스른 채윤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출출할 때 먹으려고 챙겨 둔 초코바가 등장했다.
채윤은 조금 넋이 나간 채 초코바를 들어 올렸다.
“먹, 먹는 거…… 이거요?”
엉뚱하게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PPL 초코바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시우는 냉랭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채윤의 눈앞으로 바짝 가져갔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입술이 열렸다.
속삭이듯,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단 거 안 먹어.”
“아…… 네…… 네에…….”
채윤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초코바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아까 뭘 먹는다고 한 소리는, 무슨 말이지?
아니, 그보다 이 사람 누구야?!
채윤의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휙 하고 승현을 향해 돌아갔다.
시우의 활약으로 촬영은 물 흐르듯 빠르게 진행됐다.
대저택의 다이닝 룸은 그 스케일도 상상 이상이었다.
십여 명이 앉아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커다란 식탁 한쪽 끝에 세 사람이 앉아 빵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채윤은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승현과 시우를 봤다.
정말…….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감독의 사인에 맞춰 그녀가 대사를 쳤다.
“형제구나~ 와, 어쩐지! 닮았네! 닮았어! 얼굴 새하얀 것도 똑같고!”
승현은 한숨을 짧게 내쉬고, 어딘가 곤란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물었다.
“있는 줄 몰랐네. 뉴욕에는 왜 온 거야?”
시우는 푸석푸석해 보이는 빵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보다, 빵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옆에 놓인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헌터 놈들이 뉴욕에서 자꾸 나대서 작살내러 왔지.”
“…….”
“…….”
시우의 말에 승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채윤은 어리둥절해하다 되물었다.
“헌, 헌터?”
승현이 크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하! 내, 내 동생이 어릴 때부터~ 이 새끼가 아주…….”
채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 새끼?”
“아니, 아니. 우리 강아지 새끼 같은 귀, 귀염둥이 동생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판타지에 빠져 살았거든~ 하, 하, 하, 할리와트 같은 거!”
“아~”
승현의 말에 시우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투로 말을 툭 뱉었다.
“나한테는 형이 이러는 게 판타지야.”
“그만.”
승현이 짧고 강하게 시우를 제지했다.
다시 시작된 형제의 기세 싸움에 빵을 넘기던 채윤이 괴롭게 기침을 해 댔다.
“콜록! 콜록!”
승현이 물을 찾는 사이, 시우가 자상한 미소와 함께 검붉은 액체가 든 와인잔을 채윤에게 권했다.
“마셔.”
“…….”
시우가 킥 웃었다.
“아직 입 안 댄 거야.”
빵이 목에 걸린 채윤은 시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겁지겁 와인잔을 받아 들었다.
그 광경을 시우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와인잔이 채윤의 입에 닿으려는 찰나, 쏜살같이 등장한 승현이 채윤의 손을 붙잡았다.
“……?”
“술보다는 물이 낫지 않을까?”
승현은 자연스럽게 채윤의 손에서 와인잔을 빼내고, 대신 물잔을 쥐여 주었다.
그녀가 급하게 물을 마시는 동안 몸을 돌린 승현이 조금 화가 난 얼굴로 시우를 불러냈다.
“동생이랑 할 말이 있어서. 잠깐 기다려 줄래?”
“알겠어. 다녀와.”
물을 마신 채윤은 냉랭한 형제 사이가 조금 풀어지길 바라며 얼른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컷! 오케이~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무척 만족스러운지 감독의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이제 마지막 장면이었다.
챙그랑!
빵과 샐러드를 다 먹은 채윤이 접시를 치우기 위해 일어나다,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씬-
새하얀 접시들이 요란하게 깨지면서 채윤의 몸이 넘어진다.
다이닝 룸의 문이 벌컥 열리고, 승현이 뛰어 들어왔다.
밖에서 형에게 한소리 들은 시우도 팔짱을 낀 채 승현을 뒤따라왔다.
“괜찮아?!”
승현이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다가가려는 찰나, 유리에 베인 그녀의 손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두근-!
승현의 걸음이 멈췄다.
핏방울이 선명하게 망막에 맺힌다.
주춤주춤 그녀에게 다가가려 애쓰던 승현이 고개를 훽 돌리고 파리하게 질린 낯빛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시우는 그런 승현을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승현을 스쳐 지나가며 시우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맞잖아. 먹는 거.”
“너……!”
오랜만에 피를 본 승현의 눈에서 핏발이 돋아난다.
시우는 그런 형의 모습을 한심하게 한번 쳐다보고는, 망설임 없이 채윤에게 향했다.
“앗 따거. 소름. 피가 안 멈추네…….”
채윤은 혼자 투덜대며 몸서리를 쳤다.
엉거주춤 서서 지혈할 방법을 찾고 있는 채윤의 눈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혹시 소독약이나 밴드…….”
시우의 몸이 살짝 굽혀진다 싶더니, 시우의 입술이 키스하듯 채윤의 손에 닿았다.
“아…….”
채윤은 연기를 떠나 진심으로 허리에서부터 올라와 등을 관통하는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입을 댄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우의 눈빛에 왠지 의식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뜨거워…… 어떡해…… 연기…… 연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구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대사를 밀어냈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놀람. 당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손을 빼낼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여주인공의 심리를…….
연기해야 하는데…….
연기할 필요가 없네?
채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주인공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손에 닿은 시우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에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때, 승현의 팔이 불쑥 채윤의 앞으로 뻗어 나오더니-
채윤의 몸을 휘릭 휘감았다.
승현이 채윤을 한쪽 팔안에 가두고 몸을 돌리게 만들자, 채윤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승현의 흰색 셔츠의 목깃이 시야를 막아섰고, 승현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이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으아…… 시청자분들…… 죄송해요…… 저만 행복해서……!’
중심을 잃은 채윤은 승현의 팔 안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채윤의 시야를 제한한 승현의 오른쪽 다리가 번개처럼 시우를 향해 날아갔다.
“윤시우 배우님~! 배우님!”
“네! 감독님!”
“와이어 액션 많이 해 보셨죠?”
시우는 믿음직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제가 할리와트 촬영장에서 와이어를 타며 자랐습니다.”
“하하하! 역시! 연기도 잘하시고~ 음악도 잘하시고~ 와이어도 잘 타시고~”
“그중에 와이어가 제일 자신 있습니다.”
“퍼펙! 베리베리 퍼펙! 그럼 바로 가도 될까요?”
“네.”
세팅이 끝나자 시우는 아까 연기를 하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승현의 발차기를 맞고 다이닝 룸의 열린 문을 통과해 멀리 복도 끝 벽에 처박히는 액션.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날아가 쓰러지는 정도로만 표현하려 했으나, 시우가 그 정도로는 장면이 살지 않는다며 의욕을 보여 비행 거리가 상당히 길어졌다.
벽에 처박히는 씬은 녹색 매트와 CG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오케이! 갑니다!”
위험한 액션은 아니지만, 시우가 날아가는 내내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해 줘야 영상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조용히 긴장한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액션!”
감독이 외쳤다.
동시에 와이어가 시우의 몸을 탁 낚아채듯 강하게 잡아당겼다.
파앗!
시우의 몸이 순식간에 복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초 슬로우 모션 촬영을 지원하는 카메라들이 여러 각도에서 날아가는 시우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휘이이이익-!!
공기를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시우의 몸이 복도 끝에 세워둔 녹색 매트에 꽂혔다.
퍼억!
감독과 승현, 채윤은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날아가 버린 시우를 찾아 다이닝 룸을 달려 나갔다.
“윤 배우님~! 괜찮으세요?!”
달려오는 감독을 향해 시우는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시우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이렇게 몇 번 더 해야 괜찮은 영상이 나올 텐데…… 어때요, 해보니까? 할만 해요?”
“네. 예전에 승현이 형이랑 캐나다에서 짚라인 타던 기분이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한 번에 끝내는 게 좋잖아요. 열심히 했습니다!”
“의욕 진짜 너무 좋아요. 단 하루 일해 봤는데 다른 감독님들이 왜 그렇게 윤시우 배우님을 찾는지 그냥 알겠어요. 우선 첫 촬영은 속도 체험 삼아 한 거니까, 일단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 보완해서 본격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다시 다이닝 룸으로 돌아와 모니터 앞에 앉았다.
“시우야, 너 진짜 팟 하니까 휙 하고 사라지던데?”
영상이 준비되는 동안, 승현이 말했다.
“응. 속도감 끝내줬어. 형도 이따 해볼래?”
“하하. 촬영 끝나면 생각해 볼게. 아, 영상 나온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진지하게 모니터를 주시했다.
방금 전 촬영한 장면이 초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아간 속도가 워낙 빨라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카메라를 통해 하나둘 세밀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애애애애액…… 셔어어어어언…….”
감독의 목소리가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들려오고, 앉아 있던 시우의 몸이 허공으로 부우웅 솟구쳐 올라갔다.
곧이어 날아가는 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시우는 마치 공간을 뛰어넘을 듯한 속도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냉정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
감독은 갑자기 튕겨져 날아갔음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시우의 얼굴을 보고,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의 위치 또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벽했다.
와이어 액션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어떤 초인적인 힘에 의해 몸이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었다.
“오케이! 다시 찍을 필요 없겠어요! 그냥 마지막 대사로 바로 넘어가죠!”
벽에 처박힌 채로 시우는 눈을 떴다.
벽돌 조각들이 후두둑, 시우의 어깨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살벌할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 처박힌 상황이었지만 어울리지 않게 시우의 차가운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입가에선 핏줄기가 주륵 흘렀다.
카메라가 시우를 클로즈업한 가운데, 시우는 손등으로 피를 슥 닦으며 마지막 대사를 입에 담았다.
“……큭. 귀엽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