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in the Spotlight since Birth RAW novel - Chapter (295)
295. 과거
4년 후-
시우는 눈을 떴다.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시우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멍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시우의 몸을 동생 시윤이 흔들었다.
“형! 이제 일어나! 학교 가야지!”
열두 살 시윤은 일찌감치 일어나 이미 등교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그런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시우는 느릿느릿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졸린 눈으로 시우가 앞머리를 쓸어 올리자,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시우의 한층 어른스러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형, 빨리 밥 먹어.”
시우는 동생 시윤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우와 시윤은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집안은 조용했다.
식탁에는 엄마가 출근 전에 준비해둔 밥과 반찬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시우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 젓가락질을 했다.
마주 앉은 시윤은 형의 눈치를 살피다 컵에 물을 따라 형의 앞에 내려놓았다.
“물도 마셔.”
“어.”
“엄마 오늘 늦는대. 이따 저녁에 나랑 형이랑 같이 유치원으로 시아 데리러 가야 돼.”
“…….”
“난 초등학생이라~ 형 없으면 시아 못 데리고 나오니까 형 늦게 오면 안 된다~ 알았지?”
“알았어.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그냥 집에서 공부나 해.”
“왜? 같이 안 가고?”
“귀찮게.”
“……으응. 그럼 이따 5시쯤에 전화할게. 저번처럼 잊어버리면 안 돼. 시아 또 울어.”
“밥이나 먹어. 초등학교 5학년 주제에 형한테 잔소리 그만하고.”
“응…… 이거 소시지 형 좋아하는 거니까 많이 먹어.”
시윤은 비엔나 소시지가 담긴 반찬 그릇을 시우의 앞으로 밀었다.
시우는 동생도 소시지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기에 그대로 반찬 그릇을 다시 시윤에게 밀었다.
“너나 먹어.”
새빛고등학교 급식실.
점심을 먹은 시우는 디저트로 받은 사탕을 입에 문 채, 친구들과 같이 급식실을 나왔다.
“야, 오늘 끝나고 게임하러 갈까?”
“좀 있음 시험 기간인데 게임하러 가자고? 정신 상태가 너무 올바른데? 콜.”
“오케이. 시우야. 너는?”
시우는 입안의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다 친구들에게 말했다.
“잠깐 정도는 뭐.”
시우의 대답에 친구들은 신이 난 얼굴로 시우에게 들러 붙었다.
“우리 시우는 솔직히 겜방비 우리가 내주면서 모셔 가야 돼~”
“농담 아니고. 시우는 진짜 프로게이머 한 번 도전해 봐야 된다니까. 내가 얼마 전에 프로게이머 김성준하고 붙은 적 있었는데 뻥 안치고 시우가 더 빡세.”
“네가 시우랑 프로게이머 실력 평가할 수준은 되고?”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복도를 걷고 있는 그때, 맞은편에서 한 남학생이 걸어왔다.
시우를 발견한 지호는 자기도 모르게 시우를 쳐다보다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VR 게임센터.
“왼쪽!”
시우가 외치자, 지호와 친구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달려 나갔다.
“지호야 힐!”
“알았어!”
“야, 유지호도 좀 하는데?”
“힐이 빠릿빠릿해~ 담부터는 지호도 불러야겠어.”
얼떨결에 시우를 따라 게임을 하러 오게 된 지호는, 오늘 처음 사귄 시우의 친구들과도 어느새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며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파파파팟!
화살비가 쏟아지고 불길이 휘몰아치는 전장에서 다른 길드와 혈전을 벌이던 시우와 친구들은 시우의 영웅적인 활약에 힘입어 5:1의 완승을 거뒀다.
시우의 플레이를 구경하기 위해 시우 등뒤에 자리를 잡고 서 있던 게임센터 손님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장난 아니다.”
“쟤는 진짜 컨트롤이 와~”
“밥 먹고 매일 게임만 했나. 이런 애들이 나중에 프로게이머 되는 거야.”
시우는 자신을 칭찬하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게임센터 주인아저씨와 몇마디 대화를 나눈 뒤 게임센터를 나왔다.
“유지호, 너는 어디 사냐? 우리랑 같이 가냐?”
“아니, 나는 시우랑 같은 방향.”
“그래? 그럼 시우랑 가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시우야.”
시우가 돌아보자 세 명의 친구들이 동시에 엄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게임의 신.”
“게신 윤시우.”
“오늘도 넌 최고였어.”
세 명의 친구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사라지고, 시우는 지호와 같이 터벅터벅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도를 걸어갔다.
지호가 말했다.
“벚꽃 보는 것도 얼마 안 남았네.”
“그러네. 아쉽냐?”
“나보다는 엄마랑 누나가 엄청 아쉬워하더라고~ 벚꽃 구경 또 가자고 엄마가 아빠한테 엄청 조르는데…… 아…….”
지호는 말을 잇다 말고 시우의 표정을 살폈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너랑 나랑 하루 이틀 보냐. 괜찮다니까 뭘 자꾸 신경 써. 오히려 그게 더 기분 나쁘거든?”
“미안. 안 그럴게.”
“소심하긴.”
“내가 쫌 그렇지.”
시우와 지호는 같이 웃었다.
시우는 일부러 활기차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우리 아빠가 돌아가실 때 유품으로 게임기를 남겨 놓지 말고, 문제집 같은 걸 남겨 놓고 가셨어야 하는 건데. 우리 엄마가 맨날 그 소리잖아. 하필! 게임기를 남겨 놓고 가서 내가 아빠 생각날 때마다 게임기만 붙잡고 산다고.”
“응. 그러네.”
“이러다 진짜 프로게이머 되겠어.”
“그래도 공부 안 하는 거 치고 성적이 좋으니까 고3 되기 전에 맘 잡고 공부하면…….”
“됐어. 공부는 시윤이한테 맡겨 놨어. 걔는 초등학교 입학 후로 지금까지 모든 시험에서 한 문제도 틀린 적이 없다? 나중에 자기가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속 공부를 해. 어린 놈이 건방지게 말이지.”
말과 다르게 시우의 입가에는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지호도 시우의 그런 마음을 알았기에 같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천천히 벚꽃길을 걷던 시우가 뭔가를 떠올린 듯 우뚝 걸음을 멈췄다.
“…….”
“왜?”
“하아…… 짜증나게 진짜. 큰일났다. 지금 몇 시지?”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어?”
“아까 시윤이 전화 받고 알람 맞춰 놓는다는 거 깜박했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하다.
시우와 지호는 가방을 멘 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큰오빠!”
시아는 빠른 걸음으로 뛰어와 시우의 품에 폭 안겼다.
그리고 시우 옆에 있는 지호를 멀뚱히 올려다보다,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지호와 종일반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빵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시우는 유치원 선생님들께 조금 늦어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시우가 고생이 많네. 얼른 집에 가서 시아랑 저녁 먹으렴.”
“네. 감사합니다.”
시우는 시아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아가 외쳤다.
“오빠~ 나 배고파!”
시아의 해맑은 목소리를 들은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 얼른 집에 가자. 오빠도 배고프다.”
“나 전에 엄마가 사준~ 치즈 돈까스 먹고 싶어!”
“뭐? 치즈 돈까스? 시아야, 애들이 치즈 많이 먹음 몸에 안 좋아. 그냥 가자.”
“먹고 시픈데……. 나 치즈 많이 안 머거써~ 예에에엣날에 엄마랑 먹고 안 머겄는데…….”
“…….”
시우는 동생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걸었다.
지호도 애들이 치즈를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구나 생각하면서 시아의 한쪽 손을 잡고 걸었다.
조용히 걷던 셋의 걸음이 멈춘 것은, 시아가 치즈 돈까스가 먹고 싶다며 울먹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시우는 답답한지, 조금 화가 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땅을 쳐다보고 있었다.
떼를 쓰는 시아와 화난 시우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지호가 시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먹고 갈까? 요앞에 치즈 돈까스 맛있는 데 있잖아.”
시아의 눈동자에 화색이 돌았다.
시아의 기뻐하는 얼굴을 본 시우는, 진짜 짜증이 나서 죽을 거 같다는 눈빛으로 땅만 뚫어져라 응시하다 마침내 지호에게 말했다.
“거기 돈까스 7천 원 아니냐?”
“일반은 그렇고 치즈는 8천 원일걸?”
“8천 원?”
“응. 학교 앞이라 싸.”
“…….”
“왜?”
“5천 원밖에 없어.”
시우의 말을 들은 지호는 주섬주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용돈 잔고를 확인했다.
“기다려 봐. 나도 용돈 떨어질 때가 돼서…… 얼마 없긴 한데…….”
지호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지호가 자랑스럽게 시우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11,660원이라는 잔액이 적혀 있었다.
둘이 합치면 대략 16,000원.
시우는 조금 민망해하면서도 한시름 놓은 얼굴로 웃었다.
“뭐…… 그래서 빌려줄 거야?”
“빌려주긴. 그냥 주는 거지. 16,000원이니까 치즈 돈까스 두 개 사서 집에 시윤이도 갖다 줘.”
“……잠깐만. 내가 지금 너무 감동받아서 울 거 같거든?”
“하하.”
시우는 지호의 팔을 쳤다.
“내가 꼭 갚을게. 야, 우리 평생 가자.”
“안 갚아도 돼. 어차피 내일모레 누나한테 용돈 받는 날이야~”
“아, 너네 누나 공무원이랬나?”
“응. 우리 누나 이십대 초반에 공무원 돼서 엄마한테 달마다 월급 갖다 바치고 있잖아.”
“와…… 존경스럽다. 나도 그렇게 어른 되자마자 돈 벌 수 있는 직업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프로게이머나 해 볼까.”
시우와 지호는 각자 시아의 손을 한쪽씩 잡고, 돈까스 집으로 출발했다.
* * *
3년 후-
“윤시윤 쟤는 괴물인가.”
“또 전 과목 만점이야.”
“쟤랑 같은 초등학교 졸업한 애한테 들었는데 초등학생 때도 그냥 모든 시험 다 100점이었대. 심지어…… 쪽지 시험까지도!”
“헉! 방금 진심 소름 돋았어.”
수업 종료 후, 시험 결과를 받아 든 시윤은 조용히 가방을 쌌다.
옆자리의 친구가 시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 너 진짜 대단하다.”
시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단할 거 없어. 남들 고3 때 하는 짓을 난 그냥 초딩 때부터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아…… 그, 그게 대단한 거지~”
시윤은 말없이 책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 학생들이 시윤에게 다가왔다.
“윤시윤, 전교 1등 축하해. 축하 파티 같은 거 할까? 오늘 다 같이 영등포 갈 건데, 같이 가자!”
“싫어. 공부할 거야.”
한 여학생이 지나가는 시윤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어떻게 사람이 공부만 하고 살아? 너 중학생이야~ 가끔은 놀기도 해야지.”
탁.
시윤은 여학생의 손을 뿌리치고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너나 놀아. 난 놀 돈도 없어.”
시윤이 차갑게 돌아서자, 그 태도에 기분이 상한 몇몇 남학생들이 수군댔다.
“진짜 재수 없게 구네. 공부 잘하니까 막 애들이 우습게 보이나 봐.”
“그러게. 무슨 수능 앞둔 수험생도 아니고.”
“놔둬. 서울대 가시겠대잖아. 알고 보면 쟤도 불쌍해. 형이 은둔형 외톨이라던데?”
시윤이 뒤를 돌아봤다.
시윤을 비웃던 남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시윤은 무슨 말인가 뱉으려다,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쓱쓱쓱-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방안에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졌다.
문제집을 풀던 시윤은 어느 순간, 연필을 멈춰 세웠다.
시윤은 가만히 앉아 벽을 들여다보다 지우개를 내던졌다.
파악!
시윤은 방문을 열고 거실 겸 주방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시우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시윤은 시우를 부르려다 말고 그대로 게임기의 전원 선을 뽑아 버렸다.
“뭐야!”
시우가 화가 난 얼굴로 시윤을 돌아봤다.
“형이 잊은 모양인데, 나 아직 중학생이야! 형은…… 형은 어른이잖아!!”
“그래서 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시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