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81)
281. 120%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시윤은 방에서 나오는 형을 발견했다.
“형, 밤에 뭐 했어?”
“응? 왜?”
“아니 새벽에 물 마시려고 잠깐 일어났는데 형 방에서 플렉스 목소리랑 형 목소리랑…… 아주 엄청 신난 목소리가 계속 들리던데?”
“아~”
시우는 꿀잠을 자고 일어난 무척 개운한 얼굴로 시윤에게 대답했다.
“플렉스랑 둘이 토끼 사냥 좀 했어~”
“토끼?”
“그런 게 있어. 엄마는?”
“아빠랑 주방에서 아침 준비 중. 이제 시아 깨워야 하는데…….”
“형이 깨울게.”
시우는 시아 방 쪽으로 몸을 휙 돌리려다, 다시 시윤을 봤다.
“왜?”
“시윤아.”
“응. 말해. 뭐.”
“형이…… 우리 시윤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
시우의 뜬금없는 사랑 고백에 시윤은 등골이 오싹했다.
시윤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뭐야, 형이 왜 저러지? 내가 요즘 너무 늦게 다녀서 그런가? 혹시 독서실 말고 다른 데서 놀다 오는 거 아닌지 살짝 떠보는 건가?’
“……뭐. 왜. 뭔데.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시우는 잔뜩 겁먹은 동생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형이 동생한테 사랑한다고 하면, 나도 사랑해 형~ 이런 반응이 나와야지. 잘못 얘기는 왜 하냐? 뭐 찔리는 거 있어?”
“아니야~ 그냥…… 어릴 때 말고는 형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형, 무슨 일 있어?”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고.”
툭툭.
시우는 동생의 어깨 위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몸을 돌렸다.
시윤은 형의 손이 닿은 자신의 어깨 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혹시 뭘 붙여 놓고 간 게 아닐까 의심 가득한 눈길로 열심히 살펴봤으나, 어깨에는 이상이 없었다.
“……뭐야.”
시윤은 고개를 갸웃거린 다음 교복을 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크어…… 크어…….”
사기를 당한 충격으로 밤새 잠을 설치다 겨우겨우 잠이 든 시아는, 피곤했는지 코를 골고 있었다.
천사 같은 얼굴로 대자로 드러누워 코를 고는 시아의 모습이 시우는 너무 귀여웠다.
“시아야. 일어나야지~”
“크어~ 크어~”
시우의 목소리에 시아는 귀찮다는 듯 몸을 옆으로 굴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시우가 외쳤다.
“갈비. 피자. 치킨. 아이스크림!”
벌떡-
눈을 반쯤 감은 채 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정신은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 다시 누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시아를 시우가 번쩍 안아 들었다.
시아는 오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잠이 깼다.
“앗! 오빠! 토끼 찾았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묻는 시아에게 시우는 위풍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당연하지. 오빠랑 플렉스가 그 토끼 잡아서 뺏긴 옷 다 돌려받았어. 그리고…….”
“그리고 뭐?”
“플렉스가 그러던데 시아 게임에서 공룡 옷 갖고 싶다고 했다면서?”
“응. 근데 스페셜 퀘스트 깬 사람만 가질 수 있어~ 진짜 어려워서 아무나 가질 수가 없대~ 내 친구들도 입구 들어가자마자 다 실패했대~”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게임 고수라도 깨기 힘든 던전 구조였다.
던전이 입장 때마다 길이 바뀌는 미로형이었고, 등장하는 캐러멜 맛 몬스터들은 플레이어에게 극한의 컨트롤을 요구했다.
웬만한 고인물이 아니라면 클리어하기 힘든 스페셜 퀘스트였다.
“오빠가 깼어.”
“……진짜?!”
“응. 얼른 씻고 밥 다 먹으면 학교 가기 전에 잠깐 들어가서, 공룡 옷 입어 보자.”
“우와!! 오빠 최고!! 나 빨리 씻을래!!”
시우는 온몸을 버둥거리는 시아를 바닥에 내려줬다.
시아는 쌩하고 욕실로 달려가 알아서 칫솔에 치약을 짠 뒤, 양치질을 시작했다.
태블릿 앞에 앉은 시아는 행복한 얼굴로 자신의 캐릭터에 공룡 옷을 입혔다.
두근두근-
“와!”
전설 아이템인 공룡 옷을 입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자신의 귀여운 캐릭터를 본 시아는 오빠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린 동생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시우가 물었다.
“시아는 공룡이 그렇게 좋아?”
“응! 너무너무 멋있어! 난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공룡으로 태어나고 싶어!”
……공룡이라.
시아는 티라노를 가장 좋아하니까, 그럼 백악기에 태어나려나.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서 포식자로 활동하는 시아를 떠올리니 시우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캐릭터를 움직여 와플 시티를 돌아다니던 시아가 시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빠는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뭘로 태어나고 싶어?”
동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시우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오빠는…… 다시 태어나도 시아 오빠, 그리고 시윤이 형으로 태어나고 싶어.”
“알았어! 그럼 오빠도 공룡으로 태어나!”
“하하하.”
– 와, 전설템!! 어젯밤에 스페셜 퀘스트 깬 그 사자다!!
– 공룡 옷 너무 귀여움 ㅠㅠ
– 어제 그 사기꾼 토끼 잡고 스퀘 클리어 한 사자임??
– 대박 소문 듣고 영상 보러 아침에 잠깐 접속한 건데 실제로 보다니 헐
– 사기꾼 토끼 와플 시티 광장에 지금도 붙잡혀 있어요~ 지금까지 사기 친 템들 비슷한 걸로 다 돌려준다니까 피해자분들 어서 광장으로 가세요!
– 어제 토끼 잡을 때랑 던전 깰 때 컨트롤 진짜 환상 ㅜㅜ 안 본 사람들 빨리 영상부터 보고 오세요!
– 저랑 친구하실래요???
– 저도 친구 추가 부탁드려요!!
시아는 아침부터 쏟아지는 유저들의 엄청난 관심에 잠시 당황하다, 이내 기쁨을 표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공룡은 아장아장 걸어가 사람들 앞에서 즐겁게 춤을 췄다.
– 짝짝짝짝짝짝짝짝-!!!
유저들의 박수 소리가 와플 시티에 울려 퍼졌다.
시아는 신나게 침대 밑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시우는 그런 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시아야.”
“응?”
“우리 시아, 오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
“응! 나도 오빠 많이 사랑해! 엄마도 사랑하고, 아빠도 사랑하고, 작은 오빠도 사랑하고~ 복실이도 사랑하고~ 네로도 사랑하고~ 다 사랑해!”
쿠쿠쿵!
게임하는 시아를 먼발치서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던 플렉스가 슬그머니 돌아누웠다.
……어젯밤, 토끼 찾으려고 열심히 했는데.
시우가 물었다.
“플렉스는 안 사랑해?”
“응? 플렉스도 사랑해! 우리 가족~ 전부 다 사랑해!”
시우는 돌아누운 플렉스가 조용히 로봇 꼬리를 탁탁 흔드는 광경을 봤다.
‘사람이야. 사람.’
* * *
‘오랜만이다. 진짜 오랜만이야.’
낯설다.
겨우 일 년 군대에 다녀왔을 뿐인데, 이렇게 모든 게 다 어색할 수가 있을까.
“안녕하세요~ 윤시우 배우님!”
“윤시우 배우님! 이쪽으로 오세요! 늦었지만 전역 축하드려요!”
“윤시우 배우님~”
윤시우 배우님이라는 말조차 기분이 묘하다.
윤시우…….
조교님이라는 호칭이 오버랩되어 들려온다.
가족, 친구들과 사적인 자리만 갖다 이렇게 일터로 컴백을 하니 마주치는 사람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았다.
시우는 자꾸 군대식으로 인사를 받으려 하는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사회인답게 머리를 열심히 숙였다.
그런 시우를 뒤쫓아가던 케빈이 장난스럽게 외쳤다.
“단결!”
“단……!”
시우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다 이를 악물고 케빈과 투닥거렸다.
“으이구, 전역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그러냐.”
“군대에서의 추억들이 자꾸 생각나서 그래.”
“됐어. 됐어. 군대 얘기 그만. 넌 이제 의사야. 알겠지?”
“오케이.”
군대 얘기만 나오면 여전히 이야기가 길어지는 시우였다.
케빈은 대본 리딩도 하고 감독님이나 작가님, 그리고 동료 배우들과 대화도 나누다 보면 차차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리딩실 입구에서 시우는 유빈과 마주쳤다.
유빈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매니저와 같이 입구에서 서성이던 중이었다.
“누나.”
“시우야~! 와, 머리 많이 길었네?”
“많이는 아니고. 적당히.”
“너 정말 군대 다녀온 애 맞아? 피부도 그렇고, 보통 전역하면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도 다녀온 티가 나던데…… 신기하다.”
“나온 지 좀 됐잖아. 잘 쉰 덕이지 뭐.”
“최고최고최고!”
양손 엄지를 들어 보이는 유빈의 호들갑에 시우는 조금 멋쩍은 미소로 응답했다.
“그런데 누구 기다려? 왜 나와 있어?”
시우의 질문에 유빈의 밝은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 정욱 오빠 기다려.”
정말 이상하게도, 같은 소속사란 이유로 정욱이 폐를 끼치면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한다.
정욱이 PD님과 갈등을 빚으면, 자신이 나서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을…….
‘왜 해야 되냐고! 내가! 애야?!’
“혹시 지각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내가 정말 속이…… 어?! 오빠! 여기요! 여기!”
한시름 덜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정욱과 정욱의 매니저를 발견한 유빈은 구겨져 가던 얼굴을 활짝 폈다.
정욱은 매니저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못 이기는 척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우는 의아했다.
‘……표정이 왜 저래? 옛날에 월영 찍을 때랑 인상이 너무 다른데?’
정욱은 ‘나 잘났다, 나는 잘난 놈이다!’ 하던 과거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누나. 저 형 무슨 일 있어?”
“응? 아아…… 쫌…… 슬럼프가 심하게 와서…… 하아…….”
유빈은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며 한숨을 뱉었다.
“자! 주목하세요! 리딩이라고 해서 분위기만 본다거나, 대사만 맞춰 본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저는 정말…… 연습도 실전처럼! 실전은 더욱 더 실전처럼 하는 걸 좋아해요! 우리 배우님들, 준비 많이 해 오셨겠지만 정말 뜨거운 열정! 보여 주셨으면 좋겠고! 오늘 제가 받는 느낌에 따라…… 캐릭터들의 분량 조정, 있을 겁니다. 120% 발휘해 주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썼다 하면 대박.
시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중년의 유명 여성 작가가 배우들을 향해 시작부터 선전포고를 했다.
분량 조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이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선언해 버리면 배우들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시우는 숨을 고르며 역할에 몰입해 갔다.
오랜만이라 낯설다거나,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감이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그런 말은 다 핑계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 ‘연기’라는 결과로 보여 줘야 한다.
곧이어 본격적인 리딩이 시작됐다.
시우는 차분히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대학 병원을 배경으로 중년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가 오갔고, 드디어 시우의 차례가 됐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뼛속까지 군인으로 분해 의외로 군인도 상당히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했던 시우였으나…….
역시 대본을 쥐고 있으니 알겠다.
대사를 치는 이 순간, 가장 즐겁다,
흥분된다.
“어제 최 교수님께서 수술한 환자가 지금…… 헉헉…… 지금 복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조연 배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시우는 그 열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 리딩의 첫 대사를 입에 올렸다.
매의 눈으로 배우들을 관찰하고 있는 작가와 PD, 그리고 모든 배우들의 시선이 시우에게 향했다.
군 전역 후, 시우가 입대 전과 같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시우의 눈빛이 싸늘해지고,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귀찮네…… 어차피 죽을 환자던데…….”
정욱과 유빈을 포함한 리딩실의 모든 이들은, 순간 피까지 얼어붙는 오한을 느꼈다.
대사 한 마디에 실린 냉정함이 송곳처럼 리딩실을 관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