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53)
253. 픽시
마지막 촬영을 무사히 마친 시우는 영화 딥 러닝을 끝냈을 때처럼 관계자들과 축하 파티를 가졌다.
배급사도 제작사도 그때와 똑같았기에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있었다.
코스모스 픽처스 대표 러셀 녹스는 친구인 시카고 블루윙즈 구단주 가족과 함께 참석했고.
“안뇬하쎄요! 시우! 싸랑해요! 꺄아악!”
시우는 흥분 상태인 구단주의 딸과 사진을 찍어 주었다.
구단주는 시우에게 블루윙즈 팀의 유니폼을 선물했다.
“시카고에 올 일이 있다면 나한테 언제든지 전화해. 내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을 내줄 테니까 말이야. 우리 집에 와서 머물러도 좋고! 한식 셰프를 초대해 같이 식사하자고~”
“감사합니다. 놀러 오면 연락드릴게요.”
제작사 뉴 노멀 시네마의 트래비스 마이너도 시우와 포옹을 했다.
“시우. 마지막 춤은 정말 환상적이었어. 네 연기와 춤이 이 영화에 예술성을 입혀 주었어. 빨리 공개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즐기고 싶어. 넌 정말 멋진 배우야.”
멋진 배우…….
시우는 그 말이 기뻤으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지금보다는, 나중에 커리어를 마무리할 때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넌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장담해. 내 머리털을 걸겠어.”
“…….”
트래비스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할지도 모르는 머리털.
러셀과 시우, 헨드릭스 감독은 왠지 숙연해졌다.
하하하! 웃으며 조금 슬픈 눈빛으로 딥 러닝 때보다 확연히 빠진 머리를 매만지는 트래비스.
시우는 트래비스의 정수리 쪽으로 손을 올렸다.
“트래비스, 머리에 뭐가 붙었어요.”
“음? 그래?“
트래비스의 머리 위로 올라간 시우의 오른 손바닥 안에서 기적을 일으킬 작은 빛이 머물다 사라졌다.
시우는 그 손으로 트래비스의 어깨를 짚은 뒤, 낮고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트래비스.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뭐가 괜찮을 거라는 건지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래비스는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으, 으응. 아무렴. 난 괜찮아. 괜찮다고. 요즘 모발 이식 기술도 많이 발전했어…….”
시우는 트래비스와 다시 한번 꼬옥 포옹을 하고, 영화 만드느라 고생했다며 격려의 인사말을 나눴다.
“자, 줄 서라고! 시우랑 다음에 포옹할 사람?”
트래비스가 웃으며 말하자 헨드릭스 감독과 야라가 나섰고, 블루윙즈 구단주의 딸도 은근슬쩍 야라의 뒤에 서서 웃음을 터트렸다.
스태프들도 한 명, 두 명 달려 나오면서 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던 중, 시우는 스태프들 뒤에서 혼자 쭈뼛거리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레이엄 교수 역의 배우 톰이었다.
시우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용기를 얻은 톰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시우 쪽으로 뛰어왔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파티는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모두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야경을 바라보며 시우가 물었다.
“미국 와서…… 이렇게 다시 영화 촬영하는 거, 이제 한참 뒤에나 가능하겠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케빈이 대답했다.
“군대 다녀와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쉬워?”
“막상 촬영 끝나니까 조금 아쉬워.”
“아쉬우면 군대 가기 전에 어떻게든 한 작품 더 잡아 볼까? 좀 무리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 작품 선택의 폭은 좁아지겠지만.”
시우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조그맣게 웃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계획대로 하는 게 맞지.”
“그래. 아직 군대 가려면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실컷 놀아. 형도 예전에 입대하기 전에…… 군대 가서 죽어도 후회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놀았거든.”
“하하. 예전에 나도 그랬…….”
“응?”
“아니야. 암말도 안 했어.”
* * *
“오빠아-!!”
“시아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아가 제일 먼저 달려 나왔다.
과자를 먹고 있었는지 한 손에는 촉촉한 초콜릿 쿠키가 들려 있었다.
시우는 시아를 안아 들고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려주었다.
“우와아!! 더 많이!!”
빙글빙글.
놀이기구를 타듯 신나게 돌다가 바닥으로 내려온 시아는, 신발장 앞에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며 혼자 좋다고 웃어 댔다.
그러다 풀썩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 시우에게 달려왔다.
“또 해줘! 또!”
“잠깐만, 오빠 옷 좀 갈아입고.”
부모님께도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고, 반가워하는 시윤이의 옆구리도 한번 푹 찔러 준 시우는 방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그사이 플렉스가 따라 들어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해 주었다.
[아버님의 건강 상태 양호. 어머님의 건강 상태 양호. 가족들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지만, 네가 없는 동안 시윤이의 성적이 불량해졌음.]“……얼마나.”
[어머님께서 스트레스를 받기에 충분하실 정도라고 판단됨.]“보호자 관리 모드 진입.”
[보호자 관리 모드 진입-]“시윤이 공부한 시간이랑 게임한 시간 알려 줘.”
[하루 평균 – 공부 47분] [하루 평균 – 게임 5시간 21분]“다, 다섯 시간? 주말도 아니고 하루 평균이?”
[부모님께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드리고 잠드는 척한 다음, 새벽에 몰래 일어나 불 끄고 시크릿 모드로 게임에 접속. 두세 시간씩 게임 플레이.]“…….”
시우의 표정이 굳어 가는 그때.
형에게 과자를 가져다주러 오던 시윤이 문밖으로 들려오는 플렉스의 목소리를 듣고 기겁해서 뛰어 들어왔다.
벌컥!
“야!! 성적 얘기만 하고, 게임 얘긴 비밀로 하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타타탁.
로봇 강아지 플렉스가 뒷걸음질을 쳤다.
플렉스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시윤에게 말했다.
[미안. 미안하다. 시윤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보호자 관리 모드를 이길 수가 없어.]“악! 이…… 이런…….”
당황한 시윤의 눈이 시우에게 향했다.
시우는 말없이 짐을 마저 정리했다.
시윤은 형에게 주려던 과자 봉지를 두 손에 든 채, 죄인처럼 얌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침내 정리를 마친 시우가 시윤에게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시윤은 저승사자가 다가오는 기분이라 감히 형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신의 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우는 시윤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무슨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이따 형이랑 같이 하자.”
멈칫멈칫 시윤의 시선이 위로 올라왔다.
형의 얼굴을 본 시윤은 겁먹은 표정을 풀고 배시시 웃고 말았다.
“응!”
시우는 시윤의 볼을 살짝 꼬집어 주며 생각했다.
‘으휴, 요 말썽꾸러기 녀석. 일단 같이 놀아 주고 천천히 잡아야겠군. 너의 봄날은 끝났다. 시윤아.’
* * *
미국 뉴욕의 한 방송 스튜디오-
“최고의 댄서~ 미국을 대표하는 비보잉 크루의 리더 JJ를 소개합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몸이 좋은 남자가 스튜디어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둠칫 두둠칫 가벼운 스텝을 밟으며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아는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을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토크 쇼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진행자가 물었다.
“이번에 영화에 출연을 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영화였나요?”
JJ는 “으허허~!” 호탕하게 웃고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탁탁 맞부딪치며 입을 열었다.
“댄스 영화였죠. 애초에 댄스 영화가 아니라면 저를 부를 이유가 없잖아요?”
“하하. 그러네요. 연기도 했나요?”
“했죠. 몇 마디의 대사가 있었어요.”
“멋지군요. 혹시 어떤 대사인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스포일러 문제가 있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역할이 스포일러를 우려할 정도의 비중은 아니라서~ 하하하! 좋습니다. 보여 드리죠.”
방청객들과 진행자가 JJ를 쳐다보자, JJ는 얼굴을 팍 우그러뜨리고 외쳤다.
“쑤~ 호우~ 웨이크업~!!! 지뉘어수~!!!”
짝짝짝짝!!
진행자와 방청객들이 박수를 쳤다.
JJ는 또 “으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짧은 대사지만 저의 이 대사가 바로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천재를 잠에서 깨우는 내용이거든요.”
진행자가 JJ의 연기를 따라했다.
“쑤~ 호우~ 예쓰! 아주 신나네요. 쑤호우~ 쑤호우가 혹시 시우 윤의 극 중 이름인가요?”
“맞습니다. 쑤호가 바로 시우죠.”
“시우의 춤 실력은 어떻던가요?”
“궁금하십니까?”
“네~ 물론 궁금하니까 질문을 드린 거죠~”
“그렇다면…… 영화를 보세요! 커밍쑨!”
영화를 꼭 보겠다고 약속한 진행자가 질문을 바꿨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거 같은데, 촬영장에서 일어난 재밌는 에피소드. 뭐가 있을까요? 들려주실 수 있나요?”
JJ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다 무릎을 쳤다.
“시카고에서 폭우가 계속 내린 적이 있었어요. 도로가 물에 잠기기도 했고.”
“그렇죠. 정말 뉴스를 보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촬영 일정이 바뀌고~ 장소도 바뀌고~ 와. 그러다 결국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정말 눅눅한 곳에서, 물론 그때는 아마 일리노이주 전체가 다 눅눅했을 거예요. 그런데…….”
누구나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향수 회사.
픽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늘 품귀 사태를 빚으면서도 철저하게 품질 우선주의를 고수하는 장인 정신을 가진 회사.
[시우가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정말 좋은 향기가 나는 거예요. 갑자기 눅눅한 느낌도 사라지고 청량감이 확~ 퍼지더라고요! 아니,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근데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시우가 풍기는 향이 너무 좋았어요.]픽시의 임원들은 모여 앉아 스크린에 뜬 JJ의 토크 쇼 영상을 검토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묻는다.
[시우가 인간 디퓨저로군요. 어떤 향수 쓰는지 물어보셨나요? 이따 녹화 끝나고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아~ 놀랍게도 향수 안 쓴다고 하더라고요~]딸칵.
직원이 리모컨을 누르자 영상이 잠시 멈췄다.
임원들이 대화를 시작했다.
“사람마다 본연의 냄새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리 좋지 않은 냄새일 텐데…….”
“믿기 어려워. 향수를 쓰지 않고도 주변 사람들을 저렇게 기분 좋게 만드는 향을 풍긴다고?”
“못 믿을 것도 없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마다 제각각의 체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중에 좋은 향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고, 시우 윤처럼 무척 좋은 향기를 가진 사람도 있겠죠.”
“만나서 맡아 보고 싶군. 특히 저들은 댄스 연습 중이었어. 땀 냄새가 뒤섞였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향이라…….”
“마침 우리 광고 모델과의 계약이 끝나 가는데, 다음 모델로 시우 윤을 세우는 건 어떨까요? 지금 저 토크 쇼 얘기가 인터넷에 꽤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고…….”
드륵-!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픽시를 존재하게 만든 여성.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의 재래라 불리는 절대 후각의 소유자.
이자벨 클레망.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잠시 회의실을 돌아다니다 창가 쪽에 서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유행 따라 모델을 고용하지 않아요. 픽시는 그런 식으로 일을 해선 안 돼요. 하지만…… 한번 만나 보고 싶군요. 시우 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