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92)
292. 북극곰
“으아아아아아악!!!”
루시와 헨리는 갑자기 들려온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니콜라스가 개구리처럼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뭐, 뭐야?!’
헨리는 자신의 옆에서 포즈를 취하다 난데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진 니콜라스를 보며 황당해했다.
볼썽사납게 공중에 잠시 머무른 뒤, 철퍼덕 바닥으로 떨어진 니콜라스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바닥을 기다 헨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왜, 왜 이래!”
헨리의 몸을 감싼 니콜라스가 헨리를 마구 잡아끌었다.
“니, 닉!”
헨리는 바닥에 넘어지다시피 하며 니콜라스에 의해 질질 끌려갔다.
니콜라스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시우!! 루시 데리고 피해!! 북, 북극곰이 살아 있다아아!! 다들 빨리 피해요!! 으아아아…… 아아…… 아아악?”
헨리를 끌고 몸을 피하던 니콜라스는 스태프들이 자신을 향해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것을 봤다.
북극곰 주변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자신과 다르게, 다들 한가롭고 유쾌한 표정이었다.
“…….”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니콜라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때, 등으로 바닥을 쓸며 끌려오던 헨리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좀 전에 웬 동물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듣긴 했으나, 누군가의 휴대폰이나 공항 스크린 영상에 흘러나온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박제라고 들었던 북극곰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끄아아아아!! 꾸어어어어!!”
퍼덕퍼덕퍼덕!
헨리가 공항 바닥에서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다.
시우는 언제나 얌전하고 어른스러운 헨리가 저런 얼굴로 저런 소리도 낼 수 있구나 신기해하면서, 스태프들과 같이 신나게 웃었다.
털썩!
“……응?”
시우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북극곰의 허리 쪽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던 루시가,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색이 된 루시의 얼굴을 본 시우는 왠지 낯익은 느낌에, 저 표정을 언제 봤더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릴 때 유령의 집이었나?’
이곳저곳에서 좀비가 튀어나오던 애너하임의 한 테마파크.
‘그러고 보니 그때도 니콜라스랑 헨리의 비명이랑 호들갑, 엄청 요란했지~ 변한 게 없구나.’
시우는 웃음을 꾹 참으며 루시의 뒤로 다가갔다.
루시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녀를 진정시키고 일으켜 준 다음, 북극곰 로봇이라고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루시를 부르려던 시우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하나의 못된 본능과 맞닥뜨렸다.
“…….”
잠시 망설인 시우는 움직이는 북극곰을 멍하니 바라보는 루시의 등 뒤에 대고 낮은 동물 울음소리를 냈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앙!”
“꺄아아아악-!!!”
루시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은 채로 몸을 시우 쪽으로 휙 돌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루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루시의 하얀 얼굴에 눈물이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것을 본 시우는 크게 웃으려다, 웃음소리를 슬그머니 목구멍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로, 로봇이야. 로봇. 인공지능 북극곰. 옛날에는 진짜 박제 북극곰이 있었다는데…… 얼마 전에 바뀌었…… 다고…….”
코끝을 빨갛게 물들이고 눈물을 훌쩍이던 루시가 시우에게 처음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우! 너 몇 살이야!”
“……으응, 글쎄. 거의 일만 살…….”
“무슨 일만 살! 장난 좀 그만 쳐! 니콜라스랑 똑같…….”
루시는 장난의 아이콘인 니콜라스를 가리키며 외치다 기가 막혀 입을 다물었다.
니콜라스는 헨리를 북극곰 쪽으로 마구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괜찮아! 진짜 북극곰 아닐 거야!”
“아니, 그래도 무서우니까 밀지 말라고오!”
“북극곰이랑 친구가 될 기회야, 헨리!”
“하지 말라니까! 궁금하면 네가 먼저 가면 되잖아~!”
퍽!
북극곰에게 자신을 미는 니콜라스 때문에 몸부림을 치던 헨리가 자기도 모르게 팔꿈치로 니콜라스의 배 밑 어딘가를 쳤다.
신나게 장난을 치던 니콜라스는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공항 바닥에 납작 엎드려 헨리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지나친 장난에 대한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닉! 미, 미안해!”
헨리의 비명 같은 사과가 터졌고, 스태프들과 촬영을 구경하던 주변 관광객들은 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담당 PD 역시 키득키득 웃다가 손을 들어 의료팀을 불렀다.
‘어릴 때부터 친구라 그런가 넷 다 진짜 어린애들처럼 노네. 시작부터 시끌벅적하구나. 그나저나 이 한순간을 위해 로봇 곰이라는 거 일부러 비밀로 했는데, 시우는…… 미리 알아보고 왔나?’
시우의 놀란 표정을 건지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출연자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 낼 시간은 앞으로 많았다.
‘확실히 뭔가 남다른 존재감이 있어.’
담당 PD는 왠지 시우의 분량이 많아질 것 같다는 예감 속에 스태프들에게 이동을 지시했다.
* * *
노르웨이 최북단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는 북극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불린다.
2천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 스발바르 제도에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북극 연구 과학 기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툰드라와 빙하, 그리고 살아남은 북극의 야생 동물들을 볼 수 있는 북극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인 스발바르 제도에 시우와 루시, 니콜라스와 헨리가 발을 디뎠다.
“비행기가 왜 안 올까.”
“그러게.”
“근데 생각보다 춥진 않다. 1월 말인데도.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긴 한가 봐.”
“그걸 알리는 게 우리의 여행 목적 중 하나니까.”
니콜라스와 헨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오지 않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 PD는 말을 해 줘야 하나 계속 고민하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출연자들이 헤맬수록 제작진도 같이 헤매야 한다는 것뿐.
물론 그 과정 자체가 여행이고 모험이니,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 내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었다.
헨리를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공부하고 오면 미지의 장소를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해, 시우는 학구파인 헨리에게 조사를 맡긴 상태였다.
시우는 할리와트 촬영 때도 그랬지만 헨리가 은근 허당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새삼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는 거 맞아? 로봇 북극곰을 박제 북극곰이라고 설명한 것도 그렇고…….’
북극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들었다는 정보는 이제 와 보니 매우 오래된 정보가 틀림없었고, 제작진에게 얻었다는 정보는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식의 정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비행기에서 헨리에게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 주는 듯이 보였지만, 일부러 로봇 북극곰에 대해 안 가르쳐 주고 장난을 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함 가 볼까.’
“헨리~”
“응. 시우.”
“여기서 기다리면 경비행기가 정말 오는 거야?”
“그렇다고 하던데?”
하던데…….
시우는 물었다.
“누가?”
헨리는 제작진 쪽을 가리켰다.
“작가님이.”
“…….”
시우가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루시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여기 온다고 써 있어. 시우. 그런데 사람도 없고…… 등은 켜져 있는데 왜 안 하는 거 같지? 앗!”
헨리, 니콜라스와 다르게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던 루시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경비행기 운행을 안 한다는데?”
친구들은 모두 침묵에 빠졌다.
안내문을 확인한 헨리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왜?”
기다린 시간이 억울했는지 니콜라스가 외쳤다.
“왜 하필 오늘이야! 이제 우리 어떡하지?”
니콜라스와 헨리는 무의식중에 시우를 쳐다봤다.
루시도 시우를 봤다.
왠지 모르지만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시우를 보게 된다.
시우는 당황한 친구들을 진정시켰다.
시우는 역시 자신이 보호자 역할이구나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십대 초반의 친구들이었으나 자신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할리와트의 십대 소년소녀들 같았다.
“다른 거 타면 되지.”
어차피 이 많은 숫자의 제작진들이 모두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얘긴, 당연히 대규모 인원이 이동할 수 있는 다른 교통편이 있다는 뜻이고.
다만 제작진은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이것저것 금방 나올 텐데.’
안타깝게도 휴대폰은 현재 사용 금지였다.
정해진 시간에만 잠깐 사용할 수 있었다.
시우는 근처의 지나가는 현지인을 붙잡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숙소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잠시 후, 시우 일행은 경비행기 대신 배에 탑승했다.
“잘됐다! 난 비행기보다 배가 좋아! 경비행기 안 타 봐서 솔직히 조금 무서웠어…….”
헨리는 반색했다.
니콜라스가 물었다.
“시우, 아까 그 아저씨가 좀 오래 걸린다고 했잖아. 혹시 막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타고 가야 되는 거야?”
시우는 해맑게 묻는 니콜라스에게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한두 시간?
“네다섯 시간. 혹시 뱃멀미할 거 같으면 말해.”
니콜라스와 헨리의 경악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헉! 말도 안 돼! 배를 타고 다섯 시간을 가야 한다고?! 장난이지?”
니콜라스는 평소 시우가 자신만큼 장난기가 많다는 걸 알았기에, 웃으며 물었다.
시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과 바람이 우리를 도와주면 네 시간. 아니…… 음? 잠깐만. 그래. 네 시간쯤 걸리겠다.”
내가 마법으로 배를 민다면.
시우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직 해가 뜨지 않는, 앞으로 며칠 동안 계속 해가 뜨지 않을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배의 불빛만이 전부인 검은 바다가 보였다.
왠지 당장이라도 커다란 괴물이 튀어나올 것처럼 깊고 어둡다.
시우는 북극해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얀 숨을 내뱉으며 물길과 바람을 바꾸는 주문을 외웠다.
시우의 눈동자에서 오랜 세월의 많은 지식과 지혜를 담은 눈동자가 이지적인 빛을 발했다.
“…….”
그리고 배에 추진력을 주던 시우는…….
이 배는 바람으로 가는 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뒤늦게 슬그머니 바람 마법을 거둬들였다.
‘……괜히 찬바람만 더 맞았네.’
* * *
배를 타고 네 시간을 들어가 육지에 내린 시우 일행은 숙소를 향해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LA를 떠나온 지 벌써 수십 시간.
비행기 안에서 설레는 마음에 잠을 못 잔 게 큰 실수였다.
니콜라스와 헨리, 루시는 모두 지친 얼굴로 시우를 쫓아 걷고 있었다.
해가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영하 15도의 온도는 여행자들에게 자비롭기 그지없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수십 시간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여행자들에게는 그 자비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추워…….”
헨리가 몸을 부르르 떨며 혼잣말을 뱉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그 말을 들은 니콜라스가 헨리에게 붙어 팔짱을 껴 주었다.
시우는 친구들을 포함해, 말수가 줄어든 제작진들에게도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루시의 팔을 부축했다.
“……고마워.”
“다 왔어. 조금만 더 가자.”
“이제 겨우 도착한 건데 힘들다.”
“잠을 못 자서 그래. 숙소 가서 푹 쉬자.”
“응.”
루시는 시우를 보며 웃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얼굴이 얼었는지 잘 움직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함께 고생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 끝에, 시우와 친구들의 눈앞에 흰 눈으로 뒤덮인 마치 동화에 나올 법한 너무나도 예쁜 마을이 등장했다.
시우는 친구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왔다. 고생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