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86)
286. 결혼식
“술 냄새.”
동우의 손가락을 잡은 채, 시우가 말했다.
“뭐?”
동우는 험상궂은 얼굴을 있는 힘껏 일그러뜨렸다.
아직 핏기가 사라지지 않은 시우의 눈을 본 순간, 다시 소름이 밀려왔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동우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대사, 소중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월드 스타인 시우와 함께 촬영할 기회는 평생에 오늘 하루뿐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큰 고함 소리와 반대되는 시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술 냄새가 납니다.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뱉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이 손가락으로 아무나 그렇게 밀치셔도 안 되고요.”
시우는 유빈의 머리를 밀치던 동우의 손가락을 붙잡아 밑으로 내렸다.
“아, 아아악!”
시우가 손을 내리는 와중에 검지가 살짝 꺾인 동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유빈이 얼른 뒤에서 시우의 팔을 마구 때렸다.
“안 돼! 안 돼!”
시우는 유빈의 외침에 태연하게 손을 놨다.
“엄살 부리시는 겁니다.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픈 손가락을 흔들며 동우가 시우를 봤다.
시우는 그런 동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빙그레, 입만 웃었다.
촬영감독은 감탄했다.
‘와, 저 웃음 진짜 이민준 트레이드마크가 됐어.’
최근 SNS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준 따라하기>라며 입만 웃는 사진을 찍어 올리곤 했는데, 해 보면 알겠지만 뺨이나 눈은 그대로 놔두고 입만 웃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약간 귀여우면서도 섬찟한 장인 정신으로 빚어낸 저 미소-
‘백만 불짜리 미소다. 캐릭터에 저렇게 포인트를 주다니.’
안무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각인될 만한 포인트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우는 저 삐에로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한,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그리고 눈빛에서는 왠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우수가 느껴지는 미소를 통해 이민준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있었다.
시우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얼굴로 황당해하고 있는 동우를 지나쳐, 한 젊은 여성 단역 배우에게로 향했다.
이민준에게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가, 남자친구와 함께 보상금을 목적으로 난동을 부리러 온 동우의 여자친구 역의 배우였다.
“환자분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편이 좋겠네요. 환자분, 수술 당시의 영상은 증거 자료로 전부 남아 있습니다. 의료 사고가 의심스러우시다면 함께 영상을 보셔도 좋고…….”
단역 여배우는 동우와 눈짓을 한차례 주고받은 후, 그대로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 아야아…… 아…… 어떡해…… 너무 아파…….”
“…….”
그녀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시우를 몰래 올려다봤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시우는 시니컬하게 응급센터의 남자 간호사 현수에게 말했다.
“경찰 불러 주세요.”
현수 역의 배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경, 경찰요?”
더 놀란 표정의 동우가 버럭 외쳤다.
“경찰?! 하! 나 참! 이 자식이 어디서 허세야! 조용히 해결해 주려 했더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건방지게…… 이 병원 이름 기사에 오르내리는 꼴 보고 싶어?! 일 크게 한번 만들어 봐?! 처신 똑바로 하라고!”
시우는 동우를 향해 조용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요. 제 병원도 아닌데.”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벙찐 가운데, 시우의 한마디가 더 이어졌다.
“그리고…… 저는 제 수술 영상을 여러 차례 혼자 감상하는 취미가 있거든요. 제 수술은 완벽했습니다.”
은은한 광기가 일렁이는 시우의 붉은 눈을 본 동우와 동우의 여자친구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컷! 오케이! 이민준! 박력 좋아!”
기쁨에 찬 감독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와~ 정말 어이가 없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보상금을 노리고 그런 난동을 부려? 수술 과정 A부터 Z까지 전부 녹화해서 보관하는 시대에 말이야.”
밤샘 근무를 마친 의사들이 허기를 면하기 위해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씬.
머리를 풀어헤친 유빈은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진짜 피해자들도 보상 한 번 받으려면 피눈물이 나는데, 어떻게 저런 얄팍한 거짓말로…… 하여간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어.”
커피향이 나는 머리를 감고 나온 시우가 젖은 머리를 가볍게 수건으로 닦으며 걸어 들어왔다.
시우가 자리에 앉자 시우의 머리에서 풍기는 달콤한 샴푸 향기가 테이블 주변으로 퍼졌다.
유빈은 그 샴푸 향기에 잠시 취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연기를 시작했다.
탁.
유빈의 손이 옆자리에 앉은 시우의 등을 쳤다.
아직 머리에 물기가 남아 있는 시우가 슥 고개를 돌리자 유빈은 일부러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오늘도 바람 잘 날 없는 ER에서의 하루! 오늘 고생했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우의 시선에 유빈은 민망한지 웃음을 거두고, 헛기침을 하며 테이블 쪽으로 돌아앉았다.
유빈이 테이블의 샌드위치를 오픈하려 할 때, 동료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민준이가 진짜 욕봤다. 카아~ 근데 오늘 멋있더라~ 뭐랬지? 그 인간 손가락 딱 잡고!”
또 다른 동료 의사가 진지한 얼굴로 민준을 흉내 냈다.
“이 손가락으로…… 아무나 그렇게…… 밀치셔도 안 되고요……!”
“크~ 와, 흑기사! 흑기사! 이열~”
“에이, 요즘 누가 흑기사 같은 말을 씁니까. 여하튼 항상 느끼는 건데 민준이는 수술할 때도 그렇고 애가 참 겁이 없어요. 아니, 그냥 감정이 없는 거 같아. 가끔은 싸패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덜그럭.
투두둑.
정욱이 뜯던 샌드위치를 요란스럽게 바닥에 떨어트렸다.
조용-
바닥을 나뒹구는 샌드위치를 보며 의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 민준의 흉내를 낸 남자 의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김 선생. 먹기 싫으면 나 주지. 왜 버리고 그래? 아깝게.”
“버, 버리긴 뭘 버려요. 떨어트린 거잖아요.”
정욱은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로 떨어진 샌드위치를 주워 곱게 종이에 다시 쌌다.
그 와중에 정욱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우에게 갔다.
“…….”
시우와 눈이 마주친 정욱은 불에 덴 듯 서둘러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샌드위치를 막 꺼내고 있는 유빈이 보였다.
유빈은 자신을 보는 정욱을 발견하자마자 샌드위치를 손으로 가렸다.
“……안 줄 거예요. 떨어트린 선배 잘못.”
“달라고 안 했어. 많이 먹어.”
정욱은 자상한 눈빛으로 대사를 쳤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독기와 욕심이 빠지니 자상한 연기도 훨씬 느낌이 살아났다.
주연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로 늘 악플만 받다가 최근 연기 호평이란 걸 처음 받고 있는 정욱은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촬영장에 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이런 기분이 낯설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살랑살랑 간지러운 것이 꽤 기분이 좋았다.
‘시우가 든든하게 작품을 받쳐 주니까 싸패 이민준을 향한 내 리액팅이 웃음과 공감을 끌어내는 거지. 이제는 나도 케미랄까, 앙상블이랄까. 동료 배우와의 호흡이 뭔지 좀 보인다.’
유빈은 자신의 대사를 준비하며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오빠, 내가 아니라 시우를 보고 웃고 있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나중에 풀샷 다시 찍을 때 시선 처리를 정확하게 해 달라고 피드백을 줘야겠다.
유빈의 입이 열렸다.
“아! 뭐예요! 호두랑 땅콩 들었어! 제가 저번에 견과류 싫어한다고 말했잖아요!”
자신의 샌드위치를 본 유빈이 투덜댔다.
샌드위치를 나눠준 능청스러운 캐릭터의 남자 의사가 초췌한 얼굴로 푸하핫 웃어 댔다.
“그래서 특별히 견과류 샌드위치로 받아 왔지. 의사가 편식하고 그럼 안 된다~ 너. 편식 아주 나쁜 거야.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지.”
“아…… 선배님!”
“그래. 고맙다는 인사는 넣어 둬.”
얄미운 선배 역의 배우는 유빈에게 근엄하게 말한 뒤, 과일이 풍성한 자신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유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면서 억지로 자신의 샌드위치를 우물거렸다.
그때, 시우의 손이 움직였다.
시우는 말없이 아무렇지 않게 유빈의 손에 들려 있는 견과류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그 자리에 자신의 과일 샌드위치를 꽂아 넣었다.
“어?”
유빈은 당황한 얼굴로 시우를 봤다.
“내, 내가 한 입 먹은 건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몇 차례 입을 뻐끔거리던 유빈은 자신의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무는 시우의 옆모습에 심장이 또 주책없이 뛰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진짜로 뛰면 어떡해……!’
옆자리라 심장소리가 시우한테까지 들릴 거 같다.
유빈은 카메라도, 스태프들도 잠시 잊고 완전히 여주인공 역할에 집중해 화끈거리는 얼굴을 자기도 모르게 손등으로 살짝 누르며 시선을 피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카메라에 잡힌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보고 있던 스태프들까지도 그녀와 함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유빈의 캐릭터가 평상시 보여 준 적이 없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정욱은 조금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투심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뱉는 연기를 펼쳤다.
“내 것도…… 내 것도 먹을래?”
정욱은 자신의 앞에 있던 샌드위치를 유빈의 앞으로 밀었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유빈이 고맙다며 그 샌드위치도 받으려는 찰나, 시우의 손이 정욱의 샌드위치를 냉정하게 막아섰다.
유빈과 정욱의 시선이 동시에 시우에게 향했다.
오도독.
오도독.
견과류 샌드위치.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있는 호두가 꽤 큰 모양이었다.
감정이 없는 튼튼한 이빨로 견과류를 씹으며 시우가 말했다.
“떨어진 건 못 먹습니다.”
시우와 정욱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정욱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시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정욱은 시우와의 신경전에 혼자 숨이 막혀 내심 몸부림을 치며, 감독의 컷 사인을 기다렸다.
* * *
미국 뉴욕.
닥터 사이코 촬영 도중, 잠깐 짬을 낸 시우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자주 가는 LA가 아니라 오랜만에 오는 미국이었기에 여유롭게 관광도 하고, 지인들도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우는 곧장 케빈, 시윤과 같이 결혼식이 예정된 호텔로 향했다.
“늦으면 안 되는데!”
차 안에서 시윤이 발을 동동대며 외쳤다.
다행히 차는 무사히 제때 호텔에 도착했다.
시우는 주차장에서 역시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고 있는 니콜라스를 발견했다.
“닉!”
“시우! 앤 시윤! 앤 케빈! 예~”
달려온 니콜라스는 시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시우 일행에 합류했다.
“루시 누나는?”
시윤이 묻자 니콜라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몰라. 늦는 거 같은데? 그래서 앞으로 헨리랑 루시가 절교한다고…….”
“니콜라스 형.”
“왜?”
“으휴, 됐어. 형이 늘 그렇지 뭐.”
“뭐냐 이 형을 한심하게 보는 그 눈빛은. 요즘 컸다고 막 무시하고 그러냐? 너 집에서 시우도 막 무시하고 그래? 날 무시하는 건 참아도! 내 친구인 시우를 무시하는…….”
“아! 됐고! 빨리 들어가자!”
시우는 니콜라스의 헛소리를 끊고, 얼른 결혼식장으로 들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