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68)
268. 기억
5월 3일, 오전 8시.
시우는 거울 앞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치카치카치카-
입에 거품을 잔뜩 묻힌 채 꼼꼼하게 칫솔질을 하던 시우가 옆을 돌아봤다.
치카치카치카-
동생 시아가 오빠를 훔쳐보며 똑같은 자세, 똑같은 표정으로 칫솔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우는 입가로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는 시아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시아야. 얼굴 살짝 들고. 이~ 해 봐. 이~”
“이~”
“앞니도 이렇게, 오빠처럼 닦는 거야.”
“꿀꺽.”
“삼키지 말고~!”
“히히힛. 아~”
“아 말고 이. 시아야. 학교 늦겠다. 얼른 하고 가자. 오늘은 오빠가 데려다줄게.”
“아아떠~ 꿀꺽.”
“먹지 말라니까…….”
얼마 전, 전동 칫솔로 양치질을 하면서 장난을 치다 입안이 씹히고 만 시아는 충격이 컸는지 시우에게 일반 칫솔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릴 때처럼 오빠가 해 주면 좋겠다~!”
“오빠가 해 줬으면 해서 일부러 대충 하고 있는 거야?”
“응. 아니야! 아니야!”
“응이라고 한 거 같은데?”
“안 했…… 꿀꺽.”
시우는 시아를 세면대 앞에 세우고, 자상하게 양치와 세수를 시켜 주었다.
최근 바쁘다는 이유로 많이 놀아 주지 못했기에, 집에 있을 때는 최대한 동생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시우였다.
게다가 한동안은 군 입대로 인해 아예 못 보게 될 테고.
시우는 가방을 멘 시윤과 시아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모두 집 앞에 있어 거리는 무척 가까웠다.
다만 길을 건너야 해서 시아에게는 주의가 필요했다.
“형, 난 갈게.”
시윤이 중학교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시우가 말했다.
“그래.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
“……형, 나 초3 아니고 중3이야.”
“그게 뭐?”
“아, 됐어. 으휴!”
시윤이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릴 때, 시아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작은 오빠~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수업 시간에 딴짓하면 안 돼~”
“…….”
시윤은 가서 저 까부는 꼬맹이의 볼을 한번 꼬집어 줄까 고민하다 “너나 잘하시지~”라는 말을 던져 주고 학교로 떠났다.
시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끔 보면 둘이 비슷한 나이인 것처럼 말다툼하고, 투닥거린다니까.’
시윤을 보낸 시우는 초등학교 앞에서 시아와도 인사를 했다.
“잘 갔다 와.”
“응~ 오빠 내일 집에 있을 거야?”
“내일? 잠깐 나갔다가 저녁에는 집에 있을 거야.”
“알았어. 그럼 생일 선물 내일 줄게! 기대해~”
시아는 활짝 웃는 얼굴로 시우에게 외친 뒤, 학교로 뛰어갔다.
혹시 뛰다 넘어질까 아직도 작기만 한 동생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시우는 시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몸을 돌렸다.
동생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쩐지 허전했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면서 시우는 동생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시아는 자신에게 줄 생일 선물로 직접 그린 그림과 편지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고, 시윤은 마치 형의 생일을 잊은 것처럼 내색을 하지 않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잊은 걸 수도 있고.’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시우는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바뀌는 걸 바라봤다.
한 층, 한 층 위로 올라가는 숫자가 꼭 한 해, 한 해 올라가는 자신의 나이 같았다.
“……벌써 스무 번째 생일인가.”
5월 3일, 오후 2시.
시우는 용산의 한 호텔 1층 카페에서 데이빗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블루애플 출판사 편집장 데이빗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우를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까지 찾아와 주었다.
데이빗은 시우가 구워 준 불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신중하게 맛을 음미했다.
미국에서도 불고기의 명성은 들어 봤지만, 직접 먹어 보긴 처음이었다.
“맛있네요. 정말 제 스타일인데요? 이 노란 밥도 맛있고. 근데 왜 밥이 노란 거죠? 원래 하얗지 않나요?”
“기장과 찹쌀이 들어간 밥이에요.”
“오~ 잘은 모르겠지만 일반 밥보다 뭐가 더 들어갔으니 그만큼 더 맛있나 봅니다. 하하하. 아, 내일이 생일이시죠?”
“네, 맞아요.”
“미국에 있는 저희 대표님께서 이걸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데이빗은 잘 포장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
시우는 감사히 받았다.
팬들의 선물부터, 친구들의 선물, 그리고 일로 알게 된 사람들의 선물까지.
생일을 앞둔 시우는 이곳저곳에서 많은 선물들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좀 정리를 해서 비싼 선물들은 돌려보내고, 인형이나 생필품류는 팬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할 생각이었다.
“만년필이네요? 와, 감사해요.”
점심을 먹으며 시우는 데이빗과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한국 판권을 마지막으로 아시아 쪽은 이야기가 다 끝났어요. 유럽 쪽은 대표님께서 열심히 일해 주고 계시고. 이야기의 밀도와 현장감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소설이라기보다 거의 뭐 실제로 겪은 일들을 쓰신 것처럼 생생해서…….”
움찔.
티 났나?
많이 났나?
“그, 그래요? 하핫.”
“네. 이번에 접촉한 관계자들이 다들…… 읽다 보면 그냥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고, 등장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시장 반응이 무척 기대가 된다고.”
“좋게 봐주셨다니 다행이네요.”
“배우 윤시우가 쓴 이야기라는 홍보 효과까지 더해지면, 이거 잘하면 영화화 제의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저희가 여기저기 판권 협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이미 입소문이 퍼져서 관심을 보이는 영화사들이 있을 정도예요.”
“내일 제 생일이라고 너무 좋은 얘기만 해 주시는 거 아닌가요?”
시우는 거듭되는 칭찬에 조금 민망한지 약간 얼굴을 붉혔다.
‘내 이야기를 쓴 거니까 주인공에 대한 이입이나 심리묘사, 상황 몰입도는 뭐…… 나쁘지 않을지도. 하, 하하.’
“특히 주인공의 그 강력한 존재감. 그리고 진짜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세계관 설정. 아주 높게 평가받고 있어요.”
“……네에.”
“그리고 우연찮게도 내일, 윤시우 배우님 생일날에 영화가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을 하잖아요?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저희도 근시일 내에 작품 출간 계획과 코믹스 스타일의 티저를 만들어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데이빗은 그 뒤로도 열정적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세세하게 시우에게 설명해 주었다.
밥을 다 먹은 시우는 식혜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진짜 내 전생 이야기가 공개되는구나. 일이 진행되는 거 보니까 이제야 실감이 나네. 으음, 기분이 이상하다…….’
5월 3일, 오후 8시.
“하하하.”
식탁 위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시아의 얼굴은 복사꽃처럼 발그레했다.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한참 웃던 현주가 식탁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시우가 엄마를 막았다.
“엄마~ 앉아 계세요. 제가 치울게요.”
일어나려는 현주의 어깨를 딱 눌러 다시 자리에 앉힌 시우는 먼저 시윤의 앞에 놓여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시윤이 손을 뻗어 수저를 다시 빼앗아 갔다.
시우가 물었다.
“왜, 아직 다 안 먹었어?”
“아니. 내가 무슨 시아야?”
시윤이 피식 웃으며 뱉은 말에 시아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빠~ 작은 오빠가 나 많이 먹는다고 놀려~”
도진은 투덜대는 막내딸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앉아 있는 시아를 꽉 안고 몇 차례 흔들었다.
시윤은 고자질하는 동생을 슥 노려보다 아빠 품에서 얼굴이 찌그러진 동생을 보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얄미운데 예쁘다.
짜증나는데 귀엽다.
자신을 어른 or 오빠가 아니라 친구 or 라이벌로 여기는 동생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무슨 일만 있으면 작은 오빠~ 작은 오빠~ 불러 대는 동생이 있어서 좋았다.
시윤은 한손에 수저를 든 채 시우에게 말했다.
“식탁 정리랑 닦는 거 내가 할게. 설거지도. 형은 내일 생일이잖아. 쉬어.”
“내일 생일이지. 오늘 생일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진짜 쉬어야 하는 건 이렇게 커다란 사람을 낳으려고 고생하신 엄마지~”
시우의 말에 현주가 웃었다.
“어이구~ 말은 아주~ 그래. 딱 20년 전 이날, 엄마가 우리 시우 낳으려고 죽다 살아났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속싸개에 들어가서 눈도 못 뜨고 입만 오물거리던 갓난아기였는데.”
“엄마, 큰 오빠 아가 때 사진 볼래~”
“그래. 안방에 있으니까 이따 보자.”
“지금~! 지금~!”
시우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가족들과 있을 때는, 웃지 않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항상 무의식중에 웃고 있다.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100번째 삶.
마지막 생이라 운이 좋았던 걸까.
좋은 가족을 만났다.
시윤에게 식탁 정리를 맡긴 시우는, 동생과의 실랑이 끝에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차지했다.
시윤은 형의 뒤에서 계속 기웃기웃대며 “뭐 도와줄 거 없어?”를 연발하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올래? 라고 짓궂게 묻는 시우의 말에 못 들은 척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을 깨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손에 장갑을 착용한 채 다시 방에서 나왔다.
“뭐, 뭐 별거 있겠어? 해 볼게!”
5월 4일, 오전 1시 13분.
방에 누워 책을 읽다 문득 시계를 본 시우는 자신의 스무 번째 생일이 왔음을 깨달았다.
‘생일이네.’
밤이라 무음으로 해 놓은 휴대폰을 확인하자 수많은 축하 메시지들이 도착해 있었다.
축하 메시지들을 천천히 읽던 시우는 새삼 자신이 이곳에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있었나?’
없다.
100번 중, 단 한 번도.
5월 4일, 오전 1시 15분.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다 확인한 시우는 이번에는 SNS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팬들의 축하 메시지가 가득했다.
‘내가 활동하는 걸 보며 기운을 낸다는 분들도 계시고…… 어릴 때부터 매년 생일마다 축하글을 남겨 주시는 분도 계시고…… 평생 열심히 해야겠다.’
5월 4일, 오전 1시 17분.
시우는 왠지 머리가 아팠다.
욱신-
손에 든 휴대폰을 내려놓고 시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왜 머리가 아프지?’
축하 메시지들을 빨리 읽기 위해 스크롤을 엄청난 속도로 내리긴 했다.
하지만 속독 스킬로 기사나 댓글을 빨리 읽는 건 늘 해 왔던 일이라 특별할 게 없었다.
두통을 포함한 그 어떤 통증과도 거리가 먼 시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머리가 아픈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욱신-
“…….”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리고 의아해하던 시우의 눈동자가 순간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치듯 눈앞이 핑그르르 돌면서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뭐야? 뭐지?’
시우가 당황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때, 흐릿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스치듯이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