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9)
29. 사극 거장
이홍균 감독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시우와 가만히 눈을 맞췄다.
아이가…….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웠다.
단순히 귀엽다, 예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딘가 특별하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이홍균 감독은 시우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제가…… 이한수 감독이 찍은 아이 영상들을 다 봤습니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들도요. 그래서 주인공의 아역으로…… 좀 데려가고 싶습니다.”
도진은 ‘영광입니다’를 외치며 곧장 수락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의 일이 아닌 시우의 일이었기에, 깊이 생각을 해 봐야 했다.
현주와 눈빛을 주고받은 도진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선…… 저희 아이를 잘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떤 작품인지…… 저희가 사실…… 아이를 아역 배우로 키우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그다지 없고…… 애가 촬영을 놀이하듯 즐거워해서 시키는 거라…….”
거장 이홍균 감독을 앞에 두고 안 시키고 싶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도진은 뉘앙스로 의사만 전달했다.
왠지 사극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힘든 역할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이렇게 어린아이가 사극에 나오는 경우는, 그냥 엄마 품에 안겨 얼굴만 잠깐 나오거나 혹은 궁 내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한두 번 나오거나 그런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본 사극에서는 궁궐의 암투 속에서 어른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현장에 아이가 있기도 했고, 혹은 장례식이나 사람이 사약을 먹고 죽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 나오는 경우도 봤다.
그것은 조금 내키지가 않았다.
이홍균 감독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작품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기가 나올 1화 촬영 일정은 내년 5월입니다. 날씨는 따뜻할 거예요.”
5월이면 시우가 24개월, 두 돌이 될 때였다.
이홍균 감독의 음성이 이어졌다.
“주인공은 송준영이가 할 거고…… 소년기는 류승현이라고 있어요. 그렇게 이제……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성인으로 바꿀 거고…….”
도진과 현주는 깜짝 놀랐다.
송준영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남 배우였다.
국내 인기도 물론 톱이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신이었다.
류승현 역시 어린 나이에 이례적으로 벌써부터 팬들을 몰고 다니는 촉망받는 미소년 아역 배우였다.
그 두 배우들의 미모를 떠올리면, 그들의 아기 시절 역할이 시우에게 들어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홍균 감독은 최대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 레벨이 완벽에 가까운 아이를 찾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무조건, 절대적으로, 반드시 귀티가 흘러넘쳐야 했다.
그런 아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는 이홍균 감독에게 이한수 감독이 시우를 추천했다.
이홍균 감독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꼭 같이하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애들만 백여 명을 보고 돌아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애가 없어 가지고…… 시청자들에게는 주인공의 첫인상을 만들어 줄 아이니까…… 적당히 대충 할 수도 없는 거고…….”
특유의 늘어지는 말투로 조곤조곤 말을 잇는 이홍균 감독이었다.
시우를 안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던 현주가 살며시 입을 떼었다.
“저…… 아기가 촬영하기에 힘든 부분은 없을까요?”
현주는 이홍균 감독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홍균 감독은 자신의 흰머리를 쓸어 넘기고, 자신의 손자와 비슷한 나이인 시우의 얼굴을 쳐다보며 답을 했다.
“제가 고집도 좀 있고…… 꽉 막힌 노인네 같아 보여도…… 아기한테 무슨 어려운 연기를 요구하거나, 위험 감수하고 좋은 장면을 뽑아내라고 강요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옆에 앉아 있던 이한수 감독이 웃으며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선배님께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계세요. 최소한 중학생 안 된 애들은 다 맞춰 주십니다. 애들이 힘들어한다 싶으면 장면을 수정해서라도 애들 편의를 봐주시는 분이에요. 그런 분이라 제가 또 시우를 소개해 드린 거고.”
“아…….”
도진과 현주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홍균 감독이 말했다.
“그렇죠…… 그런데 이제…… 류승현이는 중학교 1학년이더라고.”
이한수 감독이 자신의 무릎을 쳤다.
“아이고야, 한두 살만 어렸으면 좋았을 텐데. 나이가 딱 걸렸네.”
“걔는 이제…… 배우로 좀 만들어 봐야지.”
듣고 있던 시우는 누군지는 몰라도 류승현이라는 아역 배우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나무늘보스러운 감독이었으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를 봐 온 시우는 알고 있었다.
나무늘보가 화나면 굉장히 무섭다는 걸.
이홍균 감독이 도진과 현주에게 재차 부탁을 했다.
“아기니까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촬영일도 많지 않고. 대신 임팩트 있게 딱딱 나와 줘야 하는데…… 영화 보니까 잘할 거 같아요. 같이 좀 해 보고 싶네요. 일단 당장 대답 안 하셔도 되니까…… 생각 한번 해 보세요.”
도진과 현주가 대답하려는 찰나, 엄마 품에 있던 시우가 먼저 대답을 던졌다.
“우웅~ 조아~”
진지하던 분위기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이한수 감독이 한참 웃다가 말했다.
“시우야, 엄마가 좋다는 거야? 아님, 드라마가 하고 싶다는 거야?”
시우가 뽀얀 볼을 풍선처럼 부풀렸다가 푸우 공기를 내뱉고는 짧게 말했다.
“다아~”
그 귀엽고 영특해 보이는 모습에 이홍균 감독도 껄껄 웃고 말았다.
역시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갔다.
도진이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현주는 파스타를 먹었고, 시우는 엄마가 챙겨 온 유아식을 먹었다.
‘……외식 나와서 유아식이라니. 외식 나와서 유아식이라니-!’
“얌얌.”
봉골레나 로제 파스타를 먹어 보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아빠가 입에 넣어 주는 유아식을 맛있게 받아먹는 시우였다.
식사를 마친 시우는 거리로 나가 사람 구경도 하고, 캐럴도 실컷 듣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했다.
꽤 즐거운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온 시우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은, 받았다고…… 믿어야 하는 장난감들을 가지고 복실이, 네로와 재밌게 놀아 주다 곤히 잠이 들었다.
이튿날.
시우는 엄마와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장을 보러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그리고 사 온 식료품들을 정리한 뒤, 엄마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내가아~ 내가아~”
현주가 리모컨을 들자 시우가 손을 뻗고 외쳤다.
현주는 시우의 손에 리모컨을 쥐여 줬다.
꾸욱-
시우가 리모컨을 누르자 TV가 켜졌다.
“우리 시우 똑똑하네. 뭐 눌러야 되는지 어떻게 알았어? 엄마랑 아빠가 하는 거 봤어?”
“티비~”
“응. TV 켰다. 엄마랑 TV 보자.”
현주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로맨스 사극 드라마 한 편을 골라 틀었다.
시우에게 한번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시우가 관심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세자 저하…….] [왜……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전편에서 남녀 주인공이 재회를 하고 끝난 모양이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불타올랐다.
[저하께서는 절대 이해 못 하시겠지만…….] [그만! 너는…… 너는 내 사람이다…….]세자가 여 주인공을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꺅! 뭐야! 시작하자마자 왜 이래!”
현주는 얼른 시우의 눈을 가렸다.
소파를 더듬어 리모컨을 찾은 현주는 서둘러 VOD를 종료시켰다.
“다, 다른 거…….”
현주가 다른 사극을 찾는 동안, 시우는 오그라든 손발을 펴는 데 집중했다.
‘……엄마, 로맨스 사극 말고 액션 많이 나오는 걸로 틀어 주세요. 무술 구경이나 하게.’
시우는 엄마 무릎 위에 앉아 다른 사극 드라마를 시청했다.
시우의 바람과 달리 이것도 달달한 청춘 사극물이었다.
요즘은 무거운 정통 사극보다 이런 장르들이 꽤 인기였다.
“시우야, 어때? 재밌어? 형아랑 누나랑 신기한 옷 입었지? 시우도 명절 때 저런 옷 입었는데 기억나요?”
“옷~”
시우는 여기서 자신이 보이는 반응에 따라 차기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재미없어. 싫어. TV 꺼.
이런 반응을 보일 경우, 부모님이 이홍균 감독의 제의를 거절할 가능성이 컸고.
반대로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면 긍정적으로 고려를 하실 것이다.
“우으음~”
시우는 드라마에 나오는 형, 누나들을 바라보다 TV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TV를 가리킨 채, 시우가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고~ 조아~”
송준영-류승현-윤시우.
훗날, 팬들에게 전설로 회자되는 국대급 미모 라인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의 마지막 날.
도진이 퇴근했다.
도진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빠아~!”
시우가 달려갔다.
“우리 아들! 잘 있었어? 아빠가 선물 가지고 왔어.”
“선무울?”
선물이란 단어에 시우가 기대감 어린 얼굴로 아빠를 봤다.
현주도 다가와 물었다.
“무슨 선물?”
도진이 패딩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짜잔!”
현주와 시우의 눈앞에 웬 티켓을 들이미는 도진이었다.
“어? 눈썰매장 이용권이네? 어디서 났어?”
“연말 선물로 받았어.”
“와, 좋다. 1월 7일부터 14일까지네. 어디지?”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려는 현주에게 도진이 말했다.
“이번에 새로 개장했대. 다음 달에 시우랑 같이 다녀오자.”
“응. 우리 시우 신나겠다. 눈썰매 무서워하진 않겠지?”
아빠의 다리에 매달려 듣고 있던 시우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네버랜드 T익스프레스도 탈 수 있어요…….’
물론 규정이 자신을 거부하겠지만.
도진이 말했다.
“1월 8일에 가자. 그날 비번이야.”
“알았어. 시우야~ 썰매 타러 갈까? 슈웅! 썰매! 미끄럼틀보다 훨씬 빨라!”
시우는 함박웃음을 띠고 소리를 쳤다.
“미끄~! 조아~!”
폴짝폴짝 뛰는 시우를 안아 주며 현주도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 복실이, 네로와 모여 앉아 TV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나니, 영화와 CF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일 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시우는 3살이 되었다.
1살 때는 미스터 문라이트.
2살 때는 내겐 너무 무서운 아내.
3살 때는 이홍균 감독의 사극 드라마 출연 예정.
아직 3살인데 무척 충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시우였다.
연초에 아기 옷 모델로 서울 모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온 것을 제외하면, 시우의 일상은 새해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일어나서 복실 & 네로와 놀고, 밥 먹고, 밤에 잠깐 자유 시간을 보내다 수련하고, 자고.
즐겁고 행복하지만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이었다.
시우는 1월 8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외출, 외출, 외출-!
외출만이 쳇바퀴 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준비 다 했어?”
현주가 도진에게 물었다.
드디어 1월 8일이었다.
시우의 옷을 입히면서 도진이 대답했다.
“장갑만 끼우면 되는데. 장갑은 가서 낄까?”
“응. 시우 데리고 먼저 차에 가 있어. 내가 시우 짐 챙겨서 나갈게.”
“알았어.”
어제보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도진과 현주는 옷차림에 더 철저히 신경을 썼다.
특히 시우가 춥지 않도록 옷을 잘 싸매 주었다.
집을 출발한 차는 30분 정도를 달려 새로 개장한 눈썰매장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옆 차에서 가족들이 내리는 광경이 보였다.
도진과 현주는 복잡하지 않게 옆 차의 가족들이 전부 내릴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시우를 안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던 현주가 밖을 보다 도진에게 말했다.
“오빠, 저 집 애들 진짜 예쁘다.”
도진이 현주를 따라 옆 차에서 내린 가족들을 봤다.
4인 가족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시우만 한 남자아이를 안고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따라갔다.
시우만큼은 아니었지만 얼핏 보인 남자아이가 제법 귀여웠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부모님을 쫓아가는 여자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