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83)
283. 클래스
정욱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잠기지 않은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계속 똑똑 떨어져 내리듯, 비상계단 위로 그의 눈물이 점점이 떨어졌다.
“흐읍……!”
코를 삼킨 정욱은 고개를 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주륵주륵주륵-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시우는 조용히 정욱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동안 맺힌 응어리를 눈물로 토해 내던 정욱이 시우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애는 어떻게 됐어?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으니까 마지막엔 잘됐겠지?”
두둥-!
이십대 초반에 불과한 시우는 마치 오래된 동양 벽화에 나올 법한 해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욱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며, 가슴 아픈 이야기에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려보냈다.
‘너무 슬퍼!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노력을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설이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는…… 정말 존경스러워……!’
벌떡!
정욱은 엉덩이로 계단을 박차고 일어났다.
시우가 들려준 한 남자의 이야기에 깊이 감명을 받은 그는 아까와 다르게 눈을 밝게 빛내고 있었다.
“……가자. 리딩하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쫄아 있었다고! 나 원래! 막 나가는 놈이야! 리딩? 네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목숨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닌데 부딪쳐 보지 뭐!”
처음에는 코웃음 치며 웬 옛날이야긴가 하고 듣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주인공이 맞닥뜨린 좌절과 지금 자신의 감정이 너무 흡사해 완전히 몰입해 버리고 말았다.
위로는 공감에서부터 나온다.
정욱은 시우의 이야기에 복잡하게 얽힌 채로 꽁꽁 묶여 있던 마음이 조금 풀려나간 기분이었다.
‘……남의 이야기 되게 안 듣는 타입 같은데, 의외로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엄청 집중해서 듣는구나.’
의욕이 되살아난 듯 보이는 정욱을 올려다보며 시우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다 한순간이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격려를 받거나, 멋진 강의를 듣고 마음에 위안을 얻어도 그것은 절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계속해서 되새기고 노력하지 않는 한 좌절감은 또 금세 문을 두드릴 테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이 더 강한 자극을 찾듯, 똑같은 위로와 격려로는 기운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일단은 기운을 차렸으니 다행이네. 뭐…… 나도 같이 연기하는 동료가 계속 악플에 시달리는 건 원치 않으니까, 촬영하는 동안 좀 도와줘야겠다.’
“형.”
“……음?”
시우에게 받은 음료를 챙기며 리딩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정욱이 시우를 돌아봤다.
시우가 형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왠지 듣기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시우는 정욱을 따라 일어나면서 솔직한 마음으로 말했다.
“연기. 저도 진짜 어려워요. ‘잘할 거야. 넌 당연히 잘하겠지. 넌 월드 스타니까. 넌 연기파잖아.’ 이런 말들이 엄청 무서울 때가 있어요. 형도 아시잖아요~ 어떻게 어떻게 가까스로 아홉 번을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바로 연기력 논란 기사 줄줄이 나오고 지금까지 안 보이던…… 아니, 어쩌면 욕을 참고 있던 악플러들이 신나서 달려 나오는 거.”
“…….”
“항상 외줄 타기 하는 마음으로 캐릭터 분석하고 연기 들어가고 그래요.”
정욱은 시우의 얼굴을 봤다.
연기를 할 때는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지가 휙휙 변하지만, 평상시 얼굴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역시 아직은 어려 보인다.
‘아니, 실제로도 아직 어리긴 하지. 이십대 초반이니까.’
“그래…… 연예계 생활 쉽지 않은데. 넌 아기 때부터 연예계 생활했으니까. 참 힘든 곳에서 잘도 버텼다.”
“하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것도 네 복이지. 이제 와서 갑자기 친한 척하긴 싫다만,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뭔데요?”
“연기 경력이 진짜 오래됐잖아.”
“그렇죠.”
20년 세월을 배우로 살았다.
정욱의 말대로 참 열심히, 오래도 했다.
“지금도 연기하는 거…… 재밌냐?”
정욱은 쭈뼛쭈뼛 망설이다 물었다.
질문을 받은 시우의 입가에 사르륵 미소가 떠올랐다.
“네. 매번 두근거려요.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배우 하려고요.”
시우의 미소를 본 정욱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개운해졌다.
이 어린 녀석에게 질투하며 초조해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도.”
“네?”
“나도 연기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매번 악플 테러를 당하면서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난 사실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 줄도 몰랐어. 얼마 전에야 알았어. 에이 씨, 가자. 늦었다고 작가가 또 난리 칠라. 성격 장난 아닌 거 같던데.”
쑥스럽게 자기도 연기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정욱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단을 올라갔다.
주눅 들어 있던 아까와 다르게 예전처럼 건들건들 걷는 정욱의 뒷모습을 본 시우는 한차례 웃고는 그를 따라 올라갔다.
“형, 작품 하나 멋있게 해 보자고요. 형이 막 연기 잘하고 싶다고 우는 거 보니까, 형이랑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울긴 누가 울어 이 새끼야! 잊어 버려!”
“부탁하는 말투가 아니라서 잊기가 힘들 거 같아요. 윤시우 선배님~ 제발 잊어 주세요~ 뭐 이런 공손한 말투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하, 이…… 욕 나오게 하네. 윤시우 선배님은 무슨…….”
벌컥.
비상계단에서 나가는 문을 열어젖힌 정욱은 흠칫 놀라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아이 깜짝이야!”
문 앞에는 유빈과 유빈의 여성 매니저가 서 있었다.
유빈의 매니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훔쳐 들으려던 건 아니고…… 정 배우님 매니저분이 욱이 형 좀 같이 찾아 달라고 해서 찾다가…… 여기서 목소리가 들리길래~”
정욱이 당황해 얼굴을 붉히는 그때, 이번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자 정욱의 회사 후배인 유빈이 두 손을 짝짝짝 강하게 맞부딪치며 외쳤다.
“크어~ 취한다~ 브로맨스의 늪! 욱이 오빠 다시 봤어요. 혹시 울 때 시우한테 기대서 울거나 그런 건 아니죠? 오빠 오늘 머리 안 감고 왔다면서요. 막 기름 묻히고 그러면…….”
“……진짜 다 죽여 버릴까?”
정욱의 살벌한 말투에 시우가 그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형이 싸패 역을 맡았어야 했네. 작가님이 잘못했네. 잘못했어.”
시우의 말에 빵 터진 유빈은 한참 웃다가 정욱과 시우에게 말했다.
“이번 드라마 같이 열심히 해서~ 경쟁작들 다 씹어 먹자고요!”
앞서 가던 시우가 대답했다.
“당연한 얘기를.”
정욱은 두 동생들의 뒤에서 입을 삐죽거리다 시우가 준 음료를 한 손에 쥔 채 그들을 쫓아갔다.
* * *
“레디…… 잠시만요! 윤시우 배우님!”
“네!”
“각도 오른쪽으로 아주 조금만!”
“이렇게요?”
시우는 카메라 앞에서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오케이~ 좋습니다. 멋있다. 내가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 화보를 찍고 있는 건지. 하하.”
화면에 비치는 시우의 비주얼에 감동한 감독은 다시 각도를 체크한 뒤, 숨을 가다듬었다.
조용-
“레디, 액션!”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표정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깃들었다.
대본 집필을 후반부까지 마무리해 버리고 촬영장에 격려차, 혹은 감시차 찾아온 작가도 감독의 뒤편에서 팔짱을 딱 끼고 배우들의 연기를 주시했다.
윤시우와 정욱이 함께 붙는 씬-
‘흠, 잘하려나. 시우가 진짜 소름끼치게…… 근데 왠지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어딘가 아름다우면서…… 그 결핍된 어떤…… 아, 이놈의 욕심. 바라는 게 너무 많아.’
그래도 윤시우니까.
솔직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예술이 되잖아.
김지은 작가는 지독할 정도로 섬세한 터치를 시우에게 요구했다.
물론 다른 배우에게라면 가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사 이민준의 집 앞-
현관을 향해 걸어가던 민준이 걸음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멈춰 선 시우의 뒷모습에 꽂혔다.
두근- 두근- 두근-
왜일까.
연기를 시작하긴커녕 아직 얼굴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오피스텔 복도의 풍경과.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퇴근하는 민준의 뒷모습.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장면인데 김지은 작가는 이유를 모를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혀 심장이 두근거렸다.
‘……뒷모습이 스산해. 뭐야. 저 연기는. 어떻게 한 거지?’
그래.
이민준의 뒷모습은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스산하다.
이런 표현을 원했다.
근데, 자신이 이런 이민준의 뒷모습을 원했다는 걸 김지은 작가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민준의 표정과 눈빛 등, 즉 앞모습에만 집중해왔던 것이다.
‘클래스가 다르네. 쟤 뭐지? 무릎의 위치, 등과 어깨의 높낮이, 팔과 손을 늘어뜨린 정도, 이런 걸로 표현하는 건가?’
이십대 초반의 어린 배우의 내공이 아니다.
22년차 대배우의 내공이었다.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자신에게 탁 강제 고정시켜 버린 시우가, 천천히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꿀꺽-
그냥 ‘걸어가다 멈춘 민준, 뒤를 돌아본다.’라는 지문 밖에 써 주지 않았는데-
시우의 댄디하게 올린 앞머리가 보이고, 그 밑으로…….
감정은 물론이고 차가움조차 느껴지지 않는 시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선함도 악함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그 얼굴은 오히려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투명한 눈빛을 닮아 있었다.
섬찟-
그래서…….
더 무서웠다.
시우의 눈을 본 모든 스태프들은 동시에 얼음을 삼킨 듯이 가슴이 아팠다.
세상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는 어린아이가, 위태롭게 카메라를 쏘아보고 있는 느낌-
무언가를 관찰하듯-
시우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였다.
이내, 시우의 입이 열렸다.
“뭐 하세요?”
투욱-
시우가 만들어 놓은 긴장 가득하던 실이 끊겼다.
김지은 작가와 스태프들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무의식중에 다 같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시우가 대사를 던진 순간 시우의 기이한 존재감이 사라지고, 모두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정욱이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아…… 아니…….”
약간 겁에 질린 얼굴.
정면에서 시우의 연기를 감상한 덕에, 완전히 짓눌려 있던 정욱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던 몸이 왠지 서서히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대사를 입에 올렸다.
“꼭 들어가야 되나? 난 밑에 1층에서 기다려도 되거든. 책 가지고 내려와.”
시우의 아이처럼 투명한 표정이 살짝 흐트러졌다.
뭔가 뜻대로 안 될 때의 그 약간 짜증나는 느낌-
‘……너무 무섭잖아. 너무 무섭다고.’
정욱은 자신이 시우를 왜 경쟁자로 생각했을까, 반성했다.
얘는 미쳤다.
슛이 들어간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내쉬는 숨소리마저 클래스가 다르다.
캐릭터로 빙의.
아니.
아예 캐릭터로 환생한다.
긴장한 정욱과 스태프들의 귓가로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양하지 마세요. 선배. 이럴 때는 집으로 초대해서 차라도 대접하는 게 예의잖아요. 그리고 화장실도 급하시다면서요.”
별거 아닌 대산데 시우가 말하니까 소름이 돋는다.
정욱은 자신의 연기가 점점 메소드화 되는 것을 느꼈다.
“그, 그렇긴 하지만…….”
“들어오시죠.”
시우가 현관문을 열었다.
시우의 몸이 집 안으로 사라지자, 정욱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을 쫓는 카메라와 함께 민준의 집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헉, 무슨 집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