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85)
285. 의료 사고
“에취!”
휠체어에 탄 환자 역의 엑스트라가 재채기를 한 순간, 스태프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식이 쏟아졌다.
“아~!”
감독은 고개를 떨궜다.
“후우…… 컷! NG!”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NG가 날 때는 정말로 허탈하다.
솔직히 가끔은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감독은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러 재채기를 하진 않았을 테니 괜찮다고 웃어 주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아오, 이거…… 어떻게 다시 준비할 거야…….’
“시우야, 괜찮아?!”
감독은 곧바로 시우를 향해 외쳤다.
커피를 뒤집어쓴 채 연기를 준비하던 시우는 그냥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엑스트라를 먼저 진정시키는 시우를 보며 감독은 정말 이 시대의 참된 인성이 아닌가 생각했다.
‘앗,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나만 볼 순 없지. 클립 영상으로 찍어서…….’
감독은 촬영감독을 부르려다, 이미 찍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시대의 참된 촬영감독이 아닌가 생각했다.
감독은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 시우에게 갔다.
“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이랑 헤어 다시 하고…… 와야겠네.”
감독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시우를 봤다.
한번에 끝내자고 그렇게 다 같이 다짐을 했는데, 재채기 때문에 분위기가 깨질 줄이야.
시우는 스태프에게 받은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에 흐르는 커피를 대충 닦아 냈다.
“다녀올게요.”
걱정하는 감독과 미안해하는 환자 역의 엑스트라에게 걱정 말라는 듯이 싱긋 웃어 준 시우는 씩씩하게 현장을 떠났다.
응급실 세트장 한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욱이 유빈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윤시우가 착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거든?”
“네? 아, 네. 지금은 생각이 바뀌셨어요?”
정욱은 고구마라떼를 쪽쪽 빨아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좀…… 따뜻하니~ 그런 면이 있어. 이 고구마라떼처럼 말이지.”
“아…… 네.”
“저런 형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저런 동생 아니고요?”
“…….”
“…….”
“……쟤가 형인 게 좋을 거 같아.”
잠시 후-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다시 의상과 헤어를 갖춘 시우가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음?’
시우는 멈칫했다.
엑스트라 배우들이 자신에게…… 존경과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뜨거운 시선을 피해 얼굴을 숙인 시우는 얼른 정해진 자리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우의 머리에 커피를 부은 덩치 큰 단역 배우가 시우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그럼요.”
“다행이네요. 참…… 마음이 넓은 분이신 거 같네요.”
“네? 저요? 아니에요~”
“하하. 어쨌거나, 제가 윤시우 선배님 머리에 커피를 두 번이나 붓게 생겼어요. 아까 그 쏟는 각도랑 속도 어떠셨나요? 좀 더 쪼르르…… 이런 느낌으로 부을 까요?”
“감독님도 별말씀 없으셨고. 아까 그 느낌대로 가면 좋을 거 같아요.”
“넵!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유, 제가…… 제가 잘 부탁드려, 드립죠. 잘 부탁드립니다.”
우락부락한 체격에 목 밑으로는 문신을 그려 넣은 단역 배우 동우는 시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크, 예전에 나는 엑스트라 때 실수로 NG 한 번 냈다가 주연 배우한테 쌍욕을 들었는데. 역시 대배우는 인성부터가 다르구나!’
동우는 지금까지 살면서 본 수많은 얼굴들 중에, 지금 보고 있는 시우의 얼굴이 가장 선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해맑고 선한 얼굴이 무섭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시우의 연기력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시우의 티끌 한 점 없는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음, 이따 혹시 별로 안 무섭더라도 최대한 무서운 것처럼 연기를 열심히 해야겠다! 또 NG 나면, 또 들어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하고 하셔야 할 거 아냐.’
난 또 커피를 부어야 할 테고.
부담스럽다.
동우는 심호흡을 한 다음,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10분 후.
스태프들이 잘 정리해 놓은 응급실 세트장에 다시 무법자가 들이닥쳤다.
“비켜! 이 의사 나부랭이 새끼들! 나는 옛날부터 의사들이 싫었어! 이민준이 누구야!”
우당탕!
잠깐의 소란 끝에 동우가 시우를 찾아냈다.
카메라와 함께 시우에게 다가간 동우는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우로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거칠게 빼앗았다.
카메라는 동우의 시선을 표현하듯, 의사 가운에 수놓아져 있는 이민준이라는 이름을 한 차례 잡아 주었다.
동우는 무서워하거나 놀란 기색도 없이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는 시우를 가만히 응시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시우의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이 건방진 새끼…….”
동우는 대사를 잘근잘근 껌처럼 씹어 마이크에다 때려 박았다.
몸집과 문신, 험상궂은 얼굴과 눈빛이 하모니를 이뤄 극한의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박력이 대단했다.
간호사 역의 배우들이 그 위협적인 모습에 본능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그러나.
시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머리 위로 커피가 쏟아지는데, 마치 다른 세상일인 것처럼 시우의 표정은 평온했다.
일반적으로 누가 머리나 얼굴에 물을 뿌릴 때, 드라마에서 숱하게 등장한 그 표정들-
이를 꽉 물고 화를 참거나.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아니면 곧장 반격을 하거나.
그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마치 머리에서 아무 것도 흐르고 있지 않은 것처럼, 환자들과 동료들 앞에서 커피를 뒤집어쓴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우는 그저 동우를 슥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시우의 이마를 타고 주르륵 떨어져 내리던 커피 줄기가 시우의 눈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촬영감독은 깜짝 놀랐다.
‘헉, 커피가 눈에 들어갔어!’
평범한 역할이라면 임기응변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뒤 화를 삭이는 표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민준은 아니다.
촬영감독은 이대로는 시우가 연기를 이어가기 힘들 거라 판단했다.
촬영감독이 NG를 예상한 그때, 아니나 다를까 시우의 오른쪽 눈동자가 점점 충혈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시우의 얼굴이 여전히 태연했다.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한쪽 눈이 빨갛게 변해 가는 가운데 시우는 그대로 카메라와 동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시우의 눈동자에 조용한 살기가 스쳤다.
…….
동우는 아까 전에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었다.
안 무서워도 최대한 무서운 척해야겠다던 결심은 이미 까맣게 잊었다.
‘……세, 세상에서 제일, 제일 선한 얼, 얼굴이었는데?’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미동도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우를 본 순간, 동우는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정직하게 살았지.
그래.
이만하면 좋은 인생이었…….
‘허억! 흐억! 흐억!’
정신을 차린 동우는 서둘러 시선을 살짝 밑으로 내렸다.
눈을 봐선 안 돼!
코다!
윤시우의 코를 봐야 한다!
아니, 코를 봐도 눈이 살짝 보이잖아!
동우는 여차하면 자신의 얼굴만 다시 촬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선을 시우의 입까지 내렸다.
오한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시우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시우의 입이 움직였다.
“제가 이민준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오케이를 외친 감독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얼른 시우에게 달려갔다.
“시우야! 아니, 눈에 커피가…… 그럴 때는 잠깐 끊어 달라고 해야지~! 어휴! 정말!”
감독과 스태프들이 수건으로 닦아 주려 하자 시우는 뒤로 피했다.
“아니에요~ 두세요. 어차피 이 상태로 계속 촬영해야 하잖아요.”
걱정되는 마음에 달려왔던 스태프들은 아차하고 수건을 다시 집어넣었다.
감독은 시우의 충혈된 눈을 살피면서 의료팀을 불렀다.
“일단 체크부터 받자.”
“영상은요? 모니터링 먼저 할까요?”
“아니!! 일단 눈 상태부터 보자. 영상 진짜 잘 나왔어. 아주 뭐, 진짜…… 살기? 살기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모니터를 뚫고 나오더라니까~ 와…… 무서워서…….”
케빈과 슈 엔터 팀들이 시우를 부축했다.
시우는 눈이 좀 충혈된 것뿐인데 무슨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케어를 하는 스태프들을 보며 민망한지 가볍게 웃었다.
자리를 떠나려던 시우가 자신과 함께 연기한 동우에게 한 마디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동우와는 곧바로 또 같이 촬영을 해야 한다.
“금방 올게요~”
동우는…… 또다시 세상에서 제일 선한 얼굴로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시우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배우구나 새삼 감동을 받았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시우가 무척이나 거대해 보였다.
“다녀오십쇼! 선배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돠!”
세 명의 배우가 더 추가됐다.
고유빈.
정욱.
그리고 동우의 여자친구 역을 맡은 단역 여배우.
“레디, 액션!”
시우의 충혈된 눈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이 재개되었다.
푹 쉬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 시우가 마법으로 빠르게 치유하는 방법도 있지만, 좀 전 영상에서 눈이 충혈된 이민준이 곧바로 눈이 가라앉은 상태로 등장하는 것은 오류라는 시우의 말에 감독은 납득했다.
시우는 자신의 투혼에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감동을 받고 있다는 걸 모른 채, 평상시대로 그냥 열심히 집중해서 연기에 임하고 있었다.
역시 연기를 할 때가 제일 즐겁다.
시우는 감독의 사인과 함께 냉정한 의사 이민준으로 변해 앞을 주시했다.
동우가 외쳤다.
“돌팔이 새끼가! 너한테 수술 받고 내 여자친구가 더 안 좋아졌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의료 사고 아냐? 이거! 의료 사고 맞지?”
의료 사고.
그 무거운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 명성대학병원 응급팀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욱이 나섰다.
“저기, 일단 진정하시고요. 일단 환자분 성함이랑…….”
“이 새끼들아! 내가 전화를 몇 통을 했는데 환자 이름도 몰라!”
“아, 네. 전화를 많이 하셨다고 해서…… 저희가 환자분 성함을 파악하긴 조금 어려운 점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내 여자친구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너 이름 뭐야!”
동우가 정욱의 멱살을 붙잡았다.
정욱은 대롱대롱 흔들리며 대답했다.
“김, 김재원입니다…….”
“이거 놓으세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유빈이 정욱과 동욱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멱살을 잡힌 정욱을 구해낸 유빈은 동우를 똑바로 올려다보다, 큰 덩치와 문신에 흠칫 놀라 슬그머니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리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렇게 막 그러시면 안, 안 되거든요?! 의료인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오, 그래? 해 봐. 해 봐. 경찰 불러! 불러 이 새끼들아! 기자도 불러! 다 불러! 의료 사고 한번 까발려 보자!”
동우의 두툼한 손가락이 유빈의 머리를 툭툭 밀쳤다.
기세 좋게 나섰지만 의료 사고 운운하며 막 나가는 동우의 기백에 눌려 유빈이 당황한 그때, 유빈의 머리를 밀치던 동우의 검지를 누군가 콱 붙잡았다.
시우였다.
유빈은 자신을 보호하는 시우의 뒷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굳이 몰입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역할에 완전히 몰입이 된다.
“이거 안 놔?!”
팍!
동우가 시우를 밀자, 유빈의 몸이 시우의 등과 더욱 가까워졌다.
시우는 정말 귀찮은 일투성이라는 표정으로 살짝 한숨을 쉰 다음, 입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